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

三國演義(삼국연의)22회-袁曹起軍

구글서생 2023. 2. 11. 04:42

第二十二回
袁曹各起馬步三軍 關張共擒王劉二將.
제22회
원소와 조조가 각각 마보 3군을 일으키고, 관우와 장비가 함께 왕유 2將을 사로잡다.



卻說
陳登獻計於玄德曰
曹操所懼者袁紹
紹虎踞冀并諸郡帶甲百萬文官武將極多今何不寫書遣人到彼求救?」
각설하고
진등이 현덕에게 계책을 바쳤다.
“조조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원소입니다.
원소가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여러 군에 범처럼 웅크리고 있으며, 백만의 군사를 갖추고, 문관과 무장이 지극히 많으니, 지금 어찌 글을 써서 사람을 보내 그에게 보내어 구원을 청하지 않습니까?”

玄德曰
紹向與我未通往來今又新破其弟安肯相助?」
현덕이 말하였다.
“원소는 예전에 나와 통하여 왕래하지 않았는데, 지금 또한 갓 그 동생을 깨트렸으니 어찌 도우려 하겠소?”

登曰
此間有一人與袁紹三世通家
若得其一書致紹紹必來相助。」
진등이 말하였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으니 원소와 3世通家하였습니다.
그의 글 한 통을 얻어 원소에게 보내면, 원소는 틀림없이 도우러 올 터입니다.”

玄德問何人
현덕이 누구인지 물었다.

登曰
此人乃公平日所折節敬禮者何故忘之?」
진등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공이 평소에 자신을 낮추며 敬禮하는 분인데 무슨 이유로 잊었습니까?”

玄德猛省曰
莫非鄭康成先生?」
현덕이 갑자기 깨닫고 말하였다.
“鄭康成先生이 아닙니까?”

登笑曰
然也。」
진등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原來鄭康成名玄好學多才嘗受業於馬融
원래 정강성은 이름이 玄이니 好學多才하며 일찍이 마융에게 수업하였다.

融每當講學必設絳帳前聚生徒後陳聲妓侍女環列左右
마융은 매번 강학할 때 반드시 붉은 휘장을 치고, 앞에는 학생들을 모이게 하고, 뒤에는 노래하는 기생을 벌여두었으며 시녀를 좌우에 둘러 세웠다.

玄聽講三年目不邪視融甚奇之
정현이 배운지 3년 동안 곁눈질하지 않으니 마융이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及學成而歸融歎曰
得我學之秘惟鄭玄一人耳!」
배움을 이루고 돌아가게 되자 마융이 탄복하며 말하였다.
“나의 학문의 祕傳을 얻은 사람은 오직 정현 한 사람 뿐이구나!”

玄家中侍婢俱通毛詩
정현의 집 侍婢조차 모두 『毛詩』에 통달하였다.

一婢嘗忤玄意玄命長跪階前
한 여종이 일찍이 정현의 뜻을 거스르니, 정현이 오랫동안 계단 앞에 꿇어앉게 하였다.

一婢戲謂之曰
「『胡為乎泥中?』」
한 여종이 그를 희롱하여 말하였다.
“어찌하여 진흙 속에서 행하고 있는가?”

此婢應聲曰
「『薄言往愬逢彼之怒。』」
이 여종이 응답하여 말하였다.
“가서 하소연해도 들은 체하지 않고 그의 노여움만 만났다네.”

其風雅如此
그 아름다움이 이와 같았다.

桓帝朝玄官至尚書
환제 때 관직이 상서에 이르렀다.

後因十常侍之亂棄官歸田居於徐州
후에 십상시의 난으로 인하여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서주에서 살았다.

玄德在涿郡時已曾師事之
현덕이 탁군에 있을 때 일찍이 스승으로 섬긴 적이 있었다.

及為徐州牧時時造廬請教敬禮特甚
서주목이 되자 때때로 廬幕에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敬禮가 매우 특별하였다.

當下玄德想出此人大喜便同陳登親至鄭玄家中求其作書
현덕이 이 사람을 생각해 내고 크게 기뻐하며. 진등과 같이 직접 정현의 집에 이르러 글을 써 주기를 청하였다.

玄慨然依允寫書一封付與玄德
정현이 흔쾌히 승낙하고 글 한 통을 써서 현덕에게 주었다.

玄德便差孫乾星夜齎往袁紹處投遞
현덕이 손건에게 편지를 가지고 밤중에 가서 원소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紹覽畢自忖曰
玄德攻滅吾弟本不當相助但重以鄭尚書之命不得不往救之。」
원소가 보기를 마치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현덕은 내 동생을 공격하여 없앴으니 본래 돕지 않아야 한다. 다만 정상서의 명을 중히 여겨 구원하러 가지 않을 수 없구나.”

遂聚文武官商議興兵伐曹操
마침내 문무의 관원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 조조를 정벌하기를 상의하였다.

謀士田豐曰
兵起連年百姓疲弊倉廩無積不可復興大軍
宜先遣人獻捷天子若不得通乃表稱曹操隔我王路然後提兵屯黎陽
更於河內增益舟楫繕置軍器分遣精兵屯劄邊鄙
三年之中大事可定也。」
謀士 田豐이 말하였다.
“매년 군대를 일으켜 백성들은 피폐해졌고, 倉廩에 곡식의 쌓임이 없으니 다시 대군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사람을 보내 천자에게 전리품을 바치되 통하지 않으면, 곧 표를 올려 조조가 우리의 왕로를 막는다고 핑계를 대고, 그런 후 군대를 이끌고 여양에 주둔합니다.
다시 하내에서 舟楫을 더하고 병기를 정비하며, 정예 군대를 나누어 보내 변경에 주둔합니다.
3년 이내에 대사가 정해질 터입니다.”

謀士審配曰
不然
以明公之神武撫河朔之強盛興兵討曹賊易如反掌何必遷延日月?」
모사 심배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명공의 신 같은 무력과 하삭을 위무한 강성함으로써 興兵討曹賊하면 易如反掌이니 어찌 遷延日月하겠습니까?”

