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漢詩와 漢文 (1490)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太平閑話滑稽傳 無患無其人 權承旨採有文名早歿 將軍金自雄 深嘆之.承旨인 權採가 글을 잘하기로 이름이 났었는데 일찍 죽자, 장군 金自雄이 몹시 한탄했다.▶承旨: 벼슬의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承政院의 都承旨・左承旨・右承旨・左副承旨・右副承旨・同副承旨를 통틀어 일컫던 말이다.▶權採[정종 1년(1399)~세종 20년(1438)]: 문신, 학자이다. 자는 여서(汝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우(遇)의 아들이자 양촌 권근(權近)의 조카이다.▶ 金自雄: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2년 3월 22일[경인(庚寅)]에 실시된 과거에서 부사직(副司直)으로 무과(武科)에 장원해서 사복 판관이 되었다. 세종 12년에는 호군(護軍), 세종 19년에 지창성군사(知昌城郡事), 세종 30년에는 경상좌도 도절제사를 지낸 것으로 되..
太平閑話滑稽傳 功名鷄卵客 俗言 姜日用學士家貧 王欲富之 下令都城四門 一日所入財物 盡付之.세속에서 학사(學士) 강일용(姜日用)이 집안이 가난하다고들 말하자, 임금께서 그를 부유하게 해 주려고 도성의 사대문(四大門)에 명령을 내려, 하루 들어오는 재물을 모두 그에게 주라고 하였다.▶학사: 조선 초기 중추원의 종이품 벼슬 이름이다.▶강일용: 이 이야기에서 학사였다고 했으나 더이상 알 수 없다. 適此日 淫雨如繩 四方人物不通 有一人持鷄卵數顆來 亦皆骨矣.마침 그날 음산한 비가 노끈같이 쏟아져 사방의 사람과 물건이 통하지 못하고, 계란 몇 개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으나 그것마저도 모두 상한 것이었다.▶노끈같이: 원문은 "여승(如繩)"으로, 오늘날 감각으로 '장대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因號無福者..
太平閑話滑稽傳 吾之門扉亦將倒 有郡守妻悍妬 一日坐衙軒聽訟 民有告婦傷夫面 罪當治者.어떤 군수(郡守)의 아내가 사납고 투기가 있더니, 하루는 衙軒에 앉아서 訟事를 들으니,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다치게 했으니 마땅히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고하는 백성이 있었다.▶訟事: 백성 사이의 분쟁을 관청에 호소해 그 판결을 구하는 일을 말한다. 오늘날의 소송과 같은 제도로 보면 되겠다. 守數其婦曰陰不可抗陽 妻不可抗夫 汝何敗俗如是.군수가 그 부인을 꾸짖었다.“음(陰)은 양(陽)에 이길 수 없고, 아내는 남편에게 대항해서는 안 되는데, 너는 어찌 풍속을 그르침이 이러하냐?”▶數: 책망하다. 夫從傍解曰非吾婦傷吾面 適吾門扉倒了耳.남편이 옆에 있다가 해명했다.“제 아내가 제 얼굴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때마침 제 집의 문짝이..
太平閑話滑稽傳 何不買髥許我 上舍方運 身短而髥.上舍인 方運은 키가 작고 수염이 있었다.▶上舍: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로, 성균관의 학생을 일컫는 말이다.▶方運: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 4월 11일[무오(戊午)]의 기록에, 세종이 檜巖寺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고 아울러 불교의 폐단을 지적한 상소를 성균관 유생들이 올림에, 그 대표가 방운으로 되어 있다. 黃大司成鉉戱之曰君之運字 是孟子可運之掌上之運乎.대사성(大司成) 황현(黃鉉)이 그를 놀렸다.“그대의 '운(運)'자는 의 '가히 손바닥 위의 것을 움직이는 것같이 할 수 있다(可運之掌上)'라고 할 때의 ‘운’자인가?”▶大司成: 조선 시대 성균관의 우두머리 벼슬로, 품계는 정삼품이었다. ▶黃鉉[고려 공민왕 21년(1372)~?]: 문신으로..
太平閑話滑稽傳 莊子王羲之亦好色者乎 有一老樞姓李者喜陽藥 嗜鴞肉.李氏 성을 가진 늙은 중추원의 관리가 陽氣를 돋우는 약을 즐겨서 부엉이 고기를 좋아했다.鴞(효): 부엉이. =梟(효) 梟에는 ‘꼭대기, 높은 곳에 목을 (베어) 매달다’라는 의미도 있다 座中有戱之者 傍有文士 陽解之曰昔莊子王羲之 皆嗜鴞灸 非爲陽道 食性偶合爾.자리의 희롱하는 자로서 있으므로, 옆에 있던 文士가 거짓으로 해명하였다."옛날 莊子와 王羲之도 모두 부엉이 구이를 좋아했으나, 양기를 돋우기 위함이 아니라 식성에 우연히 맞았을 뿐이다."▶장자(BC 365~BC 290):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다.▶왕희지(307~365): 중국 晉나라 때의 서예가로, 자는 逸少이다.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의 삼체를 典雅하고 雄..
