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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91. 성균관

耽古樓主 2023. 6. 17. 05:38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한국 최초의 대학이 충선왕 때 성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잇고 있으니 대단한 대학의 전통이 아닐 수 없을 뿐더러 세계적인 대학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의 기원을 흔히들 고대 아테네의 아카데미아에 둔다. 20여 년 전에 이 아카데미아의 유지(遺址)를 찾아보고자 아테네를 헤매었으나 어느 한 시민도, 또 당국자도 학자도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완전히 망각 속에 묻힌 이 아카데미아가 있었다는 아크로폴리스신전의 오른쪽 벼랑 밑은 온통 슬럼가가 돼 있었다. 그중 누추한 한 집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던 자리'라고 새겨져 있는 뜨락의 디딤돌이 유일한 아카데미아의 흔적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은세공(銀細工)의 가내수공업으로 호구하고 있다는 그집 주인이 마침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였기로 커피대접을 받고, 그의 귀엽게 생긴 딸아이가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았다는 조선주머니를 꺼내들고 와서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선 플라톤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쟁했던 웅장한 아카데미아의 잔영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아 말고 유럽에 있어 대학의 시초는 1100년대에 세워진 볼로냐대학(이탈리아)과 파리대학(프랑스), 그리고 옥스퍼드(영국)를 친다. 마르틴 루터가 다녔다는 엘프르트대학이나 하이델베르크대학은 14세기 후반에, 괴테가 다녔다는 라이프치히대학은 15세기 초에 세워졌다. 이웃 일본의 최초의 대학은 동경(東京) 대학의 전신인 동경개성(東京開成)학교로 1877년의 일이고.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의 시초는 유럽의 그것에 비해 1백 년 이상이 빠르다. 6개 學部로 된 완벽한 국립종합대학이랄 국자감(國子監)이 설치된 것은 고려 성종(成宗) 11년, 서기 992년의 일이다. 산(算)·율(律)·서(書)를 가르치는 6년제 전문부(專門部)와 9년제의 태학(太學部)·국자학부(國子學部)가 있었고, 교수도 박사(博士)ㆍ조교(助敎)로 호칭하였으니 요즈음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한국 최초의 대학이 충선왕(忠宣王) 때 성균관(成均館)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잇고 있으니 대단한 대학의 전통이 아닐 수 없을 뿐더러 세계적인 대학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국제화 사회에서 서양 사람들의 눈을 가장 휘둥그렇게 하고 또 그들에게 가장 화끈한 관광재(觀光財)는 거북선이나 고려청자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아니라 바로 이 전통일 텐데 그것을 과시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1600년대에 재건된 현재의 성균관엔 강의실이랄 명륜당(明倫堂), 기숙사랄 동서재(東西齋), 도서관이랄 존경각(尊經閣), 강당이요 시험장이랄 丕闡堂, 학생에게 양식을 댔던 양현고(養賢庫) 등 대소건물 50여 개가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과 그 부속건물이 고작이요, 남아 있는 것도 서까래와 기둥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 세계 최초의 대학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