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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寄崔孤竹 본문

漢詩와 漢文/韓國漢詩100선

16.寄崔孤竹

耽古樓主 2024. 1. 22. 02:42

 

1. 原文

相看脈脈贈幽蘭, 此去天涯幾日遲.
莫唱咸關舊時曲, 至今雲雨暗靑山.

 

 

2. 譯註

寄崔孤竹(기최고죽) : 최고죽에게 부침. 孤竹은 최경창(崔慶昌;1539~1583)의 호. 그가 함경도에서 벼슬을 살 때 홍낭이 그의 막하에 있었다.
相看脈脈贈幽蘭(상간맥맥증유란) : 서로 마주보다 향기 그윽한 난초를 드린다. 幽蘭을 직역하면 (여인의) 검은 난초.
此去天涯幾日遲(차거천애기일지) : 이번에 하늘 끝 멀리 가면 또 몇 해나 늦을 것인가?
莫唱咸關舊時曲(막창함관구시곡) : 함관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말라. 咸關은 고개 이름. 지난날 홍낭은 최고죽을 이별하고 오다가 여기서 이별의 시조를 읊었고, 최고죽은 이를 한역한 바 있다.
至今雲雨暗靑山(지금운우암청산) : 지금은 구름 비에 청산이 어둡다. 雲雨는 남녀의 정사라는 뜻도 있다.

 

3. 作者

洪娘 : 조선 선조 때의 기녀. 「묏버들 가려 꺾어」라는 시조가 있다.

孤竹 崔慶昌은 三唐詩人으로 詩名이 잘 알려져 있으며, 관북 洪原 官妓였던 洪娘과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하다. 洪娘은 조선시대 妓女의 신분으로 士大夫家의 族譜에 그 이름을 올리고 해주 최씨 門中의 선산에 묻혀 해마다 시월에 時祭를 받는 분이다.


崔慶昌이 함경도 北道評事가 되어서 鏡城에 부임했을 때, 시문을 좋아하고 특히 최경창 본인의 시문을 좋아하는 관기인 洪娘을 만나게 되었다.
詩文을 통한 交感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동거하던 중 崔慶昌이 임기가 끝나 한양으로 떠나게 되자, 홍랑은 지금의 永興까지 나아가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에 咸關嶺에서 우리 국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연애 시의 하나로 꼽히는 '묏버들 ᄀᆞᆯᄒᆡ 것거…'라는 시를 지었다.


한양의 최경창이 병이 들었다는 소문을 들은 홍랑은 양계의 ‘兩界의 禁’( 조선시대에 함경도·평안도 주민은 관의 허락 없이 거주지 이탈을 금하는 법률)을 어겨가면서 한양으로 와서 최경창을 지극히 간호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고죽은 파직되고 홍랑은 한양에서 추방되었다.


고죽이 죽자 홍랑은 侍墓살이를 하였는데 정절을 지키기 위해 고운 얼굴까지 훼손하였다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랑은 고죽의 遺稿를 잘 지켜서 훗날 최씨 가문에 전하여 고죽의 유고가 후세에 전해지도록 하였으며, 홍랑이 죽자 최씨 가문에서는 최경창의 묘소 아래에 장사 지냈다.
지금도 파주의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아래에 홍랑의 묘가 있으며, 묘에는 詩人洪娘之墓라는 비석과 고죽시비 홍랑비가 등이 있다.
 
<홍랑의 시조 묏버들가 원문>
묏버들 ᄀᆞᆯᄒᆡ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ᄃᆡ
자시난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ᄃᆞᆫ 나린가도 너기쇼셔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 줄 여기소서)

이 시조를 받은 최경창은 이를 漢詩로 번역하였다.


翻方曲(번방곡)
 折楊柳寄與千里 절양류기여천리
버들가지 꺾어서 천리를 부치오니
人爲試向庭前種 인위시향정전종
뜰 앞에 심어둔 곳 향해 살펴보소서
須知一夜生新葉 수지일야생신엽
어느 날 밤 새 잎 난 것을 아시면
憔悴愁眉是妾身 초췌수미시첩신
수심찬 눈썹처럼 초췌한 건 소첩이에요

아래 贈別시 두 수는 최경창이 홍랑과 이별하며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贈別1
玉頰雙啼出鳳城 옥협쌍제출봉성
봉성 나설 때 예쁜 뺨에 두 줄기 눈물 흐르니
曉鶯千囀爲離情 효앵천전위리정
꾀꼬리도 이별의 뜻을 알고 천 번을 지저귀네
羅衫寶馬河關路 나삼보마하관로
나삼에 좋은 말 타고 하관으로 가는 길에
草色迢迢送獨行 초색초초송독행
외로이 보내 가는 길에 풀빛만 아득하네
 
贈別2(
寄崔孤竹)
相看脉脉贈幽蘭 상간맥맥증유란
물끄러미 바라보며 유란곡을 들려주니
此去天涯幾日還 차거천애기일환
지금 하늘 끝으로 가면 언제 돌아올까
莫唱咸關舊時曲 막창함관구시곡
함관령의 옛 이별곡은 부르지 마오
至今雲雨暗靑山 지금운우암청산
지금은 비구름에 청산도 어둡다오
 幽蘭曲 : 幽蘭白雪曲의 준말로, 전국 시대 초나라 宋玉이 지었으며, 陽春曲과 함께 초나라의 2대 명곡으로 꼽힌다. 너무 어렵고 고상하여 아무나 唱和하지 못했다 한다. 전하여 상대방의 시문을 높여서 이르는 말이다.

白苧辭(백저사) 흰모시옷의 노래
憶在長安日 억재장안일
장안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新裁白紵裙 신재백저군
흰모시 치마를 새로 지었지요.
別來那忍着 별래나인착
헤어져 와서 어찌 입을 수 있을까
歌舞不同君 가무불동군
노래와 춤을 임과 함께 못하는데

 

白苧辭(백저사)는 흰모시옷의 노래로 해석되는데 원래는 중국 고대의 시가(詩歌)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였다. 이후 백저사는 통상 사랑가로 해석된다.

이 시는 최경창이 홍랑의 심사를 대변하여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우회적으로 대신 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출처: https://yjongha.tistory.com/158?category=1148277 [벼이삭처럼....:티스토리]

 

참조: 홍랑에 관하여

 

 

조선시대 여류시인들 시와 사랑-홍랑

본지는 이번 호부터 홍용암선생의 '조선시대 여류시인들의 시와 사랑'이란 연재 글을 싣는다. 이 책은 조선반도의 마지막 왕조인 이씨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그 先王朝인 왕건이 세운 고려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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