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播家世純厚 敦義讓 昆季相事有如父子.
楊播는 가문이 대대로 순후하고 의리와 겸양에 돈독하여, 형제가 서로 섬기기를 부자간처럼 하였다.
椿·津恭謙 兄弟旦則聚於廳堂 終日相對 未嘗入內 有一美味 不集不食.
楊椿과 楊津은 공손하고 겸손하여 형제가 아침이면 대청에 모여 종일토록 서로 마주하여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으며, 한 가지라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형제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廳堂間 往往幃幔隔障 爲寢息之所 時就休偃 還共談笑 《北史》〈楊播列傳〉
대청마루 사이에 왕왕 휘장으로 칸막이를 막아 자거나 쉬는 장소로 삼고, 때로 나아가 쉬면서 눕고 또 함께 담소하곤 하였다.
▶ 還 : 다시, 또, 도리어
【集說】
陳氏曰
播 字延慶 北朝人.
昆季 兄弟也.
椿 字延壽 津 字羅漢.
偃 猶臥也
陳氏가 말하였다.
“播는 字가 延慶이니, 北朝[北魏] 사람이다.
昆季는 형제이다.
椿은 字가 延壽요, 津은 字가 羅漢이다.
偃은 臥[누움]와 같다.”
椿年老 曾他處醉歸 津扶持還室 假寢閤前 承候安否
楊椿이 연로하여 다른 곳에서 술에 취하여 돌아온 적이 있는데, 楊津이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와서 방문 앞에서 옷을 입은 채 자고 안부를 받들어 살폈다.
【增註】
假寢 不脫衣冠而寢也.
假寢은 의관을 벗지 않고 자는 것이다.
閤 謂室之門也
閤은 방의 문을 이른다.
椿·津年過六十 登台鼎 而津常旦莫參問 子姪羅列階下 椿不命坐 津不敢坐.
楊椿과 楊津은 나이 육십이 넘어 모두 台鼎[三公]에 올랐는데, 楊津이 항상 아침저녁으로 뵙고 문안함에 아들과 조카들이 계단 아래에 나열하곤 하였고, 楊椿이 앉으라고 명령하지 않으면 楊津은 감히 앉지 못하였다.
【增註】
台鼎 三公之稱 如星之有三台, 鼎之有三足也.
台鼎은 三公의 칭호이니, 별에 삼태성이 있고 솥에 세 발이 있음과 같아서이다.
椿爲司徒 津爲司空 故曰並登台鼎.
楊椿은 司徒가 되었고 楊津은 司空이 되었으므로 함께 台鼎에 올랐다고 한 것이다.
椿每近出 或日斜不至 津不先飯 椿還然後共食.
楊椿이 매양 가까이 외출하여 혹 해가 기울어도 오지 않으면 楊津은 먼저 밥을 먹지 아니다가 楊椿이 돌아온 뒤에야 함께 밥을 먹었다.
食則津 親授匙箸 味皆先嘗 椿命食然後 食.
밥을 먹게 되면 楊津은 친히 匙箸를 바쳤으며, 맛을 모두 먼저 맛보고 楊椿이 먹으라고 명령한 뒤에야 먹었다.
津爲肆州 椿在京宅 每有四時嘉味 輒因使次附之 若或未寄 不先入口.
楊津이 肆州를 맡았을 때 楊椿은 서울 집에 있었는데, 매양 사철의 좋은 음식이 있으면 그때마다 심부름꾼을 통하여 음식을 부쳤으며, 만약 혹 보내지 못했으면 먼저 입에 넣지 않았다.
一家之內 男女百口 緦服同爨 庭無間言.
한 가문에 남녀가 백여 식구였는데, 緦麻服까지 함께 밥을 지어 먹되, 가정에서는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增註】
京宅 宅在京也.
京宅은 집이 서울에 있는 것이다.
嘉味 美味也 未寄于兄 則不先食.
嘉味는 아름다운 맛이니, 형에게 부치지 않았으면 먼저 먹지 않았다.
緦麻之服同炊 四世不分異也
緦麻의 服이 함께 밥을 지어 먹음은 4代를 지나도록 따로 살지 않은 것이다.
▶ 緦麻之服: 高祖 이후 4대를 지나면 三從兄弟〔8촌〕가 되는바, 緦麻三月服을 입으므로 4대가 함께 동거(同居)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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