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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27.경로 민속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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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27.경로 민속

구글서생 2023. 6. 15. 05:07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늙어서 찾아 쓰게끔 된 노후생활연금신탁이 생기자마자 계약고가 몇천억을 웃도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그 폭발적 인기가 바로 폭발적 불안의 지표인 것이다.

 

마을에 애경사(哀慶事)가 있거나 추렴해서 돼지를 잡았을 때 살코기만이 주인 소유요, 그 내장고기는 마을의 노인들 소유로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마을에 따라 60세 이상, 또는 70세 이상의 노인이 있는 집에 골고루 등분하여 나누어주었으며, 이 경로 습속을 배장(配臟)이라 했다.

 

환갑이 지난 노부모를 모시는 집에서는 양식이 떨어져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먼동이 트기 전에 좀 잘사는 집에 찾아가 마당을 쓸어놓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不請의 노동을 '마당쓸이'라 하는데, 노부모의 끼니 이을 양식이 떨어졌다는 묵계된 사인인 것이다. 주인이 보고 머슴을 불러 어느 뉘의 마당쓸이냐고 묻고, 그 노친의 나이를 물은 다음 열흘 먹을 것, 보름 먹을 것을 가져다 주라고 시킨다. 이렇게 베푼 곡식은 상환 의무가 없다. 좀 사는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몫으로 일정량의 곡식을 내어 그 利穀으로 자선을 베푸는데, 이를 수명을 비는 곡식이라 하여 명곡이라 했다. 이 명곡에서 마당쓸이 같은 福祉性의 곡식을 지출했던 것이다.

 

옛날 향약을 보면 춘추(春秋)로 경로잔치를 베풀고, 입동, 동지, 제석(除夕)날에는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 치계미(雉雞米)라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도 보편화되어 있었다. 비단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 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응분의 出捐을 했다.

'도랑탕 잔치'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벼를 베기 위해 논물을 빼는 작업을 도랑친다고 한다.

도랑을 칠 때 누렇게 기름이 오른 미꾸라지가 잡히게 마련이다. 이 미꾸라지를 잡아 국(추어탕)을 끓여 마을 노인들을 불러 대접한다. 그로써 연중 마을 사람들에게 신세지는 보상을 했던 것이다. 숟가락을 허리춤에 끼고 이 빠진 뚝배기 하나 등 뒤에 감춰가지고 할아버지 옷자락을 붙들고 도랑탕 잔치에 따라갔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불청객은 이렇게 식구(食具)를 들고 가야 했던 것이다.

 

배장이며 마당쓸이, 명곡, 치계미, 도랑탕이며 이 모두 노인 복지의 민속적 관행이랄 것이다. 정말 옛날 노인들은 살맛 났음 직하며, 늙은 것이 서럽지 않고 빨리 늙고 싶었음 직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먹고 입고 사는 데 가난했을망정 적어도 노후에 대한 불안은 없었던 나름대로의 복지국가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증발해버린 좋은 유산이 하나둘일까는 이 같은 노인 민속보험(民俗保險)도 크나큰 상실이랄 수가 있다. 그래서 예보다는 잘 먹고 잘 입고 살지만, 노후의 불안은 엄청나게 부풀어 나고 있다. 늙어서 찾아 쓰게끔 된 노후생활연금 신탁이 생기자마자 계약고가 몇천억을 웃도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그 폭발적 인기가 바로 폭발적 불안의 지표인 것이다. 국민의 불안의 소재가 어디에 있으며 또 얼마만한 고압· 고밀도의 불안인가를 정부에 과시하는 지표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