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越列傳은 동월의 변천사를 기록한 것이다.
東越은 東甌라고도 하며 閩越과 東甌 등 현재의 福建省과 절강성 남부에 거주하였던 越族의 일파이다. 秦 말기에서 漢 초에 민월국과 동해국이 동월로 바뀌었다.
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자, 월왕 句踐의 후손인 민월왕 無諸를 폐하고, 이곳에 郢中郡을 설치하였다.
秦 말기에 無諸가 漢에 협조하여 漢 高祖가 무제를 왕으로 삼고 東冶를 도읍으로 삼아 閩越國을 세우게 하였다.
無諸의 후손인 郢이 東甌·南越 등의 주변 국가를 침범하여 漢武帝가 군사를 동원하여 민월을 공격하자, 영의 동생 餘善이 영을 죽이고 漢에 항복하였다.
얼마 뒤 여선이 東越國을 세웠는데, 漢에서도 이를 인정하였다.
기원전 110년 동월국도 건국한 지 약 20년 만에 멸망하였다.
閩越王無諸及越東海王搖者,其先皆越王句踐之後也,姓騶氏。
閩越王 無諸와 越의 東海王 搖는 그 선조가 모두 越王 句踐의 후손으로 성은 騶氏이다.
秦已并天下,皆廢為君長,以其地為閩中郡。
秦이 천하를 합병하자 모두 왕에서 폐위되어 郡長이 되었으매, 그 땅은 閩中郡이 되었다.
及諸侯畔秦,無諸、搖率越歸鄱陽令吳芮,所謂鄱君者也,從諸侯滅秦。
제후가 秦을 배반하게 되자, 無諸와 搖는 월의 백성을 거느리고 鄱陽縣令 吳芮에게 귀순하였는데, 所謂 鄱君인 오예는 제후를 종군하여 秦을 멸망시켰다.
當是之時,項籍主命,弗王,以故不附楚。
당시 項籍이 서초패왕이 되어 제후를 호령하였는데, 무제와 요를 왕으로 봉하지 않으매 그들도 楚를 따르지 않았다.
漢擊項籍,無諸、搖率越人佐漢。
漢이 항적을 공격함에 무제와 요는 월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漢을 도왔다.
漢五年,復立無諸為閩越王,王閩中故地,都東冶。
漢 5년(기원전 202년) 無諸를 다시 閩越王으로 삼고, 閩中의 옛 땅을 다스리되 東冶를 도성으로 하였다.
孝惠三年,舉高帝時越功,曰閩君搖功多,其民便附,乃立搖為東海王,都東甌,世俗號為東甌王。
孝惠帝 3년(기원전 193년), 高祖 때 월의 공로를 列擧하여 閩君 搖가 공로가 많고, 월의 백성이 요를 따르기를 희망한다고 하여 요를 동해왕으로 봉하고 東甌에 도읍하게 하였다.
세속에서는 칭호를 東甌王이라고 하였다.
後數世,至孝景三年,吳王濞反,欲從閩越,閩越未肯行,獨東甌從吳。
그 후 몇 세대가 지나 孝景帝 3년(기원전 154년)에 이르러 吳王 劉濞가 반란을 일으키고, 민월을 따르게 하려 하였으나 민월이 동조하지 않았고, 단지 東甌가 오를 따랐다.
及吳破,東甌受漢購,殺吳王丹徒,以故皆得不誅,歸國。
吳가 패전하자 동구는 漢에게 현상금을 받고 丹徒에서 오왕 유비를 살해하였으며, 이 때문에 동구는 주벌되지 않고 귀국할 수 있었다.
▶ 閩越 : 秦 초기의 福建省 지방에 있던 부락의 명칭으로 백월의 일파이다. 閩越은 뒤에 東越이라고 칭하여졌다.
▶ 無諸 : 越王 句踐의 후예이다. 대대로 粤나라의 제사를 받들었는데 秦이 그 땅을 빼앗았다. 秦 말기에 군대를 거느리고 秦을 공격하였으나, 項羽가 그를 폐하였다.<資治通鑑 漢 高帝 5년> 粤은 越과 통용하여 쓰인다.
▶ 東海 : 지금의 浙江省 남쪽 바닷가 지역.
▶ 摇 : 人名. 동해왕.
