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23.통일신라-박한미(朴韓味) 본문
고유섭(高裕燮)
1905∼1944, 미술사학가. 호 우현(又玄), 경기도 인천 생. 경성제대 철학과 졸업. 이화여전, 연희전문 등에 출강하면서 국내의 명승 고적을 답사하여 미술문화 연구에 진력.
저서에 「송도고적(松都古蹟)」, 「조선 탑파(塔婆)의 연구」, 「조선미술문화사논총(朝鮮美術文化史論叢)」 유저로 「한국미술사 급미학논고(韓國美術史 及 美學論攷)」등이 있음.
이조에 들어와 불교의 배척은 마침내 불상, 불구(佛具) 등 동철(銅鐵)의 材를 개용(改鎔)하여, 제전(製錢), 製武器 등에 사용하였으니, 불교예술이 일반(一半)은 이로 말미암아 괴훼소실(壞毁消失)된 바 적지 않고, 부상국(扶桑國) 제진수(諸鎭守)의 대장경(大藏經) 내구(來求)와 함께 범종의 소청이 또한 많아, 세종조에 벌써 국내 범종이 태진(殆盡)하였다 하는데(「세종실록」권 6 계축 6월 16일), 공예미술품이 이러한 분탕(奔蕩)속에서 국법으로 훼용(毁鎔)을 금한 종이 둘이 있으니, 그 하나는 경주 봉덕사(奉德寺)에 있던 종이요, 그 다른 하나는 개성 연복사(演福寺)의 종이다(「세종실록」권 24 갑진 5월 3일조).
1) 분탕(奔蕩): 공예품이 죄다 없어짐.
즉 이 양자의 국가적 우우(優遇)를 알 수 있지만, 후자 연복사종은 원장(元匠)의 소주(所鑄)로서 조선인의 작품이 아니니 도외시한다면, 봉덕사종은 실로 조선적 동종을 대표하여 국가적 우대를 받은 유일의 것이요, 이러한 명종을 주성(鑄成)한 몇 사람 가운데 나마(奈麻) 박한미(朴韓味)가 있다.
2)원장(元匠): 원나라의 종을 만드는 장인.
종명(鐘銘)에 의하면 주종대박사(鑄鐘大博士) 대나마(大奈麻;麻는 末로도 씀)에 모(某)가 있고 차박사(次博士) 나마에 모가 있고, 그리고 이 나마 박한미가 있고 다음 끝으로 대사(大舍)에 모가 있어 도합 4인의 손에서 이 종은 된 것이나, 銘字가 마손(磨損)되어 다른 3인은 실명(失名)되었고 박한미 1인만이 오직 남게 되었다. 공장(工匠) 위차에 있어 제3위에 있고 대나마는 신라 관제 17등 중 제10등에 있고 나마는 11등에 있고 대사(혹은 韓舍라고도 한다)는 12등에 있으니 이 종의 주성에 있어서 박한미의 지위를 가히 참작할 만하다.
그는 나마이나 이미 공박사(工博士)라 따라서 그의 세계(世系), 생사의 연월 등이 알려지지 않고 다만 그 유작에 의하여 혜공왕 때 주종의 명장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유작인 봉덕사종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말함으로써, 그의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얼마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민간전설에는 경덕왕 11년 갑오에 주성한 황룡사 대종의 鑄工인 里上宅下典이 이 종도 주성하였다고 한다고 한다).
