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篇은 신하 노릇하는 방법에 대해 각종 故事와 君臣間의 문답을 정리하여 提示하였다.
먼저 신하 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원칙인 六正과 행해서는 안 되는 六邪를 구체적으로 標榜하였다.
신하가 되어 국가에 유익하고 임금을 補助하는 도리를 闡明하고, 자기의 思想을 가지고 進賢과 讓賢의 德이 중요함을 提示하였다. 또한 자신의 독립적 인격을 지켜 임금의 부속물이 되지 않아야 됨을 강조하였다.
忠臣과 賊臣의 행위를 기술하여 ‘順’과 ‘柔’, ‘忠’과 ‘亂’의 표준을 구별하고, 諫‧諍‧輔‧弼의 준칙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이는 《荀子》 〈臣道〉의 영향을 받아 한층 발전시킨 論述이라 할 수 있다.
1. 신하된 자의 처세술
-<貞觀政要> 擇官篇에서는 설원의 六正六邪를 인용하였다.
人臣之術,順從而復命,無所敢專,義不苟合,位不苟尊;
必有益於國,必有補於君;
故其身尊而子孫保之。
신하된 자의 처세술은 순종하여 명령받은 일의 결과를 보고하고, 마음대로 專行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 구차히 영합하지 않고, 지위에 있으면서 구차히 존중받지 않고,
반드시 나라에 유익하며 반드시 군주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의 몸은 존귀해지고 자손은 보존된다.
故人臣之行有六正六邪,行六正則榮,犯六邪則辱,夫榮辱者,禍福之門也。
그 때문에 신하의 행실에는 六正과 六邪가 있어서, 六正을 행하면 영화롭고 六邪를 범하면 욕되니, 영욕은 행복과 재앙의 문이다.
何謂六正六邪?
무엇을 六正과 六邪라 하는가?
六正者:
六正은 다음과 같다.
一曰萌芽未動,形兆未見,昭然獨見存亡之幾,得失之要,預禁乎未然之前,使主超然立乎顯榮之處,天下稱孝焉,如此者聖臣也。
첫째, 일이 아직 싹트지 않고 형체와 조짐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국가 존망의 징후와 득실의 조짐을 홀로 분명하게 보아서, 사전에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방지하여, 군주를 초연히 영예로운 높은 자리에 있도록 하니, 천하 사람들이 孝라고 칭찬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聖臣>이다.
二曰虛心白意,進善通道,勉主以體誼,諭主以長策,將順其美,匡救其惡,功成事立,歸善於君,不敢獨伐其勞,如此者良臣也。
둘째, 마음을 비우고 뜻을 밝히고 좋은 말을 올리고 도의에 통하여 군주를 예의에 힘쓰게 하고 좋은 정책을 깨우쳐서, 군주의 아름다운 덕을 받들어 따르려 하고 군주의 나쁜 행위는 바로잡아서, 일이 성사되어 이루어지면 좋은 공은 군주에게 돌리고 감히 자기의 공로라고 자랑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良臣>이다.
三曰卑身賤體,夙興夜寐,進賢不解,數稱於往古之德行事以厲主意,庶幾有益,以安國家社稷宗廟,如此者忠臣也。
셋째, 자신의 몸을 낮추고 미천하게 처신하여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면서 일하고, 어진 이를 천거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자주 옛 성현의 덕행을 칭송하여 군주의 뜻을 격려하면, 대체로 도움이 되어 국가의 사직‧종묘를 안정시킬 터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忠臣>이다.
四曰明察幽,見成敗早,防而救之,引而復之,塞其間,絕其源,轉禍以為福,使君終以無憂,如此者智臣也。
넷째, 드러나지 않은 은미한 일을 밝게 살펴 성패를 일찍이 예견하고 방지하여 구하고 인도하여 정상으로 회복해서, 좋지 못한 틈을 막고 화의 근원을 끊음으로써 화가 바뀌어 복이 되게 하여 군주에게 끝까지 근심이 없도록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智臣>이다.
五曰守文奉法,任官職事,辭祿讓賜,不受贈遺,衣服端齊,飲食節儉,如此者貞臣也。
다섯째, 법을 준수하고 법도를 받들어 관직을 맡고 업무를 담당하며, 많은 녹봉과 하사하는 상을 사양하며 뇌물을 받지 않고 의복을 단정히 하며 음식을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貞臣>이다.
