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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26.성묘

구글서생 2023. 6. 15. 05:06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대체로 성묘는 1년에 한 번이 상식이요그나마도 성묘하는 나라보다 하지 않는 나라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 한국의 망혼이 가장 행복하다.

 

언젠가 여객기 옆자리에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일본 여인과 나란히 앉아 여행한 일이 있다.

 

하와이 여행을 위해 3년 동안 예금을 하는 도중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어 혼자 오게 됐다면서 생각하다가는 울고 울다가는 생각하곤 했다. 하와이 상공에 이르자 이 여인이 '도창(아빠)!' 하고 부르기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더니 핸드백 속에서 죽은 남편의 위패를 꺼내어 창문에 갖다 대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와이키키 해변이 내려다보입니다. 보이지요?”

 

위패를 통해 사자(死者)와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사자와의 대화를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한다. 죽은 친구의 집에 들러 현관에 올라서면 미망인은 불단(佛壇)에 차려놓은 위패의 상자문을 열고 아무개가 수박 한 덩이 사들고 왔다고 마치 산사람에게 말하듯 한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에선 사자와 생사(生者)의 사이가 가깝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한국처럼 그 거리가 접근되어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죽으면 3년간 탈상할 때까지 상청을 차려놓고 조석으로 산 사람처럼 밥을 차려 올렸으며, 그동안은 무색옷도 못 입고 술과 고기를 먹어도 안 되었으며 아이를 만들어도 안 되었다.

 

집에 불이 나면 불에 갇힌 산 사람보다 신주를 먼저 꺼내는 것이 법도였다. 그 때문에 타죽은 효자 · 열녀가 얼마나 많았던가………. 옛날의 효자들은 탈상할 때까지 3년 동안 무덤 옆에 초막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사자와 더불어 사는 여묘살이를 했다. 이처럼 사자와 생자와의 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탓인지 연중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고, 또 성묘하는 빈도도 이 세상에서 가장 잦다. 옛날에는 사시사철 네 번 성묘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봄에는 청명(淸明)에, 여름에는 중원(中元, 7월 15일)에, 가을에는 추석에, 겨울에는 동지(冬至)에 눈을 밟고 성묘를 하고 무덤 위의 눈을 쓸었던 것이다. 지금은 청명과 추석, 그리고 제삿날 세 차례가 상식이지만, 이 세 번 성묘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잦은 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단식의 달인 라마단을 전후하여 성묘를 하는데, 재스민꽃을 바치고는 벌초를 하고 묘석을 닦는다. 인도에서는 화장하여 갠지스강에 뿌려버리기에 제삿날 갠지스 강가에서 성대하게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그 음식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미국에서는 5월 30일 메모리얼 데이에 가족들이 부모의 무덤으로 소풍을 가서 꽃을 바치며, 소련에서도 러시아 정교(正敎)의 부활절날에 크리치라는 둥근 빵과 꽃다발을 들고 성묘를 하는데, 이날 성묘객을 위하여 버스가 임시 증차된다고 한다.

 

대체로 성묘는 1년에 한 번이 상식이요, 그나마도 성묘하는 나라보다 하지 않는 나라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 한국의 亡魂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