이 종은 항간에서 古來로 봉덕사종이라 일컬어 오나니 이는 이 종이 일찌기 봉덕사에 시납(施納)되었던 까닭이다. 이 봉덕사는 경주 북천 남안에 있던 대찰로서 성덕왕이 태종대왕의 명복을 위하여 창건하셨다는 일설과 효성왕이 즉위 2년 무인에 고왕(考王) 성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개창하셨다는 설의 두 가지가 있다(「삼국유사」권 2 성덕왕조 및 동서 권 3봉덕사종조). 그러나 이 종이 본디 그 종 자체에 있는 기명과 같이 경덕왕이 고왕 성덕의 명복을 위하여 주성하시려다가 완취(完就)치 못하신 채 홍어(薨御)하시고 혜공왕이 등극하신 후 노(老) 경덕왕의 유지를 이어받으시어 즉위 7년 신해 12월에 모태후(母太后) 만월부인(滿月夫人)의 섭정보공(攝政輔功)하에 완성시켜 봉덕사에 봉납하신 것이니 이는 곧 봉덕사가 성덕왕의 명찰(冥刹)이었던 까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봉덕사는 그 후 하천의 범람으로 퇴폐되었고 퇴폐됨에 이조 세조 5년에 영묘사(靈妙寺; 혹은 廟라고도 씀)로 이현(移懸)하였다가 영묘사가 소실됨에 다시 중종 원년에 때의 부윤(府尹) 예춘년(芮椿年)이 남문 밖 봉황대(鳳凰臺) 아래로 종각을 세워 옮겼다가 근년에 경주박물관 구내로 移置하여 전전된 것이다. 따라서 봉덕사종으로 불러 무관하겠지만 원래는 상술한 바와 같이 성덕대왕의 명복을 위하여 주성한 것이었고 겸하여 명(銘)에도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鐘之銘)'이라 하였으니 우리는 宜當 ‘성덕대왕신종’으로 부름이 옳을 것이다.
이 성덕신종은 그 거량(巨量)인 점에서 그 묘공(妙工)인 점에서 그 호음(好音)인 점에서 실로 조선종으로서 대표적 지위에 있을뿐더러 세계에 내놓아도 이와 비견할 자를 얻지 못할지니, 일찍기 독일 국립박물관 동아미술부 부장 큄멜 박사가 내도(來睹)하고서 박물관 설명표에 ‘조선 제일’이라고 쓴 것을 연필로 ‘세계 제일’이라 개서(改書)하면서 왈
“이는 실로 세계 제일로 말할 것이지 조선 제일이라할 것이 아니다. 독일 같으면 이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박물관 하나가 설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한다. 이로써 이 종의 예술적 가치의 높음을 알겠거니와 이 종의 특수 형태인 양식 모형이 현재 조선에서 제작된 유품들에만 남아 있고 동아의 제린(諸隣)은 물론이요, 세계에 또다시 없음으로 해서 조선의 독창 형식이라 곧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문화의 선구이었던 중국의 종이 충분히 천명되기 전까지는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원래 종이란 악기로서 출발한 것이니 그러므로 용기로서의 종과는 그 자체(字體)도 달리할 뿐더러 형태까지도 달리한다. ‘종명정식(鐘鳴鼎食)’이라 하고 ‘명종집중(鳴鐘集衆)’이라 하여 종의 실용은 동서가 같지마는 악기로서의 종은 중국의 특색이다.
4) 종명정식(鐘鳴鼎食): 옛날 부귀한 집에서 솥을 벌여놓고 먹으며, 먹기 전에 종을 울려 사람을 모았다는 데서 부귀한 집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정식(鼎食).
이 악기로서의 중국종의 형태를 이용하여 ‘명종집중’하고 ‘정악기선(定惡起善)’하고 ‘보이경신(報以警信)’함에 이용한 것이 중국 이동(以東)의 범종(梵鐘)이니, 범종이란 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란 뜻으로 인도에서는 ‘건치(Ghanta)'라고 하여 원래 종이 아니요 추타하여 소리나는 범물(凡物)을 총칭하였다.
5)명종집중(鳴鐘集衆)하고 정악기선(定惡起善)하고 보이경신(報以警信)함:종을울려 군중을 모으고 선악을 가리고 종을 울려 믿음을 깨친다는 종의 기능을 말함.
성덕신종명기 중에 “불토에서 찾으면 계니에서 증험된다”(편집자 역)라 하여 서북인도 카슈미르로부터 있었던 듯이 되어 있으나 이는 건치를 두고 한 말이요 인도에는 원래 종이 없었다 한다. 말하자면 인도 불가에서 실용되던 건치에다 중국의 악종(樂鐘)을 대용하고서 건치를 종으로 역(譯)함에 불과한 것이다.
