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한문 공부/한번은 한문공부

4. 한문은 성조 언어이다

耽古樓主 2024. 4. 28. 03:21

知之為知之 不知為不知 是知也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한문은 성조 언어이다

 

한문은 우리말과 다르게 한자마다 음의 높낮이 변화에 따른 성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조를 살려서 한문을 읽으면 한문 특유의 리듬감이 생겨납니다.

 

혹시 종묘 제례 같은 큰 제사에서 축문 읽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마치 힙합 음악의 랩을 서너 배 저속으로 읊는 것 같은 낭랑한 소리, 그 소리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바로 성조가 빚어내는 효과입니다. 한문을 평탄하게 읽어선 그 느낌을 알기 어렵지요. 한문에서 허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성조는 1400~1000여 년 전의 수당 시대 중국어를 수용하면서 형성됐다고 추정된다. 현대 중국어의 사성 체계와는 다르다.

 

허사란 실질적 의미를 지닌 실사에 상대되는 말인데, 실사는 문장에서 뼈대 구실을 하는 명사, 형용사, 동사를 가리킵니다. 이에 반해 語句와 語句의 관계를 보여 주고, 말의 느낌인 語氣를 나타내는 말이 허사입니다. 전치사, 조사(어조사), 감탄사 등이지요. 대명사와 부사는 실사와 허사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허사는 한문을 읽을 때 한문이 성조 언어로서 지닌 음조와 호흡을 추정하도록 도와줍니다. 문장을 어디에서 끊고 이어야 하는지 알려줘서 의미의 덩어리를 구분하기 쉽게 해 주지요. 또 말의 성격이나 느낌을 표시해 문장에 배인 감정이나 정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之는 한문에서 사용 빈도가 대단히 높은 한자입니다. 허성도 교수가 시행한 『고려사』 대상의 한자 사용 빈도 조사에서 모든 한자를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을 정도지요. 다른 문헌에서도 비슷한 빈도로 쓰이니까 꼭 알아두어야 할 한자입니다. 이 之의 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 동사로 쓸 때는 '가다'란 뜻이다.

沛公引兵之薛(자치통감 2세 황제 2년)

패공이 병사를 이끌고 설로 갔다.

 

- 대명사로 쓸 때는 '그', '그것'이란 뜻이다.

王見之曰(맹자 양혜왕상)

왕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 조사로 쓸 때는 의(한), 을(를), 이(가) 등으로 해석한다.

民神之主(좌전 환공 6년)

백성이 신들의 주인이다.

 

이 가운데 대명사로 쓰이는 之는 종종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막연한 대상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앞에 쓰인 한자가 동사임을 분명히 하거나 음절수를 늘리는 구실을 하지요. 이 경우는 해석하지 않는 편이 우리말 흐름에 더 자연스럽습니다.

知之爲知之가 바로 뒷 구절과 음절수를 맞추기 위해 쓴 之라고 할 수 있습니다.

知之為知之 不知為不知 是知也 = 知為知 不知為不知 是知也

 

이 之는 의미만 살리자면 생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략하면 '지'라는 음이 반복되면서 생겨나는 경쾌한 효과가 사라집니다. 괜히 간결하게 쓴다고 之자를 빼면 공자가 하늘에서 "이런, 한문의 라임(운율)과 플로우(흐름)도 모르는 놈!" 하고 '디스'할지도 모릅니다.

 

한편 조사로 쓸 때의 之는 '~의'로 쓰이는 예만 들었지만 용법이 다양합니다. 목적어를 앞으로 끌어왔을 땐 '~을(를)'로, 之를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삽입해서 절을 만들 때는 '~이(가)'로 풀이하지요. 은(는)은 두 경우 모두에 붙일 수 있습니다.

 

 

 

 연습

 

 

▶ 弱之肉, 强之食(한유 송부도문창사서)

-약한 것은 고기가 되고 강한 것은 먹는다.

-之가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삽입된 예이다.

-'~의'의 의미로 쓰여 관형어를 만드는 예로 볼 수도 있으며 이때의 해석은 ‘약한 것의 고기는 강한 것의 밥이다.’가 된다

 

▶ 天乎, 予之無罪也(예기 단궁 상)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습니다.

-之가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삽입된 예이다.

 

▶ 我之謂風波之民(장자외편 천지)

-나는 풍파에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해야겠지.

-『장자』에서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그의 제자에게 했던 말로 나온다. 밭일하는 노인을 만난 뒤에 그처럼 온전한 덕을 지닌 사람과 대비해서 자신을 낮췄던 말이다.

-我之謂의 之는 전치된 목적어 뒤에서 '~을(를)', '~은(는)'의 의미로 사용됐고, 風波之民의 之는 관형어를 만드는 '~의'의 의미로 쓰였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중용 1장)

-하늘이 명령함을 성이라 하고, 성에 따름을 도라 하고, 도를 갈고 닦음을 교육이라 한다.

-전통적인 교육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구절이다. 천명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구절이기도 하다.

-목적어가 전치됐을 경우 그 목적어는 보통 강조되므로 옮길 때 '을/를'과 함께 '은/는'으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우리말에서 화제나 대조를 표시하는 보조사 '은/는'은 주격과 목적격을 다 대치할 수 있다.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중용 20장)

-폭넓게 배우고 꼼꼼하게 물으며 깊이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여 굳세게 행한다.

-之가 대명사로 쓰인 예이다. 막연한 대상을 지칭한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맹자 등문공하)

천하라는 넓은 곳에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간다.

-之가 '~의'의 의미로 쓰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