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확(安廓)
1884~?. 국학자. 호 자산(山). 서울 생. 일본의 니혼(日本) 대학 졸업.
「청년연합회잡지」, 「신천지」등의 잡지사 주간 역임.
저서에 「조선문학사」, 「수정 조선문법」,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시조시학(時調詩學)」, 「조선문명사」등이 있음.
1
세종대왕이 언문을 흠정(欽定)할 때에 각국은 다 문자를 제(制)하여 자국의 언어를 기술하되 홀로 아국은 없다 하여 드디어 28자를 제하였다. 이 제자의 대지(大旨)는 즉 자방(自邦)을 위본(爲本)한 정신이니 삼국시대에 우륵이 가야금을 작(作)함도 역시 그 정신에서 출한 것이다.
초에 가야국 가실왕(嘉悉王)이 써 하되 “제국은 방언이 각이(各異)하니 성음(聲音)이 어찌 동일할 수 있으랴” 하고 이에 악사 우륵을 명하여 독특의 음악을 제정케 하였다. 우륵은 성렬현(省熱縣)의 사람으로 가·무·악의 3술을 겸전한 천재의 음악가라. 가야금을 제작하고, 겸하여 12곡을 신작 (新作)하니 그 기(器)와 그 음이 전고(古)에 무비(無比)함으로써 인하여 그의 성명(名)이 천하에 저(著)한지라. 그때 가야국이 신라에 병합되더니 신라의 진흥왕이 우륵의 명예를 입문(入聞)하고 우륵과 그 제자 이문(尼文)과 함께 징소(徵召)하여 그 악을 하림궁에서 흥행하였다. 흥행을 개연(開演)함에 이르러 그 조(調)가 유량1)하여 실로 국보가 될 만한지라.
▶유량: 음색이 거침없고 똑똑함.
왕이 다시 그것을 장려하여 널리 국내에 전코자 할새, 특히 계고(階古)·법지(法知)·만덕(萬德) 등 3인을 택하여 그 업(業)을 수득(修得)케 하였다.
우륵이 3인의 재능을 양(量)하여 계고에게는 악기를 교(敎)하고 법지에게는 성악을 교하며, 또 만덕에게는 무법(舞法)을 전한지라. 그러나, 가(歌)와 무(舞)는 특수로 하고 기악은 일반으로 습(習)케 하더니 3인이 학(學)을 성(成)한 후에 상의하되, 곡조가 번음(繁淫)하여 가히 고아(高雅)하다 하기 불능이라 하고 11곡을 개(改)하여 5곡으로 약제(約制)한지라. 우륵이 그 변작(變作)함을 怒하더니 급기야 시청(試聽)하여서는 탄 왈, 낙이불류(樂而不流)하고 애이불비(哀而不悲)하니 가위 정(正)이라 하여 그것을 도리어 찬성하였다. 상(想)컨대 우륵의 본제(本制)는 그 본국(本國)을 회고한 바의 과도한 표정을 현(現)한 것이러니 3인은 그를 존절하여 낙(樂)과 애(哀)를 절충한 것인 듯하다.
▶존절:아껴서 알맞게 함.
왕이 이 곡을 기념하여서 대악(大樂)에 편입하니 그 후로는 가야금이 크게 전파될새 거기 반(伴)한 곡조는 하림조(河臨調), 눈죽조(嫩竹調)의 2조로 모두 185곡이 유행하였다. 우륵의 작곡 명칭은 다음과 같다.
우륵의 12곡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 상기물(上奇物)
그 제자 이문의 작곡은 오(烏), 서(鼠), 순(鶉) 등의 3곡이더니라. 그 곡조는 때를 월(越)하여 후세에 전함이 없으나 가야금은 금일에 이르도록 성행하였다.
2
가야금의 구조로 말하면 그 형이 평범하나 그 음계는 가장 과학적으로 조직한지라. 장(長) 1척 5촌, 광(廣) 1척 되는 공판(空板)에 현(弦) 12를 장(張)하니 이 12현은 1년의 시기 12월을 상(象)하고, 동시에 12율, 즉 12음계를 평면으로 장설(張設)한 것인바, 그 음계는 금일의 풍금이나 피아노와 동일하다.
각 음간의 음정 | 0.57 | 0.45 | 0.57 | 0.45 | 0.57 | 0.45 | 0.45 | 0.57 | 0.45 | 0.57 | 0.45 | 0.45 | |
황종의 음정 | 0 | 0.57 | 1.02 | 1.59 | 2.04 | 2.61 | 3.06 | 3.51 | 4.08 | 4.53 | 5.10 | 5.55 | 6.00 |
12 율 | 黄 | 大 | 太 | 夾 | 姑 | 仲 | 蕤 | 林 | 夷 | 南 | 無 | 應 | 黄 |
이 12율은 일정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 음 자신의 명칭이니, 그 황종음(黃鐘音)이 최저하고 차례로 고(高)하여 응종음(應鐘音)이 최고한 것이다. 이를 고대의 수리로 말하면 3분손익(三分損益)이라는 공식법으로 계산하니 12월의 주체인 천(天)의 수를 3으로 정하고, 기본음 즉 황종음을 천수(天數) 3에 11방승(方乘)한 것으로써 정하니 그 11방승은 즉 황종 이외 11율에 응한 수이다.