또 종의 종류로 말한다면 세계적으로 2대 부류로 나눌 수 있으니 즉 그 하나는 서양종들과 같이 추자(錘子)가 종 속에 달려 이것을 흔들어 울리는 것과 다른 하나는 동양의 종같이 외부에서 때려서 울게 하는 것이다. 성덕왕신종은 이편에 속하는 것이요 또 원형식은 중국의 악종 형식(樂鐘形式)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악종은 약간의 편원형식(偏圓形式)이나 이것은 순전한 원통 형식임이 다를 뿐이요 대체의 형식이 같으면서 부분 형식에 특수한 취태(趣態)를 낸 곳에 그 특색이 있는 것이다.
이제 그 특색되는 형식을 설명하면 鐘口가 수·당 이래 성행되던 8화8릉(八花八陵)의 동경형식(銅鏡形式)을 입체적으로 살려 8릉을 이루었고(중국의 원대 이후 모든 종도 8릉을 이루었으나 그것은 커다란 半圓屈曲이 波形을 이룬 것이요 이와 같이 花瓣八稜을 이룬 것은 아니다)이 8릉의 굴곡진 구변(口邊)을 따라 괴려키 짝이 없는 보상화문문대(寶相花文紋帶)가 돌려 있고 8릉의 굴절마다 8판연화(八瓣蓮花)가 매듭을 이루고 있다.
6)괴려:매우 아름다움.
종 위에도 호화스러운 보상화대가 돌려 있고 이에 붙여 매전(枚篆;乳廓) 4구가 있으되 그곳에도 화문방대가 돌려 있고 그 안에 통식(通式)인 돌기진 매(杖)가 없던 대신에 횡 3 종 3의 연화 9타(朶)가 정제되어 있다. 무상(舞上)에는 앙련복련(仰蓮伏蓮)이 중첩된 한 원통이 있으니 이는 악종의 형용(旗揷)에 해당한 것이요 겸하여 주경한 복룡(伏龍)이 있으니 이를 통칭 용추(龍鈕)라 한다.
고면(鼓面)에는 웅려한 연화 2좌가 있으니 악종에서의 수(隧;撞座)요이 연화당좌를 등지고 운간 연대(雲間蓮臺)에서 천의(天衣)를 날리며 향화(香花)를 공양하고 있는 제천(諸天)이 쌍으로 전후에 떠 있어 그간에서(序)와 명(銘)이 鑄刻되어 있다. 서명(序銘)은 한림(翰林) 즉 김필해(金弼奚)의 찬한 바요, 서(書)는 한림대 서생 김모와 대조(待詔) 홍단(洪湍)의 분서(分書)에 속한다. 형(衡)의 높이 2척 1촌, 외경(外徑) 7촌여, 종신 높이 9척 8촌, 구외경(口外徑) 7척 4촌, 두께 8촌, 총량 12만근. 연대로 말하면 이 이전에 개원 13년 을축(성덕왕 24년)의 주종명이 있는 평창군 상원사의 동종과 천보(天寶) 4년 을유(경덕왕 4년)의 주종명이 있는 사부지산촌무진사종(賜夫只山村死盡寺鐘;일찌기 對馬國 國府八幡宮으로 이출되었다가 명치 초년에 파괴되다)이 있으나 체량(體量)에 있어 미묘한 점에 있어 모두 이 성덕신종을 따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인방에 있는 여러 범종은 형용이 없고 보상화대가 없고 불보살의 장엄이 없이 종체에는 다수한 종횡선이 가사 의문(衣紋)과 같이 채워 있어, 화려한 취태가 없을 뿐더러 외형까지도 무미한 도상적 형태에 흘러 이만치 아담한 흥취를 보이는 것이 없다. 이로써 이 종의 특수성을 알 만하다.
항간에서 이 종을 설명하되 주공이 여러 번 실패한 나머지에 무남독녀를 희생시켜 부어 만든 까닭에 그 신령의 우는 소리가 ‘어밀레 어밀레’한다고 한다. 이것은 요요부절(嫋嫋不絶)하는 이 종소리의 여운의 특색을 형용키 위하여 고래로 있던 주종의 사실과 합쳐 지어낸 설명으로 형용설명의 소박성을 우리는 오히려 예술적 흥취 있는 것으로 들을 수 있다.
7)요요부절(屬不絶): 약하디 약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음
성덕대왕신종지명
조산태부(朝散太夫) 전 태자사의랑(太子司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월(金弼粵)은 교서를 받들어 찬(撰)합니다.
