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9. 명심보감 근학편(勤學篇)

耽古樓主 2023. 1. 20. 21:40

9. 명심보감-근학편(勤學篇)

 

이 편은 부지런히 學問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학문이란 내면적 수양공부이기보다는 객관적 지식 축적의 과정을 의미하는데, 가급적 광범위하게 배우고 긴밀히 물어 의문을 해결해야 미래에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조가 있다.

그리하여 학문의 방법, 범위, 방향 등에 대한 태도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1>

子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공자가 말하였다.
널리 배워서 뜻을 두텁게 하고, 간절하게 묻고 자신과 가까이에서 생각하면, 어짊이 그 속에 있느니라.

[출전]
論語》 〈子張 六章全文이다.
논어의 子張篇에는 子夏曰이라 하였으나 그 외의 후한서, 명심보감등에는 子曰로 되어 있다.
近思: 진리를 자기 몸 가까이에서 생각해 찾아내는 것이다. 朱熹呂祖謙이 함께 편찬한 책인 근사록은 여기서 따 온 것이다.
: 유교에서 인간성, 즉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이라고 보는 인간의 덕성으로 또한 유교 윤리의 최고 덕목이다.
子張(BC 503~ 미상) : 춘추시대 나라 사람으로, 顓孫이고, 이름은 이다. 자장은 그의 인데, 공자의 제자로 용모가 俊秀하고 성품이 너그러워서 남과 잘 사귀었다.
子夏(BC 507~ BC 420년 추정) : 전국 시대 나라 사람. 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성명은 卜商이다. 孔子의 제자로, 공자보다 44살 연하였다.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다. 공자가 죽은 뒤에 위나라 文侯에게 초빙되어 스승이 되었지만 공자의 죽음을 슬퍼하여 失明했다고 한다.(또는 아들의 죽음 때문에 슬피 울어 실명했다고도 한다.) 西河에서 講學했다. 李克吳起, 田子方, 段干木 등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



<2>

莊子曰
장자가 말하였다.

人之不學 如登天而無術.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하늘에 오르려 하면서 기술이 없는 것과 같다.

學而智遠 如披祥雲而覩靑天 登高山而望四海.
배워서 지혜가 깊어지면, 상서로운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며 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느니라.”

人之不學에서 는 관형격 조사이다. , 위 문장에서는 우리말로 해석할 때 관형격 조사로 하면 어색하므로 주격 조사로 의역해주는 것이 좋다. 어떤 이는 를 직접 주격 조사로 보기도 하는데 가 주격 조사라기보다는 관형격 조사이며, 단지 우리말로 옮길 때 관형격으로 해석하면 어색할 경우가 종종 있을 뿐이며, 이럴 때 단지 를 주격으로 의역해준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해설]
莊子에는 보이지 않는다.

<3>

禮記曰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義.
<예기>에 말하였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를 알지 못하느니라.”

[출전]
禮記》 〈學記 一章
玉不琢不成器人不學不知道是故古之王者建國君民教學為先
禮記: 詩經》․《書經》․《易經》․《春秋와 더불어 五經의 하나인데, 禮法의 이론과 실제를 기록한 책이다. 그 구성은 曲禮, 檀弓, 王制, 月令, 曾子問49편으로 되어 있는데, 周禮, 儀禮와 함께 三禮의 하나이다.
그런데 예기에는 본래 漢代의 여러 학자들의 禮說이 집대성되어 있었다. 사상 통일을 위한 진시황의 焚書坑儒로 불타버린 것을 前漢의 제9宣帝 劉向이 공자와 그의 제자 및 그 이후의 여러 학자들이 지은 131편의 古書를 수집하고 보충하여 214편으로 하였다. 이때 禮學者 后蒼門人戴德과 그의 從兄戴聖이 있었는데 각기 예기를 정리하였던 바, 85편으로 된 대덕의 것을 大戴禮記(또는 大戴記, 大戴禮), 46편으로 된 대성의 것을 小戴禮記(또는 小戴禮, 小戴禮記)라 일컫는다. 그런데 후한 때 五經博士로 통용되다가, 五經正義編著되었을 때는 戴聖소대례만 채택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기이다.

<4>

太公曰
人生不學
如冥冥夜行
태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나서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라.