▶ 騶 : 資治通鑑綱目에는 騶가 아닌 駱으로 기록되어 있다. <駱郢/駱餘善 등> 騶는 駱의 誤字로 보는 견해가 있다.
▶ 郡長 : 소수 민족의 수령.
▶ 畔 : 叛과 통한다.
▶ 吳芮 : 원래 鄱陽의 현령으로 이 일대에서 인심을 얻어 鄱君이라 불렸다. 나중에 百粤을 이끌고 項羽를 따라 函谷關에 들어간 공으로 衡山王에 봉해졌다. <資治通鑑綱目 제2권>
▶ 主命 : 君命.
▶ 弗王 : 무제와 요를 왕으로 봉하지 않다.
▶ 漢五年 : 漢高帝 5년(기원전 202년).
▶ 故地 : 옛 땅. 원래의 땅.
▶ 都東冶 : 동야를 도성으로 하다. 동야는 지금의 福州市.
▶ 孝惠三年 : 漢惠帝 3년(기원전 193년).
▶ 舉 : 열거하다.
▶ 越功 : 월나라의 공로.
▶ 便附 : 따르기를 희망하다.
▶ 孝景三年 : 漢景帝 3년(기원전 154년).
▶ 吳王濞反 : 吳王 劉濞는 前漢의 제후왕으로 高祖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景帝 3년,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함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사기 권106. 吳王濞列傳>
▶ 購 : 많은 돈으로 매수하다.
▶ 殺吳王丹徒 : 漢이 사신을 보내어 이익으로써 동월을 유혹하니, 동월왕은 오왕이 나가서 군사를 위로할 때 사람을 시켜 창으로 오왕을 찔러 죽이고 그 머리를 그릇에 담아 속도가 빠른 역마 편으로 漢의 황제에게 올렸다. 吳의 왕자 子華와 子駒는 閩越로 도망하였다.<사기 권106. 오왕비열전>
▶ 誅 : 처벌하다. 징벌하다.
吳王子子駒亡走閩越,怨東甌殺其父,常勸閩越擊東甌。
오왕의 아들 子駒가 민월로 도망가서 東甌가 그의 아버지를 죽임에 원한을 품고, 늘 민월에게 동구를 치라고 권하였다.
至建元三年,閩越發兵圍東甌。
무제 建元 3년(기원전 138년), 민월이 군대를 일으켜 동구를 포위하였다.
東甌食盡,困,且降,乃使人告急天子。
동구는 양식이 바닥나고 곤궁하여 장차 투항할 처지이매, 천자에게 사신을 보내 위급함을 알렸다.
天子問太尉田蚡,蚡對曰:
「越人相攻擊,固其常,又數反覆,不足以煩中國往救也。
自秦時棄弗屬。」
천자가 太尉 田蚡에게 의견을 물으니 전분이 대답하였다.
“월의 사람이 서로 공격함은 본래 그들의 日常이고, 또 자주 반복됩니다. 중원을 번거롭게 하면서 가서 구원할 가치가 없습니다.
秦나라 때부터 그들을 내버려두고 복속시키지 않았습니다.”
於是中大夫莊助詰蚡曰:
이에 中大夫 莊助가 전분을 힐난하였다.
特患力弗能救,德弗能覆;
誠能,何故棄之?
“오직 힘이 부족하여 구제할 수 없거나, 덕으로 그들을 감싸주지 못함을 걱정할 뿐입니다.
만약 능력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버리겠습니까?
且秦舉咸陽而棄之,何乃越也!
더구나 秦은 수도였던 咸陽도 포기하였는데, 어떻게 월나라만이겠습니까!
今小國以窮困來告急天子,天子弗振,彼當安所告愬?
지금 소국이 곤궁하매 와서 위급함을 고하는데도 천자가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느 곳에 하소연해야 합니까?
又何以子萬國乎?」
또 황제께서는 무엇으로 만국의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피겠습니까?”
上曰:
「太尉未足與計。
吾初即位,不欲出虎符發兵郡國。」
황제가 말하였다.
“태위는 함께 계책을 논하기에 부족하오.
짐은 막 즉위했기 때문에 虎符를 내어 郡國에서 군대를 징발하고 싶지 않소.”