謀士沮授曰
制勝之策不在強盛
曹操法令既行士迕精練比公孫瓚坐受困者不同
今棄獻捷良策而興無名之兵竊為明公不取。」
모사 저수가 말하였다.
“승리를 짓는 계책은 강성함에 있지 않습니다.
조조의 법령은 시행되고, 군사들은 잘 훈련되었으니 공손찬이 앉아서 어려움을 당함과 비교하면 같지 않습니다.
지금 전리품을 바치는 좋은 계책을 버리고 無名之兵 일으킴은 명공을 위해서라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謀士郭圖曰
非也
兵加曹操豈曰無名
公正當及時早定大業
願從鄭尚書之言與劉備共仗大義剿滅曹賊
上合天意下合民情實為萬幸甚!」
모사 곽도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군대로 조조를 치는데 어찌 명분이 없겠습니까?
공께 시기가 이르렀을 때 빨리 대업을 결정함이 합당합니다.
원컨대 정상서의 말을 따라, 유비와 함께 대의에 의지하여, 조조 도적을 무찔러 없애십시오.
위로는 하늘의 뜻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실정에 부합하니 실로 다행이겠습니다.

四人爭論未定紹躊躇不決
네 사람이 爭論하여 정하지 못하니, 원소가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忽許攸荀諶自外而入
갑자기 허유와 순심이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紹曰
二人多有見識且看如何主張。」
원소가 말하였다.
“두 사람은 견식이 많으니 또한 어떠한 주장인지 보여주시오.”

二人施禮畢紹曰
鄭尚書有書來令我起兵助劉備攻曹操
起兵是乎不起兵是乎?」
두 사람이 예를 베풀기를 마치자 원소가 말하였다.
“정상서가 글을 보내어, 내게 군대를 일으켜 유비를 도와 조조를 공격하라 하오.
군대를 일으킴이 옳소? 군대를 일으키지 않음이 옳소?”

二人齊聲應曰
明公以眾克寡以強攻弱討漢賊以扶王室
起兵是心。」
두 사람이 異口同聲으로 말하였다.
“명공은 많음으로써 적음을 이기고, 강함으로써 약함을 공격하고, 한나라의 도적을 토벌하여 왕실을 돕습니다.
기병도 이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紹曰
二人所見正合我心。」
원소가 말하였다.
“두 사람의 견해가 내 마음에 부합한다.”

便商議興兵
하고는 興兵을 상의하였다.

先令孫乾回報鄭玄並約玄德準備接應
一面令審配逢紀為統軍田豐荀諶許攸為謀士顏良文醜為將軍起馬軍一十五萬步兵一十五萬共精兵三十萬望黎陽進發
먼저 손건에게 돌아가서 정현에게 보고하게 하고, 아울러 현덕과는 준비하고 호응을 약속하였다.
한편으로 심배, 봉기로 하여금 통군을 삼고, 전풍, 순심, 허유는 모사로 삼고, 안량, 문추를 장군으로 삼아 馬軍 15만, 步軍 15만 都合 정병 30만을 일으켜 여양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分撥已定郭圖進曰
以明公大舉伐操必須數操之惡馳檄各郡聲罪致討.
然後名正言順。」
인력 배치를 정하자 곽도가 진언하였다.
“명공이 크게 일어나 조조를 치는 것이니, 모름지기 조조의 害惡을 세어가며 지적하고 격문을 각 군에 보내 죄를 성토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명분이 바로 서고, 말이 순조롭게 됩니다.”

紹從之遂令書記陳琳草檄
원소가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서기 陳琳으로 하여금 격문을 草하게 하였다.

琳字孔璋素有才名靈帝時為主簿
진림의 자는 공장이니 평소 재주 있다는 명성이 있었고, 영제때 주부가 되었다.

因諫何進不聽復遭董卓之亂避難冀州紹用為記室
하진에게 간쟁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다시 동탁의 난을 맞아 기주로 피란했는데 원소가 등용하여 記室로 삼았다.

當下令草檄援筆立就
즉시 격문을 초하게 하자 붓을 잡고 그 자리에서 완성하였다.

