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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68. 싸리나무 기둥

구글서생 2023. 6. 16. 03:17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과학적으로 산답시고 순도 높은 염화나트륨을 만들어 먹는 현대인과 거친 소금을 먹었던 우리 선조들과 어느 편이 더 과학적인가는 자명해질 줄 안다.

 

자연에 협조하면서 자연을 극복하는 과학적 지혜는 그 밖에도 많다.

 

마을이 취락하면 반드시 그 마을 앞에는 숲이 조성돼 있게 마련이다. 이 마을 앞 숲은 다목적이다. 차가운 바람을 막는 방풍(防風)의 구실, 그리고 마을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끔 가리는 구실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퍽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경기도에서 북상할수록 이 마을 앞 방풍림(防風林)이 느티나무나 상수리나무 등 가을에 잎이 지는 낙엽수로 되어 있고 충청도에서 경상도나 전라도로 남하할수록 이 방풍림은 소나무나 잣나무 그리고 대나무 같은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로 돼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방풍림은 자연적으로 자라난 나무들이 아니라 직접 사람이 심어 조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무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방풍할 필요가 있는 것은 주로 여름철이다. 특히 태풍이 잦은 늦여름철이다. 그 무렵에 낙엽수는 잎이 무성하기에 바람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겨울에 있다. 중부 이북의 겨울은 춥고 길다.

 

그러기에 겨울에 필요한 것은 바람막이보다 햇볕인 것이다. 만약 이 추운 지방에서 상록수를 심어 두면 겨울에 바람뿐 아니라 볕마저 막아 버린다. 낙엽수는 이 시기에 잎을 떨어트리고 가지만 그 대신 햇볕을 충분히 통과시켜 준다.

 

남쪽에는 겨울에도 볕받이가 좋기에 상록수로 되지만 추운 중부지방 이북에서는 볕이 아쉽기에 낙엽수로 방풍림을 조성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자연에 순응하면서 과학적 지혜를 부렸던 것이다. 무턱대고 자연을 정복하는 서양의 과학에 비해 아름다운 과학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가본 사람이면 인정전이니 명정전이니 우람한 건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고궁뿐만 아니라 해인사며 법주사며 화엄사 등 고찰들도 구경했을 줄 안다. 물론 건축학자나 건축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옛 건물들의 자세한 부분까지 들여다 보지는 않았겠지만 관계 학자들이 유심히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름드리 기둥과 그 기둥이 받치고 있는 처마 부분과의 틈새에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탄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

 

비를 맞거나 또는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는 그 기둥들이 물을 머금을 것이고 또 땡볕에 건조되는 등 수천 년 수백 년 동안 젖고 마르기를 거듭했을 텐데도 단 1센티미터의 수축이 없었다는 것은 과학적인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

 

수축률이 아주 적다는 쇠, 그 쇠로 만든 철도의 레일도 복중의 더운 기후에 늘어나기에 레일의 이을목을 어느 만큼 띄어 놓는다는 것은 상식이 돼 있다.

 

한데도 수축률이 심한 이 나무 기둥에 틈새가 벌어지지 않게 했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 고도의 과학적 두뇌가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랄 것이다.

 

옛 건물의 아름드리 기둥, 그 나무 기둥의 결이나 공이를 유심히 보고 다니노라면 거의 같은 나무로 기둥을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를 알아보았더니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아니면 싸리나무인데 예외가 없다. 왜 이 나무로만 기둥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근간에 학자들에 의해 풀리고 있다. 침엽수나 싸리나무는 가로로는 수축하지만 세로로는 수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서양에서는 밤나무, 느티나무 등 잎이 넓은 활엽수를 건축에 많이 쓰는데 이 나무들은 가로 세로 전체적으로 수축을 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큰 건물을 지을 때 그 역학적인 힘의 분산법을 잘 가늠하여 세로로 수축되지 않는 나무를 선택해서 지었기로 몇천년 몇백 년이 지나도록 1센티미터의 오차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현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