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4.아름다운 적선사상 본문
서양 사람은 기독교 윤리에 입각하여 자선을 하고 봉사를 하지만 우리 한국인은 적선을 하고 積德을 해야만이 그 음보로 복을 받고 잘살게 된다고 믿었다.
조선조 명종(明宗) 때 유명한 점장이로 홍계관(洪繼寬)이란 이가 있었다. 그가 예언한 것 치고 맞지 않는 것이 없었기로 고관대작들도 다투어 그를 극진히 대접,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곤 했던 사람이다. 당시 名相인 상진(尙震, 1493~1564) 정승도 자신의 한평생 길흉을 미리 점쳐 두었는데, 희한하게 들어맞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상(尙)정승은 홍계관에게 자신의 죽을 해까지도 점쳐 알아두고 있었다. 그 예언 받은 죽을 해를 당하여 상정승은 신변을 정리하고 재산처분을 한 다음 조용히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홍계관은 무슨 일이 있어 전라도에 가 있어서,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만 있으면 찾아 상정승의 안부를 묻곤 했는데, 그 해가 다가도록 아무런 변고가 없었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홍계관이 매우 이상하게 생각해서 상경하여 상정승을 찾아갔다. 상정승은 그를 보자 물었다.
“내가 너의 점괘를 믿고 작년에 명이 다할 줄 알고 기다렸는데 어찌 맞지 않는가.”
이에 대한 홍계관의 대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대감의 인생을 점칠 때에 저의 심력과 영력을 다하였으니 마땅히 틀림이 없을 것이온데 옛사람에 혹 陰德으로 수명을 연장한 분이 있었으니 대감께서도 반드시 그런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상 정승이 말하기를,
“내게 어찌 그런 음덕이 있었겠는가. 다만 옛날, 내가 수찬(修撰)벼슬에 있었을 때 숙직을 마치고 이른 새벽에 집에 돌아가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붉은 보자기를 주운 적이 있었지. 보자기를 펴보니 순금으로 만든 술잔 쌍이더군. 아무 말 않고 가져와 집에다 감추어 놓고 대궐 앞에다 방을 붙이기를 아무날에 붉은 보자기를 잃은 사람은 나한테 찾아오라 했더니 이튿날에 한 사람이 찾아왔지. 그가 바로 임금님의 식사를 맡은 대전(大殿) 수랏간의 별감이 아니겠는가. 엎드려 말하기를 子姪의 혼사가 있어 금잔을 몰래 빼내었다가 잃어버렸으니 들통이 나면 죽음을 못 면하게 되었다면서 애걸하기에 아무 소리 않고 내주어 돌려보낸 일이 있었지.”
이 말을 듣고 홍계관은 대답했다.
“대감의 수명이 연장된 것은 반드시 이 적선의 음덕으로 응보받았기 때문입니다.”
상정승은 그 후 15년을 더 살다가 별세했던 것이다.
상정승이 음덕으로 보상받은 적선은 비단 이 금잔 사건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좀도적질 한 자가 잡혀 들면 그 도적질을 나무라기보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기한(飢寒)에 못 견디어 부득이한 것이리라.” 하고 도로 그 장물을 주면서,
“만약 춥고 배고프거든 나에게 와서 말을 할 것이며 다시 이런 짓은 하지 마라.”
하고 타일렀던 것이다.
친지들이 새나 짐승을 집안에 가두어 두고 완상하는 것을 목격하면 반드시 놓아보내면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건 짐승이나 사람이나 같은 것이다.”
하고 또 짐승을 잡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어도 반드시 그것을 살려주면서 말했다.
“어찌 차마 산 것을 보고 먹을 것을 생각하겠는가.”