六曰國家昏亂,所為不道,然而敢犯主之顏面,言君之過失,不辭其誅,身死國安,不悔所行,如此者直臣也,是為六正也。
여섯째, 국가가 혼란하여 군주의 행위가 道義에 맞지 않아도 군주의 얼굴을 감히 거스르고 정면에서 군주의 잘못을 지적하여 誅殺을 피하지 않고 죽더라도 나라가 안정되면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直臣>이며, 이것을 六正이다.
六邪者:
六邪는 다음과 같다.
一曰安官貪祿,營於私家,不務公事,懷其智,藏其能,主饑於論,渴於策,猶不肯盡節,容容乎與世沈浮上下,左右觀望,如此者具臣也。
첫째, 관직에 편안히 있으면서 녹봉을 탐하여 개인의 가문을 도모하고 공무에 힘쓰지 아니하며 자기의 지혜를 숨기고 재능을 감춰, 군주는 政論에 굶주리고 정책에 목말라 하는데도 節義를 다하려 하지 않고 세상과 화합하여 시세에 따라 浮沈하며 좌우의 정세를 관망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具臣>이다.
二曰主所言皆曰善,主所為皆曰可,隱而求主之所好即進之,以快主耳目,偷合苟容與主為樂,不顧其後害,如此者諛臣也。
둘째, 군주가 하는 말을 모두 좋다고 하고 군주가 하는 일을 모두 옳다고 하며, 암암리에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즉시 바쳐서 군주의 이목을 즐겁게 하면서, 비위를 맞추어 환심을 사서 군주와 함께 즐기며, 그 후에 닥치는 폐해는 고려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諛臣>이다.
三曰中實頗險,外容貌小謹,巧言令色,又心嫉賢,所欲進則明其美而隱其惡,所欲退則明其過而匿其美,使主妄行過任,賞罰不當,號令不行,如此者姦臣也。
셋째, 마음에는 사악하고 부정한 생각이 가득하나 겉모습은 소심하고 삼가서 듣기 좋은 말과 아첨하는 안색을 지으며, 또 마음속으로 어진 이를 질투하고, 자기가 추천하려는 사람이면 그의 좋은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기며, 배제하려는 사람이면 그의 잘못은 드러내고 좋은 점은 숨겨서, 군주가 함부로 행동하고 잘못 임명하게 하고, 상벌을 부당하게 하고 號令을 시행되지 못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姦臣>이다.
四曰智足以飾非,辯足以行說,反言易辭而成文章,內離骨肉之親,外妒亂朝廷,如此者讒臣也。
넷째, 지혜는 나쁜 일을 꾸미기에 충분하고, 말솜씨는 설득시키기에 충분하며, 말을 바꾸기를 쉽게 하고 감언이설로 화려하게 하여, 안으로는 혈육의 친분을 이간하고 밖으로는 조정 사람을 질투하여 혼란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讒臣>이다.
五曰專權擅勢,持招國事以為輕重, 於私門成黨以富其家,又復增加威勢,擅矯主命以自顯貴,如此者賊臣也。
다섯째, 제멋대로 권세를 독점하여 國事를 장악해 좌지우지하고, 개인적인 파당을 만들어 자기 집을 부유하게 하며, 또다시 자기의 위세를 증가시키고, 군주의 명령을 멋대로 속여서 자신의 귀함을 높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賊臣>이다.
六曰諂言以邪,墜主不義,朋黨比周,以蔽主明,入則辯言好辭,出則更復異其言語,使白黑無別,是非無間,伺侯可推,而因附然,使主惡布於境內,聞於四鄰,如此者亡國之臣也,是謂六邪。
여섯째, 아첨하는 말로 간사한 짓을 하여 군주를 불의에 떨어뜨리고, 붕당을 지어 한패가 되어 군주의 총명함을 가리며, 조정에 들어와서는 감언이설을 하고 조정을 나가서는 다시 앞에서 한 말을 바꾸어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시비를 분간하지 못하게 하며, 눈치로 일을 추진하여 기회를 틈타 세력이 있는 곳에 빌붙어 군주의 악행이 나라 안에 퍼지고 사방의 이웃 나라에 할려지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亡國之臣>이라 하며, 이 여섯 가지를 六邪라 이른다.
