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411-衛玠羊車(위개양거) 본문
by 古岸子
衛玠羊車- 衛玠가 양의 수레를 타면 구경꾼이 담처럼 에워쌌다.
晉書
<晉書>의 記事이다.
衛玠總角乘羊車入市.
衛玠가 총각으로 羊이 끄는 수레를 타고 저자에 들어갔다.
見者以爲玉人. 觀者傾都.
보는 사람들이 그를 玉人이라 여겨서 구경하는 자가 도읍을 메웠다.
拜太子洗馬. 以天下亂移家 南行 至豫章.
太子洗馬에 임명되었다가, 천하가 어지러웠기 때문에 이사하여 남쪽으로 가다가 豫章에 이르렀다.
時王敦鎭豫章. 長史謝鯤雅重玠. 相見欣然. 言論彌日.
이때 王敦이 예장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長史 謝鯤은 위개의 인물을 중시하던 터라, 서로 기뻐하여 이야기한 지 여러 날이 되었다.
▶雅重: 1.甚器重﹔甚敬重。 2.雅正持重。 3.素来重视。
敦謂鯤曰
昔王輔嗣吐金聲於中朝. 此子復玉振於江表.
微言之緖絶而復續. 不意永嘉之末 復聞正始之音.
何平叔若在 當復絶倒.
왕돈이 사곤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王輔嗣는 금 같은 소리를 조정에서 토하더니, 이제 이 사람은 옥 같은 소리를 강남에서 떨치는구나
은미한 말의 실머리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니, 永嘉 말년에 다시 正始의 소리를 들을 줄 몰랐구나.
何平叔이 살아있으면 마땅히 다시 敬服할 터이다.”
▶江表: 指长江以南地区,从中原看,地在长江之外,故称江表
▶何平叔: 何晏(?—249年),字平叔。南阳郡宛县(今河南南阳)人。三国时期曹魏大臣、玄学家。东汉大将军何进之孙(一称何进弟何苗之孙)
絶倒: 1、佩服之极。2、谓折服。3、前仰后合地大笑。4、因昏厥而仆倒。5、古代杂技名 (포복절도하다. 몹시 경복하다)
玠嘗以人有不及 可以情恕. 非意相干 可以理遣.
위개는 일찍이 남이 나에게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으면 정으로 용서하고, 뜻하지 않게 나를 침범하여도 이치로써 풀어줄 것이라고 하였다.
▶干: 범하다.
故終身不見喜慍色.
그런 까닭에 終身토록 기뻐하고 화내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玠以敦豪爽不群 好居物上. 恐非忠臣.
위개는 왕돈이 호걸로서 쾌활하지만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남의 위에 군림하기를 좋아하니 忠臣이 아닐 것이라 여겼다.
求向建鄴.
도읍인 建鄴으로 가려고 하였다.
京師人士聞其姿容 觀者如堵.
도읍 사람들이 그의 용모에 대한 소식을 듣고 보려는 자가 담처럼 늘어섰다.
會卒. 時謂被看殺.
마침 그가 죽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남의 구경거리가 되기에 지쳐서 죽었다고 하였다.
[註解]
▶晉書- <晉書> <列傳> 6의 기사임.
▶玉人- 玉과 같이 잘생긴 사람.
▶王敦- 晉나라 臨沂사람. 武帝의 딸 양성공주에게 장가들어 駙馬都尉가 되고 뒤에 從兄 王導와 함께 杜弢의 난을 평정하고 征南大將軍이 되었음. 侍中에 오르자 조정의 일을 마음대로 처리하더니 뒤에 簒逆을 도모하다가 明帝가 군사를 일으켜 쳤는데 마침내 병으로 죽었다.
▶謝鯤- 晉나라 陽夏 사람. 《老子》를 좋아하고 노래에 능하였으며 거문고를 잘 탔다. 大將軍 王敦이 불러서 長史로 삼았으나 왕돈이 신하 노릇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정사에는 간여하지 않았다. 뒤에 豫章太守가 되어 청렴한 정치를 펴니 백성들이 사랑하였다.
▶正始- 魏의 正始 연중에 竹林七賢이 있었으므로 여기에서는 七賢의 遺風을 말함.
▶絶倒- 대단히 감탄함.
▶鄴- 建鄴. 東晉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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