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1.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

耽古樓主 2023. 1. 14. 14:35

1.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

  • 계선편은 명심보감의 첫번째 편이다.
  • 繼善(선을 잇는다)이란 말은 아마도 사람은 착한 본성을 타고난다는 맹자의 性善說을 전제로 한 듯하다.
  • 즉 사람은 날 때부터 선한 본성이 있으며 이러한 본성을 교육을 통해서 악에 물들이지 않고 계속 지켜가자는 뜻에서 지은 篇名처럼 느껴진다.
  • 大學의 첫머리에서도 “대학의 도는 밝게 타고난 덕(善)을 더 밝히는 데 있다”(大學之道,在明明德)라고 하였으니, 선한 본성을 이어간다는 것은 배움의 첫 목표로서 명심보감의 첫 번째 편을 이룰 만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편에서는 善惡에 관한 글귀들이 수록되어 있다.

 

<1>

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준다."

: 남자에 대한 通稱이다. 특히 라고만 할 때는 주지하다시피 孔子를 지칭한다.
한문의 경우, 댓구를 이루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도 不善, 의 대비로 두 문장이 댓구를 이룬다.
: 타동사로 “~을 하다. ~을 행하다의 뜻.
~~: ‘~하는 사람, ~하는 것.’ 문장 내에서 다른 말 뒤에 붙어서 명사구를 형성하여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따라서 끊어 읽는 구두점이 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爲善者가 명사구로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하면의 의미의 條件節로 보면 문장 해석이 매끄럽게 된다. 따라서 원문을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그에게복으로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하늘이 그에게재앙으로 갚는다.”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 갚을 보. 報恩, 報復, 報答
: 夫子의 줄임말로 스승을 높일 때 쓰인다. 여기서는 공자(B.C.551~B.C.479)를 높여 부른 것이다. ‘를 접미사로 써서 활용해온 예를 든다면 공자는 물론이고, 老子·莊子·程子·朱子의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접미어로 써서 존칭하는 것이 부족하였던지, 子程子의 경우처럼 의 앞에도 붙여 존칭의 의미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에 붙여 높임말을 만드는 접미어인데, 요즈음 동양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선배의 를 붙여 호칭하는 재미있는 일도 있다.
여기서 孔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그는 중국 春秋時代 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 仲尼이다. 아버지 叔梁紇과 어머니 顔徵在의 슬하에서 나라 靈王 21(B.C.551)에 태어났다. 노나라에 벼슬하여 司空이 되고, 뒤에 大司寇에 올라 정치를 잘했으나, 나중에는 소외되어 노나라를 떠나 13년 동안 70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자기의 이상을 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68세 때 노나라로 돌아와 詩書를 바로잡고 禮樂을 정하고 春秋를 짓는 한편, 후진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가 3천여 명에 이르렀고 六藝(·····)에 정통한 제자만도 72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을 인간의 최고 이상으로 삼고, 그 바탕을 孝悌忠恕에 두었다. 敬王 41(B.C.479)74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라 때 文宣王이라 追諡하고, 나라 때 至聖文宣王, 나라 때는 大成至聖文宣王이라 하고, 나라 때 다시 至聖先師라 고쳤다. 나라 順治 2(1645)에 비로소 文廟를 세우고 시호를 大成至聖文宣先師孔子라 했다가, 14년에 또다시 至聖先師孔子로 고쳤다.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 論語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의 成均館 大成殿을 비롯하여 각지의 鄕校에서 그를 祭享해 왔다.
의 쓰임새에 대해서...

