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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0. 명교(名敎)

耽古樓主 2023. 6. 16. 03:30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지금 생각으로는 가장 가벼운 학대 같지만 선비사회에 있어 이름을 훼손한다는 것은 죽음에 버금가는 모독이요불명예요고통이었던 것이다.

 

옛날 관청에 첫 부임을 하면 고참(古參)들이 신참(新參)에게 갖은 학대를 가한 끝에 酒宴 강요하는 악습이 보편화돼 있었다.을이를 '면신례(免新禮)’ 또는 ‘신래침학(新來侵虐)’이라 했는데, 미친 계집의 오줌을 얼굴에 칠하기도 하고 성기를 노출시켜 먹칠을 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에는 발뒤꿈치에 말굽쇠를 박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율곡(栗谷)선생도 이 '면신례'의 희생자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발령을 받았을 때 이 면신례의 학대에 분통을 터뜨리고 사직, 낙향해서 이 폐풍에 대해 상소를 올리고 있다.별의별 학대 가운데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버지나 선조의 이름, 또는 본인의 이름을 쓴 종이를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먹이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가장 가벼운 학대 같지만 선비 사회에 있어 이름을 훼손한다는 것은 죽음에 버금가는 모독이요, 불명예요, 고통이었던 것이다. 우리 옛 관료 사회에 불의 부정·부패를 응징하는 방법으로 팽형(烹刑)이라는 게 있었다. 본래는 끓는 물 솥에 삶아 죽이는 비정적인 형벌이었는데, 한말에는 종로의 종각 앞 네거리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불을 지핀 다음 受刑者 대신 수형자의 이름을 적은 나무 팻말을 솥에 넣고 삶았다.

 

이렇게 사람 대신 이름을 삶아 죽이는 것으로 형벌을 했다는 것은 이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던가의 단적인 증거이며, 동서고금에 이름에다 형벌을 가하는 어떤 전례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명패로 팽형을 당한 장본인은 그날로 형식적인 장례를 치러야 했고 공민권(公民權)을 상실, 평생 동안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촌락자치제랄 수 있는 향약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상벌(上罰)·중벌(中罰)·하벌(下)로 차등을 두어 제재를 가했는데, 선비에게 가하는 하벌이 매를 치는 태형(笞刑)이요, 중벌이 많은 사람 앞에서 책망을 듣는 만좌면책(滿坐面責)이요, 가장 중한 상벌이 이름을 적어 번화한 거리에 내거는 괘명(掛名)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오히려 괘명이 하벌이요, 태형이 상벌일 것 같은데, 이름을 내거는 불명예가 상벌이 된 것은 이름에 따른 불명예, 곧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보다 얼마나 컸던가의 단적인 증거랄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종교가 있다면 바로 이름을 숭상하고 이름을 위해 죽을 수 있었던 '명교(名敎)'랄 수가 있을 것이다.

 

행실에 따르게 마련인 이름의 명예, 곧 명교가 선비정신의 핵심을 이루어왔던 것인데 근대화 과정에서 흐지부지되고 없으니 못내 아쉽다. 얼마 전에는 상습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그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제재키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통 사회의 '괘명'이라는 명예형을 보는 것 같아 그립기도 하지만 이름 따위를 개떡같이 여기는 오늘날 풍조에서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