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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6.身尺等式의 지혜

구글서생 2023. 6. 13. 08:48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사람이 크고 작고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의 한 뼘은 대체로 15센티미터요한 뼘의 길이는 그 사람 신장의 대체로 10분의 1에 해당된다곧 열 뼘이 자신의 키가 된다.

 

런던의 한 양말 가게에 들어가 진열장 속을 들여다보았다. 회색 계통의 양말이 쌓여 있는 쪽을 손가락질하며 회색 것을 하나 보여달라고 했다. 한국에서처럼 바로 꺼내 줄 것을 기대하고 보여 달랬던 것인데 이 매점 아가씨는 움직일 생각도 않고 내 발의 사이즈를 묻는 것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맘에 드는 색깔의 것일지라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허사다. 그러기에 빛깔은 사이즈의 차선적인 선택순서가 된다.

 

대체로 유럽 사람에 비해 우리 한국 사람은 실용가치보다 감각적인 요소가 선행되며 따라서 상품의 선택도 맞나 맞지 않느냐 하는 실용성은 빛깔이나 디자인의 선택 후에 차선적인 선택 조건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감각적인 선택 후에 실용적인 선택의 전통적인 수법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맘에 든 그 빛깔의 양말을 굳이 꺼내놓게 하고, 엄지와 인지를 펴 한 뼘을 재고 인지 끝을 굽혀 두 번째 손가락 마디가 와닿는 길이의 양말을 선택하는 것이다. 곧 자기의 발 길이는 자신의 손의 '한 뼘 두 손가락 마디'와 같다는 전통적인 신척등식(身尺等式)의 지혜를 나는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어느 장날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가서 고무신을 사는데, 이같이 나의 뼘과 손가락 마디로 크기를 재게 하여 골라 주셨기 때문이다.

 

영국의 가게 주인은 '우리 장사에 더없는 기술도입'이라면서 그 지혜의 대가로 버킹검 궁전의 위병(衛兵) 마스코트를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사람이 크고 작고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인의 한 뼘〔尺)은 대체로 15센티미터요, 촌척(寸尺)으로 환산하면 5촌(寸)이다. 그러기에 자벌레 기어가듯 두 뼘만 재면 1척이 된다.

 

흥미있는 것은 이 엄지와 인지 간의 한 뼘의 길이는 그 사람 신장의 대체로 10분의 1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곧 열 뼘이 자신의 키가 된다. 신장이 1미터 50센티미터인 사람의 뼘 길이는 15센티미터요, 신장이 1미터 70센티미터인 사람의 뼘 길이는 17센티미터인 것이다. 이같은 등식이 상식화되어 있는 우리 옛 생활에 있어 출입문 등 각종 구조물 축조에 있어 굳이 요즈음 같은 번거로운 표준치가 없더라도 또 자가 없더라도 손쉽게 가장 인간적이고 개성적인 척도를 알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두 손을 펴들었을 때의 손끝과 손끝 길이를 한 길(尋]이라 했다. 물 깊이를 잴 때 '길'이라 하고, 새끼 같은 것을 잴 때는 '발'이라 했다. 이 '길'에도 조물주의 합리적인 조화가 깃들어져 있다. 어느 한 사람의 한 길은 그 사람의 키(丈)와 똑같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대(大)'자로 손과 발을 펴고 잠잘 때 필요한 면적은 가로 세로 바른 네모꼴이 되고, 발이나 키가 5~6척이므로 사방 6척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가로 세로 6척, 곧 한 평의 면적이 한국인의 주공간(空間)의 기본 단위가 된 것이다. 평수도 신척에서 비롯된 너무나 인간적인 척관 단위인 것이다.

 

요즈음 5명의 핵가족으로 치면 5평짜리 방만 있으면 중산층이 됐으니, 옛 선조들의 주거 공간의 節儉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한 마지기, 두 마지기 하는 농토의 면적 단위는 평균 노동력을 지닌 한 사람이 소나 인력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하루에 갈 수 있는 면적으로 이 역시 인간 본위의 인간적인 면적 단위인 것이다.

 

10리란 길이의 단위도 평균적인 사람이 서두르지도 또 늑장부리지도 않고 한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인간 본위의 거리이다. 옛날, 걸어서 공문서를 릴레이로 전달했던 건각의 하루 평균 주파 거리를 80리로 정하고, 보다 길어지면 초과 수당을 지불했던 것도 오늘날 8시간 노동이라는 적정 체력 한계를 체험으로 터득하고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 된다.

 

우리 주변의 모든 생활 도구도 이 사람의 생체 구조에 맞게끔 그 길이와 높이가 돼 있다. 이를테면 대야나 소반, 삼태기, 키, 시루는 두 손으로 운반하고 또 두 손으로 조작하는 생활 도구는 대체로 그 지름이 ‘척오(尺五)’곧 1척 5촌(寸)으로 돼 있다.

 

사람의 어깨 폭은 허리의 지름에 양팔의 지름을 보탠 것으로 숫자로 따지면 한국 사람의 경우 45센티미터가량 된다. 척으로 환산하면 1척 5촌이 된다. 두 손으로 물건을 나르거나 작업을 할 때 가장 효율성 있게 할 수 있는 인간 공학의 적정 거리는 1척 5촌에서 1척 2촌이라 한다. 곧 두 팔 두께가 3촌이므로 이 어깨 폭에서 안쪽으로 3촌 내외의 지름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성 있게 조작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한국의 전통적 운반 도구는 그 폭이 ‘척오’를 넘지 않는다.

 

물이나 술 같은 액체의 도량형도 서양의 것에 비해 우리의 것이 인간본유요, 인간적이다.

 

우리의 단위로 홉(合)이라는 게 있는데 한 홉의 물이란 목이 말랐을 때 단숨에 마실 수 있는 가장 적정 분량인 것이다.

 

젓가락 길이도 우연하고 범연한 길이 같지만 한국인의 상지부(上肢部) 길이, 곧 어깻죽지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와 똑같다 한다.

 

젓가락질을 할 때, 가장 편리한 역학구조는 입에서 어깻죽지의 길이와 하지부 곧 팔꿈치에서 손목까지의 길이가 평행되고 상지부 길이와 젓가락 든 손에서 입까지의 길이가 평행된 그런 바른 네모꼴일 때라고 한다.

 

이 훌륭한 한국의 인간적인 신척(身尺)의 전통이 증발해 버리고 물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서양의 기계적 척도 속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