는 술어로는 “~에 가다” (갈 지)의 뜻이다.
어조사로는 우리말의 관형격 조사인 “~의 뜻이 있다.
어조사로서 또 하나의 쓰임새는 목적어·지시대명사로서의 를 들 수 있다.
한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가 바로 이 이지만 다소 그 쓰임새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흔히 를 목적어·지시대명사로 보아 이것을,” “그것을등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만으로는 의 쓰임새를 온전히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만약 가 목적어·지시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려면, 앞에는 반드시 타동사가 와야 할 것이며, 또한 대명사로서 가 받는 목적어가 문장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는 타동사는 물론이고, 자동사 뒤에도 붙어서 두루 쓰이는 글자이며, 또한 문장내에 대명사로서 가 받는 목적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 를 목적어·지시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서는 의 쓰임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誤譯의 가능성도 상당히 많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어조사라는 다소 애매한 명칭으로 이 자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는 목적어·지시대명사라기보다는 문장의 語感이나, 語氣, 語勢 등을 위해서 더 많이 쓰인 글자이다.
, 자는 무엇을 지칭하기 위한 대명사라기보다는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고, 語調를 고르기 위한 글자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자는 , 등과 같이 그 指示性이 강한 글자가 아니며, 다만 문장의 안정감과 어조 등을 위해서 붙여준 글자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말로 이것을, 그것을이라고 하여 지시대명사로 번역될 성격의 글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 선조들께서 옮겨 놓은 각종 諺解本 등을 살펴보면 자를 이것을,그것을이라고 해석한 경우가 절대로 없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자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전]
1) 孔子家語》〈20.在厄第二十)에 보인다.
공자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의 국경사이에서 곤경을 치를 때를 기록한 것으로 자로와 공자의 대화이다.
乃召子路而問焉
「《:『匪兕匪虎率彼曠野。』
吾道非乎
奚為至於此?」
(공자가) 이에 자로를 불러 물었다.
“<>에 이르기를, ‘들소도 아니고 범도 아니면서, 저 먼 들판을 쫓아다니네라고 하였는데, 나의 도가 그릇된 것인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子路慍作色而對曰
君子無所困意者夫子未仁與
人之弗吾信也
意者夫子未智與
人之弗吾行也
且由也昔者聞諸夫子
為善者天報之以福為不善者天報之以禍。』
今夫子積德懷義行之久矣奚居之窮也?」
자로는 성을 내면서, 얼굴색을 짓더니 이렇게 대꾸하였다.
"군자는 곤궁한 일이 없다고 하시더니, 생각해 보건대, 선생님께서 아직 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인가요?
남들이 우리를 믿어 주지 않습니다.
또 생각해 보건대, 선생님께서 아직 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인가요?
남들이 우리의 갈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가 옛날 선생님께서 듣기를,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보상해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아 준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서는 덕을 쌓으시고 의를 품으신 채, 실천하신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이런 곤궁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子曰
由未之識也
吾語汝
汝以仁者為必信也則伯夷·叔齊不餓死首陽
汝以智者為必用也則王子比干不見剖心
汝以忠者為必報也則關龍逢不見刑
汝以諫者為必聽也則伍子胥不見殺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 아직 모르는 것이 있구나!
내가 너에게 말해 주리라.
네 말대로 어진 자라고 하여 반드시 남이 믿어 준다면, 伯夷叔齊首陽山에서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며,
네 말대로 지혜로운 자라고 해서 반드시 남에게 쓰인다면, 왕자 比干이 심장이 갈라지는 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며,
네 말대로 충성스럽다고 해서 반드시 보답이 있다고 한다면, 關龍逢이 형벌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네 말대로 간언한다고 해서 반드시 임금이 반드시 들어 준다면, 伍子胥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터이다"
2) 書經》〈商書伊訓에 다음의 글이 보인다.
惟上帝不常 作善降之百祥 作不善降之百殃

<2>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한나라의 소열황제가 죽으려 함에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서 말하였다.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하지 말고,
악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

