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양복을 입고 사는 데 저항을 못 느끼고, 집도 양옥에 사는 데 저항을 못 느끼며, 사고도서양의 사고에 곧잘 적응하면서 유독 먹는 것만은 적응, 동화하지 못하는 것일까.
흔히들 서양 사람들은 네 가지 맛밖에 모르고 중국 사람들은 다섯 가지 맛밖에 모르는 데 비해 한국 사람들은 여섯 가지 맛을 안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의 네 가지 맛이요, 중국사람들은 이 네 맛에 쓴맛이 더해 다섯 맛이 된다.
곧 다섯 맛을 조화시킨다는 '오미조화(五味調和)'가 중국 요리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사람은 이 외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삭은 맛'을 더 맛보고 살아왔다. 삭은 맛이란 쉽게 이야기해서 김치가 알맞게 익었을 때 나는 맛이다. 김치류나 된장, 간장, 고추장, 그리고 젓갈같이 부패하기 이전까지 변질시켜 내는 맛이 곧 삭은 맛이다. 아마 우리의 밑반찬들을 보면 거의가 이 삭은 맛을 내는 식품이며 한국인이 맛보는 여섯 가지 맛 가운데 가장 자주 또 많이 즐기는 맛이 이 삭은 맛이다.
이 삭은 맛을 과학적인 말로 달리 표현하면 아미노산의 맛이다.
여느 식품을 적당히 부패시켜 아미노산을 발생시키고 그 아미노산은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아미노산 특유의 '맛나는 맛'을 내준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맛나는 맛을 만들어 내어 맛볼 줄 알았던 것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을 요즈음 사람들은 조미료로 생각하고 있지만 본래는 조미료가 아니라 그 자체 아미노산 맛을 내는 독립된 식품이었다.
■맛난 맛의 옹고집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그 현지 음식만으로는 서너 끼도 못 참고 한식을 찾는다는 것이 상식이 돼 있다. 외국에 가면 외국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십분 터득하고 또 단단히 맘을 먹더라도 한국인 특유의 어떤 食文化의 동일성 작동으로 한국의 맛으로 회귀하고 만다.
옷은 양복을 입고 사는 데 저항을 못 느끼고, 집도 양옥에 사는 데 저항을 못 느끼며, 사고(思考)도 서양의 사고에 곧잘 적응하고 동화하면서 왜 유독 먹는 것만은 적응, 동화하지 못하는 것일까. 3대가 사는 교포의 집에 가서도 변질은 됐을망정 한식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의 맛에 대한 어떤 강한 특질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었다.
맛깔스런 김치니, 맛이 든 젓갈이니, 우리 한국인이 맛보는 맛 가운데 '맛난' 맛이 있다. 넓은 의미로는 미각에 쾌감을 주는 맛이면 모두 맛나다고 말을 하기도 하나, 좁은 의미로는 화학조미료에서 나는 맛을 맛나다고 한다. 영어에도 '테이스티 (tasty)'라 하여 맛나다는 말이 있으나 이 말은 우리말로 廣義의 '맛난'이지 狹義의 '맛난'은 아니다.
이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발달한 맛난 맛을 내는 화학적 원소가 아미노산이요, 한국 식문화의 두드러진 동일성으로서 ‘아미노산 문화'를 들 수가 있다.
우리 한국인이 먹는 음식의 기조(基調) 식품이 돼 있는 간장, 된장, 고추장 맛이 곧 아미노산 맛이요, 된장, 고추장으로 만드는 장아찌류나 찌개류 또한 아미노산 맛이다. 각종 젓갈도 아미노산이요, 그 젓갈로 맛을 내는 김치도 아미노산 맛이다.
맛을 내기 위해 멸치를 넣어 끓이는 국도 아미노산 맛이요, 일본에서 건너와 정착돼 버린 오뎅이나 우동, 메밀 등도 아미노산 맛이며, 우리가 마셔 오던 막걸리, 약주의 맛도 아미노산이 지배하고 있다.