其文曰
<蓋聞明主圖危以制變忠臣慮難以立權
是以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
有非常之事然後立非常之功
夫非常者固非常人所擬也
曩者強秦弱主趙高執柄專制朝權威福由己
時人迫脅莫敢正言
終有望夷之敗祖宗焚滅汙辱至今永為世鑒
及臻呂后季年祿專政內兼二軍外統梁趙
擅斷萬機決事省禁
下陵上替海內寒心
於是絳侯朱虛興威奮怒誅夷逆暴尊立太宗
故能王道興隆光明顯融
此則大臣立權之明表也
司空曹操
祖父中常侍騰與左悺徐璜並作妖孽饕餮放橫傷化虐民父嵩乞丐攜養因贓假位輿金輦璧輸貨權門
竊盜鼎司傾覆重器操閹遺醜本無懿德
狡鋒協好亂樂禍慕府董統鷹揚掃除兇逆
續遇董卓侵官暴民於是提劍揮鼓發命東夏收羅英雄棄瑕取用
故遂與操同諮合謀授以裨師
謂其鷹犬之才爪牙可任
至乃愚佻短略輕進易退傷夷折䘐數喪師徒
幕府輒復分兵命銳修完補輯表行東郡領袞州刺史被以虎文獎成威柄冀獲秦師一剋之報
而操遂承資跋扈恣行凶忒割剝元元殘賢害善
故九江太守邊讓
英才俊偉天下知名
直言正色論不阿諂
身首被梟懸之誅妻拏受灰滅之咎
自是士林憤痛民怨彌重
一夫奮臂舉州同聲故躬破於徐方地奪於呂布
彷徨東裔蹈據無所
幕府惟強幹弱枝之義且不登叛人之黨故復援旌擐甲席捲起征
金鼓響振布眾奔沮, 拯其死亡之患復其方伯之位 則幕府無德於兗土之民而大有造於操也
後會鑾駕返旆群賊亂政
時冀州方有北鄙之警匪遑離局
故使從事中郎徐勛就發遣操使繕修郊廟翊衛幼主操便放志
專行脅遷當御省禁. 卑侮王室敗法亂紀
坐領三臺專制朝政
爵賞由心刑戮在口
所愛光五宗所惡滅三族群談者受顯誅腹議者蒙隱戮
百僚鉗道路以目
尚書記朝會公卿充員品而已故太尉楊彪
典歷二司享國極位操因緣睚眥被以非罪
榜楚參并五毒備至
觸情任忒不顧憲綱又議郎趙彥
忠諫直言義有可納是以聖朝含聽改容加錫
操欲迷奪時權杜絕言路擅收立殺不俟報聞
又梁孝王先帝母昆墳陵尊顯
桑梓松柏猶宜肅恭
而操帥將校吏士親臨發掘破棺裸屍掠取金寶
至今聖朝流涕士民傷懷
操又特置發丘中郎將摸金校尉所過隳突無骸不露
身處三公之位而行盜賊之態污國害民毒施人鬼
加其細政慘苛科防互設
罾繳充蹊坑阱塞路.舉手挂網羅動足觸機陷
是以袞豫有無聊之民帝都有吁嗟之怨
歷觀載籍無道之臣貪殘酷烈於操為甚
幕府方詰外姦未及整訓
加緒含容冀可彌縫而操豺狼野心潛包禍謀乃欲摧撓棟梁孤弱漢室除滅忠正專為梟雄
往者伐鼓北征公孫瓚強寇桀逆拒圍一年
操因其未破陰交書命外助王師內相掩襲
會其行人發露瓚亦梟夷故使鋒芒挫縮厥圖不果
今乃屯據敖倉阻河為固欲以螳螂之斧隆車之隧
幕府奉漢威靈折衝宇宙
長戟百萬驍騎千群奮中黃育獲之士騁良弓勁弩之勢并州越太行青州涉濟漯
大軍汎黃河以角其前荊州下宛葉而犄其後
雷震虎步並急虜廷若舉炎火以炳飛蓬覆滄海以沃熛炭有何不滅者哉
又操軍吏士其可戰者皆出自幽或故營部曲咸怨曠思歸流涕北顧
其餘袞豫之民乃呂布張楊之餘眾覆亡迫脅權時苟從
各被創夷人為讎敵若回旆反徂登高崗而擊鼓吹揚素揮以啟降路必土崩瓦解不俟血刃
方今漢室陵遲綱維弛絕
聖朝無一介之輔股肱無折衝之勢
方畿之內簡練之臣皆垂頭搨翼莫所憑恃
雖有忠義之佐脅於暴虐之臣焉能展其節
又操持部曲精兵七百圍守宮闕外託宿衛內實拘執懼其篡逆之萌因斯而作
此乃忠臣肝腦塗地之秋烈士立功之會可不勗哉
操又矯命稱制遣使發兵. 恐邊遠州郡過聽給與違眾旅叛. 舉以喪名為天下笑則明哲不取也
即日幽冀四州並進書到荊州便勒見兵與建忠軍協同聲勢
州郡各整義兵羅落境界舉武揚威並匡社稷則非常之功於是乎著其得操首者封五千戶侯賞錢五千萬
部曲偏裨將校諸吏降者勿有所問
廣宣恩信班揚符賞布告天下咸使知聖朝有拘迫之難
如律令>
그 글은 이랬다.
<대저 현명한 군주는 위험을 예측하여 변화를 통제하고, 충신은 환난을 염려하여 權(응변책)을 세운다고 들었다.
따라서 비상한 사람이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어야 비상한 공을 세울 수 있으니, 무릇 비상한 일은 진실로 비상한 사람이 헤아리는 것이리라.
옛날 강한 진은 나약한 주군 때 조고가 권력을 쥐고 조정의 권력을 오로지하여 위엄과 복덕을 자신에게서 말미암게 하였다.
그때 사람들을 협박하니 감히 바른말을 하지 못하였다. 끝내 망이의 재앙이 일어나고 조상의 사당이 불타 없어진 오욕이 지금에 이르도록 길이 세상의 거울이 되었다.
여후의 말년에 이르자 여산과 여록이 정권을 오로지하며 안으로 이군을 겸하고, 밖으로는 양 나라와 조 나라를 통솔하였다.
온갖 정사를 擅斷하고, 궁중의 정사를 결정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능멸하고 윗사람은 태만하여 아무 일도 안 하니, 海內가 실망하고 고통을 겪었다.
이에 강후, 주허후가 위엄을 일으키고 분노를 떨쳐서, 반역자를 誅殺하고 폭도를 공격하여 태종를 받들어 세운 까닭에, 왕도가 흥륭할 수 있었고 광명이 빛났으니 이것은 즉 대신이 權을 세운 밝은 표본이다.
사공 조조의 할아버지 中常侍 曺騰은 좌관, 서황과 함께 나쁜 짓을 하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함부로 저질러 교화를 해치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아버지 조숭은 걸식하던 거지로, 주워 길러짐으로 인해, 뇌물로 지위를 사고 금과 보옥을 수레와 가마에 실어 권세 있는 가문에 가서 3공의 지위를 훔침으로써, 천하를 기울이고 뒤엎었다.
조조는 환관이 남긴 더러운 자로서, 본래 아름다운 덕은 없고, 사납고 교활하고 폭력을 좋아하며, 난을 좋아하고 재앙을 즐겼다.
막부는 응양을 통솔하여 兇逆(환관을 말함)을 소탕하였다.
이어 동탁이 관직을 침범하고 백성들을 사납게 대함을 만나자, 이에 검을 들고 북을 치면서 동하에서 명을 내려 영웅을 거두어 망라하여 허물을 버리고 등용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조와 함께 의논하고 도모하며 군대를 지원해 주었다.
이른바 ‘鷹犬之才’로 발톱과 이빨로 임무를 맡았다.
이에 이르고 보니 어리석고 경박하며 짧은 책략으로 가벼이 나아가고, 쉽게 물러나서, 다치고 죽는 이가 많아 자주 군대를 잃었다.
막부가 번번이 다시 분병하여 정예병으로 채워주어 보충하고, 표를 올려 동군태수, 연주자사를 대행케 하고, 호문을 입게 하여 위엄과 권력을 갖춰주어, 秦나라 군대가 한 번은 이겼다는 보고를 받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원소가 준] 자본을 받아 跋扈하여, 방자하게 흉악한 짓을 하고 백성을 侵奪하고 賢人을 殺傷하고 善人을 해쳤다.
옛 구강태수 변양은 영재가 俊偉하여 천하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바른 낯빛으로 직언하고 논의에 아부함이 없었던 까닭에 목이 잘려 효수되는 죽임을 당했고 처자는 灰滅되는 罪科를 받았다.
이때부터 士林은 분통하고 백성의 원한은 더욱 무거워져서 한 사내[진궁]가 팔을 걷어붙이니 각주가 들고 일어나 한목소리를 내었다.
그리하여 조조 자신은 서주에서 격파되고, 땅은 여포에게 뺏겨 동쪽 변경에서 방황하며 의거할 바가 없었다.
막부는 오직 줄기[천자]를 강하게 하고 가지[제후]를 약하게 한다는 대의, 또 叛人[여포]의 일당이 되려 하지 않은 까닭에 깃발을 내걸며 갑옷을 두르고 정벌하여 석권하였다.
쇠북을 울리면서 여포의 무리를 격파하여, 조조를 사망의 재앙에서 구제하고, 방백[연주자사]의 직위을 회복시켰으니, 막부가 연주의 백성에겐 덕을 베풀지 못하고 조조에게만 크게 베푼 셈이다.
뒤에 거가가 동쪽으로 돌아왔을 때 뭇 도적[양봉, 한섬 등]이 정치를 어지럽혔다.
이때 원소는 막 북쪽 변경에 [공손찬이란] 문제가 있어 변경을 떠날 국면이 아니었다.
그래서 종사중랑 서훈을 시켜 조조에게 명하여 가서 교묘를 수선하고 어린 군주를 도와 호위하게 하였다.
