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

한문의 허사(虛詞) 矣

耽古樓主 2022. 12. 26. 09:32
한문의 허사(虛詞)
矣夫 감탄
矣哉 감탄
矣乎 감탄 의문

는 순수한 허사로서 오직 어기사로만 쓰인다.
일반적으로 이미 성립된 사실이나 필연적인 경지를 나타낼 때 쓰이며,
기타 용법도 몇 가지 있고,
다른 어기사와 함께 연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1)  자의 용법과 같이 어떤 뜻을 제시할 때 쓰이며, 자와 거의 호환이 가능하다.

爾之遠矣, 民胥然矣; 爾之敎矣, 民胥效矣. 詩經 小雅 角弓

그대가 형제들간에 서로 멀리 지내면, 백성들이 따라 하고, 그대가 친척들간에 서로 가르치며 살면, 백성들이 본받을 것이다.

: 모두 전부 하급관리

 

鳳凰鳴矣, 于彼高崗; 梧桐生矣, 于彼朝陽. 詩經 大雅 卷阿

봉황이 우노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동산이로다.

 

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 加乎其身. 論語 里仁

불인을 미워하는 자는, 인을 행함에 있어, 불인한 것이 자신에게 가해지지 않게 한다.

 

상기 예문에서와 같이 자가 어떤 뜻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 자로 바꿔놓아도 원문의 의미와 용법에서 전혀 문제가 없다.

 

(2) 는 항상 語句나 문장의 끝에 쓰인다.

☞ ① 사실이 이미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나타내거나,

이와 같이 될 것이라는 상황을 표시하거나,

사태의 발전 추이로 보아 반드시 발생할 수 있는 결과임을 나타낸다.

 

晉侯在外, 十九年矣; 而果得晉國, 險阻艱難, 備嘗之矣; 民之情僞, 盡知之矣. 左傳 僖公28

진나라 문공은 국외에 19년 동안이나 망명해 있었던 데다가; 과연 진나라를 다시 수복하여 온갖 험난한 일과 어려움을 두루 맛보았다; 그래서 백성들의 진정과 허위를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秦王後悔之, 使人赦之, 非已死矣. 史記 韓非列傳

진왕은 이를 후회하고, 사신을 보내 그를 사면하고자 했으나, 한비는 이미 죽어 있었다.

 

상기 예문에서 쓰인 는 모두 사실이 이미 이러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公將鼓之. 劌曰: “未可.” 齊人三鼓. 劌曰: “可矣.” 左傳 莊公10

노나라 장공이 북을 울려 작전을 개시하고자 했다. 조귀가 말하기를: “아직 시기가 아닙니다.” 하고 말렸다. 그동안에 제나라 군대가 세 번이나 북을 치며 공격하려고 했다. 이 때 조귀가 말하기를: “좋은 기회입니다.”

 

武王伐紂, 不期而會孟津之上八百諸侯, 皆曰: “紂可伐矣.” 史記 劉敬列傳

무왕이 주왕을 칠 때는 기일을 미리 약속한 바도 없었지만, 맹진 부근에서 회합을 한 제후가 8백에 이르렀고, 모두 주왕을 칠 때가 왔습니다.”하고 말했다.

 

상기 두 개 예문에서의 는 기성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상황과 조건 하에 진행된다면 충분히 사실로 성사될 수 있는 요인을 구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 則吾能徵之矣. 論語 八佾

은나라의 예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그 후손의 나라인) 송나라를 충분히 증명해 주지 못하는 것은, 전적()과 어진이()가 부족한 까닭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嚮吾不爲斯役, 則久已疾矣. 柳宗元: 捕蛇者说

이전부터 제가 이 일에 종사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살기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상기 두 예문에서 보이는 는 모두 가설 분구 다음 절의 끝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윗 쪽 문장이 가설문, 만약 이 충족이 되면이기 때문에 그 조건이 이루어지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모종의 정황 하에서 추단을 해보면, 반드시 그러한 결과나 사실이 나온다는 것을 뜻한다.

 

夫尹公之他, 端人也. 其取友必端矣. 孟子 離婁下

尹公之他라는 사람은 단정한 사람이다. 그 벗을 택하는 것도 틀림없이 단정할 것이다.

 

試延以公主, 起有留心, 則必受之; 無留心, 則必辭矣. 史記 吳起列傳

시험 삼아 공주를 시집보내 보십시오. 만약 吳起가 머물러 있을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지만;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다면, 반드시 거절할 것입니다.

 

상기 두 예문에서의 는 논리적으로 사실을 추단한 다음, 필연으로 발전시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3) 는 진술문의 끝에 쓰여 긍정의 어기를 나타낸다.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論語 學而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자신의 힘을 다할 수 있고,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 능히 그 몸을 바칠 수 있고, 친구와 교제함에 있어서 말에 신용이 있다면: 비록 남들이 말하기를 아직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이르겠다.

 

諸生且待我, 我不忘矣. 史記 叔孫通列傳

너희는 조금만 나를 기다리고 있으라. 내가 너희들을 잊지 않겠다.

 

(4) 는 청유나 명령의 어기를 나타낸다.

女其往視爾事矣! 史記 夏本紀

그대는 가서 부임하여 그대의 일을 하시오!

 

須臾豹曰: “廷掾起矣!”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서문표가 입을 열어 말했다: “정연은 일어나라!”

