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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

蒙求(몽구)558-子雲投閣(자운투각)

구글서생 2023. 3. 26. 00:39

蒙求(몽구) 子雲投閣(자운투각)

子雲投閣- 揚子雲이 天祿閣에서 몸을 던지다

 

前漢揚雄字子雲.
前漢 揚雄子雲이다.

 

年四十餘 自蜀來遊京師.

나이 40이 넘어 땅으로부터 京師(長安)로 왔다.

 

大司馬王音奇其文雅 召爲門下史.

大司馬 王音이 그의 문장과 風雅를 뛰어나다고 여기고, 불러서 門下史로 삼았다.

 

與王莽‧劉歆並.

王莽劉歆과 동렬에 있었다.

 

哀帝之初 又與董賢同官.

哀帝 초년에는 또 董賢과 같은 벼슬자리에 있었다.

 

當成‧哀‧平間 莽‧賢皆爲三公 權傾人主 所薦莫不拔擢.

成帝·哀帝·平帝 연간에 왕망과 동현은 모두 三公이 되어, 권세가 그 임금을 능가할 정도였고, 그 두 사람이 천거한 사람으로 발탁되지 않은 자가 없었다.

 

而雄三世不徙官.

그러나 양웅은 3동안 벼슬이 옮겨지지 않았다.

 

莽簒位 談說之士用符命稱功德 獲封爵甚衆.

왕망이 簒位하자, 談論하는 선비들은 符命이 왕망의 功德에 합치한다고 하여 封爵을 얻는 자가 몹시 많았다.

符命: 하늘이 帝王이 될 만한 사람에게 내리는 祥瑞로운 徵兆

 

雄復不侯.

양웅은 이때도 제후로 봉해지지 못하였다.

 

以耆老久次轉大夫.恬於埶利如是.

늙어서 지위가 오르지 않는다고 여기고 大夫로 옮겼으니, 埶利을 탐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久次: 오랫동안 地位가 오르지 않음.

 

及莽誅甄豊父子 投劉歆子棻四裔 辭所連及 便收不請.

왕망이 甄豊 父子를 주살하고, 劉歆의 아들 劉棻邊境으로 귀양보낼 때, 그들이 한 말에 언급된 사람들은 奏請을 기다리지 않고 체포하였다.

四裔: 나라의 사방(四方)의 먼 끝.

連及:牵连涉及连续

 

時雄校書天祿閣上.

이때 양웅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天祿閣에서 책을 校正하였다.

 

治獄使者欲收雄. 雄恐不能自免 迺從閣自投下 幾死.

監獄을 다스리는 使者가 양웅을 체포하려 하자, 양웅은 자신이 죽임을 면하지 못하리라 여기고, 에서 뛰어내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棻嘗從雄學奇字.

劉棻이 양웅을 좇아 異體의 문자를 배웠다는 이유였다.

 

莽以雄素不與事 有詔勿問.

왕망은 양웅이 본래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므로, 詔書를 내려 죄를 묻지 말라고 하였다.

 

然京師爲之語曰

惟寂寞自投閣.

爰淸靜作符命.

京師에서는 그것을 두고 말하였다.

오직 적막하더니 에서 몸을 던졌다.

이에 맑고 고요하게 符命을 지었네.”

 

蓋以雄解嘲之言譏之也.

이것은 양웅의 著書<解嘲>의 말로서, 그를 조롱한 것이다.

解嘲: 나라 揚雄太玄經를 지을 때, 권세에 아부하여 출세한 자들이 그의 담박한 생활 태도를 비웃자, 이를 해명하는 글을 지어 解嘲라고 명명하였다. 漢書』 「揚雄傳

 

雄家貧嗜酒.

양웅은 집이 가난했지만 술을 좋아하였다.

 

人希至其門 時有好事者載酒肴 從遊學.

그의 문하에 오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때때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그를 좇아 배웠다

 

而侯芭常從雄居 受太玄‧法言焉.

侯芭도 그런 사람으로 항상 양웅을 좇아 살면서, 양웅이 지은 <太玄><法言>을 배웠다.

 

劉歆謂曰

今學者祿利 尙不能明易.

又如玄何.

吾恐後人用覆醬瓿也.

이에 유흠은 말하였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爵禄의 이익은 밝히면서, 성현의 책인 <易經>의 이치는 밝히지 않소.

그러고도 이 책의 玄理를 어찌 알겠소?

나는 後人이 이 책을 장독의 덮개로 쓸까 염려되오.”

祿利: 爵禄之利

 

雄笑而不應.

양웅은 웃고 대답하지 않았다.

 

年七十二卒.

나이 72세에 하였다.

 

侯芭爲起墳.

侯芭 그를 위하여 무덤에 봉분을 세웠다.

[註解]

前漢- <한서> <열전> 57에 있는 이야기임.
王莽나라 孝元皇后의 조카策謀로써 平帝를 죽이고 漢朝를 빼앗아 즉위하여 나라를 세웠으나 15년 만에 光武帝에게 망하였음.
劉歆-나라 사람劉向의 小子처음에 <周易>을 배우다가 뒤에 <左傳>을 배웠다중국서적 目錄의 학문이 그로부터 시작됨또 章句의 의미도 均備했었다.
董賢나라 雲陽사람아름답고 아첨을 잘하여 哀帝의 사랑을 받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高安侯에 봉해지고 나이 22세에 大司馬 衛將軍에 이르렀으나 애제가 하자 王莽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어 돌아가서 자살하였다.

符命 천자가 되리라는 하늘의 장조

양웅은 사실 符命을 짓지 않았고 谷子雲이라는 도사가 부명을 지은 史實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