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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은 원전으로 읽고 싶어한다
우리가 서양 고전을 말할 때 그 원전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지만, 중국 고전을 말할 때는- 그래도 식자 층이라면- 그것을 원전으로 읽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 문화와 중국 문화의 역사적, 지리적 근접성에서 찾을 수 있을 터이다.
한문의 특징
古漢語 즉 漢文을 포함한 중국어는 다른 언어와 다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발음이 한정적이어서 同音異義語가 많다.
- 격 변화와 어미 변화가 전혀 없다.
- 규칙성이 떨어지기 마련인 慣用語와 成語의 활용이 많다.
첫 번째 특징에 대한 대안으로 聲調變化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 특징인 격 변화와 어미 변화가 없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虛詞의 발전을 가져왔을 터이다.
세 번째 특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중국어에는 말 속에 역사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한국어나 영어 등 기타 거의 모든 나라의 말을 구사함에 있어서는 해당 각국의 역사나 고전에 관한 지식의 유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문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중국어에 있어서도 중국의 역사나 고전에 관한 지식이 없이는그것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인류는 말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를 문자로 기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소리나는 대로 적으면 한글과 같은 소리 글자가 되고, 그 뜻을 간추려서 의미만 전달하면 뜻 글자가 된다.
한문이 바로 전형적인 뜻 글자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갑골문의 기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긴 시간을 두고 발전해온 한문은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와 글로서의 틀이 갖춰졌다고 하지만, 각 지방마다 쓰는 말이 달랐고, 한자도 서로간에 다르게 쓰였던 것이, 한나라 시대에 이르러 펼쳐진 강력한 중앙집권적 문화정책에 힘입어 비로소 표준화된 모습을 점차 갖춰 나가게 되었다. 한왕조 때에 표준화된 기록 체계는 이후 청왕조가 끝날 때까지 중국의 공식적인 기록 체계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한문의 변천
소리 글자 체계인 유럽의 기록 문화도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귀족과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처럼, 한문도 역시 서민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첫째, 당왕조 때에 이르러 대도시가 형성되고 도시에 거주하게 된 서민 계층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신의 의사를 문자로 표시할 필요성이 요구되었고,
둘째, 불교 또한 승려들을 중심으로 서민들에게 경전을 소개하고 불교 설화를 쉽게 전파할 수 있는 서민적인 언어의 문자적 표시 수단이 절실하게 요청되었다.
이 때 통속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변문(變文)이란 것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言文一致의 글로서 우리 나라의 향가처럼 한자를 빌어서 서민의 말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송나라 때부터 구어체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白話文이다. 白話란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라는 뜻인데, 오늘날 중국 대륙에서 공식적인 언어 체계를 이루고 있는 普通話 즉 ‘북경어’는 白話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백화문은 표음 문자적인 기록 수단을 새로이 개발하여 사용하지 않고 文言文의 표기 수단인 한자를 끌어다 썼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에 있어서의 불편함 등 한계를 안고 있다.
백화문은 20세기 초반에 들어와 5.4운동을 거치면서 비로소 공식적인 기록수단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實詞와 虛詞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란 모두 그 쓰이는 용도에 따라 몇 가지 종류의 품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古漢語 즉 한문의 경우에는 이 몇 가지 품사들은 다시 實辭와 虛辭라고 하는 두 가지 형태로 대별할 수 있다.
이 실사와 허사의 분류는, 우선
- 그 말이 가지는 뜻과 성질에 따라 실사와 허사로 나누는 경우와,
- 문장 안에서 그 쓰이는 기능에 따라 나누어 보는 경우가 있다.
실사는 비교적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품사를 말하며, 허사는 비교적 추상적인 의미를 가지는 품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문장은 기본적으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기 마련인데, 일반적으로 실체사가 주어가 되고 동사와 형용사가 술어가 된다. 이외에 보어, 관형어, 부사어 등이 부가적인 성분으로서 추가된다.
다시 말하면, 문장 가운데에서 주요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 즉 문장의 기본 구조상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은 우선 실사로 이루어지는 데 대하여, 단지 어법적 수단으로 쓰이는 부분을 우리는 허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만 궁극적으로 어떤 품사가 실사에 해당하고 어떤 부분이 허사에 해당하는 지에 관하여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명사와 동사가 실사에 해당한다는데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전치사, 접속사, 어기사 및 조사가 허사에 해당한다는 데 대해서도 다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명사와 부사에 대하여는 그렇지가 않다.
어떤 학자는 일부 대명사와 부사, 특히 그 중에서도 指示와 疑問을 표시하는 품사는 허사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기도 한다.
허사공부의 중요성
필자가 중국 고전 원문을 단기간 내에 쉽게 독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얻은 결론은,
첫째, 한문의 허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둘째, 수 많은 중국 고전을 모두 섭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만큼 중국 고전의 에센스만을 모아 놓은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셋째, 한문 문장은 그 전후 맥락을 찾아내서 같이 읽어야 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이전에 공부한 적이 없는 어떤 한문의 구절이나 문장을 접하는 경우, 그 구절이나 문장만을 가지고서는 그 뜻을 파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구절이나 문장이 속해 있는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한 후에야 우리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所由와 체제
그러던 중 楊伯峻(1909-1992) 저 《古漢語虛詞》[북경, 中華書局,1980년]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책에 수록되어 있는 예문들은 아주 모범적인 것이었고, 이를 현대 중국어로 해석해 놓은 중국어 역문 또한 어려운 한문 문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필자는 이 자리를 빌어서, 본서를 엮어나감에 있어서, 큰 골격은 《古漢語虛詞》에 의존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본서는 고전적 한문 예문을 현대 중국어로 번역해 놓은 역문을 현대 중국어로 용이게 읽을 수 있도록 중국어 역문에 병음 부호를 달아서 병기하였다.(한문을 공부하는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듯하여 중국어 역문과 병음은 제외하였다. -고안자 주)
본서는 170개의 허사를 표제어로 선정했으며, 多音節 허사는 그 해당 단음절 허사 밑에 수록하였다.
필자는 본서를 ‘허사 사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엮었지마는, 꼭 알아두어야 할 중국의 주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되는 용어에 대하여는, 가능한 한 빠짐없이 주석을 달아 두었다.
따라서 이 책을 첫 쪽부터 차례로 읽어 내려가면, 마치 소설 책을 읽는 것처럼 이상하리 만큼 줄거리가 유지되면서, 방대한 중국 역사에 관한 큰 그림이 머리 속에 그려지게 된다는 점을 말해두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역사에 관한 일종의 史觀이 서게 된다는 점이다.
현대 중국어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중국어 역문을 무시하고 한문 허사의 해설 부문과 그 예문 그리고 한글 역문만 읽어도 충분히 얻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숭신재 선생의 박학하심과 노고에 탄복해 마지 않으나 나의 한글파일에는 각주로 포함하였을 뿐, 포스팅에는 제외하였다. 허사공부에만 전념하고자 하는 뜻이다-고안자 주)
첨언
① 한문 허사를 익히면서,
② 중국 고전 명문들을 골라서 들여다 보고,
③ 현대 중국어도 공부해 나가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2019년 신춘 숭신재(崇信齋)에서 엮은이
2022.12.31 古岸子 추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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