昭烈: 蜀漢劉備가 황제가 된 후의 칭호이다.
: “장차 장으로 미래 시제를 나타낸다. 將次, 將來.
: “마칠 종으로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臨終.
: ‘操飭하다는 의미로, 경계하여 타이른다는 뜻이다.
또는 詔勅을 내린다는 의미도 있으므로, 여기서는 두 가지로 모두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술어+사람+~’의 구문은 잘 쓰이는 관용구이니 알아둘 필요가 있다.
後主: 글자 의미로는 다음 임금을 뜻한다. 여기서는 유비의 아들을 의미한다.
: 접속사로서 그리고, 그래서’, 또는 그러나의 뉘앙스를 갖는, 전후 관계를 順接이나 逆接하는 허사이다. 그런데 때로는 대명사 의 의미로도 쓰인다.
勿以善小而不爲,勿以惡小而爲之: 이 문장 역시 댓구문을 이룬다.
특히 글자수까지도 대칭을 이루게 하여 마지막 줄에 不爲之라 하지 않았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알아둘 점은 일반적으로 어조사 +술어+의 형태로는 대체로 쓰이지 않는다(쓰이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쓰이지 않음).
+술어+의 구문은 語勢가 좋지 못하고 語調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한 어감을 주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를 쓰지 않는 것이다.
: 주로 명사()의 앞 또는 뒤에 붙어서 “~로서의 뜻이 된다.
다만, 뒤에 명사절을 받으면 이유를 나타낸다. , “~하여서, ~이기 때문에의 뜻이 된다. 이 문장에서도 惡小라는 명사절을 받아, “악이 적다는 이유로~, 악이 적기 때문에의 뜻이 된다.
: 금지사로 주로 문장 앞에 쓰인다.
즉 우리말로는 爲之에 걸리지만, 한문에서는 을 맨 앞으로 돌린다.
勿以~~: 구문은 마치 영어의 “not~because~”구문과 같다. , “~하다고 해서 ~하지 않는다의 뜻이다.
[출전]
본문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1) 三國志》 〈蜀志 先主劉備傳에는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2) 小學》 〈嘉言勿以善小而爲之 勿以惡小而不爲로 되어 있다.

<3>

莊子曰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
장자가 말하였다.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저절로 일어난다."

2.3 2.3으로 끊어 읽는다.
: “~을 생각하다
: 모두 제. 주로 명사 앞에 붙어서 한정어로 쓰인다. 諸君, 諸國.
: 모두 개. 주로 주격 대명사로 쓰인다.
莊子: 중국 전국시대에 활약한 道家의 한 사람이다. 道德經을 쓴 老子莊子를 쓴 장자의 사상을 우리는 老莊思想 또는 老莊哲學이라고 부르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이 장자이다.
중국 고대의 철학은 儒家·墨家·道家·法家4대 주류로 전개되었는데, 그중 노자와 장자의 철학은 無爲自然,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고 자연에 맡기는 것을 표방하여 유가나 묵가나 법가와 같이 亂世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차라리 소극적인 자세로 억지로 꿰맞추는 인위를 버려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해설]
이 글은 장자에 보이지 않는다. 명심보감莊子曰이라 수록된 글들은 모두 장자에 보이지 않으니, 작자가 어디에 근거하여 채록한 것인지 알 수 없다.

<4>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이 말하였다.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른 듯이 하고,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말하였다.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 목마를 갈. 渴症, 渴望.
: 귀머거리 롱. 聾啞.
: 모름지기 수. “모름지기 ~해야 한다의 뜻.
:
자전적 의미로 더 없을’, ‘더 이상 없을의 의미를 갖는다.
부사로 ‘~하지 마라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動詞性 語調를 갖는 금지사이다. 본문의 에 해당한다. ) “君有急病見於面 莫多飮酒: 그대는 급한 병이 얼굴에 나타나 있으니, 술을 많이 마시지 마라.”三國志》〈魏志 方技傳
더 이상 없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의 代詞이다. ) “過而能改 善莫大焉: 잘못을 했더라도 고칠 수 있으면, 더 이상의 이 없다.”左傳》〈宣公 二年
때로는 와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 “平長可娶妻 富人莫肯與者: 陳平이 자라서 아내를 맞을 수 있었는데, 부유한 사람들은 딸을주려는 사람이 없었다.”史記》〈陳丞相世家
한문의 어순을 술목관계라 하여 술어 다음에 목적어가 온다고 한다. 이는 한 음절의 술어와 한 음절의 목적어가 있을 때의 관계이다. 예를 들면 登山, 守節, 退社 등등의 경우가 있다. 그러나 두 음절의 목적어일 때는 이러한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 두 음절의 목적어일 때는 강조하기 위해 목적어를 술어보다 앞에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위의 문장에서도 見善, 聞惡은 술목으로 표현하였지만, 善事, 惡事는 술어 앞에다 쓰고 있다. , 목적절을 받을 때는 영어의 어순과 마찬가지로 술어+목적절의 어순이 된다.
太公 : 이고 이며, 이름은 또는 이다. B.C. 1122년 지금의 중국 山東省 태생이다. 나라 초기의 賢者渭水 가에서 낚시질하다가 文王에게 기용되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六鞱三略이 전한다.
[해설]
태공의 저술이라고 하는 六鞱三略에 보이지 않는 글이다.

