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二十九章
子曰:
「可與共學,未可與適道;
可與適道,未可與立;
可與立,未可與權。」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함께 똑같이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道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道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도를 지킬 수는 없으며, 함께 도를 지킬 수는 있어도 함께 權道를 행할 수는 없다.”
▶共: 같은 내용을 배운다는 뜻
▶權: 항상 중용을 유지함
可與者,言其可與共為此事也。
可與란 더불어 똑같이 이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程子曰:
「可與共學,知所以求之也。
可與適道,知所往也。
可與立者,篤志固執而不變也。
權,稱錘也,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
可與權,謂能權輕重,使合義也。」
▶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 所~者也로 해석하며 以는 權을 가리킨다
程子가 말씀하였다.
“더불어 함께 배운다는 것은 道를 추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함께 道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아갈 곳를 아는 것이다.
함께 지킨다는 것은 뜻을 독실히 하고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이다.
權은 저울의 추이니, 저울로써 물건을 달아서 무게를 아는 것이다.
더불어 權道를 행한다는 것은 일의 輕重을 저울질할 수 있어서 義理에 맞게 함을 말한다.”
楊氏曰:
「知為己,則可與共學矣。
學足以明善,然後可與適道。
信道篤,然後可與立。
知時措之宜,然後可與權。」
楊氏가 말하였다.
“자신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을 안다면 더불어 함께 배울 수 있다.
학문이 족히 善을 밝게 알 수 있어야 함께 道에 나아갈 수 있다.
道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뒤에야 함께 지킬 수 있다.
그때 상황에 따라 時宜適切하게 조처할 줄을 안 뒤에야 함께 權道를 행할 수 있다.”
洪氏曰:
「易九卦,終於巽以行權。
權者,聖人之大用。
未能立而言權,猶人未能立而欲行,鮮不僕矣。」
洪氏가 말하였다.
“《周易》의 아홉 卦에 ‘巽으로 權道를 행한다.’라는 말로 결말지었다.
權道는 聖人의 큰 用이다.
능히 도를 지키지도 못하고서 權道를 말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서지도 못하면서 걷고자 하는 것과 같아서 넘어지지 않는 자가 드물다.”
程子曰:
「漢儒以反經合道為權,故有權變權術之論,皆非也。
權只是經也。
自漢以下,無人識權字。」
程子가 말씀하였다.
“漢나라 儒者들은 經道[常道]를 뒤집어 道에 합하는 것을 權道라고 하였다. 이러므로 權變·權術의 말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옳지 못하다.
權道는 다만 經道일 뿐이다.
漢나라 이래로 누구도 權字의 뜻을 안 사람이 없었다.”
愚按:先儒誤以此章連下文偏其反而為一章,故有反經合道之說。
程子非之,是矣。
然以孟子嫂溺援之以手之義推之,則權與經亦當有辨。
내가 살펴보건대, 先儒들이 잘못하여 이 章을 아래의 ‘偏其反’이라는 글을 연결시켜서 一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經道를 뒤집어 道에 합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程子가 이를 옳지 못하다 하셨으니 옳다.
그러나 《孟子》에 “제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써서 구원해준다.”라는 뜻으로 미루어 본다면 權道와 經道는 또한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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