황종 311=177147
대려 124416(蕤)+(124416÷3)=165888
태주 118098(林)+(118098÷3)=157464
협종 110592(夷)+(110592÷3)=147456
고선 104976(南)+(104976÷3)=139968
중려 98404(無)+(98404÷3)=131205
유빈 93312(應)+(93312-3)=124416
임종 177147(黄)-(177147÷3)=118098
이측 165888(大)-(165888÷3)=110592
남려 157464(太)-(157464÷3)=104976
무역 147456(夾)-(147456÷3)=98304
응종 139968(姑)-(139968÷3)=93312
이 12율을 금일 양악의 계산법으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C | 황종(黃鐘)·11월 |
영변(嬰變) | 대려(大呂).12월 |
D | 태주(太簇)·1월 |
영변 | 협종(夾鐘)·2월 |
E | 고선(姑洗)·3월 |
F | 중려(仲呂)·4월 |
영변 | 유빈(蕤賓)·5월 |
G | 임종(林鍾).6월 |
영변 | 이측(夷則)·7월 |
A | 남려(南呂).8월 |
영변 | 무역(無射)·9월 |
B | 응종(應鐘)·10월 |
이럼으로써 12율의 비(比)와 치値)는 금일 양악과 동(同)함을 알 것이다. 이렇듯 과학적으로 악기를 창조한 것은 실로 우륵이 아니면 불능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 대체의 이치는 중국 악기를 참작한 것이라 할지나 그 이치를 가장 평이하고 또 조선인의 예술상 표현방법에 가장 적합하도록 한 것은 우륵의 천재를 빌지 않고는 불능했을 것이다.
3
우륵의 사상으로 말하면 향국(鄕國)의 명도(命途)를 실(失)한 인(人)이다. 고로 발(髮)을 초(焦)하고 한(恨)을 소(訴)하는 慷慨의 심(心)이 언외(言外)에 창일(張溢)하여 그 12종의 작곡상에도 그 비애의 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인격으로 말하면 성역에 달함을 추측키 가하다.
그 제자에 입설(立雪)의 성(誠)을 시(試)하여 진심으로 그 업을 전수하였거늘 그 제자가 업을 이룬 후에 되돌아서 선생의 작곡을 비(非)라 하여 개찬(改竄)한 것은 실로 師弟의 道가 아니다.
▶입설(立雪):눈이 오는데 서 있음. 제자가 스승을 극진히 존중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정문입설(程門立雪).
그러나 선생은 初에 그것을 怒하였으나, 예술 그 物에 醉하여 자기보다 우월감을 각(覺)하여도 심(心)을 인하여 그것을 칭찬하였나니, 이것이 성심(聖心)이 아니곤 불능이라, 승기자(勝己者)를 염지(厭之)함은 보통의 인정이거늘, 우륵같이 그 제자의 반도적(反道的) 태도를 취함에 대하여 도리어 찬송을 표할 자가 어디 있으랴.
우륵의 이 심법이 제일 보통인정에 초월함을 알 것이다.
그의 제작한 악기로 말하여도 조선인의 정신으로 된 것 또는 조선인의 사용에 적합하게 된 것이라. 고로 후세 음악계에서는 가야금을 주체로 사용할 때 일반 악곡은 물론이요, 흥부가·춘향가 같은 가극을 다 이로써 주(奏)하게 되니 재래 사용한 악기의 수는 백여 종에 달하나 그중에 표정이 선미(善美)하여 능히 가극에 반주하는 것은 일물(一物)도 없이 오직 가야금뿐이다. 가야금은 음악상의 일대 중보(重寶)를 어루니 요컨대 중보의 언문을 창작한 세종을 문(文)의 성(聖)이라 하면 우륵은 악(樂)의 성(聖)이라 할진저.
부설(附說)
내 노자(魯者)에 고서(古書)를 강토(講討)하다가 「화해사전(華海師全)」이란 책을 고람(考覧)하니 거기 우륵에 관한 일화 일칙(一則)이 있기로 참고를 위하여 아래에 그를 부(附)하노라.
그 제자 법지와 만덕이 우륵에게 학업할 때에 인(隣)을 접하여 거하더니 2인의 처가 동시에 잉태한지라. 급기야 해산하여서는 만덕이 딸을 낳아 명을 苾蘭이라 하고, 법지는 아들을 낳아 명을 시열(時烈)이라 하였다. 2인이 의로써 서로 월하(月下)의 예혼(豫婚)을 약정하였더니 시열이 불행히 백맹아(白盲啞)가 되며 또 부모를 조상(早喪)하여 비가(婢家)에 길러졌다. 만덕이 그를 피하여 우륵의 아들 인래로써 여서(女婚)를 삼으려 한지라 필란이 부명(父命)에 대하여 호읍(呼泣)하며 굳이 그를 거절하여 말하되,
“인(人)의 유신(有信)은 물(物)의 유토(有土)와 같을 뿐더러 우랑(于郎)은 유재유철(有才有哲)하여 타(他)에 요(要)하기 어렵지 않고 법랑(法郎)은 병신이라 만약 이를 저버리면 피(彼)가 어찌 유실(有室)하리오.”
하나 부는 기어이 불청하고 강혼을 행코자 하는지라, 필란이 이에 최후의 결심을 정하고 바늘로써 제 얼굴을 난자하여 묵(墨)을 도(塗)하며 또 발(髮)과 비(鼻)를 단절하여 사(死)로써 맹서하니 부가 탄식하기 마지 않고 부득이 시열에게 우귀(于歸)하였다. 필란이 성례한 후에 주야로 천신(天神)에 기도하여 그 부(夫)의 완인(完人)됨을 축원하더니 성(誠)을 극(極)하기 7년에 하루는 靈夢이 있어 신인(神人)이 내(來) 왈,
“황천(皇天)이 너의 정성을 가상하여 이 약을 하사하시니 부(夫)에게 시(施)하여 보라.”
하는지라, 깨어 보니 과연 약물이 그 측(側)에 있는지라. 기이히 여겨 그 부에 복(服)케 하였더니 일순(一旬)에 이르러 홀연 목(目)이 명(明)하고 어(語)를 해(解)하매 국인이 감동하여 그 덕을 송(頌)치 않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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