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값이 쌀값을 웃돌고 있다. 보리밭에서 가난 이미지가 증발하고 보리의 가공식품이 느는 데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경작을 기피한 때문이라지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이변이 아닐 수 없다.
보릿고개, 보리떡, 보리죽, 보릿자루 하면 가난 이미지가 물씬하다. '菽麥’ 하면 모자란 사람을, '보리밭 파수꾼' 하면 못된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오뉴월에 보리밭 들판만 지켜보고 있다가 정사(情事)를 발견하면 그것을 미끼로 뜯어먹고 사는 진드기 인간이 보리밭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업고 있는 아기의 성별(性別)을 물을 때, 고추냐 보리냐고 물었다. 남존여비가 혹심했던 옛날인지라 보리라고 대꾸하면 혀를 찼다. 진통 끝에 애 울음소리가 나면 시어머니는 산실(産室) 밖에서 고추냐, 보리냐고 물었다. 보리라는 대꾸를 들으면 시어머니는 가출(家出)로써 딸을 낳은 며느리에게 무언의 보복을 했다. 이래저래 보리는 한국 사람에게 있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보리는 쌀에 버금가는 부차적이요, 차선적인 주식(主食)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단위 면적에서 소출된 쌀의 칼로리에 비겨 보리의 칼로리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영향효율 때문도 있겠고, 맛도 덜하고 취사하는 데 세 곱절 번거롭다. 그래선지 옛날부터 쌀 한 말을 보리 서말과 바꾸는 것이 관례였다.
작금 이 보리값이 쌀값을 웃돌고 있다 하니 사상 최초의 이변이랄 것이다. 보리밭에서 가난 이미지가 증발하고 있고, 또 보리의 가공식품이 느는 데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경작을 기피한 때문이라지만 무엇인가 생각케 하는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주식 분포로 보아 북방(北方) 이동민족이 보리를, 남방(南方) 정착민족이 쌀을 주로 먹는다. 사회 변동으로 이동민족이 정착을 하면 주식을 쌀로 서서히 바꾸고 정착민족이 이동을 하면 주식을 보리로 서서히 바꾼다고 한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선 정착 농경 사회에서 이동 도시 사회로 옮아가는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주식도 밀가루, 라면, 보리 같은 이동성 주식으로 옮아가게끔 돼 있고 그런 추세를 보이고도 있다.
또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는 육체노동에서 적은 열량을 필요로 하는 정신노동으로의 변동이 일어나고도 있어 저칼로리인 보리 선호의 영향학적 근거도 원인(遠因)일 수 있겠다.
보리를 먹으면 속이 편하다는 의학적 근거도 무시해버릴 수 없다. 대맥(大麥)은 완전히 소화되질 않고 대장에 남아 미생물을 번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판토텐산과 B이다. 판토텐산은 땜질에서 산소가 불가결하듯이 세포를 결합시키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이것이 결핍되면 위벽의 점막결합이나 조직약화를 초래하고 자율신경에까지 영향을 끼쳐 창자의 소화운동을 약화시키기에 속이 거북해진다. 또한 보리밥을 먹는 사람에 비해 쌀밥만 먹는 사람의 핏속에는 B6의 함량이 현저히 줄어 동맥의 내벽이 물러지며 혈류가 나빠져 어깨, 허리가 아파오는 노쇠가 촉진된다고 한다.
이모작이 가능한 보리, 그 값 좀 계속 올라 농부들 수입도 늘리고 보리에 붙어 다니는 부정적 이미지도 씻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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