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11曲類-2明妃曲 其二(명비곡 기이)

구글서생 2024. 2. 26. 05:25

古文眞寶(고문진보)

명비곡 제2수(明妃曲 其二)-왕안석(王安石)

▶ 明妃曲 이 두 번째 명비곡은 앞의 것보다 더 王昭君이 漢宮을 떠날 때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明妃出嫁與胡兒, 氈車百兩皆胡姬, 含情欲語獨無處, 傳與琵琶心自知.
明妃가 單于에게 시집갈 때, 氈車 100량에는 모두 胡姬이어서, 품은 감정 말하고자 해도 홀로 상대할 곳이 없으매, 비파에 마음을 전하며 자기만 알고 있었네.
氈車 : 담요로 수레 포장을 친 匈奴의 수레.
傳與琵琶 : 비파의 에 자기의 정과 마음을 전하여 연주함. 이때 왕소군이 탔다는 곡으로 昭君怨이 전한다.

黃金捍撥春風手, 彈看飛鴻勸胡酒, 漢宮侍女暗垂淚, 沙上行人却回首.
황금 줄채 쥐고 봄바람 일게 하는 손으로 비파를 타고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선우에게 오랑캐 술 권하니, 漢宮의 시녀들은 남몰래 눈물 떨구고, 모래밭 가는 행인들도 머리를 돌렸네.
擇撥(한발) : 비파 줄을 뜯을 때 쓰는 줄채.
春風手 : 봄바람을 일으키듯 움직이는 손.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

漢恩自淺胡自深, 人生樂在相知心.
한나라의 은혜가 얕았으니 오랑캐의 은혜 자연히 깊을 터이니, 인생의 즐거움 서로 마음을 알아줌에 있음을 어이하랴?
人生樂在相知心 : 선우가 죽자 아들 이 즉위하였는데, 昭君이 달에게 이르기를 너는 장차 나라를 위할 것인가? 장차 오랑캐를 위할 것인가?” 하니, “오랑캐를 위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소군이 독약을 먹고 죽으니, 온 나라가 슬퍼하고 장례하였다.


可憐青冢已蕪沒, 尚有哀絃留至今.
가련하게도 青冢은 이미 풀이 우거져 묻혀 버렸으나, 그런데도 비파의 슬픈 가락은 지금까지 남아 있네.
靑冢 : 왕소군의 묘.

현재 내몽고 자치구 呼和浩特市 남쪽 20리 지역에 있다. 明一統志20왕소군의 묘는 옛 豐州 서쪽 60리 지점에 있다. 흉노 땅은 흰색의 풀이 많은데, 이 무덤만이 푸르렀으므로 靑冢이라 하였다.[在古豐州西六十里 地多白草 此冢獨靑 故名靑冢]”라고 하였다. 後漢書≫ 〈南匈奴傳호한야 선우가 죽자 소군이 한나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상서하였으나, 성제는 오랑캐의 풍속을 따랐다고 하여 허락하지 않으니, 소군이 마침내 흉노에서 죽었다.[呼韓邪鮮于死 昭君曾上書求歸 成帝令從胡俗 不許 昭君終死於匈奴]”라고 하였다.

蕪沒 : 풀이 우거져 묻혀 버리다.

 

 

 해설


이 시는 王昭君이 漢나라를 떠날 때의 슬픈 모습을 노래하다가, ‘사람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제일이다그의 비파 가락은 아직도 남아 전한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운을 세 가지나 바꿔 쓰고 있음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