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2五言古風短篇-8王昭君(왕소군)

耽古樓主 2024. 1. 28. 11:07

古文眞寶(고문진보)

왕소군(王昭君)-이백(李白)

▶ 王昭君(왕소군) : 나라 원제(元帝기원전 48~기원전 33재위)는 후궁이 너무 많아 일일이 친히 고를 수가 없었다그래서 원제는 畫工을 시켜 초상화를 그려 바치게 하여 그 그림을 보고 후궁을 불러들였다화공은 이에 여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초상을 예쁘거나 밉게 그려 바쳤다.
그러나 후궁의 왕소군[이름은 昭君은 ]은 뇌물을 안 써서 임금 근처에도 못 가봤다이때 흉노(匈奴)의 세력이 커서 한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는데흉노의 선우(單于)가 한나라로 미인을 구하러 왔다이에 원제는 화공의 그림을 보고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골라 주었다그러나 떠날 때 소군을 보니 천하의 절색이라원제는 잘못되었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었다이에 원제는 화공을 베고소군의 아름다움을 아끼며 흉노에게로 떠나보내었다西京雜記이 왕소군의 기구한 운명은 예부터 많은 문인의 마음을 움직여 시나 소설 또는 희곡으로 그의 일생을 노래하였다.

 

昭君拂玉鞍上馬啼紅頰.
왕소군 구슬 안장 떨고 말에 오르는 붉은 볼엔 눈물이 흥건.
▶ () : 먼지 따위를 떨다.
▶ () : 말안장옥안(玉鞍)은 구슬로 장식된 안장.
▶ () : 울다.
▶ () : 제홍협(啼紅頰)은 아름다운 붉은 볼에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

今日漢宮人明朝胡地妾.
오늘까지도 漢宮의 사람이더니내일 아침이면 오랑캐 땅의 첩이 되다니.
▶ 胡地(호지) : 북쪽의 오랑캐 땅흉노를 말함.

 

 

 해설


이 시는 이백(李白, 701~762)의 <왕소군> 시 2수의 둘째 것이다. 다른 첫째 수는 다음과 같다.

한나라 진 땅의 달이 흐르는 그림자로 명비를 전송하네.
한번 옥문관을 나서서 하늘 저쪽 끝으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네.
한나라의 달은 여전히 동해에서 뜨고 있건만 명비는 서쪽 땅으로 시집가 돌아오지를 않네.
연지 나는 연산(燕山)은 언제나 추워 눈이 꽃을 이루고 미인은 초췌하여 오랑캐 모래땅에 묻히리.
살아선 황금이 모자라 초상화를 못 그리더니, 죽어서는 靑塚을 남겨 사람들을 탄식하게 하네.
漢家秦地月 流影送明妃.
一上玉關道 天涯去不歸.
漢月還從東海出 明妃西嫁無來日.
燕支長寒雪作花 蛾眉憔悴沒胡沙.
生乏黃金枉圖畵 死留靑塚使人嗟.)

곽무천(郭茂倩, 1084 전후)의 ≪樂府詩集》 29 상화가사(相和歌辭) 4를 보아도 吟歎曲 진(晉)나라 西崇의 〈왕소군〉을 비롯하여 29수의 왕소군 시가 있고, 그밖에도 明君詞·昭君詞·昭君歎 등 왕소군을 주제로 한 시가 많다. 소군은 또 明君·明妃라고도 불리웠다. 이 책의 권말에도 <明妃曲〉이 들어 있다.

이 시는 소군이 胡地로 눈물을 흘리며 떠나가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漢의 元帝도 왕소군을 사랑하면서도 흉노의 위협에 못 이기어 떠나가는 소군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까지도 한궁(漢宮)의 사람이더니 내일 아침이면 호지(胡地)의 선우(單于)의 첩이 되는가'하고 읊은 시인의 마음에는 외세를 배격하고 강한 조국을 간직하고픈 진정이 스며 있다. 한나라 이후에도 호인(胡人)들의 위협은 내내 가시지 않았다.

왕소군이 호지로 가서는 절개를 지키다 죽었는데, 그 무덤은 1년 내내 푸르렀다 한다. 그래서 그의 무덤을 靑塚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존심이 강한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전설에 불과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