賢臣處六正之道,不行六邪之術,故上安而下治,生則見樂,死則見思,此人臣之術也。
賢臣은 六正의 도리로 처신하며 六邪의 나쁜 방법은 행하지 않기 때문에 군주는 편안하고 백성은 잘 다스려져서 살아서는 백성이 즐거워함을 보고 죽어서는 백성이 사모함을 보니, 이것이 신하의 길이다.
▶ 復命 : 명령받은 일을 집행하고 나서 그 결과를 보고함.
▶ 苟合 : 아부하다.
※ 六正 : 바른 일을 하는 여섯 종류의 신하로 聖臣:성스러운 신하, 良臣:선량한 신하, 忠臣:충성스런 신하, 智臣:지혜로운 신하, 貞臣:곧은 신하, 直臣:바른 신하를 말한다.
▶ 昭然 : 매우 분명하다.
▶ 幾 : 조짐. 징조
▶ 體誼 : <貞觀政要>에서는 禮義로 기록하고 있다.
▶ 長策 : 좋은 계책.
▶ 伐 : 자랑하다.
▶ 夙興夜寐 :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잔다는 뜻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職務에 沒頭하여 부지런히 일함을 이르는 말.
▶ 解 : 게으르다. <정관정요>에는 懈로 기록하고 있다.
▶ 數 : 자주.
▶ 庶幾 : 대체로.
※ 六邪 : 나라에 해로운 여섯 종류의 신하. 具臣:숫자만 채우는 신하, 諛臣:아첨하는 신하, 奸臣:간사한 신하, 讒臣:참소하는 신하, 賊臣:불충한 신하. 亡國之臣:나라를 망치는 신하를 말한다.
▶ 容容 : 庸庸과 같다. 세상과 화합하다. 평범하고 보잘것없음.
▶ 具臣 : 단지 숫자만 채우는 신하.
▶ 偷合苟容 : 남의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환심을 사려고 하다.
▶ 諛臣 : 아첨하는 신하.
▶ 頗險 : 사악하고 부정함. 頗는 비뚤어지다.
▶ 說 : 유세하다. 설득하다.
▶ 反言易辭 : 말을 바꾸기가 쉽다.
▶ 讒臣 : 참소하는 신하.
▶ 擅矯 : 제멋대로 속이다.
▶ 賊臣 : 불충한 신하.
▶ 諂言 : 아첨하는 말.
▶ 比周 : 한패가 되다. 比는 친하다.
<정관정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禮記》曰:「權衡誠懸,不可欺以輕重。繩墨誠陳,不可欺以曲直。規矩誠設,不可欺以方圓。君子審禮,不可誣以奸詐。」然則臣之情偽,知之不難矣。又設禮以待之,執法以御之,為善者蒙賞,為惡者受罰,安敢不企及乎?安敢不盡力乎?
<禮記> <經解>에 이르기를 ‘저울추가 잘 매달리면 輕重을 속일 수가 없고, 먹줄이 잘 펴지면 曲直을 속일 수가 없으며, 곡자와 그림쇠가 잘 쓰이면 둥글고 모난 것을 속일 수 없고, 군주가 예에 밝으면 간사함으로 속일 수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신하의 진실과 허위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또 군주가 예로 신하를 대우하고 법으로 제어하여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게 한다면 어찌 감히 따라가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는가?
2. 三公‧九卿‧大夫‧列士의 차이
湯問伊尹曰:
「三公九卿大夫列士,其相去何如?」
湯王이 伊尹에게 물었다.
“三公‧九卿‧大夫‧列士는 그 차이가 어떠하오?”
伊尹對曰:
伊尹이 대답하였다.
「三公者,知通於大道,應變而不窮,辯於萬物之情,通於天道者也;
其言足以調陰陽,正四時,節風雨 ;
如是者舉以為三公,故三公之事,常在於道也。
“三公은 지혜가 나라를 다스리는 큰 도리에 통하고, 변화에 대응하여 다함이 없고, 만물의 실정을 분별하고 天道에 통달한 자입니다.
그의 말은 음양의 변화를 조절하고, 네 계절을 바로잡고, 風雨를 절제하기에 족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추천하여 삼공으로 삼으매 삼공의 업무는 항상 天道를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九卿者,不失四時通於溝渠,修隄防,樹五穀,通於地理者也;
能通不能通,能利不能利,如此者舉以為九卿,故九卿之事,常在於德也。
九卿은 네 계절의 변화를 어기지 아니하여 하천을 소통시키고 제방을 수축하며 오곡을 심어서 地理에 통달하는 자입니다.
