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十四章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文也?」
子貢이 물었다.
“孔文子를 무엇 때문에 文이라고 시호하였습니까?”
子曰:
「敏而好學,不恥下問,是以謂之文也。」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明敏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文이라 하였다.”
孔文子,衛大夫,名圉。
孔文子는 衛나라 大夫이니 이름은 어(圉)이다.
凡人性敏者多不好學,位高者多恥下問。
대체로 사람의 성품이 明敏한 자는 대부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지위가 높은 자는 대부분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긴다.
故謚法有以「勤學好問」為文者,蓋亦人所難也。
그러므로 謚法에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文이라 하는 것이 있으니, 이 역시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孔圉得謚為文,以此而已。
孔圉가 文이라는 시호를 얻은 것은 이 때문일 뿐이다.
蘇氏曰:
「孔文子使太叔疾出其妻而妻之。
疾通於初妻之娣,文子怒,將攻之。
訪於仲尼,仲尼不對,命駕而行。
疾奔宋,文子使疾弟遺室孔姞。
其為人如此而謚曰文,此子貢之所以疑而問也。
孔子不沒其善,言能如此,亦足以為文矣,非經天緯地之文也。」
蘇氏가 말하였다.
“孔文子가 太叔疾로 하여금 본부인을 쫓아내게 하고는 자기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었다.
太叔疾이 본부인의 여동생과 정을 통하자 孔文子는 怒하여 장차 太叔疾을 치려 하였다.
仲尼에게 묻자, 仲尼는 대답하지 않고 수레에 멍에를 매게 하여 떠나셨다.
太叔疾이 쫓겨서 宋나라로 달아나니, 孔文子는 太叔疾의 아우인 遺로 하여금 孔姞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
孔文子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는데도 <죽은 뒤에> 文이라는 시호를 받으니, 이것이 子貢이 의심하여 물은 까닭이다.
孔子께서 그의 善한 점을 없애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더라도 文이라고 시호 할 수 있다.’라고 하셨으나, (공자의) 經天緯地(천지의 법도)의 文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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