乃遣莊助以節發兵會稽。
이에 장조를 파견하여 부절을 가지고 會稽에서 군대를 징발토록 하였다.
會稽太守欲距不為發兵,助乃斬一司馬,諭意指,遂發兵浮海救東甌。
그러나 회계 태수는 거절하고 군사를 징발하려 하지 않으매, 장조가 司馬 한 사람을 참수하여 황제의 뜻을 밝히자, 회계태수가 군대를 징발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동구를 구원하게 되었다.
未至,閩越引兵而去。
漢軍이 동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민월은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였다.
東甌請舉國徙中國,乃悉舉眾來,處江淮之閒。
동구는 나라의 백성을 중원으로 이주하기를 청하였고, 이에 모든 백성이 중원으로 와서 江淮 일대에 거주하였다.
▶ 子駒 : 吳‧楚 등 7국이 패하였을 때 오왕 劉濞의 아들 劉駒가 閩越로 도망갔었는데, 劉駒는 자기 부친인 유비를 살해한 동구를 원망하여 늘 민월에게 동구를 공격하자고 권하니, 민월이 그의 말을 따랐다.<자치통감강목 4>
▶ 亡走 : 도망가다.
▶ 建元三年 : 기원전 138년. 建元은 漢武帝의 첫 번째 연호.
▶ 田蚡 : 武安侯 田蚡은 長陵 사람으로 景帝 王皇后 王娡와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다. 외척의 신분으로 武帝의 총애를 받아 太尉를 지냈고, 武安侯에 봉해진 뒤 太尉를 거쳐 丞相이 되었다.
▶ 煩 : 번거롭다.
▶ 莊助 : <漢書>에는 嚴助로 되어 있다.
▶ 特 : 오직.
▶ 誠 : 만약.
▶ 舉 : 전부.
▶ 振 : 구원하다.
▶ 安所 : 어느 곳.
▶ 愬 : 하소연하다.
▶ 未足 : 부족하다. 할 수 없다.
▶ 虎符 : 兵符. 구리로 범 模樣을 본떠 만든 徵兵의 標識
▶ 以節 : 持節. 사신의 증표를 가지다.
▶ 距 : 拒와 통하여 거절하다.
▶ 意指 : 황제의 명령을 말한다. 指는 旨와 같다.
▶ 徙中国 : 중원지역으로 이주하다.
至建元六年,閩越擊南越。
建元 6년(기원전 135년), 민월이 南越을 공격하였다.
南越守天子約,不敢擅發兵擊而以聞。
남월은 황제와의 약속을 준수하여 멋대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지 않고,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上遣大行王恢出豫章,大農韓安國出會稽,皆為將軍。
황제가 大行 王恢를 파견하여 豫章에서 출병하게 하고, 大農 韓安國은 회계에서 출병하게 하였는데, 이들을 모두 장군으로 삼았다.
兵未踰嶺,閩越王郢發兵距險。
군대가 陽山嶺을 넘기 전에 민월왕 郢은 군대를 일으켜 요새를 지키고 대치하였다.
其弟餘善乃與相、宗族謀曰:
민월왕의 아우 餘善이 승상·宗族들과 의논하였다.
「王以擅發兵擊南越,不請,故天子兵來誅。
“왕이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남월을 공격함에 황제에게 주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자의 군대가 와서 誅罰하려고 한다.
今漢兵眾彊,今即幸勝之,后來益多,終滅國而止。
지금 漢軍은 많고도 강성하니 지금 요행히 漢軍에게 승리하더라도, 후일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낼 터이니 마침내 우리나라를 멸하고 말 터이다.
今殺王以謝天子。
지금 왕을 죽여서 황제에게 사죄하자.
天子聽,罷兵,固一國完;
不聽,乃力戰;
不勝,即亡入海。」
천자가 사죄를 받아들여 철군하면 확실히 나라가 완전할 터이고,
황제가 사죄를 무시한다면 힘껏 싸우다가
승리하지 못하면 바다로 도피하자.”
皆曰
「善」。
모두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即鏦殺王,使使奉其頭致大行。
즉시 짧은 창으로 왕을 찔러 죽이고, 사신에게 그의 머리를 가지고 대행 왕회에게 가게 하였다.