조조는 뜻을 방자하게 하여, 조정을 협박하여 천도하고, 宮闕의 政事를 통제하였다.
왕실을 모욕하고 법률을 깨고 기강을 어지럽혔다.
앉은 채 3대[3공]을 부르는 등 조정을 전제하였다.
봉작, 은상을 마음대로 하며, 형벌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였다.
아끼는 바는 5종[고조부터 4대손까지 9대]을 빛내주고 미워하는 바는 3족[아비, 어미, 아내의 일족]을 멸했으며, 무리 지어 말하는 자는 내놓고 주살을 당하고 뱃속에 의논을 감추고 있는 자는 몰래 誅戮을 당하였다.
百僚는 함구하고 도로에 다니는 사람은 눈으로만 뜻을 표시하였다.
상서는 조회를 기록하고, 공경은 정원과 품계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전 태위 양표는 2사[3공;사공, 사도, 태위]를 역임하고 국가의 중임을 짊어지고 지위가 지극하였다.
조조는 작은 원한으로 인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방초[태장 및 몽둥이 뜸질]를 아울러 가했고, 5독[묵형, 코자르기, 발자르기, 불알자르기, 사형]을 모두 사용하며 감정대로 악행을 저지르고 법률을 되돌아보지 않았다.
또 의랑 조언은 충간하고 직언하니 논의에 嘉納할 점이 있었던 까닭에 성조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얼굴을 고치고 은사를 더하셨는데, 조조가 시대를 현혹하고 권력을 뺏으며 言路를 두절하고자, 함부로 체포하여 즉시 죽이면서, 報聞을 기다리지 않았다.
또 양효왕은 先帝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으로 墳陵의 존귀함이 드러나 있으니 송, 백, 상, 재나무조차 공손하고 엄숙히 다룸이 마땅하다.
그러나 조조는 장교 관리 병사를 이끌고 親臨하여 발굴하고 破棺하여 주검을 드러내었고 보물을 약탈하니 聖朝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했고 선비, 사민이 마음을 상하였다.
조조가 또 발구중랑장, 모금교위를 특별히 설치하니 지나가는 곳마다 파괴되어 주검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몸은 3공의 관위에 있으면서 도적의 모습을 저지르고 국가를 더럽히고 백성을 해치니 해독이 사람과 귀신에게 미쳤다!
더하여 그 미세한 점까지 규제하는 정치는 참혹하여 과방을 서로 개설하였다.
그물과 주살 줄로 좁은 길을 채우고 함정이 길을 막았다.
손을 들면 그물에 걸리고 발을 움직이면 함정에 빠지니 이에 연, 예주 백성은 즐거움이 없고 帝都는 한숨 쉬며 탄식하는 원성이 가득하였다.
서적을 두루 보건데 무도한 신하로서 탐욕하고 잔학함 가운데 조조가 심하다.
막부가 바야흐로 밖의 간사함을 꾸짖느라 미처 가르침을 정돈함에 이르지 못하여, 실마리를 더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임시변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조조는 豺狼같은 야심으로 몰래 불측한 계획을 품고, 동량을 꺾거나 휘게 하여 漢室을 외롭고 약하게 하였다.
충정한 신하는 없애고 오로지 효웅이 되었다.
지난번에 북을 치며 북쪽으로 공손찬을 정벌할 때, 공손찬은 강한 도적에게 포위되어 일 년을 저항하였다.
조조가 아직 깨트리지 못하였을 때 몰래 글을 주고받으며 밖으로는 천자의 군대를 돕는다고 하면서 안으로 서로 습격할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 그 사자가 발각되어 공손찬이 효수되었기 때문에 銳氣가 좌절되어 그 圖謀함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 조조는 오창에 주둔하여 황하가 가로막은 것을 굳게 믿고, 사마귀가 수레 대열에 맞서듯 한다.
막부는 한나라의 신령을 받들고 우주를 절충하고자 한다. 긴 창을 든 병사가 1백만이요 날랜 기병이 1천 부대이다.
고대의 중황, 육, 획 같은 용사들이며 좋은 활과 굳센 쇠뇌를 다루는 병력을 전개하고 있다.
병주에서 태행을 넘고 청주에서 제수와 탑수를 건너고 대군이 황하를 항행하여 조조의 전방을 공격하고, 형주에서 완, 엽 땅으로 내려가서 후방을 압박할 것이다.
천둥벼락처럼 호랑이가 걷듯이 진군하고, 아울러 급히 오랑캐의 뜰에서 횃불을 들어서 지푸라기를 태우듯 하고, 바닷물을 퍼부어서 숯불을 끄듯이 할 텐데 어찌 멸망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또한 조조 군의 관리와 병사로서 싸울 만한 자는 모두 유주와 기주 출신이며, 혹은 옛 영채의 군대여서 모두 가족과 생이별해서 돌아갈 것만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나머지 연주와 예주의 백성은 바로 여포와 장양의 잔당으로서 멸망한 후 협박에 의하여 잠시 따르고 있지만, 마음속의 상처가 깊어서 언제고 보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나의 군대가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북을 두들기고 나팔을 불며 흰 깃발을 들어 항로를 열어 놓을 것이니 흙이 무너지고 기와 풀리듯 하여, 칼에 피를 묻히기를 기다릴 것도 없다.
이제 한나라의 왕실은 쇠약하고 기강이 해이해졌다.
천자에게는 한 사람의 보좌도 없고, 신임하는 신하는 적을 꺾을 세력이 없다.
畿內의 정성스럽고 경륜있는 신하는 모두 머리를 숙이고 날개를 접었기 때문에, 천자가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
비록 충의의 보좌가 있을지라도 포학한 신하에게 협박받을 터이니 어찌 그 절개를 펼 수 있겠는가?
또한 조조는 부곡의 정병 칠백 명을 가지고 궁궐을 둘러싸고 지키면서 밖으로는 천자를 지킨다지만, 안으로는 사실 감금하고 있는 것이라, 그 簒逆의 싹이 이로 인하여 일어날까 염려된다.
지금은 충신이 간뇌를 땅에 바를 때이며, 열사가 공을 세울 기회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조가 또한 천자의 명령을 詐稱하고 권한을 행사하여 사자를 보내 군대를 동원하면, 변경에 멀리 있는 주군이 거짓에 넘어가 군대를 내주어서, 대중을 저버리고 반역에 가담할까 걱정하노라.
움직여서 명예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명철한 자가 취할 것이 아니다.
오늘로 유주, 병주, 청주, 기주 4주의 군사는 함께 진격하라.
글이 형주에 이르면 곧 군대를 점검하여 건충군과 함께 힘을 합쳐 위세를 드날리라.
주군은 각각 의병을 정돈하여 경계에 군대를 나열하고 武威를 擧揚하고 아울러 사직을 바로잡으면 비상한 공적이 여기에서 드러날 것이다.
만약 조조의 머리를 얻은 자는 5천 호의 후에 봉하고, 5천만 전을 상줄 터이다.
사병, 편장, 비장, 장교 및 아전으로서 항복하는 자는 죄를 묻지 않을 터이다.
널리 은혜와 신의를 베풀고 훌륭한 자를 가려 선양하고 법에 따라 상을 주는 것을 천하에 포고하니, 천자가 구박받고 있는 어려움을 널리 알려야 한다.
법에 의거하여 집행하라!>