[참고]
荀子 -> 解蔽
凡觀物有疑中心不定則外物不清
吾慮不清未可定然否也
冥冥而行者見寢石以為伏虎也見植林以為後人也冥冥蔽其明也
醉者越百步之溝以為蹞步之澮也俯而出城門以為小之閨也
酒亂其神也
사물을 관찰하는 데 의심하는 것이 있어서, 중심을 정하지 못하면 外物을 밝게 살피지 못한다.
나의 생각이 밝게 살피지 못하면,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지 못한다.
어두운 밤길을 가는 사람은 누워 있는 돌을 보고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으로 여기고, 서 있는 나무를 보고는 사람이 뒤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어둠이 그 밝음을 가렸기 때문인 것이다.
술 취한 사람은 백 보나 되는 개울이라도 반걸음 정도의 도랑으로 여기고,
엎드려 城門을 나오면서 집안의 작은 문을 나오는 것처럼 여기는데,
이것은 술이 그의 정신을 어지럽혔기 때문인 것이다.

<5>

韓文公曰
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
한문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고금의 성인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말이나 소에게 옷을 입힌 것과 같으니라.

韓文公: 당나라 때의 유학자로, 이름은 , 자는 退之이고, 문공은 그의 시호이다. 이른바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韓子로도 존칭된다.

여러 학문에 정통했고 벼슬은 兵部侍郞에 이르렀으며, 뒤에 禮部侍郞에 추증되었고 나라 때 昌黎伯追封되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柳宗元과 함께 古文의 부흥을 제창했다. 당나라 穆宗 長慶 4년에 57세로 죽었다. 저술로는 門人이 편찬한 昌黎先生集이 있다.
는 두 문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 의 앞 문구는 단순히 명사구나 술어가 올 수도 있다.
: 옷깃 금.
: 옷자락 거.
여기서 襟裾는 술어로 쓰였다.
[출전]
韓昌黎全集》 〈符讀書城南<아들 부에게 성남에서의 독서를 권함>에 보인다.



<6>

朱文公曰
주문공이 말하였다.

家若貧 不可因貧而廢學,
家若富 不可恃富而怠學.
집이 가난하더라도 가난함으로 인해서 배우는 것을 버려서는 안 되고,
집이 부유하더라도 부유함을 믿고 학문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貧若勤學 可以立身,
富若勤學 名乃光榮.
가난하여도 부지런히 배우면, 몸을 세울 수 있고,
부유한데 부지런히 배운다면 이름이 더욱 빛날 것이다.

惟見學者顯達 不見學者無成.
배운 사람이 현달하는 것은 보았으되, 배운 사람이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學者乃身之寶 學者乃世之珍.
배움이란 곧 몸의 보배요, 배운 사람이란 곧 세상의 보배니라

是故
學則乃爲君子 不學則爲小人.
이러하므로
배우면 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천한 소인이 된다.

後之學者 宜各勉之.
후세의 배우는 자는 마땅히 각각 힘써야 한다.

朱文公: 송나라 학자이자 사상가 朱子(1130~1200)이다. 이름은 , 자는 元晦仲晦이고, 호는 晦庵·紫陽·晦翁, 은 그의 시호다. 高宗·孝宗·光宗·寧宗4대에 걸쳐 벼슬했다. 이른바 二程子, 程明道程伊川 형제의 학설을 정리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는데, 그런 까닭에 성리학을 朱子學이라고도 한다. 저서에 四書集註, 資治通鑑綱目, 近思錄, 小學등이 있다. 南宋 高宗 建炎 4(고려 인종 8, 1130)에 나서 寧宗 慶元 6(1200)71세로 죽었다.
家若貧: 여기서 ) 통한다. 따라서 ’, ‘혹은’, ‘간혹으로 표현하면 자연스럽다.
: 인할 인. 뒷 문장을 받아서 '~에서 기인하다'의 뜻이다.
: 믿을 시.
名乃光榮 : 여기서 는 행동의 결과 곧 이에로 새기면 된다.
乃身之寶 : 여기서 이라는 의미로 쓰여 주격의 역할을 한다.
君子: 군자는 도덕을 겸비한 지배권의 사람이고, 그와 반대로 小人은 사회신분이나 도덕적 측면이 저급한 사람이다.
可以: 한 단어로 '~할 수 있다'의 뜻이다. 와는 어감과 그 뜻에 미묘한 차이가 있으므로 구분하여야 할 것이다.
惟見學者顯達: 에서 見學을 한 단어로 보고, ‘오직 보고 배우는 사람만이 현달해진다라고 해석해 놓은 책을 보았는데 이는 誤譯이다. '惟見~, 不見~''~하는 것은 보았으되,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댓구문인 것이다. 따라서 見學을 붙여서 해석하면 안된다.
學者乃身之寶: 學者배우는 사람이라고 해석한 책이 있는데 이는 문맥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을 강조하기 위해 덧붙여 준 말이다. , 여기서 學者배우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것은의 뜻이다. 사람 자. 것 자.
: 주어에 붙어서 서술어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리하여'의 뜻으로 문장의 접속사로도 쓰인다. 여기서 는 문장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써준 글자이다. 를 써줌으로써 글을 부드럽게 운율에 따라 읽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 '옳을 의'로 여기서는 부사로 '의당, 마땅히'의 뜻이다. ]便宜, 宜當, 時宜適切.