大行曰:
「所為來者誅王。
今王頭至,謝罪,不戰而耘,利莫大焉。」
대행 王恢가 말하였다.
“이곳에 온 까닭은 동월왕을 주살함이다.
지금 왕의 머리가 도착하고 사죄하매 전쟁하지 않아도 화근이 제거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성과는 없다.”
乃以便宜案兵告大農軍,
而使使奉王頭馳報天子。
이에 편의에 따라 군대를 멈추고 大農 韓安國의 군대에 알렸다.
또 사신을 시켜서, 민월왕의 머리를 가지고 말을 치달려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詔罷兩將兵,曰:
「郢等首惡,獨無諸孫繇君丑不與謀焉。」
황제가 조서를 내려 두 장군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말하였다.
“郢 등이 주모자이며 無諸의 손자 繇君 丑만은 음모에 참여하지 않았다.”
乃使郎中將立丑為越繇王,奉閩越先祭祀。
그러고는 郎中將으로 하여금 丑을 월의 繇王으로 삼아 민월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餘善已殺郢,威行於國,國民多屬,竊自立為王。
餘善이 郢을 죽이고 나서 위세가 온 나라에 떨쳐서 많은 백성이 그에게 귀속하매, 은밀히 자립하여 왕이 되려고 하였다.
繇王不能矯其眾持正。
繇王은 여선의 무리를 바로 잡아 정도를 유지하게 하지 못하였다.
天子聞之,為餘善不足復興師,曰:
「餘善數與郢謀亂,而後首誅郢,師得不勞。」
천자가 듣고 여선 때문에 다시 군사를 동원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 말하였다.
“여선은 누차 영과 더불어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그 후 앞장서서 영을 죽였으매, 漢軍이 노고를 피할 수 있었다.”
因立餘善為東越王,與繇王并處。
그리하여 여선을 東越王으로 삼고 요왕과 함께 處事하게 하였다.
至元鼎五年,南越反,東越王餘善上書,請以卒八千人從樓船將軍擊呂嘉等。
元鼎 5년(기원전 112년)에 이르러 남월의 승상인 呂嘉가 반란을 일으키자 동월왕 餘善이 상서하여 청하기를, 병졸 8천명을 이끌고 樓船將軍을 따라 여가 등을 공격하겠다고 하였다.
兵至揭揚,以海風波為解,不行,持兩端,陰使南越。
누선장군의 군대가 揭揚에 도착하자, 여선은 바다의 풍랑을 구실로 가지 않았고, 두 마음을 품은 채로 은밀히 남월로 사신을 보냈다.
及漢破番禺,不至。
漢軍이 番禺城를 함락시킬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是時樓船將軍楊仆使使上書,願便引兵擊東越。
이때 누선장군 楊僕은 사신을 보내 상서하여, 편의에 따라 군대를 이끌고 동월을 공격하겠다고 청하였다.
上曰士卒勞倦,不許,罷兵,令諸校屯豫章梅領待命。
황제가 군졸들이 지쳐 있다면서 허락하지 않고,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校尉들에게 豫章의 梅嶺에 주둔하면서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元鼎六年秋,餘善聞樓船請誅之,漢兵臨境,且往,乃遂反,發兵距漢道。
원정 6년(기원전 111년) 가을, 여선은 누선장군이 자신을 토벌하자고 청하여, 漢軍이 동월의 국경에 다가와 곧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 반란을 일으켜 군대를 보내고 漢軍이 지나갈 길에서 저항하게 하였다.
號將軍騶力等為「吞漢將軍」,入白沙、武林、梅嶺,殺漢三校尉。
장군 騶力 등에게 ‘呑漢將軍’이란 봉호를 내리고, 白沙·武林·梅嶺으로 진입하도록 하여 漢의 교위 세 사람을 죽였다.
是時漢使大農張成、故山州侯齒將屯,弗敢擊,卻就便處,皆坐畏懦誅。
이때 漢은 大農令 張成과 예전에 山州侯였던 劉齒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 그곳에 주둔하였으나, 동월의 군대를 공격하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퇴각하매, 모두 적을 두려워하고 겁을 내어 나약하였다는 죄명으로 誅殺되었다.