<5>

馬援曰
終身行善 善猶不足
一日行惡 惡自猶餘.
마원이 말하였다.
"한평생 착한 일을 행할지라도 착한 것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만 악한 일을 행하여도 악은 스스로 남음이 있다."

馬援: 後漢때 사람.
終身: “몸을 마친다. 죽는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관용구이다. 終身刑, 終身雇用.
: 일반적으로 오히려라고 해석하는 부사이다. ‘여전히’, ‘또한’, ‘아직도등으로 해석하면 좋으며 오히려과 뜻이 일치한다.
) “今君雖終 言猶在耳: 지금 임금은 비록 죽었지만, 말은 아직도 귓가에 있다. 左傳》〈文公 七年
오히려의 의미일 때를 보자. 추론을 이끌어내고, 부사절에서는 주어 뒤에 쓰이며 주어절 곧 正句에서는 (하물며)’이나 (어찌)’과 서로 호응한다. 이때 오히려’, ‘또한이라고 해석하는데, ‘과 같다.
) “臣之壯也 猶不如人 今老矣 無能爲也已 : 내가 젊었을 때도 오히려 남만 못했는데, 지금은 늙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左傳》 〈僖公 三十年(희공 30)
의 용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와 같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鞹 猶犬羊之鞹: 과 같으며 ) 같은 것이니, 호랑이와 표범의 털 없는 가죽이 개와 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은 것이다.”論語》〈顔淵 八章
子貢問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子貢子張()子夏() 누가 낫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子張은 지나치고, 子夏는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자공이 그렇다면 子張이 낫습니까?’ 하자,
공자는 말하기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하였다.”論語》 〈先進 十五章
: 남을 여. 餘暇, 餘力.

<6>

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讀.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사마온공이 말하였다.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주어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킬 수는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주어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을 수는 없으니
남모르는 가운데 덕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교로 삼느니만 못하니라."

司馬溫公: 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1019~1086) 성은 司馬이고 이름은 , 자는 君實이며 호는 迂夫이고, 시호는 文正인데, 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흔히 온공이라고 한다.
는 명사()를 앞 또는 뒤에서 받아 “~로서의 뜻이고, 명사절 다음에 가 오면 “~하므로써의 뜻으로 굳이 우리말로 해석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다음에 명사절이 오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유를 나타내어 “~하기 때문에, ~하여서의 뜻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명사(), 명사()+“~로서의 뜻으로 자격을 나타내고,
명사절+“~하므로써, ~하여서의 뜻으로 앞 문장을 뒷 문장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명사절“~하기에, ~하므로, ~하기 때문에등등의 뜻으로 이유를 나타낸다.
: 끼칠 유, 줄 유, 남길 유.
未必: 부분 부정으로 반드시 ~하는 것은 아니다의 뜻.
: (술어)다할 진. (부사 또는 대명사)다 진. 모두 진.
여기서는 부사로 의 뜻이다.
의 뜻으로 쓰일 때 은 부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술어 앞에서 쓰인다.
, +명사: ~을 다하다. 의 뜻이고, +술어: 모두 ~하다. ~하다. 의 뜻으로 부사 또는 대명사이다.
不如~”: “~만 못하다. 하는 것만 못하다의 뜻.
不如+명사(): ~만 못하다. ~만 같지 않다.
不如+서술문: ~하는 것만 못하다.
: 어두울 명.
: 할 위, 위할 위, 될 위, ~로 삼다. ~로 여기다. ~로 생각하다. 등 주로 4가지 뜻이 있고 여기서는 의 뜻으로 쓰였다.
의 뜻으로 쓰일 때는 또한 일반적으로 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 “AB”A로서 B로 여기다. 다시 말하면, “AB로 삼다. 여기다의 뜻이다.
마지막 문장의 以爲子孫之計에서 위의 해석과는 달리 以爲를 한 단어로 보아도 된다. , 以爲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져서 “~으로 여기다, ~으로 생각하다, ~으로 삼다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以爲는 한 단어로 쓰인다.
[출전]
司馬溫公曰淸州本司馬溫公家訓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司馬光家訓으로 짐작된다.

