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410-申屠斷鞅(신도단앙) 본문
by 古岸子
申屠斷鞅- 申屠剛이 말의 가슴걸이를 끊으며 임금을 간하다
後漢申屠剛字巨卿 扶風茂陵人.
後漢의 申屠剛의 字는 巨卿이니 扶風 茂陵人이다.
丞相嘉七世孫.
丞相 申屠嘉의 七世孫이다.
剛性方直 常慕史鰌‧汲黯之爲人.
굳센 성질에 바르고 곧아서 항상 史鰌와 汲黯의 사람됨을 사모하였다.
平帝時 擧賢良方正對策.
平帝 때 賢良方正科에 薦擧되어 시험 답안을 써서 바쳤다.
王莽令元后下詔罷歸.
王莽은 元后에게 조서를 내리게 하여 그를 파면시켰다.
建武七年 徵拜侍御史 遷尙書令.
建武 7년에 부름을 받아 侍御史에 임명되었다가 尙書令에 옮겨졌다.
光武嘗欲出游. 剛以隴蜀未平. 不宜宴安逸豫.
光武가 유람을 나간 적이 있는데, 申屠剛은 隴蜀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니 잔치하고 편안히 놀아서는 안 된다고 간하였다.
諫不見聽 遂以頭軔乘輿輪 帝遂爲止.
간하여도 듣지 않자, 수레의 바퀴에 머리를 박으니 황제가 이에 중지하였다.
以數切諫失旨 出爲平陰令 復拜大中大夫.
자주 절실히 간하니 임금이 좋아하지 않았고 平陰令으로 나갔다가 다시 大中大夫에 임명되었다.
舊注云
以刀斷馬鞅. 未詳所出. 剛轉作綱.
舊注에 말하였다.
“칼로 말의 가슴걸이를 끊었다고 했는데, 그 記事의 출처는 不詳이다. 申屠剛의 剛자를 綱으로도 적고 있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19의 기사임.
▶史鰌- 춘추시대 때 衛나라 大夫. 자는 子魚. 또한 史魚라고도 한다. 靈公이 蘧伯玉을 쓰지 않고 彌子瑕를 쓰자 자어가 자꾸 간했으나 듣지 않았는데 병으로 장차 죽게 되자 그 아들에게 명하기를, "내가 살아서 임금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죽어서 예를 이룰 수가 없다." 하여 시체를 창 밑에 감추어 두었다. 영공이 가서 조상하다가 괴상히 여겨 물었더니 그 아들이 사실대로 고하였다. 이에 영공은 나의 잘못이라 하고 이에 거백옥을 올려 쓰고 미자하를 물러가게 하였다.
▶汲黯- 漢代의 諫臣. 武帝 때 東海太守를 거쳐 九卿의 반열에 올랐음. 성질이 엄격하고 直諫을 잘하여 武帝로부터 社稷의 신하란 평을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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