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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559-魏舒堂堂(위서당당)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559-魏舒堂堂(위서당당)

구글서생 2023. 3. 26. 00:36

蒙求(몽구) 魏舒堂堂(위서당당)

魏舒堂堂- 魏舒는 儀表가 堂堂하였다

 

晉書
<晉書>의 기사이다.

 

魏舒字陽元 任城樊人.

魏舒陽元이니 任城 樊人이다.

 

少孤 爲外家寗氏所養.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니, 外家甯氏 집에서 길렀다.

 

寗氏起宅. 相者云

當出貴甥.

甯氏가 집을 지을 때, 觀相者相가 말하였다.
마땅히 귀한 甥姪이 나올 것이오.”

 

外祖母以盛氏甥小而慧意謂應之.

外祖母盛氏인데 손자가 어리지만 지혜로웠으므로, 마음속으로 관상자의 말이 맞다고 여겼다.

 

舒曰

當爲外氏成此宅相.

위서가 말하였다.
마땅히 外家를 위하여, 이 집의 을 본 사람의 말이 이루어지게 하리라.”

 

 

舒姿望秀偉 飮酒石餘.

위서는 용모가 빼어났고 소망이 위대하였고, 술을 섬으로 마셨다.

 

遲鈍質朴 不爲鄕親所重.

遲鈍하고 質朴하여 고향 친척들이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不修常人之節 不爲皎厲之事.

일반인의 절도를 지키지 않았으며, 결백하고 엄정한 일을 하지 않았다.

 

每欲容才長物 終不顯人之短.

언제나 재주있는 사람을 받아들여서 키워주려 하고, 남의 短點을 나타내지 않았다.

 

年四十餘 對策升第 遷尙書郞.

나이 40여 세에 對策으로 과거에 올라 尙書郞으로 옮겼다.

 

時欲沙汰郞官 非才者罷之.

이때 조정에서는 郎官을 가려 쓰고자 하여 재목이 아닌 자는 파면하였다.

 

舒曰

吾卽其人也

이에 위서가 말하였다.
내가 곧 適任이지.”

 

襆被而出. 轉相國參軍.

寢具를 싸가지고 나가서 相國參軍으로 옮겼다.

 

文帝深器重之.

文帝(司馬昭)가 깊이 그의 능력을 소중히 여겼다.

 

每朝會罷目送之曰

魏舒堂堂 人之領袖也.

조회가 끝나면 매양 눈빛으로 송별하며 말하였다.
魏舒堂堂하여 사람들의 領袖이다.”

 

及山濤薨 領司徒.

司徒 山濤가 죽자, 그를 司徒로 삼았다.

 

陳留周震累爲諸府所辟.

그 무렵 陳留郡周震이 현명하다 하여 여러 번 官府들에서 불렀다.

 

辟書旣下 公輒喪亡. 僉號震爲殺公掾.

부르는 글이 내려가기만 하면, 부른 공경이 죽었으므로, 주진을 부르기를 殺公掾이라고 하였다.

 

舒命之 竟無患.

위서가 그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아무런 탈이 없었다.

 

識者稱其達命.

식자들은 그를 運命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年老遜位.賜几丈‧安車‧駟馬 門施行馬.

나이 늙어 벼슬을 사양하자, 几杖, 安車, 驅馬를 하사하고, 行馬를 설치하였다.

行馬: 궁궐 등에서 말을 타지 못하도록 금하는 遮斷木.

門施行馬 : 高官官府 門前에 궁궐처럼 行馬를 설치하도록 허락함.

 

時論以爲晉興以來 三公能辭榮善終 未之有.

당시 논자들이 말하였다.
나라가 興起한 이래, 三公이 영화를 사양하고 여생을 잘 마친 자는 아직 없었다.”

[註解]

晉書- <진서> <열전> 11 記事이다.
堂堂- 의젓하고 기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