■적선에도 억센 혈연주의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가장 뛰어난 三政丞 가운데 한 분으로 손꼽히는 상진(尙震, 1493~1564) 정승 자신도 그의 선조가 적선한 음덕으로 그렇게 큰 벼슬을 하고 훌륭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연려실기술》이라는 문헌을 보면 상정승의 증조부인 상영부(尙英孚)가 임천(林川) 고을에 살았는데, 재물이 많아서 고을 사람들에게 이식(利殖)을 놓아 내주고 받고 하더니 만년에 이르러서는 그 차용증서를 모두 모아 불태워버렸다. 그렇게 한 마음의 동기를 묻자,
“혹 이 적선으로 후손이 잘될 것을 바라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하더니 과연 뒤에 상진 대감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리 전통적 한국 사회에서는 남을 위해 덕(德)이나 선(善)을 쌓으면 반드시 그 보응을 받는다는 사상이 체질화되어 있었으며, 이 사상이야말로 한국 사람을 선하게 한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서양 사람은 기독교 윤리에 입각하여 자선을 하고 봉사를 하지만 우리 한국인은 적선을 하고 적덕(積德)을 해야만이 그 음보(陰報)로 복을 받고 영달도 하며 잘살게 된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다. 서양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적선은 똑같지만 그 보상을 받는 시기와 장소가 다를 뿐이다. 곧 서양 사람은 저승(내세)에서 자신의 구제(救濟)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람은 이승(현세)에서 자신의 생존시에 자신이나 자신의 자손이 보상을 받거나 생존시에 보상받지 못하면 죽고 난 다음 자신의 자손이 보상받는다고 생각한다. 곧 한국인의 억센 혈연주의가 이 적선의 사상에까지 체질화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국인의 적선은 불교의 인과(因果)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현세에 있어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회복은 전생에서 베푼 선(善)·악(惡)·업(業)에 의해 결정되며 현세에서 저지른 선·악·업은 미래세(未來世)의 화복고락을 좌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불교의 인과설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한국의 억센 가족주의와 절충 융합하여 한국적인 인과설로 변용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어버이가 저지른 악업의 결과가 아무런 죄도 없는 자손에게 응보되어 화를 입는 것으로 알았다. 물론 조상의 선업은 자손의 복원으로 응보받고……
이것은 '적선한 집에 반드시 경사가 있고 적선을 하지 않는 집에 반드시 재앙이 있다 ㅡ《주역》.'는 유교의 가르침과도 부합된다.
우리 한국의 전래동화나 민화, 그리고 고전소설의 모든 주제나 모티브가 바로 이 선업은 선과(善果)로, 악업은 악과(惡果)로 응보받는다는 권선징악으로 일관되어 있음은 이 한국화된 인과사상이 얼마나 한국 사람의 마음속 깊이 침투되어 있었던가의 단적인 증거랄 수가 있다.
<심청전>에서 심청 어미 곽씨(郭氏) 부인은 조상의 제사 잘 받들고, 손님 잘 모시며, 이웃과 화목하고 어려운 사람 잘 도왔던 그 적선의 과보(果報)로써 효녀 심청이를 낳는다. 그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고 인당수 깊은 물에 투신하는 그 살신 효행의 선업이 용궁의 왕비로 환생하는 과보(果報)를 받는다. 그리하여 심봉사는 국구(國舅, 임금의 장인)가 되어 일품(一品) 벼슬을 제수받고 어머니 곽씨 부인은 부부인(府夫人)으로 가자추증(加資追贈) 받아 무덤을 왕릉처럼 꾸미는 것으로 곽씨 부인의 적선과보(積善果報)가 재삼 강조되고 있다.
<흥부전>에서도 심술궂은 놀부는 악과(惡果)로써 패가망신하고 착한 흥부는 선과(善果)로써 복을 받는다.
<숙향전(淑香傳)〉에서 '전생에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살해하였기로 이승에서 아들을 갖지 못하더니……' 하는 것이며 <조생원전(趙生員傳)>에서 여주인공 김 소저가 투신자살했다가 구출되자 ‘소첩은 전생에 죄가 너무 과하여 조실부모하고・・・・・・.' 한 것이라든지 현세의 불행이나 행복을 전생이나 선조의 악업이나 선업의 인과로 여기게 마련이었다.
물론 소설 속의 모티브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옛 우리 선조들은 요즈음 사람들처럼 적선을 하더라도 'give and take'라는, 어떤 당장의 보상을 바라거나 그 선행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공리적(功利的) 저의는 없었던 것이다.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적선사상이 아닐 수 없다.
'한글 文章 > 살리고 싶은 버릇'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6.身尺等式의 지혜 (0) | 2023.06.13 |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5.국토를 애인같이 (0) | 2023.06.13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3.건건이 사리 (0) | 2023.06.13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2.분을 지켰던 선비 정신 (1) | 2023.06.13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1.비타산적 시나브로이즘 (1) | 2023.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