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學集註(소학집주)

8-6-3-59.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五十九章

구글서생 2024. 1. 20. 02:38

소학집주

陶侃 爲廣州刺史 在州無事 輒朝運百甓於齋外 莫運於齋內.
陶侃이 廣州刺史가 되어 에 있으면서 일이 없으면그때마다 아침에 백 개의 벽돌을 집 밖으로 옮기고저녁에는 집 안으로 옮겼다.

人 問其故 答曰
吾方致力中原 過爾優逸 恐不堪事.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대답하였다.
내 장차 중원에 힘을 다하려 하는데지나치게 편안하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其勵志勤力 皆此類也 《晉書》〈陶侃列傳〉
그가 뜻을 힘쓰고 노력을 부지런히 함이 모두 이러한 部類였다.

【集說】
陳氏曰
侃 字士行 鄱陽人 仕至太尉.
甓磚也 時 中原之地爲劉石所據 侃欲致力興復 故 朝夕運 以習勞也
陳氏가 말하였다.
士行이니, 鄱陽 사람으로 벼슬이 太尉에 이르렀다..
은 벽돌이다.
당시에 中原의 땅이 劉曜石勒에게 점거되니, 陶侃은 힘을 다해 興復[광복]하려고 하였으므로, 아침저녁으로 벽돌을 옮겨 수고로운 일을 익힌 것이다.

後爲荊州刺史 侃性聰敏 勤於吏職 恭而近禮 愛好人倫.
뒤에 荊州刺史가 되었는데陶侃의 성품은 총명하고 명민하여 관리의 직무에 부지런하였으며공손하면서도 에 가까우며 人倫을 좋아하였다.

終日斂膝危坐 閫外多事 千緖萬端 罔有遺漏.
종일토록 무릎을 모으고 단정히 앉아 변방에 일이 많아 천 가지 만 가지였으나 빠뜨림이 없었다.

遠近書疏 莫不手答 筆翰如流 未嘗壅滯 引接疏遠 門無停客.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온 서간과 글을 손수 답하지 않음이 없었는데붓과 글이 물 흐르는 듯하여 일찍이 막힌 적이 없었으며소원한 자들을 引接[인견]하되 문에 정체된 손님이 없었다.

【增註】
愛好人倫 尙名敎也
人倫을 좋아함은 名敎[유학의 가르침]를 숭상함이다.

【集解】
閫門限也.
은 문의 한계[문지방]이다.

古者 人君命將之辭曰
閫以外 將軍制之
時 侃都督荊州 故曰閫外也
옛날에 임금이 장수에게 명령하는 말에
“[도성문] 바깥은 장군이 통제하라.”
라고 하였는데, 당시 陶侃荊州都督하였으므로 閫外라고 말한 것이다.

常語人曰
大禹聖人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
豈可逸遊荒醉 生無益於時 死無聞於後?
是自棄也.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大禹는 聖人이면서도 한 치의 光陰을 아끼셨는데일반 사람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한 푼의 광음도 아껴야 한다.
어찌 편안히 놀고 크게 취하여살아서는 당시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어서 되겠는가?
이는 자신을 버림이다.”
▶ 豈可逸遊荒醉諺解를 따라 를 死無聞於後까지 연결하였으나, ‘豈可逸遊荒醉리오 生無益於時하고 死無聞於後면 是自棄也니라로 해석하기도 함을 밝혀둔다.

諸參佐或以談戱廢事者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 悉投之于江 吏將則加鞭扑曰
樗蒱者 牧猪奴耳 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 不可行也.
君子當正其衣冠 攝其威儀 何有亂頭養望 自謂弘達耶?
參佐[보좌관]들에 혹 잡담과 희롱으로 일을 폐하는 자가 있으면그 술그릇과 의 기구를 가져다가 모두 강에 던지게 명령하였으며아전과 장수에게는 []을 하고 말하였다.
저포는 돼지 치는 종의 놀이일 뿐이요老莊의 浮華함은 先王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니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르게 하며그 위의를 잡아야 하니어찌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명망을 기름을 가지고스스로 크게 통달했다고 말하겠는가?”

【集說】
陳氏曰
蒱樗也 博局戱也.
浮華 謂老聃莊周之言 虛而無實也.
攝 檢束也.
亂頭養望 吳氏謂蓬頭放肆 養其虛望也.
逸遊荒醉 談戱廢事 亂頭養望 皆老莊尙玄虛棄禮法之流弊也
陳氏가 말하였다.
樗蒱, 은 판으로 놀이하는 것이다.
浮華老聃莊周의 말이 허망하여 실제가 없음을 이른다.
은 검속이다.
亂頭養望吳氏가 이르기를 쑥대머리로 放恣히 지내면서 헛된 바램을 기름이다.’라고 하였다.
逸遊荒醉, 談戱廢事, 亂頭養望는 모두 老莊들이 玄虛를 숭상하고 禮法을 버리는 流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