紹覽檄大喜即命使將此檄遍行州郡並於各處關津隘口張挂
원소가 격문을 살펴보고 크게 기뻐하고 곧 명하여 이 격문을 주군에 두루 보내게 하고, 아울러 각처의 關, 津, 隘口에 걸게 하였다.

檄文傳至許都時曹操方患頭風臥病在床
격문이 전해져 허도에 이르렀는데 그때 조조는 두통을 앓아 침상에서 와병중이었다.

左右將此檄傳進操見之毛骨悚然出了一身冷汗不覺頭風頓愈從床上一躍而起顧謂曹洪曰
此檄何人所作?」
측근이 이 격문을 전해 올리자, 조조가 그것을 보고 毛骨悚然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더니, 저도 모르게 두통이 갑자기 나아서 침상에서 한 번에 뛰어 일어나서, 고개를 돌려 조홍에게 일러 말하였다.
“이 격문은 누가 지었느냐?”

洪曰
聞是陳琳之筆。」
조홍이 말한다.
“진림이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操笑曰
有文事者必須以武略濟之
陳琳文事雖佳其如袁紹武略之不足何!」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글에 있는 일들은 모름지기 武略으로 이루어야 한다.
진림의 글 속의 일은 비록 아름다우나, 원소는 무략이 부족하니 어찌하리오!”

遂聚眾謀士商議迎敵
그리고는 모사들을 모아서 적을 맞을 일을 상의하였다.

孔融聞之來見操曰
袁紹勢大不可與戰只可與和。」
공융이 그것을 듣고 와서 조조를 뵙고 말하였다.
“원소는 세력이 강대하니 더불어 싸워서는 안 되고 다만 화친해야 합니다.”

荀彧曰
袁紹無用之人何必議和?」
순욱이 말하였다.
“원소는 쓸모없는 사람인데 하필 화친을 논의하시오?”

融曰
袁紹土廣民強
其部下如許攸郭圖審配逢紀皆智謀之士田豐沮授皆忠臣也
顏良文醜勇冠三軍其餘高覽張郃淳于瓊等俱世之名將何謂紹為無用之人乎?」
공융이 말하였다.
“원소의 영토는 넓고, 백성은 강합니다.
그 부하 허유, 곽도, 심기, 봉기 같은 이는 모두 지모있는 선비이고, 전풍, 저수는 모두 충신입니다.
안량, 문추는 용맹으로 삼군에 으뜸이며, 그 밖에 고람, 장합, 순우경 등은 모두 당세의 명장인데 어찌 원소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합니까?”

彧笑曰
紹兵多而不整田豐剛而犯上許攸貪而不智.
審配專而無謀逢紀果而無用.
此四人者勢不相容必生內變
顏良文醜匹夫之勇一戰可擒
其餘碌碌等輩縱有百萬何足道哉!」
순욱이 웃으며 말하였다.
“원소의 병사는 많지만 정비되지 않고, 전풍은 강직하지만 윗사람을 범하고, 허유는 탐욕스럽고 지혜롭지 않습니다.
심배는 제멋대로 하되 꾀가 없으며, 봉기는 과감하지만 쓸모없습니다.
이 네 사람은 세력을 서로 용인하지 않으니 반드시 안에서 변고가 생길 터입니다. 안량, 문추는 필부의 용맹이니 한번 싸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녹록한 무리이니 설령 백만이 있다 한들 어찌 말할 만하겠소!”

孔融默然
공융이 말이 없었다.

操大笑曰
皆不出荀文若之料。」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모두 순문약의 헤아림을 벗어나지 않는구려.”

遂喚前軍劉岱後軍王忠引軍五萬打著丞相旗號去徐州攻劉備
마침내 前軍 유대, 후군 왕충을 불러 군사 5만을 이끌고 승상의 깃발을 앞세우고 서주에 가서 유비를 공격하게 하였다.

原來劉岱舊為袞州刺史及操取袞州岱降於操操用為偏將故今差他與王忠一同領兵
원래 유대는 예전에 袞州刺史이었는데, 조조가 연주를 취함에 미쳐 조조에게 항복하였는데 조조가 편장으로 삼았으므로, 지금 왕충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게 한 것이다.

操卻自引大軍二十萬進黎陽拒袁紹
조조가 직접 대군 20만을 이끌고 여양으로 진군하여 원소를 막았다.

程昱曰
恐劉岱王忠不稱其使。」
정욱이 말하였다.
“유대와 왕충이 不稱其使할까 걱정됩니다.”