餘善刻「武帝」璽自立,詐其民,為妄言。
여선이 ‘武帝’라는 옥새를 새기고 자립하여, 그의 백성을 속이고 妄言하였다.
天子遣橫海將軍韓說出句章,浮海從東方往;
樓船將軍楊仆出武林;
中尉王溫舒出梅嶺;
越侯為戈船、下瀨將軍,出若邪、白沙。
천자가 橫海將軍 韓說을 보내어, 句章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건너 동쪽에서 進軍하고,
누선장군 양복은 무림에서 출발하고,
中尉 王溫舒는 매령에서 출발하고,
越侯 두 사람을 각기 戈船將軍과 下瀨將軍으로 임명하여 각각 若邪와 白沙에서 출발하게 하였다.
▶ 擅 : 멋대로 하다.
▶ 險 : 요새. 요해처.
▶ 餘善 : 민월왕 영의 아우
▶ 不請 : 주청하지 않다.
▶ 幸 : 요행
▶ 謝 : 사죄하다.
▶ 固 : 물론.
▶ 完 : 온전히 보전하다.
▶ 鏦 : 짧은 창으로 찌르다.
▶ 大行 : 王恢를 말한다.
▶ 耘 : 제거하다.
▶ 罷兵 : 군사활동을 멈추다. =按兵
▶ 大農軍 : 韓安國의 군대를 말한다.
▶ 首惡 : 원흉. 주모자.
▶ 威 : 위세와 명망.
▶ 行 : 널리 퍼뜨리다. 传布
▶ 持正 : 바른 도리를 지키다.
▶ 元鼎 : 漢武帝 다섯 번째 연호.
▶ 南越反 : 남월왕 趙興이 왕위에 오르자 내란이 일어나 재상 呂嘉가 권력을 장악하고 한에 入朝하려는 왕과 王母를 살해하였으며, 또한 漢의 사신까지도 죽인 뒤 興의 이복 형인 趙建德을 옹립하여 漢에 대항하였다.<사기 권113. 남월열전>
▶ 解 : 구실. 핑게
▶ 持兩端 : 두 마음을 품다. 양다리를 걸치다.
▶ 陰 : 은밀히. 몰래.
▶ 漢道 : 漢軍이 거쳐 가는 길.
▶ 号 : 봉호를 내리다.
▶ 山州侯齒 : 山州侯 劉齒. 황족이자 군인으로, 성양 공왕의 아들이다. 원삭 4년(기원전 125년), 山州侯에 봉해졌다가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을 법도에 맞지 않게 한 죄로 작위를 잃었다.
▶ 却 : 퇴각하다.
▶ 便處 : 형편이 좋은 곳.
▶ 坐 : 죄에 대하여 벌을 받다.
▶ 畏懦 : 怯懦惧敌军 적을 겁내어 두려워하다.
▶ 越侯 : 제후로 봉해진 南越人. 漢으로 투항한 월나라 사람인 嚴과 甲. 嚴은 戈船將軍이 되고 甲은 下厲將軍이 되었다. <사기 권113. 남월열전>
元封元年冬,咸入東越。
元封 원년(기원전 110년) 겨울, 다 함께 동월로 진격하였다.
東越素發兵距險,使徇北將軍守武林,敗樓船軍數校尉,殺長吏。
동월은 꾸준히 군사를 보내 요새를 방어하고, 徇北將軍을 파견하여 武林을 지키게 하니, 누선장군의 교위 몇 명을 물리치고 長吏를 죽였다.
樓船將軍率錢唐轅終古斬徇北將軍,為御兒侯。
누선장군의 부하 錢塘 출신의 轅終古가 순북장군을 참수하고, 禦兒侯에 봉해졌다.
自兵未往。
이때는 自兵(漢軍)이 武林으로 진격하기 전이었다.
故越衍侯吳陽前在漢,漢使歸諭餘善,餘善弗聽。
예전에 월의 衍侯였던 吳陽은 전부터 漢에 있었으매, 漢은 그를 동월로 돌려보내어 여선을 타일렀으나 여선이 듣지 않았다.
及橫海將軍先至,越衍侯吳陽以其邑七百人反,攻越軍於漢陽。
횡해장군 한열이 먼저 도착하자 월의 연후 오양은 자신의 고을 사람 7백 명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 漢陽에서 越軍을 공격하였다.