대저 지극한 도는 형상의 바깥까지도 포함하지만 보려 해도 그 근원을 볼 수 없고, 대음(大音)은 천지의 사이에서 진동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읍니다.
이런 까닭에 가설(假說)을 열고 기대어 3진(眞)과 3오(奥)를 보며 신종(神鐘)에 싣고 걸어서 1승(乘)의 원음(圓音)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저 종이란 것은 불토(佛土)에서 찾으면 계니에서 증험되고, 중국에서 찾을 것 같으면 고연(鼓延)에서 처음 만들어져 있읍니다. 속이 비어 있으나 그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며 무겁기는 그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정도입니다. 이런 까닭에 왕자(王者)는 그 위에 원공(元功)을 새길 수 있으며, 군생(群生)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덕대왕께서는 산하(山河)와 같이 우뚝하며 이름은 일월과 같이 높게 걸려 있읍니다. 충직하고 선량한 사람을 천거하여 백성을 어루만졌으며 예악을 숭상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했읍니다. 들에서는 근본인 농사에 힘쓰고 저자에서는 물건이 남아 버리는 일이 없었읍니다. 이때는 금옥을 싫어하고 세상에서는 문재를 숭상했읍니다. 자손들의 영화만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노심으로 훈계하는 마음이 있었읍니다. 40여 년간 나라에 임해서 정사에 부지런히 하고 한 번의 전쟁도 없었으니 백성들이 놀라고 동요함이 없었읍니다. 그런 까닭에 사방의 이웃 나라에서 오직 아름다운 풍문만을 듣고 찾아왔으니 일찌기 한번도 전쟁의 틈을 엿보지 아니하였읍니다. 연(燕)나라와 진(秦)나라가 사람을 쓰고, 제(齊)나라와 진(晋)나라가 거듭하여 패자가 된 것과 어찌 더불어 똑같이 비교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같이 자라는 나무의 키는 재기 어렵고 천추의 밤은 쉽게 길어지니 붕어하신 지 오늘 벌써 34년이옵니다. 지난날 효성스런 후손인 경덕대왕이 계실 때에 지키기를 계속하여 큰 사업으로 살피고 진무함에 거의 아침을 격하지 않았으나 자애로움은 세월이 지나와 사랑함을 거듭 어기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엄한 가르침으로 궁궐에 임했으나 슬픔은 더욱 커지고 추모하는 정은 더욱 처연하여집니다. 영혼의 마음은 다시 간절하고 공경스러워 구리 12만 근을 내려 큰 종 하나를 주조하여 오늘에도 뜻을 잊지 않도록 하였읍니다.
우리 성스러운 임금님께서 정하심은 조종(祖宗)에 합치되고 뜻은 지극한 이치에 부합됩니다. 오랜 옛적에 죽음과 재앙이 기이하매 당시의 우두머리들에게 덕(德)을 끼쳤으니 6가(六街)의 용운(龍雲)은 몰래 옥계단을 씻고 구천의 천둥은 금궐(金闕)에 진동합니다. 뛰어난 나무의 숲은 외경에 무성하고 연기도 아닌 색은 경사에 빛납니다. 이것은 곧 종이 탄생하는 날을 가리킴이요 그 정사에 임하는 때를 응하는 것입니다.
우러러 생각하건대 큰 은혜는 땅과 같이 평평하고 백성들을 인(仁)으로 교화시킴이 하늘의 거울과 같아 부자의 효성을 권장합니다. 이는 아침에는 원구(元舅)의 현명함을 아는 것이고 저녁에는 충신의 보필을 아는 것입니다. 가리지 않을 말도 없으며 거짓은 어찌 있겠읍니까. 이에 유언을 돌아보고 드디어 숙의를 이루어 유사(有司)로 하여금 일을 분별하게 하고 공장으로는 그 규모를 계획하게 하니 이때는 대연월(大淵月) 대려(大呂)였읍니다.
이때는 일월이 반짝이고 음양이 기운을 조절하며 바람은 온화하고 하늘은 고요합니다. 신기(神器)가 성장을 한 것이 산악과 같으며 소리는 용의 소리와 같습니다. 임금님께서는 고개의 꼭대기에 오르시고 끝없는 밑바닥에 고요히 통하십니다. 보는 자는 기이하다고 칭송하고 듣는 자는 복을 받았읍니다.
