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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269 蘇武持節(소무지절)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269 蘇武持節(소무지절)

구글서생 2023. 4. 7. 01:29

蒙求(몽구) 蘇武持節(소무지절)

by 耽古書生

蘇武持節- 蘇武가 符節을 굳게 소지하다. 

 

前漢蘇武字子卿 杜陵人.
前漢蘇武子卿이니 杜陵人이다.

 

武帝時以中郞將持節使匈奴.

武帝 中郞將으로서 符節을 가지고 匈奴에 사신으로 갔다.

 

單于欲降之 迺幽武置大窖中 絶無飮食.

單于가 그를 항복시키려고 큰 구덩이 속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았다.

: () 채소 따위를 겨울에 보관하는 구덩이

() 부억

 

天雨雪. 武臥齧雪 與旃毛幷咽之 數日不死.

눈이 내리자 소무는 누워서 눈을 입에 물고 깔개인 모직물의 털과 눈을 같이 삼켜서 수일 동안 죽지 않았다.

: () 물다

: () 목구멍 () 목이메다 () 삼키다

 

匈奴以爲神 乃徙武北海上使牧羝 羝乳乃得歸.

이에 흉노는 그를 이라 여기고 北海로 옮기고 숫양[]을 치게 하고,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武杖漢節牧羊 臥起操持 節旄盡落.

소무는 나라 부절을 꼭 쥐고 양을 치는데, 눕거나 일어날 때도 부절을 놓지 아니하여 부절의 털이 다 빠졌다.

 

昭帝立 匈奴與漢和親. 漢求武等.

昭帝가 즉위하면서 흉노와 한나라가 화친하자, 한나라에서 소무 등을 보내라고 요구하였다.

 

匈奴詭言武死.

흉노는 거짓말로 소무가 죽었다고 했다.

 

常惠敎漢使者言

天子射上林中得鴈. 足有係帛書. 言在某澤中.

소무와 함께 붙잡혀 있던 常惠가 한나라에서 온 使者더러 다음과 같이 말하게 시켰다.

천자가 上林苑에서 활을 쏘아 기러기를 떨어뜨렸는데, 기러기 발에 帛書가 매어 있었고 거기에 쓰기를, ‘소무가 어느 못가에 있다.’라고 하였다.”

 

由是得還. 拜爲典屬國.

이 까닭에 소무는 還國할 수 있었고 典屬國에 임명되었다.

 

秩中二千石 賜錢二百萬‧公田二頃‧宅一區.

年俸2천 석을 주고 돈2백만 냥과 公田 2과 주택 한 채를 하사했다.

秩中二千石: 汉制三公号称万石其俸月各三百五十斛其称中二千石者月各百八十斛二千石者百二十斛比二千石者百斛千石者九十斛比千石者八十斛六百石者七十斛比六百石者六十斛四百石者五十斛比四百石者四十五斛三百石者四十斛比三百石者三十七斛二百石者三十斛比二百石者二十七斛一百石者十六斛。(一斛即是一石

 

武留匈奴十九歲.

소무가 흉노에서 머무른 것이 19년이었다.

 

始以强壯出 及還鬚髮盡白.

처음에 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나갔는데 돌아올 때는 수염과 머리털이 다 희어졌다.

 

至宣帝時 以武著節老臣 令朝朔望 號稱祭酒.

宣帝 때에 이르러 소무는 충절에 드러낸 老臣이라 하여 초하루와 보름에만 조회하도록 했고 祭酒라 부르게 했다.

 

年八十餘卒. 後圖畵於麒麟閣 法其形貌 署其官爵姓名.

80여 세에 하니 그 뒤에 麒麟閣에 그의 모습을 본떠서 그렸고, 그의 官爵과 성명을 써놓았다.

 

[註解]

前漢- <한서> <열전> 24에 있는 이야기임.

中郎將- 秦代로부터 唐代이전까지 殿門宿衛를 맡은 벼슬아치의 장관.

匈奴- 인종의 이름. 기원전 3세기경부터 약 3백년간 지금의 몽고 지방에서 유목하던 터키족의 일종.

單于- 흉노왕의 칭호.

上林- 임금의 동산. 과같다.

帛書- 비단에 쓴 편지.

典屬國- 屬國의 일을 맡은 벼슬.

- 1百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