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태평한화골계전23-當代出文章 본문
太平閑話滑稽傳
當代出文章
兪提學孝通 偰提學循 崔提學萬里 同在鑾坡 戱曰
自古長髥者能文章.
제학(提學) 유효통(兪孝通)과 제학 설순(偰循)과 제학 최만리(崔萬里)가 함께 鑾坡에 있다가 장난으로 말하였다.
“예부터 수염이 긴 사람이 문장 능하다.”
▶提學: 조선 시대 예문관 · 홍문관의 종이품, 또는 규장각의 종일품 내지 종이품 벼슬의 이름이다.
▶유효통: 의학자. 자는 행원(行源)·백원(百源)이다.
▶偰循[?~세종 17년(1435)]: 학자, 문신이다. 자는 보덕(輔德),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려 때 귀화한 위구르인인 손(孫)의 손자이자 경수(慶壽)의 아들이다.
▶최만리: 문신, 학자이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본관은 해주(海州)다.
▶鑾坡: 옥당(玉堂)을 다르게 이르는 말이다. '옥당'은 홍문관을 다르게 이르는 말이다.
時文僖碩朝方有文譽 無髥.
이때 文僖 신석조(辛碩祖)가 바야흐로 문장으로 이름이 났는데도 수염이 없었다.
▶문희 신석조[태종 7년(1407)~세조 5년(1459)]: 문신이다. 자는 찬지(贊之), 호는 연빙당(淵冰堂)이다.
文僖之第在李中樞思任廊後 思任長髥者也.
문희의 집은 중추(中樞)인 이사임(李思任)의 집 뒤에 있었고, 이사임은 수염이 길었다.
▶이사임: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偰曰
若長髥者能文章 則辛胡爲乎能文哉?
偰循이 말하였다.
“만약 수염이 긴 사람이 문장에 능하다면 辛碩祖는 어째서 능하리오?”
兪猝應曰
居李思任廊後 是以能.
兪孝通이 갑자기 응답하였다.
“이사임의 집 뒤에 살기 때문에 능하다.”
滿座大笑.
앉아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頃訪李判書承召 廊後有新第 予曰是誰第乎 李曰梁南原之子琇也.
얼마 있다가 판서(判書)인 이승소(李承召)를 방문했는데, 집 뒤에 새집이 있으므로, 내가 “이 집은 누구의 집입니까?”라고 말하니, 李承召가 “양남원(梁南原)의 아들 琇입니다”라고 했다.
▶판서: 조선시대의 육조(六曹)의 우두머리 벼슬로, 오늘날의 각 부(部)의 장관에 해당한다.
▶이승소[세종 4년(1422)~성종 15년(1484)]: 문신이다.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 본관은 양성(陽城)이다.
▶내: 이 글의 지은이인 서거정 자신을 말한다. 원문에는 "자(子)"로 되어 있으나, 만송본 · 일사본 · 민자본 · 백영본에는 "여(予)"로 되어 있다. 문맥상 予의 오자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해석하였다.
▶양남원: [梁誠之, 태종 14년(1414) ~ 성종 13년(1482)]로, 조선 성종 때의 학자다.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 혹은 송파(松坡)이고, 본관은 남원(原)이다.
▶梁琇: 이 이야기에서 남원부원군 양성지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으나, 더 이상은 알 수 없다.
予仍訪南原曰
予稍具相地眼 琇之第甚福地 當代出文章
그래서 내가 남원(南原)을 찾아가서 말하였다.
"내가 땅을 보는 눈을 조금 갖추었는데, 수의 집이 대단한 福地로서 당대에 문장이 날 터입니다"
南原遽前執手曰
法當如是乎?
남원이 갑자기 앞으로 나와 손을 잡고는, “법(法)에 그렇습니까?”
▶법: 여기서는 '풍수지리를 보는 법'을 말한 것이다.
予曰
秘法不可浪傳
내가 “비법은 함부로 전해서는 안됩니다.
南原甚勤 予曰
昔辛文僖居武官李思任廊後 尙能文章 今君兒琇居李判書廊後 何不能文章之有?
남원이 매우 부지런히 청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예전에 신문희(辛文僖)가 무관(武官)인 이사임의 집 뒤에 살았는데 문장에 능했습니다. 이제 그대의 아들 琇가 이 판서의 집 뒤에 살고 있으니, 어찌 문장에 능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南原大笑.
南原이 크게 웃었다.
李判書長髥 能文章.
이 판서는 수염이 길고 문장에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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