원컨대 이 묘한 날개를 받들어 높은 영령은 널리 울리는 맑은 소리를 들으시고 무열(無說)의 법계에 오르셔서 3명(明)의 이긴 마음을 즐기십시오. 1승의 진경에 거하면 곧 구슬꽃 받침의 총총함에 이를 것이요 금가지와 함께 하여 길이 나라의 업이 무성한 것입니다. 장차 쇠로 두르고 더욱 번창하여 유정무식(有情無識)이 지혜의 바다에서 함께 나와 속세의 깨달음의 길에 함께 할 것입니다.
신 김필월은 문장이 졸렬하고 재주가 없으나 감히 임금님의 조서를 받들어 반초(班超)의 붓을 들고 육좌(陸佐)의 말을 좇았으니 원컨대 종에 기록해 주십시오.
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대나마 김모는 삼가 썼읍니다.
그 글에 말하기를,
임금님의 어좌에 현상이 걸리고 임금님의 수레는 사방을 열었네
산하가 진열하고 우주도 베풀어지네
동해가에 신선의 모습이 감추어지고 땅에는 복숭아숲이 우거져 뽕나무밭과 경계를 이루었구나
이에 우리나라가 있고 합쳐져 한 고을이 되었다
으뜸되도다 성덕! 널리 퍼짐이 더욱 새로우며, 묘하고 묘한 맑은 교화여! 멀어질수록 더욱 지극하구나
은혜가 먼 곳까지 끼쳐져 사물에도 골고루 적셔 주네
무성하다 천 가지 잎, 편안하다 만가지 윤리
수심의 기색이 문득 없어지며 혜성에 봄이 없도다
공손한 효손이 천 년 왕업을 이으니 백성을 다스림이 옛과 같으며 풍속은 어찌 어긋나리오
날마다 엄한 가르침 생각하고 늘 사랑스런 빛을 사모하여 다시 복을 닦으니 천종(天鐘)으로 기도하도다
훌륭하도다 우리의 후손들이여! 덕에 감응함이 가볍지 않네
귀한 상서로움이 자주 나타나고 영부(靈符)는 매번 생기는구나
어진이를 주로 하며 하늘이 도우니 시대가 태평하고 나라는 화평하도다
멀리 추모하는 정을 더욱 부지런히 하니 마음에 따라 바램이 이루어지네
이에 유명을 돌아보아 이 종을 만드노니 사람과 신이 힘을 북돋우고 보배로운 그릇이 만들어졌네
마귀를 물리치며 어룡을 구원하니 떨치는 위엄은 계곡을 빛내며 맑은소리는 봉우리에 울리도다
듣고 보는 이 모두 믿으며 꽃다운 인연이 씨를 뿌리네
둥글게 빈 것은 신의 몸체요 모나게 드러남은 성인의 발자취로다
이 홍복을 길이 하여 늘 무거움을 이으리라
한림장 급찬 김필월은 교서를 받들어 찬합니다.
대조 대나마 홍단이 쓰다.
검교사 병부령 겸 전중령사 어부령 수성부령감 사천왕사부령 병 검교진지대왕사사 상상대각간 신 김옹
검교사 숙정대령 겸 수성부령 검교감 은사사 각간 신 김양상(金良相)
부사 집사부시랑 아찬 김경신(金敬信)
판관 우사녹관□ 급찬 김□득(金口得)
판관 급찬 김충봉(金忠封)
판관 대나마 김□보(金口甫)
녹사 나마 김일진(金一珍)
녹사 나마 김□□(金口口)
녹사 대사 김□□(金口口)
대력(大曆) 6년 세차 신해 12월 14일 주종대박사 대나마(鑄鐘大博士大奈麻) □□□
차박사 나마(次博士奈麻)
나마 박한미(朴韓味)
대사 □□□ (편집자 역)
'한글 文章 > 조선명인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통일신라-강고내말(强古乃末) (0) | 2023.05.03 |
---|---|
24.통일신라-김생(金生) (0) | 2023.05.03 |
22.통일신라-혜초(慧超) (0) | 2023.05.03 |
21.통일신라-김대성(金大城) (9) | 2023.05.03 |
20.발해-발해태조 고왕(渤海太祖 高王) (0)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