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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太平閑話滑稽傳 乞於生前追封 有朝官拜監察 聞臺官有相避.어떤 조정 관리가 감찰(監察)에 제수되었는데, 臺官에게는 相避 제도가 있다고 들었다.▶臺官: 사헌부의 大司憲 이하 持平까지의 비슬아치를 일컫는 말이다.▶相避: 글자 그대로는 서로 피한다는 뜻이다. 친족 또는 기타의 관계로 같은 곳에서 벼슬하는 일이나 청송관(聽訟官)・試官 등의 직책을 맡는 일이, 情實에 얽매일 우려가 있거나 그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이다. 其祖曾經監察 語人曰 莫是有相避 그의 할아버지가 일찍이 감찰을 지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이것이 상피가 되지는 않겠지?” 好事者誣曰有之어떤 好事者가 거짓으로 꾸며서 말하였다.“된다.” 朝官欲避之 其友曉止之조정 관리가 그것을 피하고자 하다가 그의 친구가 깨우..
太平閑話滑稽傳 有楊水尺 父生屬寅 子生屬子.어떤 楊水尺의 아비는 범띠였고 아들은 쥐띠였다.▶楊水尺: 무자리. 水尺. 삼국 시대 流民의 한 족속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칠 당시에 가장 흥성했는데, 관적도 부역도 없이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사냥질과 고리를 걸어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一日 子坐父上 父怒責之 子笑曰坐當序齒 安問其他.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의 윗자리에 앉으매, 아버지가 노해서 그것을 책망하자, 아들이 웃으면서 말하였다.“앉음은 나이의 차례에 합당해야 하는데, 어찌 다른 것을 묻습니까?” 父曰安有子先父齒者乎.아버지가 말하였다."어찌해서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겠느냐?“ 子曰兒長於父三歲矣. 아들이 말하였다. “제가 아버지보다 세 살이 많습니다.”▶세살: '두살'이라고 해..
太平閑話滑稽傳 楡岾寺棟宇之制 有一瞽者 與緣化數十人 往金剛山而還 有問楡岾寺棟宇之制 無能對者.어떤 맹인이 緣化 수십 명과 함께 금강산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어떤 사람이 楡岾寺의 건물 제도에 관하여 물어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緣化: 불사(佛事)를 경영해 시연(施緣)을 구하고 사업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스님[僧]'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楡岾寺: 금강산에 있는 유명한 절의 이름이다. 강원도 간성군에 있는 절로 31본산의 하나다. 임진왜란 때에 四溟堂이 이곳에 있었는데 왜병도 그의 도(道)에 압도되어 오히려 그를 모셨다고 한다. 瞽者曰佛殿瓦溝百二十也 滿座大笑汝無目者 安知瓦溝之數.맹인이 말하기를, "불전(佛殿)의 기와 골이 120개다"라고 하자, 滿座가 크게 웃었다.“너는 눈이 없는데 어찌..
太平閑話滑稽傳 無患無其人 權承旨採有文名早歿 將軍金自雄 深嘆之.承旨인 權採가 글을 잘하기로 이름이 났었는데 일찍 죽자, 장군 金自雄이 몹시 한탄했다.▶承旨: 벼슬의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承政院의 都承旨・左承旨・右承旨・左副承旨・右副承旨・同副承旨를 통틀어 일컫던 말이다.▶權採[정종 1년(1399)~세종 20년(1438)]: 문신, 학자이다. 자는 여서(汝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우(遇)의 아들이자 양촌 권근(權近)의 조카이다.▶ 金自雄: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2년 3월 22일[경인(庚寅)]에 실시된 과거에서 부사직(副司直)으로 무과(武科)에 장원해서 사복 판관이 되었다. 세종 12년에는 호군(護軍), 세종 19년에 지창성군사(知昌城郡事), 세종 30년에는 경상좌도 도절제사를 지낸 것으로 되..
太平閑話滑稽傳 功名鷄卵客 俗言 姜日用學士家貧 王欲富之 下令都城四門 一日所入財物 盡付之.세속에서 학사(學士) 강일용(姜日用)이 집안이 가난하다고들 말하자, 임금께서 그를 부유하게 해 주려고 도성의 사대문(四大門)에 명령을 내려, 하루 들어오는 재물을 모두 그에게 주라고 하였다.▶학사: 조선 초기 중추원의 종이품 벼슬 이름이다.▶강일용: 이 이야기에서 학사였다고 했으나 더이상 알 수 없다. 適此日 淫雨如繩 四方人物不通 有一人持鷄卵數顆來 亦皆骨矣.마침 그날 음산한 비가 노끈같이 쏟아져 사방의 사람과 물건이 통하지 못하고, 계란 몇 개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으나 그것마저도 모두 상한 것이었다.▶노끈같이: 원문은 "여승(如繩)"으로, 오늘날 감각으로 '장대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因號無福者..