操曰
吾亦知非劉備敵手權且虛張聲勢。」
조조가 말하였다.
“나도 또한 유비의 적수가 아님을 아오. 임시의 허장성세일 뿐이오.”

分付
不可輕進
待我破紹再勒兵破備。」
분부하였다.
“가벼이 진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원소를 깨트리기를 기다리면, 다시 군대를 돌려 유비를 깨트리겠다.”

劉岱王忠領兵去了
유대와 왕충이 군대를 거느리고 갔다.

曹操自引兵至黎陽
조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여양에 이르렀다.

兩軍隔八十里各自深溝高壘相持不戰, 自八月守至十月
양쪽 군대가 80리를 떨어져 각자 도랑을 깊게 파고 보루를 높이고 기다리면서 싸우지 않고 8월부터 지켜 10월에 이르렀다.

原來許攸不樂審配領兵沮授又恨紹不用其謀各不相和不圖進取
알고 보니, 허유는 심배가 군대를 지휘함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저수 또한 원소가 그 계모를 쓰지 않음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각각 불화하여 나아가 취함을 도모하지 않았다.

袁紹心懷疑惑不思進兵
원소도 속으로 의혹을 품고 進兵을 생각하지 않았다.

操乃喚呂布手下降將臧霸把守青于禁李典屯兵河上曹仁總督大軍屯於官渡
조조가 呂布手下降將 臧霸를 불러 청주와 서주를 지키게 하고, 우금과 이전은 황하 가에 屯兵하게 하고, 조인이 대군을 총독하여 관도에 주둔하게 하였다.

操自引一軍竟回許都
조조는 직접 1군을 이끌고 마침내 허도로 돌아갔다.


且說
劉岱王忠引軍五萬離徐州一百里下寨
각설하고
유대와 왕충이 군사 5만을 이끌고 서주성 밖 100리에 영채를 세웠다.

中軍虛打曹丞相旗號未敢進兵只打聽河北消息
중군에는 조승상의 깃발을 거짓으로 세우고 감히 진병하지 못하고, 다만 하북의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다.

這裏玄德也不知曹操虛實未敢擅動亦只探聽河北
이쪽의 현덕도 조조의 허실을 알지 못하여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역시 하북 소식을 알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忽曹操差人催劉岱王忠進戰
갑자기 조조가 사람을 보내 유대와 왕충에게 진격을 재촉하였다.

二人在寨中商議
두 사람이 영채에서 상의하였다.

岱曰
丞相催促攻城你可先去。」
유대가 말하였다.
“승상이 성을 치라 재촉하시니 그대가 먼저 가게.”

王忠曰
丞相先差你。」
왕충이 말하였다,
“승상께서 그대를 먼저 보내셨네.”

岱曰
我是主將如何先去?」
유대가 말하였다.
“내가 주장인데 어찌 먼저 가겠는가?”

忠曰
我和你同引兵去。」
왕충이 말하였다,
“나와 그대가 같이 군사를 이끌고 가세.”

岱曰
我與你拈鬮拈著的便去。」
유대가 말하였다,
“나와 그대가 제비뽑기를 해서 뽑는 사람이 가면 되겠네.”

王忠拈著只得分一半軍馬來攻徐州
왕충이「先」字를 뽑았으므로, 병력 절반을 나누어 서주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玄德聽知軍馬到來請陳登商議曰
袁本初雖屯兵黎陽奈謀臣不和尚未進取
曹操不知在何處
聞黎陽軍中無操旗號如何這裏卻反有他旗號?」
현덕이 적의 군마가 옴을 알고, 진등을 청해서 상의하여 말하였다.
“원본초가 비록 여양에 주둔했지만, 모사들이 불화하여 아직 진격하지 못하고 있소.
조조는 어딨는지 모르겠소.
듣자니 여양 군중에 조조 깃발이 없고, 도리어 여기에 그 깃발이 있으니 어찌 된 것이오?”

登曰
操詭計百出.
必以河北為重親自監督卻故意不建旗號乃於此處虛張聲勢
吾意操必不在此。」
진등이 말하였다.
“조조는 온갖 속임수를 씁니다.
분명 하북을 중시하여, 스스로 감독하면서 일부러 깃발을 세우지 않고, 여기에는 허장성세입니다.
제 생각에 조조는 분명히 여기에 없습니다.”

玄德曰
兩弟誰可探聽虛實?」
현덕이 말하였다.
“두 아우 가운데 누가 허실을 알아보겠나?”

張飛曰
小弟願往。」
장비가 말하였다.
“제가 가 보겠소.”

玄德曰
汝為人躁暴不可去。」
현덕이 말하였다.
“너는 사람됨이 조급하고 사나우니, 가면 안 된다.”

飛曰
便是有曹操也挐將來!」
장비가 말하였다.
“조조가 있기만 하면 잡아 오겠소!”

雲長曰
待弟往觀其動靜。」
운장이 말하였다.
“제가 가서 그 동정을 살피기를 기다려 주십시오.”

玄德曰
雲長若去我卻放心。」
현덕이 말하였다.
“운장이 가면 내가 안심하겠다.”

於是雲長引三千人馬出徐州來
이에 운장이 3천 인마를 이끌고 서주성을 나섰다.

時值初冬陰雲布合雪花亂飄軍馬皆冒雪布陣
때는 초겨울인데, 먹구름이 몰려오고 눈발이 어지러이 날려서 군마가 모두 눈을 무릅쓰고 포진하였다.

雲長驟馬提刀而出大叫王忠打話
운장이 말을 몰아 칼을 들고 나가서 큰 소리로 왕충에게 말을 걸었다.

忠出曰
丞相到此緣何不降?」
왕충이 나와서 말하였다.
“승상께서 여기에 오셨거늘 무슨 까닭에 항복하지 않느냐?”

雲長曰
請丞相出陣我自有話說。」
운장이 말하였다.
“승상이 출진하게 하라. 내 할 말이 있다.”

忠曰
丞相豈肯輕見你!」
왕충이 말하였다.
“승상께서 어찌 가볍게 너 따위를 만나시겠느냐!”

雲長大怒驟馬向前
운장이 크게 노해서 앞으로 말을 내달렸다.

王忠挺鎗來迎
왕충이 창을 꼬나쥐고 맞섰다.

兩馬相交雲長撥馬便走
두 말이 교차하자 운장이 말을 몰아 달아났다.

