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樂道吟-李資玄 본문

漢詩와 漢文

樂道吟-李資玄

耽古樓主 2025. 2. 8. 08:26

樂道吟-李資玄

 

家在碧山岑(가재벽산잠) 從來有寶琴(종래유보금)
不妨彈一曲(불방탄일곡祗是小知音(지시소지음)

내 집은 푸른 산 높은 봉우리에 있는데, 대대로 전해오는 좋은 거문고 하나 있지.
한 곡조 타는 거야 거리낄 것 없다만, 다만 내 가락을 알아들을 이 적구나.

*岑(잠) ; 봉우리, 높고 크다

*祗(지) ; 존경하다, 삼가다. 다만, 바로, 어찌

 

 

 감상

 

깊은 산속 높은 봉우리에 살고 있다니 隱者이거나 道人임에 틀림없다.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아주 좋은 거문고를 가지고 있다 하니 평범한 백성은 아니다.

전반부에서 푸른 산봉우리(碧山岑)과 좋은 거문고(寶琴)란 무대장치와 소품을 보여준 이유는 후반부의 悠悠自適과 자부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속세와 단절하거나 세속을 경멸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고독을 즐길 뿐이다. 도를 닦는 즐거움을 아무리 노래해도 온갖 욕심으로 귀가 먼 사람에게는 그 노래가 지루하고 시시한 騷音으로 들릴 터이다.

 

 작자

 

李資玄(이자현, 1061~1125)

고려 전기에, 대악서승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에서 수도생활을 누린 학자.

본관은 인주(仁州)이며, 자는 진정(眞精),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이다.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며, 이의(李顗)의 맏아들이다.

1083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1089년(선종 6)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어 이곳에서 나물밥과 베옷으로 생활하며 선(禪)을 즐겼다.

예종이 사람을 시켜 다향(茶香)과 금백(金帛)을 보내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1117년(예종 12) 9월 예종이 남경(南京)에 행차하였을 때 왕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곧 다시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다. 1125년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진락(眞樂)이다.

'漢詩와 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卽事-吉再  (0) 2025.02.08
溪堂偶興-李滉  (0) 2025.02.08
山中留客-張旭(唐)  (0) 2025.02.08
午倦-袁枚  (0) 2025.02.08
蘇東坡의 詩詞 2수  (0) 202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