太平閑話滑稽傳 吾之門扉亦將倒 有郡守妻悍妬 一日坐衙軒聽訟 民有告婦傷夫面 罪當治者.어떤 군수(郡守)의 아내가 사납고 투기가 있더니, 하루는 衙軒에 앉아서 訟事를 들으니,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다치게 했으니 마땅히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고하는 백성이 있었다.▶訟事: 백성 사이의 분쟁을 관청에 호소해 그 판결을 구하는 일을 말한다. 오늘날의 소송과 같은 제도로 보면 되겠다. 守數其婦曰陰不可抗陽 妻不可抗夫 汝何敗俗如是.군수가 그 부인을 꾸짖었다.“음(陰)은 양(陽)에 이길 수 없고, 아내는 남편에게 대항해서는 안 되는데, 너는 어찌 풍속을 그르침이 이러하냐?”▶數: 책망하다. 夫從傍解曰非吾婦傷吾面 適吾門扉倒了耳.남편이 옆에 있다가 해명했다.“제 아내가 제 얼굴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때마침 제 집의 문짝이..
太平閑話滑稽傳 何不買髥許我 上舍方運 身短而髥.上舍인 方運은 키가 작고 수염이 있었다.▶上舍: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로, 성균관의 학생을 일컫는 말이다.▶方運: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 4월 11일[무오(戊午)]의 기록에, 세종이 檜巖寺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고 아울러 불교의 폐단을 지적한 상소를 성균관 유생들이 올림에, 그 대표가 방운으로 되어 있다. 黃大司成鉉戱之曰君之運字 是孟子可運之掌上之運乎.대사성(大司成) 황현(黃鉉)이 그를 놀렸다.“그대의 '운(運)'자는 의 '가히 손바닥 위의 것을 움직이는 것같이 할 수 있다(可運之掌上)'라고 할 때의 ‘운’자인가?”▶大司成: 조선 시대 성균관의 우두머리 벼슬로, 품계는 정삼품이었다. ▶黃鉉[고려 공민왕 21년(1372)~?]: 문신으로..
太平閑話滑稽傳 莊子王羲之亦好色者乎 有一老樞姓李者喜陽藥 嗜鴞肉.李氏 성을 가진 늙은 중추원의 관리가 陽氣를 돋우는 약을 즐겨서 부엉이 고기를 좋아했다.鴞(효): 부엉이. =梟(효) 梟에는 ‘꼭대기, 높은 곳에 목을 (베어) 매달다’라는 의미도 있다 座中有戱之者 傍有文士 陽解之曰昔莊子王羲之 皆嗜鴞灸 非爲陽道 食性偶合爾.자리의 희롱하는 자로서 있으므로, 옆에 있던 文士가 거짓으로 해명하였다."옛날 莊子와 王羲之도 모두 부엉이 구이를 좋아했으나, 양기를 돋우기 위함이 아니라 식성에 우연히 맞았을 뿐이다."▶장자(BC 365~BC 290):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다.▶왕희지(307~365): 중국 晉나라 때의 서예가로, 자는 逸少이다.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의 삼체를 典雅하고 雄..
太平閑話滑稽傳 汝之名紙立 近世書生, 場圍日逼, 忌用落字, 駝駱曰駝立, 魚有落池曰立池. 如犯落字, 則必罰之.근래에 서생들이 과거 날짜가 가까워지면 落이라는 글자 쓰기를 꺼려서, 駝駱은 駝立이라 하고, 물고기인 落池는 立池라고 하며, 만약 잘못해서 落을 범하면 반드시 벌을 준다.▶場圍: 科擧를 보이는 장소. 科場. 科場의 주위를 가시나무 따위로 둘러막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駝駱: 낙타(駱駝).▶駝立: 여기서 "립(立)"은 “낙(落)”에 대한 반대의 뜻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落池: 본래는 우리말 “낙지”인데 “落池”라고 음차하였다. 음차할 때에는 '絡蹄'라는 표기를 많이 사용했으나, ≪世宗實錄≫ 地理志>에는 "落地"라는 단어도 보인다. 낙지는 문어과의 연체동물이다. 有一生, 新自嶺南還..
太平閑話滑稽傳 當代出文章 兪提學孝通 偰提學循 崔提學萬里 同在鑾坡 戱曰自古長髥者能文章.제학(提學) 유효통(兪孝通)과 제학 설순(偰循)과 제학 최만리(崔萬里)가 함께 鑾坡에 있다가 장난으로 말하였다.“예부터 수염이 긴 사람이 문장 능하다.”▶提學: 조선 시대 예문관 · 홍문관의 종이품, 또는 규장각의 종일품 내지 종이품 벼슬의 이름이다.▶유효통: 의학자. 자는 행원(行源)·백원(百源)이다.▶偰循[?~세종 17년(1435)]: 학자, 문신이다. 자는 보덕(輔德),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려 때 귀화한 위구르인인 손(孫)의 손자이자 경수(慶壽)의 아들이다.▶최만리: 문신, 학자이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본관은 해주(海州)다.▶鑾坡: 옥당(玉堂)을 다르게 이르는 말이다. '옥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