 

椒也知政, 乃速行矣! 左傳 宣公4

초가 정치를 맡게 되면, 빨리 그를 떠나가라!

 

(5) 는 때로는 문장 끝에 쓰여서 자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바로 앞의 문장을 설명한다.

人曰: “蚩尤作兵.” 蚩尤非作兵也, 利其械矣. 呂氏春秋 蕩兵篇

사람들이 말하기를 치우가 무기를 창조했다.”라고 하지만, 치우는 무기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무기를 이용한 것이다.

 

民非水火不生活, 昏暮叩人之門戶, 求水火, 無不與者, 至足矣. 孟子 盡心上

사람들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데, 어두운 저녁에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물과 불을 구하면, 도와 주지 않는 이가 없다. 이는 물과 불이 쓰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기 때문이다.

 

(6) 자가 만약 의문문에 사용되면 문장 중에 반드시 다른 의문사가 있다.

何如斯可謂之士矣? 論語 子路

어떠해야 선비라고 할 수 있는가?

 

¶ “先生處勝之門下, 幾年於此矣?” 史記 平原君列傳

선생이 저의 문하에 계신지 지금까지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7) 는 감탄을 표시한다. 만약 矣夫, 矣哉를 쓰면 그 감탄어기는 더욱 가중된다.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論語 述而

깊구나! 나의 쇠약함이여! 내가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구나!

 

盆成括仕於齊. 孟子曰: “死矣, 盆成括!孟子 盡心下

분성괄이 제나라에 가서 벼슬을 살게 되자, 맹자께서 말씀했다. “죽었구나, 분성괄은!”

 

甚矣! 安危在出令, 存亡在所任. 誠哉是言也! 史記 楚元王世家

맞는 말이구나! 나라의 안정과 위기는 어떤 정책을 내느냐에 달려 있고, 나라의 존망은 어떤 인재를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말은 진실로 믿을만 하구나!

 

無禮必食言, 吾死無日矣夫! 左傳 成公13

예를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식언하는 법이다. 내가 죽을 날도 멀지 않았구나!

 

子濯孺子曰: “今日我疾作, 不可以執弓, 吾死矣夫!” 孟子 離婁下

자탁유자가 말했다: “오늘은 내가 병이 나서 활을 들지 못하니, 나는 죽게 되었구나!”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論語 陽貨

배불리 먹어 가며 종일토록 마음 쓸 곳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사람 노릇하기가 어렵다.

 

久矣哉, 由之行詐也! 論語 子罕

계유가 속이는 짓을 행한 지가 오래되었구나!

 

(8) 矣乎는 감탄어기와 의문어기로 쓰이지만, 의문어기로 더 많이 쓰인다.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 而內自訟者也. 論語 公冶長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마음으로 자책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曾子聞之曰: “多矣乎, 予出祖者!” 禮記 檀弓上

증자가 자유의 말을 듣고 말했다: “나아가서 조전(祖奠)한다는, 내 말보다 훨씬 낫구나!”

 

이상 예문은 감탄어기로 쓰인 예이다.

 

女聞六言六蔽矣乎? 論語 陽貨

그대는 66[6가지 아름다운 덕과 6가지 폐단]를 들었는가?

 

文公卽位三年, 欲用其民. 子犯曰: “民未知義, 盍納天子以示之義?” 乃納襄王于周. 公曰: “可矣乎?” 對曰: “民未知信, 盍伐原以示之信?” 乃伐原. : “可矣乎?”國語 晉語4

진문공이 왕이 된지 3년만에, 주나라에 반란이 일어나 주양왕(周襄王)이 도피해 오니 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백성들을 일으켜 전쟁하고자 했다. 이에 자범이 말하기를: “백성들은 아직 충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니, 천자님을 주나라 왕실로 다시 모시어 충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십시오.” 이에 양왕을 주나라 왕실로 다시 모시었다. 문공이 말했다: “가능하겠는가?” ‘자범이 대답했다: “백성들은 아직 신의가 무엇인지를 모르니, ‘원읍을 정벌하여 신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십시오.” 이에 원읍을 정벌했다. 문공이 말했다: “가능하겠는가?”

 

(9) 상기 7항에서 矣哉의 연용 사례를 살펴본 바 있지만, 그곳에서는 矣哉가 단지 감탄어기로서만 쓰였지만, 여기에서는 의문사로서의 의미가 추가되어 반문 겸 감탄 어기를 나타낸다.

明參日月, 大滿八極, 夫是之謂大人, 夫惡有蔽矣哉? 荀子 解蔽篇

그 밝은 지혜는 해와 달과 같고, 그 위대한 폭은 온 세상에 찼으니, 이를 일러 대인이라고 한다. 그는 어디 한구석인들 가린 데가 있으랴?

 

故明君臨之以勢, 道之以道, 申之以命, 章之以論, 禁之以刑, 故其民之化道也如神, 辨說惡用矣哉? 荀子 正名篇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군왕은 백성들에게 군세로 임하고, 백성들을 올바른 도로 인도하며, 되풀이하여 명령으로 진전시키고, 인륜으로 밝히며, 형벌로 금하는데, 이렇게 되면 백성들의 도에 동화됨이 거의 신비함에 가깝게 되기 때문에, 어찌 변론이나 군세가 필요하게 되겠는가?

 

旣知且仁, 夫惡有不足矣哉? 荀子 子道篇

이미 알고 또 인()하면, 대저 무엇이 부족함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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