太平閑話滑稽傳 汝之名紙立 近世書生, 場圍日逼, 忌用落字, 駝駱曰駝立, 魚有落池曰立池. 如犯落字, 則必罰之.근래에 서생들이 과거 날짜가 가까워지면 落이라는 글자 쓰기를 꺼려서, 駝駱은 駝立이라 하고, 물고기인 落池는 立池라고 하며, 만약 잘못해서 落을 범하면 반드시 벌을 준다.▶場圍: 科擧를 보이는 장소. 科場. 科場의 주위를 가시나무 따위로 둘러막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駝駱: 낙타(駱駝).▶駝立: 여기서 "립(立)"은 “낙(落)”에 대한 반대의 뜻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落池: 본래는 우리말 “낙지”인데 “落池”라고 음차하였다. 음차할 때에는 '絡蹄'라는 표기를 많이 사용했으나, ≪世宗實錄≫ 地理志>에는 "落地"라는 단어도 보인다. 낙지는 문어과의 연체동물이다. 有一生, 新自嶺南還..
太平閑話滑稽傳 當代出文章 兪提學孝通 偰提學循 崔提學萬里 同在鑾坡 戱曰自古長髥者能文章.제학(提學) 유효통(兪孝通)과 제학 설순(偰循)과 제학 최만리(崔萬里)가 함께 鑾坡에 있다가 장난으로 말하였다.“예부터 수염이 긴 사람이 문장 능하다.”▶提學: 조선 시대 예문관 · 홍문관의 종이품, 또는 규장각의 종일품 내지 종이품 벼슬의 이름이다.▶유효통: 의학자. 자는 행원(行源)·백원(百源)이다.▶偰循[?~세종 17년(1435)]: 학자, 문신이다. 자는 보덕(輔德),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려 때 귀화한 위구르인인 손(孫)의 손자이자 경수(慶壽)의 아들이다.▶최만리: 문신, 학자이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본관은 해주(海州)다.▶鑾坡: 옥당(玉堂)을 다르게 이르는 말이다. '옥당'..
太平閑話滑稽傳 屠門戒殺 鷄林有一官娼美而艶 有長安一年少 情頗珍重.계림에 얼굴이 예쁜 관청의 娼妓가 있었고, 서울의 어떤 소년이 쏟은 정(情)이 꽤 珍重했다.▶ 鷄林: 경상도 경주(慶州)의 옛 이름이다.▶ 珍重: 貴重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는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는 뜻이다. 娼紿曰妾本閥閱 沒爲婢 時未經男子.그 창기가 속여서 말하였다."저는 본래 벌열(閥閱)의 태생으로 적몰(籍沒)되어 노비가 되었으나 이때까지 남자를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閥閱: 나라에 공로가 많고 벼슬을 거친 경력이 매우 많은 것, 또는 그러한 집안을 말한다. 대개는 후자의 뜻으로 사용된다.▶ 籍沒: 중죄인에 대해 그 신분이나 재산 등을 몰수하는 일을 말한다. 이로써 그 가족까지도 노비로 격하되는 경우가 있었다. 年少尤惑之.소년은 더욱..
太平閑話滑稽傳 不用建中湯 有宰樞酷好象棋.어떤 재추(宰樞)가 장기(將棋)를 몹시 좋아했다.▶ 재추: 재신(宰臣)과 추신(樞臣)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재신'은 문관 정이품 이상의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로 조선 시대에는 문하부 · 의정부의 정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이다. '추신'은 추부(樞府), 곧 조선 시대의 중추원 · 중추부(中樞府)의 정이품 이상의 벼슬아치다.▶ 象棋: 장기(將棋)를 다르게 일컫는 말이다. 一日赴衙氣稍不平 謂僚佐曰今日違和 欲圍棋調理耳.하루는 관아에 나갔는데 기운이 조금 편하지 않자, 아랫사람에게 일렀다."오늘은 몸이 좋지 않으매, 장기를 두면서 조리할 수밖에 없겠다."▶ 僚佐: 속관(屬官) 혹은 '요관(僚官)'과 같은 말로, 우두머리에게 속한 관원이라는 뜻이다. 僚佐以棋子進 終日圍棋 無倦色..
太平閑話滑稽傳 不文孰甚 閔中樞發崔中樞迪 皆武而不文.중추(中樞)인 민발(閔發)과 최적(崔迪)은 모두 무신으로 글을 몰랐다.▶중추: 中樞院使. 조선 시대 중추원의 정이품 벼슬 이름이다. ▶閔發[세종 1년(1419)~성종 13년(1482)]: 무신으로 자는 분충(奮忠), 본관은 여흥(驪興)이다.▶여기서 “崔迪”은 '崔適'의 오기인 듯하다. 예종실록>(제7권) 예종원년 8월 정묘일의 기록에는 분명히 “崔適”이라고 되어 있다[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 예종실록 2≫, 1979,260]. 上曰汝二人 不文孰甚?임금께서 물었다."자네들 두 사람 중 글을 못함이 누가 더 심한가?"▶임금: ≪睿宗實錄)≫(제7권) 예종 원년 8월 정묘일(丁卯日, 이해의 음력 8월 16일이 정묘일이었다)의 기록에 의하면 세조(世祖)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