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로서의 구심력을 잃고 됫박에서 흩어져 나간 콩알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인력(引力)을 잃고 사는 현대인의 상황에서 백수문이라는 정신민속이 별나게 싱그럽고 새삼스럽기만 하다.
일심동체로 뜻을 모으고 그 뜻을 다지며 기원하는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구심매체로서 '백수(白首文)'이라는 게 있었다.
어느 한 친지의 자제가 돌을 맞거나 서당에 입학을 하면 1천 명의 친지들이 각자 한 자씩 《천자문(千字文)》을 써서 책으로 엮어 그 아이에게 선물함으로써 면학(勉學)과 장수를 축원했던 것도 백수문의 하나다.
백수(白首)는 하얀 머리, 곧 장수(長壽)를 뜻하니 백수문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장수를 기원하는 글이란 뜻이다.
몇 해 전에 서울에서 열린 한국출판판매 주식회사 주최 희귀도서전에 1937년 3월 1일이 돌날인 이희수(李喜秀)란 아이에게 돌선물로 주어진 《백수문》- - 안춘근(安春根)씨 소장 - -한 권이 전시되었었다. ‘천(天)'자를 쓰고 그 아래에 '하늘텬'이라 훈을 달았으며 그 곁에 쓴 사람의 자필 이름, 그 아래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해서 1천명이 이 축원에 참여하고 있으니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축원을 받고 어떻게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장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또한 이 세상에 한 친지의 자제를 위해 이만한 정성을 들이던 나라가 있는가도 싶다. 한국교육사뿐 아니라 세계교육사에 특기할 만한 일이요, 이 자제 하나를 구심체로 하여 결속된 1천여 명의 정신적 결속 또한 싱그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동심일체를 다지는 정신민속(精神民俗)은 이 밖에도 많다. 정다산(丁茶山)이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어 차를 가꾸며 제자들을 가르쳤었는데, 유배가 풀려 다산이 서울로 올라온 후 그의 제자 20여 명이 다신계(茶信契)를 맺고 해마다 각기 제 차밭에서 수확한 차 한 줌을 보탠 합심차(合心茶)한 봉지와 스승을 흠모하는 시(詩) 한 수씩을 지어 백수문을 만들어 스승에게 보내곤 했던 것이다. 합심선(合心扇) 또는 일심선(一心扇)이라 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부챗살 한 줄기에 단구(短句)와 각자의 이름을 적어 드리기도 했다.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가보면 신미년(辛未年)의 한미소전쟁(韓美小戰爭) 때 강화에서 노획한 전리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죽음을 맹세한 한국 병사들의 합심선도 끼여있어 숙연해졌던 생각이 난다. 스승이나 뜻있는 선비가 회갑을 맞으면 구절(九折)병풍에다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뜻을 받드는 의미에서 시구와 이름을 적어 백수를 축원하기도 했는데 이를 만인병(萬人屛)이라 했다. 만인산(萬人傘)이라 하여 어느 한 고을 원님이 자신의 선정(善政)을 조정에 현창하기 위해 사람을 사주하여 커다란 일산(日傘)에다 많은 사람의 송덕시(頌德詩)를 적은 베 나부랑이를 주렁주렁 달고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잡히며 서울 종로를 오가는 습속도 있었는데, 이것은 백수민속을 악용한 경우랄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구심력을 잃고 됫박에서 흩어져 나간 콩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력(引力)을 잃고 사는 현대인의 상황에서 이 백수문이라는 정신민속이 별나게 싱그럽고 새삼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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