목록漢詩와 漢文 (1490)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太平閑話滑稽傳 我是龍哥 衛士龍順雨 性癡直.衛士인 龍順雨는 성질이 어리석었으나 정직했다.▶衛士: 대궐이나 능(陵)・관아(官衙)・군영(軍營) 등을 지키는 장교를 말한다.▶龍順雨: 이 이야기에서 위사라고 했으나 더이상은 알 수 없다. 嘗夜行遇巡官 潛伏橋下 是夜適以龍虎爲號.언젠가 밤길을 가다가 巡官과 마주치자 다리 밑에 숨었는데, 마침 이날 밤 暗號가 '용(龍)'과 '호(虎)'였다.▶巡官: 운영관(運領官)이라고도 한다. 운(運)을 통솔하는 관리라는 뜻이다. '運'은 야간에 순찰하는 入番軍士로서, 임시로 분대(分隊)한 단위이다.▶潛伏: 야간통행금지를 위반했기 때문에 순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숨었다는 말이다.▶號: 암호, 또는 군호(軍號)다. 巡官禁人曰龍哥 順雨以爲認己 遽出呈身.순관이 지나가는 사람을 멈추게 하고..
太平閑話滑稽傳 孟子是孔子之子 有姓崔鄭二人 粗解文字.최씨(崔氏)와 정씨(鄭氏) 두 사람이 글자를 조금 알았다. 嘗爲別侍衛入直 於諸輩中論文 傍若無人.일찍이 別侍衛가 되어 숙직하면서, 동배들 가운데서 글을 논하기를 옆에 사람이 없는 듯하였다.▶別侍衛: 오위(五衛)의 하나인 龍驤衛에 속한 장교의 부대다. 一日 鄭語崔曰 魏徵是何代人 하루는 정(鄭)이 최(崔)에게 말하였다.“위징(魏徵)은 어느 시대 사람인가?”▶魏徵: 중국 唐太宗 때의 유명한 신하이다. ≪주서(周書)≫·≪수서(隋書≫ 등의 편찬에 관여했다고 한다. 漢唐人也 又語[孟子是何人] 鄭曰孟子是孔子之子 程子之父.崔가 말하기를 "漢・唐 시대 사람이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맹자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자, 정이 말하였다.“맹자는 공자의 아들이요, 정자(程子..
太平閑話滑稽傳 報之以犬屎 安城郡靑龍寺僧宗惠 與一達官姓李者善.安城郡 靑龍寺의 중 宗惠가 이씨(李氏) 성을 가진 높은 관리와 사이가 좋았다.▶安城郡: 오늘날의 경기도 안성군이다. ▶靑龍寺: 안성군 서운산(瑞雲山)에 있는 절의 이름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조선 후기에 남사당패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宗惠: 이 이야기에서 안성 청룡사에 있었던 스님이었다고 했으나, 더 이상은 알 수 없다. 李作宰惠詫曰李吾故人 山門事可諧矣.이(李)가 안성 고을의 원님이 되자 宗惠가 으쓱거리며 말하였다.“李와 나는 오랜 친구이니 절의 일이 잘될 거야.” 上官日再三庭謁 李佯不見.到任하는 날 東軒에서 뵙기를 거듭 청했으나, 李는 일부러 만나주지 않았다. 惠怒曰老賊纔得一邑 敢驕如是.宗惠가 노해서 말하였다.“늙..
太平閑話滑稽傳 陞進運 戊寅田制敬差官三百餘人 庚辰武科二千八百人 辛巳號牌御使三四十人 丁亥李施愛之亂陞堂上者百有餘人戊寅年에 田制 敬差官이 300여 명이고, 庚辰年 武科에 급제한 자가 2,800명이고, 辛巳年에 號牌御使가 30~40명이고, 丁亥年 이시애의 난에 堂上官으로 승진한 자가 100여 명이었다.▶戊寅년: 세조 4년, 서기로는 1458년이다. 그러나 아마도 착오가 있는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에, 田制 敬差官의 숫자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세조 2년 병자년(1456년) 7월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田制 敬差官: 토지대장의 정리를 위해 파견된 경차관이다. '경차관'은 조선 시대에 지방에 임시로 파견하던 벼슬의 이름으로 주로 錢穀의 손실을 조사하고 民情을 살피는 일을 맡았다.▶辛巳년: 세조 7년, 서기로는 1461..
太平閑話滑稽傳 創圓覺寺 納石者皆受署令通贊等職 有家閥姓崔者 除得通贊 儕輩戱曰石通贊.圓覺寺를 開創할 때 돌을 바친 자는 모두 서령(署令)이나 통찬(通贊) 등의 벼슬을 받았으니, 閥閱인 崔氏 집안 사람이 통찬 벼슬을 除授받으니, 친구들이 놀려서 "石通贊"이라고 불렀다.▶圓覺寺: 조선 세조 때에 지금의 서울 파고다공원 자리에 세웠던 절의 이름이다.▶署令과 通贊은 벼슬 이름이다. 모두 특별한 경우에 부여하는 微官末職이다.▶家閥: 한 집란의 사회적 지위. 家門. 門閥▶儕輩: 同輩. 나이나 신분이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사람. 一日崔與同里姓金者 約爲婚媾 金對媒者 私語室人曰是家有大痕咎 하루는 崔가 같은 마을의 김씨(金氏) 성을 가진 사람과 혼인을 정하려고 했더니, 金이 중매쟁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다가 아내에게 “이 ..