王忠趕來轉過山坡雲長回馬大叫一聲舞刀直取
왕충이 뒤쫓아 산언덕을 돌아서 지나는데 운장이 말을 돌려서 크게 한 마디 소리치고 칼을 휘두르며 곧장 달려들었다.

王忠攔截不住恰得驟馬奔逃雲長左手倒提寶刀右手揪住王忠勒甲縧拖下鞍鞽橫擔於馬上回本陣來
왕충이 막았으나 버틸 수 없어, 말을 내달려 달아나려고 하는데, 운장이 왼손으로 보도를 거꾸로 잡고 오른손으로 왕충의 갑옷 끈을 꽉 붙잡아서 안장에서 끌어내려 말 위에 가로로 싣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王忠軍四散奔走
왕충의 군사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雲長押解王忠回徐州見玄德
관운장이 왕충을 압송하여 서주로 돌아와 현덕을 뵈었다.

玄德問
你乃何人
見居何職?
敢詐稱曹丞相!」
현덕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현재 어떤 직책에 있느냐?
감히 조승상을 사칭하다니!”

忠曰
焉敢有詐
奉命教我虛張聲勢以為疑兵
丞相實不在此。」
왕충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거짓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허장성세하여 疑兵이 되라는 명을 받들었습니다.
승상은 실제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玄德教付衣服酒食且暫監下待捉了劉岱再作商議
현덕이 의복과 술, 음식을 주어 잠시 하옥하여 유대를 잡기를 기다리게 하고, 다시 상의하였다.

雲長曰
某知兄有和解之意故生擒將來。」
관운장이 말하였다.
“저는 형님이 和解之意를 가졌음을 알기 때문에 사로잡아 왔습니다.”

玄德曰
吾恐翼德躁暴殺了王忠故不教去
此等人殺之無益留之可為解和之地。」
현덕이 말하였다.
“나는가 익덕이 조급하고 사나워 왕충을 죽일까 걱정해서 보내지 않은 터이다.
이런 사람을 죽임은 이익이 없고, 억류함은 화해의 바탕이 될 수 있다.”

張飛曰
二哥捉了王忠我去生擒劉岱來!」
장비가 말하였다.
“둘째 형님이 왕충을 잡았으니 제가 가서 유대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玄德曰
劉岱昔為袞州刺史虎牢伐董卓時也是一鎮諸侯
今日為前軍不可輕敵。」
현덕이 말하였다.
“유대는 예전에 연주자사였고 호뢰관에서 동탁을 칠 때 1진의 제후였다.
오늘은 선봉이 되었으니 가벼이 맞서서는 안 된다.”

飛曰
量此輩何足道哉
我也似二哥生擒將來便了!」
장비가 말하였다.
“이따위 놈들을 어찌 말할 가치가 있겠소!
저도 둘째 형님처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玄德曰
只恐壞了他性命誤我大事。」
현덕이 말하였다.
“다만 생명을 해쳐서 우리 대사를 그르칠까 걱정이다.”

飛曰
如殺了我償他命!」
장비가 말하였다.
“만일 죽이면 내 목숨으로 보상하겠습니다!”

玄德遂與軍三千
현덕이 마침내 군사 3천을 주었다.

飛引兵前進
장비가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卻說
劉岱知王忠被擒堅守不出
각설하고
유대는 왕충이 사로잡혔음을 알고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張飛每日在寨前叫罵岱聽知是張飛不敢出
장비가 매일 영채 앞에 있으면서 큰 소리로 욕하니 유대가 장비임을 알고, 더욱 감히 나가지 못하였다.

飛守了數日見岱不出心生一計.
장비가 지키기를 며칠, 유대가 나오지 않음을 보고는 마음에 한 계책이 떠올랐다.

傳令今夜二更去劫寨日間卻在帳中飲酒詐醉尋軍士罪過打了一頓縛在營中曰
待我今夜出兵時將來祭旗!」
영을 전하여 오늘 밤 2경에 가서 영채를 겁탈하겠다고 하고, 낮에는 도리어 장막 안에서 술을 마시고, 거짓 취한 척하며 군사의 죄를 들추어 때린 후 진중에 묶어 두고 말하였다.
“내가 오늘 밤 출병할 때를 기다려서, 가져다 깃발에 祭를 올리겠다!”

卻暗使左右縱之去
軍士得脫偷走出營逕往劉岱營中來報劫寨之事
그리고는 몰래 좌우로 하여금 그들을 놓아주게 하였다.
그 군사가 탈출하여 몰래 영채를 빠져나가 지름길로 유대의 영채로 가서 영채를 겁탈하는 일을 알려주었다.

劉岱見降卒身受重傷遂聽其說虛紮空寨伏兵在外
유대가 항복한 병졸의 몸이 중한 상처를 입었음을 보고, 마침내 그 말을 믿고 영채를 비우고 바깥에 복병하였다.

是夜張飛卻分兵三路中間使三十餘人劫寨放火
卻教兩路軍抄出他寨後看火起為號夾擊之
이날 밤 장비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눠서 중간은 30여 인으로 영채를 습격하여 방화하게 하였다.
그리고 양 갈래 군사는 그 영채 뒤로 가로질러서 불이 치솟음을 신호로, 협공토록 하였다.

三更時分張飛自引精兵先斷劉岱後路
中路三十餘人搶入寨中放火
3경 무렵, 장비 스스로 정예병을 이끌고 먼저 유대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중앙의 30여 명은 영채에 쳐들어가서 방화하였다,

劉岱伏兵恰待殺入張飛兩路兵齊出
유대의 복병이 기다리던 터이라 쇄도해 들어갔지만, 장비의 양 갈래 군사가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岱軍自亂正不知飛兵多少各自潰散
유대의 군사가 自亂하여 장비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고 각자 무너져 흩어졌다.

劉岱引一隊殘軍奪路而走正撞見張飛
狹路相逢急難回避交馬只一合早被張飛生擒過去
餘眾皆降
유대가 한 무리 패잔병을 이끌고 함께 길을 앗아 달아나다가 바로 장비와 마주쳤다.
좁은 길에서 마주쳐서 회피하기 아주 어려웠다.
말이 교차하며 단 1합에 어느새 장비에게 사로잡혀 갔다.
나머지 무리는 모두 항복하였다.

飛使人先報入徐州
장비가 사람을 시켜 먼저 서주에 가서 알리도록 하였다.

