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雍也 第六(논어집주 옹야 제육) 第二章

구글서생 2023. 3. 9. 04:37

▣ 第二章

哀公問:
「弟子孰為好學?」
哀公이 물었다.
“弟子中에 누가 學問을 좋아합니까?”

孔子對曰:
「有顏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顔回라는 者가 學問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더니, 不幸히도 命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으니, 아직 學問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遷,移也。貳,復也。怒於甲者,不移於乙;過於前者,不復於後。
은 옮김이요, 는 다시 하는 것이니, 에게 화낸 것을 에게 옮기지 않고, 전에 잘못한 것을 뒤에 다시 하지 않는 것이다.

顏子克己之功至於如此,可謂真好學矣。
顔子克己의 공부가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學問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하다.

短命者,顏子三十二而卒也。
短命이란 顔子32에 죽었기 때문이다.
春秋公羊傳에는 41세에 죽었다고 함.

既云今也則亡,又言未聞好學者,蓋深惜之,又以見真好學者之難得也。
既云今也則亡又言未聞好學者란 이것을 깊이 애석히 여기고, 또한 참으로 學問을 좋아하는 자를 얻기 어려움을 나타내셨다.

程子曰:
「顏子之怒,在物不在己,故不遷。
有不善未嘗不知,知之未嘗復行,不貳過也。」
程子가 말씀하였다.
顔子의 화냄은 상대방에 있고 자신에게 있지 않았으므로 옮기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으셨으니, 잘못을 다시 하지 않은 것이다.”

又曰:
「喜怒在事,則理之當喜怒者也,不在血氣則不遷。
若舜之誅四兇也,可怒在彼,己何與焉。
如鑒之照物,妍媸在彼,隨物應之而已,何遷之有?」
또 말씀하였다.
기뻐하고 화냄이 <자신의 감정에 있지 않고 상대방이 행한>일에 있다면, 이것은 도리상 마땅히 기뻐하고 화내야 할 경우인 것이요, 血氣에 있지 않다면 옮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임금이 四凶을 처벌할 때에 화낼 만한 것이 저들에게 있었으니, 자신이 무슨 관여가 있었겠는가?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춤에, 모습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저쪽에 달려있는 것과 같아서 사물에 따라 대응할 따름이니, 어찌 화를 옮김이 있겠는가?”

又曰:
「如顏子地位,豈有不善?
所謂不善,只是微有差失。
纔差失便能知之,纔知之便更不萌作。」
또 말씀하였다.
顔子 의 경지와 같으면 어찌 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이른바 하지 않다는 것은 다만 약간의 잘못이 있는 것이다.
잠시라도 잘못이 있으면 곧 알았고, 알기만 하면 곧 다시는 싹터 나오지 않게 하였다.”

張子曰:
「慊於己者,不使萌於再。」
張子가 말씀하였다.
자신의 부족한 행동이 두 번 다시 싹트지 않게 하였다.”

或曰:
「詩書六藝,七十子非不習而通也,而夫子獨稱顏子為好學。顏子之所好,果何學歟?」
혹자가 말하였다.
六藝( ) 70弟子가 익혀 통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夫子께서 유독 顔子만이 學問을 좋아했다고 칭찬하였으니, 顔子가 좋아한 것은 과연 어떤 학문입니까?”

程子曰:
「學以至乎聖人之道也。」
程子가 말씀하였다.
배워서 성인 聖人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學之道奈何?」
배우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曰:
「天地儲精,得五行之秀者為人。其本也真而靜。
其未發也五性具焉,曰仁、義、禮、智、信。
形既生矣,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曰喜、怒、哀、懼、愛、惡、欲。
情既熾而益蕩,其性鑿矣。
故學者約其情使合於中,正其心,養其性而已。
然必先明諸心,知所往,然後力行以求至焉。
若顏子之非禮勿視、聽、言、動,不遷怒貳過者,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
然其未至於聖人者,守之也,非化之也。
假之以年,則不日而化矣。
今人乃謂聖本生知,非學可至,而所以為學者,不過記誦文辭之間,其亦異乎顏子之學矣。」
말씀하였다.
天地精氣를 쌓아 <만물을 낳았는데> 五行의 빼어난 精氣를 얻은 것이 사람이니, 그 본체는 참되고 고요하다.
이것이 미발 未發했을 때는 五性이 구비되어 있으니, 이다.
형체가 생기고 나면 外物이 그 형체에 접촉하여 마음이 움직인다.
그 마음이 움직이면 七情이 나오니, 이라 말한다.
감정이 너무 성해져 더욱 방탕해지면 그 本性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선각자는 을 단속하여 中道에 합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루어 本性을 기를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안 뒤에야 힘써 행하여 에 이르기를 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顔子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하지 않은 것과 화를 남에게 옮기거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니, 이는 그 좋아함이 독실하고 배움에 그 요령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聖人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지킨 것이요, 同化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몇 년만 수명을 연장해 주었다면 얼마 되지 않아 同化하였을 터이다.
지금 사람들은 마침내 생각하기를 聖人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니, 배워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겨, 學問하는 것이 단지 글을 기억하거나 외우며 문장을 짓는 데에 지나지 않으니, 그 또한 顔子學問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