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11曲類-1明妃曲 其一(명비곡 기일)

구글서생 2024. 2. 26. 05:24

古文眞寶(고문진보)

  명비곡 제1수(明妃曲 其一)-왕안석(王安石)

▶ 明妃曲 明妃의 노래.

明妃는 王昭君이라 칭해진 漢 元帝 때의 궁녀로서이름은 이며 昭君은 이다나라 文帝 司馬昭의 이름을 하여 明君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元帝는 후궁이 하도 많아 항상 볼 수가 없으매화공인 毛延壽를 시켜 후궁들의 얼굴을 그리게 하고 그림을 보고서 불러 총애하니궁녀들이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주니많게는 십만 금이었고 적어도 오만 금에 밑돌지 않았다王嬙은 자신의 빼어난 용모를 믿고 홀로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元帝 竟寧 元年(B.C. 33), 匈奴王 呼韓邪에게 시집보낼 궁녀를 뽑을 때소군이 그림에 의거하여 시집가게 되었다들어가 황제를 하직할 적에 용모가 아름다워 광채가 좌우를 놀라게 하니天子는 외국과의 신의를 중하게 여겨 후회하고 한스러워하였으나 미칠 수가 없었다이 일을 끝까지 규명하여 모연수는 마침내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 버려졌다[西京雜記2].

後漢書南匈奴傳에는 왕소군이 흉노에 가기를 自願하였다고 한다.
臨川先生文集》 4에 실려 있는데 題下의 에 일렀다.

漢 元帝가 王昭君을 흉노에 시집보내니寧胡閼氏라 칭하였다왕소군이 나라의 은혜를 그리워하여 마침내 비파를 타 그 을 노래하니이것을 昭君怨이라 부른다이후로 시인들이 이를 소재로 시를 지어 애처로워했다.”

 

明妃初出漢宮時, 淚濕春風鬢脚垂.
王昭君이 처음 漢나라 궁전 나설 때, 눈물은 봄바람에 젖고 머리끝은 늘어졌네.
鬢脚 : 머리털 끝쪽.

低回顧影無顏色, 尚得君王不自持.
발을 떼어놓지 못하며 그림자 돌아보는 얼굴빛 어두웠으나, 그래도 임금을 어쩔 줄 모르게 할 수 있었네.
低回 : 차마 떠나지 못하는 모양. 서성이는 것.
無顔色 : 얼굴빛이 없다. 얼굴빛이 어둡다. 얼굴이 死色이다.
不自持 :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다. 어쩔 줄을 모르다.

歸來却怪丹靑手, 入眼平生未曾有.
돌아와서 화공의 솜씨 괴이하게 여겼으니, 눈에 드는 여인을 (그림에서)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네.
丹靑手 : 화공. 화공의 솜씨.
入眼 : 눈에 듦. 눈에 드는 미인.

意態由來畫不成, 當年枉殺毛延壽.
마음의 모습은 본디 그리되 이루지 못하는 법이니, 그때 毛延壽를 공연히 죽여 버렸도다.
毛延壽 : 원제의 명으로 미인들 초상화를 그렸던 화공 이름서경잡기. 원제는 왕소군을 본 뒤 화공이 그림을 잘못 그렸다 하여 그를 죽였다 한다.

一去心知更不歸, 可憐著盡漢宮衣.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마음속에 알고 있었으니, 가련하게도 漢의 宮衣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입었다네.
著盡 : 다하도록 입다. 宮衣를 입을 수 있는 대로 입었다는 뜻일 것이다.
氈城 : 담요[毛氈]를 쳐서 만든 장막의 성. 곧 몽고 사람들이 사는 곳.

寄聲欲問塞南事, 只有年年鴻雁飛.
소식 전하여 국경 남쪽의 일 묻고자 해도 오직 해마다 기러기만 날아가네.

佳人萬里傳消息, 好在氈城莫相憶.
佳人이여, 만 리 밖 소식 전하나니, 흉노 성안에 잘 지내며 고향 땅 생각 말게나.

君不見
咫尺長門閉阿嬌? 人生失意無南北.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지척에 있는 長門宮에 阿嬌를 가두어 놓았음을? 사람이 살며 뜻을 잃으면 남북도 없는 법이지.
咫尺 : 아주 가까운 거리.
長門閉阿嬌 : 長門漢代宮殿 이름인데, 孝武皇帝陳皇后가 거처하였다. 진황후는 小字阿嬌인데 아들을 낳지 못하여 총애를 잃고 쓸쓸하게 장문궁에 거처하다가 司馬相如를 통해 문장으로 武帝를 깨우쳐 다시 총애를 받았다. 이후로 총애를 잃고 쓸쓸하게 거처하는 여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武帝가 어려서 누구에게 장가들고 싶느냐고 묻자, 阿嬌를 가리키며 만약 阿嬌를 아내로 삼으면 金屋을 지어 살게 하겠다.”라고 하였다.漢武故事

 

 

 

 해설


왕소군의 얘기를 비극화하여 노래한 王安石(1021~1086)의 이 〈明妃曲〉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宋나라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이에 和作하였다.
후세에는 元대 馬致遠의 〈漢宮秋〉를 비롯하여 이를 주제로 한 여러 가지 희곡·소설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