從建成侯敖,與其率,從繇王居股謀曰:
「餘善首惡,劫守吾屬。
今漢兵至,眾彊,計殺餘善,自歸諸將,儻幸得脫。」
그는 建成侯 敖 및 그의 부하들과 함께 繇王 居股를 찾아가서 모의하였다.
“여선이 주동자로서, 우리를 위협하여 지키게 하였습니다.
지금 漢軍이 도착하였는데 병사의 수가 많고 강성하니, 여선을 죽이는 계책을 세워 스스로 漢將들에게 귀순하면 어쩌면 죽음은 면할 터입니다.”
乃遂俱殺餘善,以其眾降橫海將軍,
故封繇王居股為東成侯,萬戶;
封建成侯敖為開陵侯;
封越衍侯吳陽為北石侯;
封橫海將軍說為案道侯;
封橫海校尉福為繚嫈侯。
이에 여럿이 여선을 죽이고 그들의 군사를 이끌고 횡해장군에게 투항하매,
繇王 居股를 東成侯, 식읍 萬戶에 봉하고,
건성후 오를 開陵侯로 봉하고,
越의 연후 오양을 北石侯로 봉하고,
횡해장군 한열은 按道侯로 봉하고,
횡해교위 劉福을 繚嫈侯로 봉하였다.
福者,成陽共王子,故為海常侯,坐法失侯。
유복은 成陽 共王 劉喜의 아들로 본래 海常侯였는데, 뒤에 법을 어겨 작위를 잃었다.
舊從軍無功,以宗室故侯。
과거의 종군에서는 軍功이 없었으나, 宗室의 子弟이매 봉후된 것이었다.
諸將皆無成功,莫封。
나머지 장군은 모두 세운 전공이 없으매, 봉작된 자가 없었다.
東越將多軍,漢兵至,棄其軍降,封為無錫侯。
동월의 장군 多軍은 漢軍이 도착하자 그의 군대를 버리고 투항하여 無錫侯로 봉해졌다.
於是天子曰東越狹多阻,閩越悍,數反覆,詔軍吏皆將其民徙處江淮閒。
이에 천자가 말하기를, 동월은 협소하고 險地가 많으며, 민월은 흉포하여 누차 반복무상하다 하고, 軍吏에게 조서를 내려 그 지역 백성을 모두 江淮 일대로 이주시켰다.
東越地遂虛。
동월의 지역은 이에 텅 비었다.
▶ 元封元年 : 기원전 110년. 漢武帝의 여섯 번째 연호.
▶ 素 : 한결같이. 꾸준히.
▶ 自兵 : 자신의 군대. 즉 漢軍.
▶ 越衍侯吳陽 : 東越의 衍侯 吳陽.
▶ 以 : 거느리다.
▶ 居股 : 東粵 繇王이 東粵王 善餘를 죽였을 때 무리를 이끌고 漢에 항복하는 공을 세워 武帝 元封 원년(기원전 110년) 東城侯에 봉해졌다. 나중에 衛太子가 거병한 일에 연루되어 腰斬되었다.
▶ 吾属 : 우리.
▶ 傥 : 혹시. 어쩌면.
▶ 幸 : 요행히.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越雖蠻夷,其先豈嘗有大功德於民哉,
何其久也!
“越은 비록 蠻夷이나, 그의 선조는 이전에 백성에게 커다란 공덕을 베풀었을 터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하였겠는가!
歷數代常為君王,句踐一稱伯。
여러 대에 걸쳐 항상 王으로 군림하였고, 句踐은 한 차례 覇者로 일컬어졌다.
然餘善至大逆,滅國遷眾,其先苗裔繇王居股等猶尚封為萬戶侯,由此知越世世為公侯矣。
蓋禹之餘烈也。
그러나 余善이 大逆을 저지르니, 나라를 멸망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고, 그들 선조의 후손인 繇王 居股 등은 오히려 만호후에 봉해졌으니, 이로써 월이 대대로 公侯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개 禹임금이 남긴 功業인 것이다.”
▶ 歷 : 지나다.
▶ 苗裔 : 여러 대를 걸친 먼 후대의 자손.
▶ 伯 : 霸와 통한다. 覇者.
▶ 余烈 : 조상이 남긴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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