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子罕 第九(논어집주 자한 제구) 第十章

구글서생 2023. 3. 4. 01:14

第十章

 

顏淵喟然歎曰:
「仰之彌高,鑽之彌堅;瞻之在前,忽焉在後。
顔淵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夫子의 道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다가가서 보니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仰之欲齊其高
鑽之思等其深
가까이 다가가서 봄 :멀리서 봄

喟,歎聲。
는 탄식하는 소리이다.

仰彌高,不可及。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 더욱,

鑽彌堅,不可入。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在前在後,恍惚不可為象。
가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황홀하여 형상할 수 없는 것이다.

此顏淵深知夫子之道,無窮盡、無方體,而歎之也。
이것은 顔淵夫子가 무궁무진하고 또 방향과 형체가 없음을 깊이 알고 탄식한 것이다.
無窮盡: 無窮高無盡堅

夫子循循然善誘人,博我以文,約我以禮。
夫子께서 차례차례 사람을 잘 이끄시어 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禮로써 나의 행동을 요약하게 해주셨다.

循循,有次序貌。
순순循循은 차서次序가 있는 모양이다.

誘,引進也。
는 이끌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 導之以善言也. 좋은 말로 이끌어 줌

博文約禮,教之序也。
으로써 지식을 넓혀주고, 로써 행동을 검속하게 함은 가르침의 次序이다.
: 두가지 뜻이 있다.
束而小之(묶어서 작게함) 檢而束之(검속함)

言夫子道雖高妙,而教人有序也。
夫子가 비록 높고 묘하나 사람들을 가르침에 순서가 있음을 말씀하였다.:不可言(표현할 수 없음)

侯氏曰:
「博我以文,致知格物也。
約我以禮,克己復禮也。」
侯氏가 말하였다.
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었다는 것은 致知格物이다.
로써 나의 행동을 검속하게 해주었다는 것은 자기의 私慾을 극복하여 로 돌아간다克己復禮.’는 것이다.”

程子曰:
「此顏子稱聖人最切當處,聖人教人,惟此二事而已。」
程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顔子聖人을 가장 적절하고 합당하게 일컬은 곳이다. 聖人이 사람을 가르침은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二事: 博文約禮

欲罷不能,既竭吾才,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末由也已。」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夫子의 道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비록 그를 따르고자 하나 방법이 없다.”

卓,立貌。
은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 超然獨立之貌

末,無也。
은 없음이다.

此顏子自言其學之所至也。
이는 顔子가 스스로 자신의 학문이 이른 경지를 말씀한 것이다.

蓋悅之深而力之盡,所見益親,而又無所用其力也。
학문에의 기쁨이 깊고, 노력을 다하여 를 봄이 더욱 가까우나, 또한 그 힘을 쓸 곳이 없는 것이다.

吳氏曰:
「所謂卓爾,亦在乎日用行事之間,非所謂窈冥昏默者。」
吳氏가 말하였다.
이른바 卓爾[우뚝하다]란 것은 일상의 일을 행함에 있는 것이지, (장자처럼) 이른바 깊고 어두우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程子曰:
「到此地位,功夫尤難,直是峻絕,又大段著力不得。」
程子가 말씀하였다.
이 경지에 이르면 공부하기가 더욱 어려우니, 바로 峻絶하므로, 또한 대단히 힘을 쓸 수 없다.”

楊氏曰:
「自可欲之謂善,充而至於大,力行之積也。
大而化之,則非力行所及矣,此顏子所以未達一閒也。」
楊氏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바람직한 善人으로부터 채워서 大人에 이르기까지는 力行을 쌓은 것이다.
大人이 되어서 하는 聖人으로 말하면 力行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顔子<聖人의 경지에> 한 칸을 이르지 못한 이유인 것이다.”

程子曰:
「此顏子所以為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
程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이 顔子孔子를 깊이 알고 잘 배웠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胡氏曰:
「無上事而喟然歎,此顏子學既有得,故述其先難之故、後得之由,而歸功於聖人也。
高堅前後,語道體也。
仰鑽瞻忽,未領其要也。
惟夫子循循善誘,先博我以文,使我知古今,達事變;然後約我以禮,使我尊所聞,行所知。
如行者之赴家,食者之求飽,是以欲罷而不能,盡心盡力,不少休廢。
然後見夫子所立之卓然,雖欲從之,末由也已。
是蓋不怠所從,必欲至乎卓立之地也。
抑斯歎也,其在請事斯語之後,三月不違之時乎?」
胡氏가 말하였다.
顔子<앞에 아무 일이 없이> 깊이 감탄을 하였으니, 이는 顔子의 학문에 이미 터득한 바가 있으므로, 그 먼저는 어려웠던 까닭과 뒤에 터득하게 된 연유를 말하고, 그 공을 聖人에게 돌린 것이다.
높고 견고하며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는 것은 本體를 말한 것이다.
우러러보고 뚫으며 바라보고 홀연하다라는 것은 그 要諦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夫子께서 차근차근히 잘 이끄시어 먼저 나를 으로써 해박하게 하시어 나로 하여금 古今을 알고 일의 변화를 통달하게 해주셨다. 그런 뒤에 나의 행동을 로써 檢束하게 하시어, 나로 하여금 배운 것을 존중하게 하고 아는 것을 행하게 하셨다.
마치 길을 가는 자가 집에 다다르고 밥 먹는 자가 배부름을 추구하는 것과 같았으므로, 공부를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조금도 폐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뒤에야 夫子의 확립한 것이 우뚝함을 보고, 비록 따르고자 하였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는 따르는 바를 게을리하지 않아 우뚝이 서 있는 경지에 꼭 이르기를 바란 것이다.
아마도 顔子의 이 탄식은 이 말씀에 종사하겠다請事斯語.’고 한 뒤와 ‘3개월을 을 떠나지 않았다三月不違仁.’한 때에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