고깃국은 몇 끼 먹으면 질려서 못 먹지만 된장국이며 김치는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고깃국이 기름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한국인에게 체질화돼 있는 이 아미노산 맛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에 가서 양식 몇 끼도 못 먹고 한식으로 돌아오는 그 맹렬회귀(猛烈回歸)도 곧 '맛난 맛'인 아미노산의 미각을 양식이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념이나 소스의 맛은 변화가 없지만 아미노산의 맛은 심오하고 변화가 다양하여 가문에 전승되어 오는 전통적인 솜씨나 그 집 주부의 솜씨에 따라 우러나오는 맛이 다르다.
김치맛도 집집마다 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고 간장, 된장도 모두 다르다. 곧 맛의 첨가 문화권에서는 맛이 통일되고 단조로운 데 비해, 맛을 우려내는 문화권에서는 맛이 다양하고 변화폭이 크다. 개화기 때만 해도 통도사장(通度寺醬)이니 전주백씨장(全州白氏醬)이니 하여 각기 전통있는 솜씨의 맛들이 팔도에 소문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미래 식품은 구미처럼 단일화해 나가야 하느냐, 과거 우리의 동일성처럼 다양화해 나가야 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동안 우리는 단일화 지향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 담그는번거로운 주부의 작업들을 거의 포기해 왔다. 근간의 보도에 의하면 대규모 김치공장이 만들어져 그런대로 '어머니의 맛'을 유지시켰던 김치맛까지 단일화시킬 추세다.
맛의 단일화가 곧 근대화로 착각하게까지 된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에서 현대화하는 것은 단일화된 맛의 다양화에 있는 것이다. 퐁피두 전(前)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인의 생활향상을 위한 '카리 데드 비(생활의 길)' 정책을 펼 때 그 가정의 '특유한 맛을 내는 요리 한두 가지를 가진 가정'을 이상적인 가정으로 내세웠다. 또 미국에서 가장 견실한 중류 가정의 조건으로서 '그 가정이 자랑하는 요리를 하나 이상 갖는다는 것'이 통념화되어 있기까지 하다.
맛의 다양화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현대인의 조건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다양화의 동일성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며, 이 동일성을 살려 나가는 방향으로 문화지향을 해야만 할 줄 안다.
가지고 다니며 먹는 가장 편리한 휴대용 식품 콘테스트가 있다면 이 세상의 그 많은 휴대용 식품 가운데서 우리 한국인이 먹어온 '떡'이 금메달을 차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수백, 수천 리의 나그네길을 떠나면서 겨우 떡 한 무더기를 싸서 허리춤에 차고 간편하게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떡이 그만큼 휴대 식품으로 우수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명에 떡점이니 병점, 혹은 떡고개 떡점거리라는 '떡'이 든 지명이 많은 것은 이 편리한 떡들을 길가는 나그네들에게 팔았던 바로 그 길목이 지명이 되어 전해 오기 때문이다.
혹시 서양 사람들이 먹는 빵이나 크래커 같은 것이 오히려 떡보다 가볍기에 보다 간편한 휴대 식품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빵은 가벼운 대신 치즈나 버터 없이는 영양가로 미루어 불완전 식품이다. 이에 비해 떡은 뱃속에 들어가면 산성화하는 결함은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고칼로리의 영양분일 뿐 아니라 비타민 A, B 그리고 C, F, K라는 희귀 비타민까지 갖춘 완전 식품이다. 바꿔말하면 떡은 우주식품을 제외하고는 맛이 있으면서 가장 많은 열량과 영양가를 갖춘 최소 부피의 식품인 것이다. 더구나 빵은 방부제를 넣는다 해도 어느 시간이 경과되면 부패한다. 그러나 떡은 표면에 콩가루나 계피가루 등 고물을 묻혀 공기와 차단시켜 놓기만 하면 보통 반 년은 썩지 않고 보존된다. 그래서 옛날 가통이 있는 집안에는 1년 된 떡도 있었던 것이다. 휴대 식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보존식품으로서도 떡은 금메달감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난리나 가뭄에 대비하여 곧잘 떡을 빚어 보존하는 슬픈 관습이 있었지만 이 세상에 이렇게 먼 앞날을 내다볼 수 있도록 보존성이 긴 식품을 가졌던 우리 선조의 슬기는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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