<7>

徽宗皇帝曰
휘종황제가 말하였다.

學者如禾如稻 不學者如蒿如草.
배우는 사람은 낟알 같고 벼 같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다.

如禾如稻兮,
國之精糧 世之大寶.
낟알 같고 벼 같음이여!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세상의 보배로다.

如蒿如草兮,
耕者憎嫌 鋤者煩惱.
쑥 같고 풀 같음이여!
밭을 가는 자가 미워하고 싫어하며, 밭을 매는 자가 번뇌하느니라.

他日面墻 悔之已老.
다른 날에 담장을 보고 서는 꼴이 되어, 뉘우친들 그때는 이미 늙어버린 뒤일 터이다.”

徽宗皇帝: 북송 제8대 임금(在位 기간은 25, 1100~1125)으로, 성명은 趙佶이다. 그는 온갖 예술에 통하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으며 도교를 숭상하여 스스로 敎主道君皇帝라 일컬었다.’ 아들 欽宗과 함께 나라에 잡혀가 宣和 4(1122)五國城에서 죽었다. 오국성은 우리나라 함경북도 會寧 서쪽, 강 건너 지금의 만주 吉林省 延吉縣雲頭山城으로, 거기에 휘종의 무덤이라는 皇帝陵이 있다.
如禾如稻: 유용한 물건을 비유한 것이다. : . : .
如蒿如草: 無用之物을 비유한 것이다. :
如禾如稻兮: 여기서 語氣辭로서 정지나 완만함을 나타내고 가끔 감정을 터뜨리는 작용을 지닌다. ‘~의 뉘앙스가 담기도록 해석하면 좋다.
: 정할 정. 깨끗할 정. ]精練, 精選, 精讀, 精銳, 精密.
: 곡식 량.
: 싫어할 혐. ]嫌惡. 의심할 혐. ]嫌疑.
耕者憎嫌 : 농부가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鋤者煩惱: 耕者憎嫌과 마찬가지로 농부가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는 호미. 김매다. : 번거로울 ’. 괴로워하다. : 번뇌할 ’. 괴로워하다. 번뇌하다. 煩惱: 마음이 시달려 괴로움
面墻: 얼굴을 담장에 마주하고 서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그의 아들 伯魚에게 詩經학습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面墻()’(술어+보어, 담장에 얼굴을 대다), 牆面’(술어+보어, 얼굴에 담장을 대다)이 나온다. 논어의 다음 글을 보자.
<陽貨第十七>10 子謂伯魚曰, “女爲周南 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 뉘우칠 회. ]後悔.
悔之에서 는 지시대명사라기보다는 앞의 글자를 술어답게 만들어주는 어감을 주고, 어세, 어기 등을 고르기 위한 글자이다.
[출전]
增廣賢文에도 學者如禾如稻 不學者如蒿如草가 보인다.
<增廣賢文> 나라 시대에 편찬된 도가의 아동계몽서이며, 중국의 각종 격언과 속담을 모아 묶은 것이다.

<8>

論語云
學如不及,
猶恐失之.
<논어>에 일렀다.
배우기를 미치지 못한 듯이 하고,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할지니라.”

[출전]
論語》 〈泰伯 十七章에 보인다.
▶《論語四書의 하나이다.
책 이름은 공자가 論議하고 問答한 말씀임을 뜻한다. 논어의 편자에 대해서는 공자의 자작이라는 설과 그 뒤의 문인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 중 曾子 계통의 사람의 편찬했다는 설이 중론이다.
논어는 한나라 때에는 古論齊論魯論의 세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學而·爲政·八佾·里仁·公冶長 20편으로 된 魯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