玄德聞之謂雲長曰
翼德自來粗莽今亦用智吾無憂矣。」
현덕이 듣고 운장에게 말하였다.
“익덕이 원래 거칠기만 했는데 이제 지략도 쓸 줄 아니 나는 걱정이 없다.”

乃親自出郭迎之
이에 친히 성곽을 나가서 맞이하였다.

飛曰
哥哥道我躁暴今日如何?」
장비가 말하였다.
“형님께서 나더러 조급하고 사납다 하셨는데 오늘 어떻소?”

玄德曰
不用言語相激如何肯使機謀?」
현덕이 말하였다.
“말로써 너를 자극하지 않았으면, 어찌 꾀를 쓸 생각을 했겠느냐?”

飛大笑
장비가 크게 웃었다.

玄德見縛劉岱過來慌下馬解其縛曰
小弟張飛誤有冒瀆望乞恕罪。」
현덕이 유대를 묶어 옴을 보고는 황급히 말에서 내려 그 결박을 풀어주며 말하였다.
“제 아우 장비가 잘못하여 모독함이 있었는데 죄를 용서해주시오.”

遂迎入徐州放出王忠一同款待
그리고 서주로 맞이해 들이고, 왕충도 풀어주어 함께 환대하였다.

玄德曰
前因車冑欲害備故不得不殺之
丞相錯疑備反遣二將軍前來問罪
備受丞相大恩正思報效安敢反耶
二將軍至許都望善言為備分訴備之幸也。」
현덕이 말하였다.
“지난번에 차주가 저를 살해하려 하므로 부득이하게 죽였소.
승상께서 제가 반란하는 줄 오해하시고 두 장군을 보내서 죄를 물으셨소.
제가 승상의 대은을 입어서 보답하고 힘쓰려 생각하거늘 어찌 감히 반란하겠소?
두 장군께서 허도로 가서 저를 위해 좋은 말로 변호해주시면 다행이겠소.”

劉岱王忠曰
深荷使君不殺之恩當於丞相處, 方便以某兩家老小保使君。」
유대와 왕충이 말하였다.
“사군께서 저희를 살려주신 은혜를 깊이 입었으니, 마땅히 승상께 가서 방편을 취해서 저희 두 집안 식구들이 사군을 지켜드리겠습니다.”

玄德稱謝
현덕이 稱謝하였다.

次日盡還原領軍馬送出郭外
이튿날 원래 거느렸던 군마를 모두 돌려주고 성 밖으로 나와서 배웅하였다.

劉岱王忠行不上十餘里一聲鼓響張飛攔路大喝曰
我哥哥忒沒分曉
捉住賊將如何又放了?」
유대와 왕충이 10여 리를 못 갔는데 북소리가 한번 나더니 장비가 길을 막고 크게 소리쳤다.
“우리 형님께서 몹시도 분별이 없구나!
잡아놓는 적장을 어찌 다시 풀어주시냐?”

嚇得劉岱王忠在馬上發顫
유대와 왕충이 말 위에서 놀라서 덜덜 떨었다.

張飛睜眼挺鎗趕來背後一人飛馬大叫
不得無禮!」
장비가 눈을 부릅뜨고 창을 꼬나쥐고 뒤쫓는데, 뒤에서 한 사람이 나는 듯이 말을 달리며 크게 외쳤다.
“무례하게 굴지 말라!”

視之乃雲長也
바라보니 바로 운장이었다.

劉岱王忠方纔放心.
유대와 왕충이 그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雲長曰
既兄長放了吾弟如何不遵法令?」
운장이 말하였다
“형님께서 풀어주셨으니 내 아우가 어찌 법령을 어기겠소?”

飛曰
今番放了下次又來。」
장비가 말하였다.
“이번에 놔주면 다음번에 또 쳐들어올 터이오.”

雲長曰
待他再來殺之未遲。」
운장이 말하였다.
“다시 쳐들어오기를 기다려 죽여도 늦지 않다.”

劉岱王忠連聲告退曰
便丞相誅我三族也不來了望將軍寬恕。」
유대와 왕충이 소리를 이어 물러가겠다며 말하였다.
“승상이 3족을 멸한대도 오지 않을 테니 장군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飛曰
便是曹操自來也殺他片甲不回
今番權且記下兩顆頭!」
장비가 말하였다.
“조조가 직접 오더라도 그를 죽여 갑옷 한 조각도 돌려보내지 않겠다!
이번에는 잠시 너희 두 놈 목을 기억해 두겠다.”

劉岱王忠抱頭鼠竄.
유대와 왕충이 머리를 싸쥐고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雲長翼德回見玄德曰
曹操必然復來。」
운장과 익덕이 돌아와 현덕을 보고 말하였다.
“조조가 틀림없이 다시 올 터입니다.”

孫乾謂玄德曰
徐州受敵之地不可久居
不若分兵屯小沛守邳城為犄角之勢以防曹操。」
손건이 현덕에게 말하였다.
“서주는 적에게 받은 땅이니 오래 거주해서는 안 됩니다.
병력을 나눠서 소패에 주둔하고 하비성을 수비하여 의각지세를 이뤄서 조조를 막는 게 좋습니다.”

玄德用其言令雲長守下邳糜二夫人亦於下邳安置, 甘夫人乃小沛人也糜夫人乃糜竺之妹也
현덕이 그 말을 채용하여 운장에게 하비를 지키게 하고, 감, 미 두 부인도 하비에 있게 하니, 감 부인은 소패 사람이요 미부인은 미축의 누이동생이다.

孫乾簡雍糜竺糜芳守徐州
손건, 간옹, 미축, 미방이 서주를 지켰다.

玄德與張飛屯小沛
현덕은 장비와 함께 소패에 주둔하였다.

劉岱王忠回見曹操具言劉備不反之事
유대와 왕충이 돌아가서 조조를 만나서 유비는 반역하지 않았다고 자세히 말하였다.

操怒罵
辱國之徒留你何用!」
조조가 노해서 욕하였다.
“辱國之徒, 너희를 살려두어 어디에 쓰겠느냐!”

喝令左右推出斬之
좌우에게 소리쳐서 끌어내어 베라고 하였다.

正是
犬豕何堪共虎鬥魚蝦空自與龍爭
상황은 정히 이렇다.
개와 돼지가 어찌 호랑이와 싸울 수 있겠는가, 물고기와 새우가 헛되이 용과 싸웠구나.

不知二人性命如何且听下文分解
두 사람의 목숨이 어찌 될까? 다음 문장의 설명을 또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