<7>

景行錄曰
恩義廣施 人生何處不相逢
讐怨莫結 路逢狹處難回避 .
<경행록>에 말하였다.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이 문장 역시 대칭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파악하면 해석하기가 한결 쉽다. 4.4.3으로 끊어 읽는다.
恩義: 목적어이지만 강조하기 위해 술어 앞에다 쓴다. , 항상 술목관계에 따라 문장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다.
:은 부사로 쓰였다. 넓을 광.
: “~에 살다
가 붙는 말은 모두 의문문으로 해석한다. 무엇 하. 어찌 하.
: 원수 수.
: 좁을 협.
+술어~ : ~하기 어렵다.
: 피할 피.
[출전]
1) 景行錄나라 때 만들어진 책이라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2) 琵琶記十六 路逢險處難回避 事到頭來不自由: 길 가다 험한 곳을 만나면 돌아서 피하기 어려우니, 事情이란 처음부터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3) 增廣賢文에는 路逢險處須當避 事到頭來不自由: 길 가다 험한 곳을 만나면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니, 事情이란 처음부터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로 되어 있다.

<8>

莊子曰
於我善者 我亦善之,
於我惡者 我亦善之.
我旣於人無惡,
人能於我無惡哉.
장자가 말하였다.
"나에게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 내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남에게 악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없다."

가 있는 문장은 와 명사구를 이루는 문구를 찾아, 의미의 단락을 구분한다. 여기서는 於我善者가 하나의 명사구로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 여기서 술어로 쓰였다. “~을 선하게 여기다. ~을 선하게 대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는 대명사·목적어로 쓰이기보다는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고 語氣, 語勢 등을 고르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다. , 다음에 를 붙여줌으로써 을 술어가 되게 해주는 어감을 얻는 것이다.
: 일이 완성되었거나 시간이 흘러감의 의미를 포함하는 動詞性의 부사이다. ‘이미’, ‘이후에’, ‘마치다’, ‘완성했다의 의미로 쓰인다.
: 감탄형 종결 어조사. 비롯하다. 재난(災難)
[해설]
이 글은 莊子에 보이지 않는다.

<9>

東岳聖帝垂訓曰
一日行善 福雖未至 禍者遠矣,
一日行惡 禍雖未至 福者遠矣.
行善之人 如春園之草 不見其長 日有所增,
行惡之人 如磨刀之石 不見其損 日有所虧.
동악성제가 훈계를 내렸다.
하루 착한 일을 행하면 복은 비록 이르지 않으나, 화는 스스로 멀어지고,
하루 악한 일을 행하면 화는 비록 이르지 않으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에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날로 이지러지는 것과 같다.

東岳聖帝: 道敎에서 섬기는 신. 동악성제는 분명치 않으나 東嶽大帝가 있다. 북경의 동악묘에 모셔둔 泰山神으로 사람의 사후세계를 관장한다.
: (위에서 아래로) 드리울 수.
: 비록 수. 주어는 앞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 평서문의 종결형 어조사. 주로 단정, 결과, 확정 등의 뜻을 내포하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때 쓰이는 종결형 어조사이다. 도 똑같은 종결형 어조사이지만, 에는 에서와 같은 단정, 결과, 확신의 뜻이 약하고 단순히 평서문의 종결을 나타낼 뿐이다.
: 주격 또는 소유격 대명사로 쓰인다. 여기서는 春園之草를 받는 대명사이고 주격 또는 소유격으로 해석해 준다. 위에서는 주격으로 해석했다.
: 부사로 쓰였다. “날마다의 뜻.
+A: A가 있다.
: 갈 마.
: 덜 손
: 이지러질 휴.

<10>

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착한 것을 보거든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

見善如不及에서 를 붙여 見善如不及之라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술어+와 같은 구문은 대체로 語勢가 좋지 못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 것이다.
[출전]
論語》 〈季氏 十一章
孔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吾見其人矣, 吾聞其語矣.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한 것을 보면 마치 거기에 미치지 못할 듯이 열심히 노력하고,
선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마치 끓는 물에 손을 넣은 듯이 재빨리 피해야 하니,
나는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을 보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숨어 살면서 자신의 뜻을 추구하고,
의로움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도를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었고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探湯: 熱湯에 손을 넣어 본다는 뜻으로,  ①더위에 괴로워하는 模樣  ②苦生하는 模樣 또는 두려워하여 警戒하는 模樣 等譬喩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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