太平閑話滑稽傳 勿喜作此戱 有貴家少傷酒色 老發腰酸 百藥不效.귀한 집의 사람이 젊어서 酒色으로 몸이 상하더니, 늙어서 허리가 시큰거리되 온갖 약도 효험이 없었다. 日本醫平元海新到 藥術頗效.일본 의원인 평원해(平原海)가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때, 藥術이 자못 효험이 있었다.▶平元海: 조선 초기에 귀화한 일본인 의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다.일본인의 성을 平으로 기재한 史書가 많다. 豊臣秀吉(풍신수길)과 平秀吉(평수길)일본관련 史書 특히 왜란 관련 史書에는 일본이나 일본 사람 앞에 늘 平 자가 붙어 있어 궁금하는데, 조선초기의 서적에도 일본인에게 平을 붙인 사례도 있으므로 꼭 왜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koahn.tistory.com 貴家邀以千金 元海按脈笑曰 藥不可施 灸稍驗.但點穴異常 恐..
太平閑話滑稽傳 庚辰武科 庚辰武科 二千八百人 不能彎弓制馬者亦中.경진년(庚辰年) 무과(武科)에 2,800명이나 합격하니, 활시위를 당길 줄 모르고 말을 몰 줄 모르는 자들도 합격했다.▶ 경진년: 이기(李墍)의 ≪松窩雞說≫에 의하면, 세조 5년, 서기로는 1460년이다.▶무과: 문과(文科)에 대칭되는 武官 선발 시험으로 ≪經國大典≫의 규정에 따라 태종 2년(1402)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3년에 한 차례씩 식년시를 보아 3등급으로 나누어 28명을 합격시켰다.▶경진년 무과에 너무 많은 합격자를 뽑았기 때문에 전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합격했다는 뜻이다. 瞽者行路 忽爲過騎所觸 陷泥濘中 大臥不起.어떤 장님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지나가는 말에 부딪혀서 진흙 구덩이에 빠졌고 사지를 뻗치고 누워서는 일어..
太平閑話滑稽傳 乞於生前追封 有朝官拜監察 聞臺官有相避.어떤 조정 관리가 감찰(監察)에 제수되었는데, 臺官에게는 相避 제도가 있다고 들었다.▶臺官: 사헌부의 大司憲 이하 持平까지의 비슬아치를 일컫는 말이다.▶相避: 글자 그대로는 서로 피한다는 뜻이다. 친족 또는 기타의 관계로 같은 곳에서 벼슬하는 일이나 청송관(聽訟官)・試官 등의 직책을 맡는 일이, 情實에 얽매일 우려가 있거나 그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이다. 其祖曾經監察 語人曰 莫是有相避 그의 할아버지가 일찍이 감찰을 지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이것이 상피가 되지는 않겠지?” 好事者誣曰有之어떤 好事者가 거짓으로 꾸며서 말하였다.“된다.” 朝官欲避之 其友曉止之조정 관리가 그것을 피하고자 하다가 그의 친구가 깨우..
太平閑話滑稽傳 有楊水尺 父生屬寅 子生屬子.어떤 楊水尺의 아비는 범띠였고 아들은 쥐띠였다.▶楊水尺: 무자리. 水尺. 삼국 시대 流民의 한 족속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칠 당시에 가장 흥성했는데, 관적도 부역도 없이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사냥질과 고리를 걸어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一日 子坐父上 父怒責之 子笑曰坐當序齒 安問其他.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의 윗자리에 앉으매, 아버지가 노해서 그것을 책망하자, 아들이 웃으면서 말하였다.“앉음은 나이의 차례에 합당해야 하는데, 어찌 다른 것을 묻습니까?” 父曰安有子先父齒者乎.아버지가 말하였다."어찌해서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겠느냐?“ 子曰兒長於父三歲矣. 아들이 말하였다. “제가 아버지보다 세 살이 많습니다.”▶세살: '두살'이라고 해..
太平閑話滑稽傳 楡岾寺棟宇之制 有一瞽者 與緣化數十人 往金剛山而還 有問楡岾寺棟宇之制 無能對者.어떤 맹인이 緣化 수십 명과 함께 금강산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어떤 사람이 楡岾寺의 건물 제도에 관하여 물어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緣化: 불사(佛事)를 경영해 시연(施緣)을 구하고 사업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스님[僧]'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楡岾寺: 금강산에 있는 유명한 절의 이름이다. 강원도 간성군에 있는 절로 31본산의 하나다. 임진왜란 때에 四溟堂이 이곳에 있었는데 왜병도 그의 도(道)에 압도되어 오히려 그를 모셨다고 한다. 瞽者曰佛殿瓦溝百二十也 滿座大笑汝無目者 安知瓦溝之數.맹인이 말하기를, "불전(佛殿)의 기와 골이 120개다"라고 하자, 滿座가 크게 웃었다.“너는 눈이 없는데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