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492-陳蕃下榻(진번하탑) 본문
by 古岸子
陳蕃下榻- 陳蕃은 貴人이 오면 매달았던 걸상을 내려놓았다.
後漢陳蕃字仲擧 汝南平輿人.
後漢 陳蕃의 字는 仲擧이니 汝南 平輿人이다.
年十五 嘗閒處一室. 而庭宇蕪穢.
나이 15세 때 방에서만 한가히 거처하였으므로, 뜰과 지붕에는 풀만 무성하고 지저분하였다.
父友薛勤來候之 謂蕃曰
孺子何不洒埽以待賓客.
아버지의 친구 薛勤이 와서 살펴보고 진번에게 말하였다.
“젊은 사람이 어찌 掃除하고 손님들을 접대하지 않는가?
▶洒: 뿌리다(쇄). 씻다(세)
▶埽(소): 쓸다 =掃
蕃曰
大丈夫處世 當埽除天下. 安事一室乎.
진번이 말하였다.
“대장부가 세상에 살며 마땅히 천하를 소제할 것이지, 어찌 방 하나를 일삼겠습니까?”
勤知其有淸世志 甚奇之.
薛勤은 그에게 세상을 맑게 할 뜻이 있음을 알고, 몹시 기이하게 여겼다.
後爲樂安太守.
후에 樂安太守가 되었다.
時李膺爲靑州刺史 名有威政.
이때 李膺이 靑州刺史로서 위엄있는 정치로 명성이 있었다.
屬城聞風 皆自引去.
청주에 속한 城의 관원들은 不正이 綻露될까 두려워하여 모두 스스로 자리를 떠났다.
蕃獨以淸績留
그러나 진번은 홀로 맑은 업적을 쌓았으므로 머물러 있었다.
郡人周璆字孟玉高潔之士.
고을 사람 周璆는 자가 孟玉인데 뜻이 고상하고 깨끗한 선비였다.
前後郡守招命不至. 唯蕃能致焉.
前後의 郡守가 불러도 가지 않더니, 오직 진번만이 오게 할 수 있었다.
字而不名. 特爲置一榻 去則懸之.
진번은 그를 字만 부르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며, 그를 위하여 특별히 걸상 하나를 차려 두는데, 周璆가 가고 매달아 두었다.
▶榻: 걸상
後爲豫章太守 以禮待徐穉爲功曹.
뒤에 豫章太守가 되었다. 이곳에서도 예로써 徐釋를 대우하여 功曹로 삼았다.
性方峻 不接賓客. 惟穉來 特設一榻. 去則懸之.
성질이 바르고 엄격하여 빈객을 만나지 않았으나, 오직 徐穉가 오면 특별히 걸상 하나를 설치하여 앉게 하고, 그가 떠나면 매달아 두는 것이었다.
靈帝初 爲太傅‧錄尙書事 與大將軍竇武 謀誅中官.
靈帝 초년에 太傅‧錄尙書事가 되었는데 大將軍 竇武와 함께 宦官을 베기를 꾀하였다.
事泄見害.
일이 누설되어 해를 입었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56의 기사임.
▶周璆- 後漢 臨濟 사람. 높고 깨끗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여러 번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功曹- 郡의 屬吏인 錄事.
▶徐穉- 後漢 南昌 사람 집이 가난한데도 조정의부름에 나가지 않고 몸소 농사지어 먹었다. 太守 陳蕃이 빈객을 만나지 않았건만 오직 서치가 가면 걸상을 마련해 주었다. 당시 <高士傳>에 올랐다.
▶竇武- 東漢 平陵 사람. 딸이 桓帝의 后가 되어 槐里侯에 봉해짐. 靈帝가 즉위하자 大將軍에 임명되고 聞喜侯에 임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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