남이 소통시키지 못하는 것을 소통시키고 남이 이롭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이롭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을 추천하여 구경으로 삼으매 구경의 업무는 항상 덕을 베푸는 데 있습니다.
大夫者,出入與民同眾,取去與民同利,通於人事,行猶舉繩,不傷於言,言之於世,不害於身,通於關梁,實於府庫,如是者舉以為大夫,故大夫之事常在於仁也。
大夫는 출입함에 백성과 함께 어울리며, 取捨에 백성과 이익을 함께하고, 인정과 사리에 통달하고, 행위는 가히 먹줄로 잰 듯 법도에 맞고, 말함에 남을 해치지 않고, 세속에 말하여도 자신을 해치지 않고, 관문과 다리를 개통하고 창고를 충실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을 추천하여 대부로 삼으매 대부의 업무는 항상 仁政을 펴는 데 있습니다.
列士者,知義而不失其心,事功而不獨專其賞,忠政強諫而無有姦詐,去私立公而言有法度,如是者舉以為列士,故列士之事,常在於義也。
列士는 도의를 알아서 자기의 본심을 잃지 않고 일한 공로가 있어도 혼자만 賞을 독점하지 않으며, 충성과 정직으로 힘써 諫하여 간사를 없애고, 사사로움을 버리고 公正을 세워 말에 법도가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을 추천하여 열사로 삼으매 열사의 업무눈 항상 道義를 행하는 데 있습니다.
故道德仁義定而天下正,凡此四者明王臣而不臣。」
때문에 道德仁義가 확정되어 천하가 바르게 다스려지니, 이 네 종류의 사람은 현명한 왕의 신하이지만 신하로 대하지 않습니다.”
湯曰:
「何謂臣而不臣?」
탕왕이 말하였다.
“신하이지만 신하로 대하지 않는다니 무엇을 이르는 것이오?”
伊尹對曰:
「君之所不名臣者四:
諸父、臣而不名,諸兄、臣而不名,先王之臣、臣而不名,盛德之士、臣而不名,是謂大順。」
이윤이 대답하였다.
“군주가 신하라고 부르지 않는 자는 넷입니다.
군주의 伯父‧叔父는 신하이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고, 군주의 형님들은 신하이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고, 先王의 신하는 신하이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고, 덕망이 높은 사람은 신하이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으니, 이것을 大順(순응해야 하는 올바른 도리)이라 합니다.”
▶ 湯 : 湯王. 고대 商나라를 창건한 왕. 걸왕을 명조에서 격파하여 패사시키고 박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이름 履 또는 天乙·太乙. 탕은 字이며, 成湯이라고도 한다.
▶ 伊尹 : 商나라를 개국한 湯王의 재상으로 伊는 이름이고, 尹은 관직명 尹正의 尹이다. 원래 탕왕의 부인이 시집올 때 따라온 노예였으나, 뒤에 탕왕의 桀왕의 정벌을 도와 공을 이루자 阿衡으로 존경받았다.
▶ 三公九卿 : 중국 秦漢 시대의 행정관직. 周나라 때에는 太師, 太傅, 太保의 최고위 관직을 三公이라 하였으며, 少師, 少傅, 少保, 冢宰, 司徒, 宗伯, 司馬, 司寇, 司空 등을 九卿이라 하였다. 三公과 九卿을 합해 公卿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의 大臣을 뜻하였다.
▶ 大夫 : 卿과 士 사이에 위치한 귀족 신분을 가리켰는데, 周 왕실에서 분봉된 각 國의 제후는 大夫와 다시 봉건 관계를 맺었다.
▶ 列士 : 士의 총칭. 주나라 때에는 元士, 中士, 庶士로 나누었다. 列士는 元士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 相去 : 차이. 거리.
▶ 大夫 : 卿과 士 사이에 위치한 귀족 신분
▶ 列士 : 士의 총칭.
▶ 忠政 : 충성과 正直의 뜻으로, 政은 正과 통용한다.
▶ 諸父 : 伯父‧叔父 등
▶ 大順 : 순응해야 하는 올바른 도리.
3.三公‧九卿‧大夫‧列士를 둔 이유
湯問伊尹曰:
「古者所以立三公、九卿、大夫、列士者,何也?」
湯王이 伊尹에게 물었다.
“고대에 三公‧九卿‧大夫‧列士를 둔 것은 무슨 까닭이오?”
伊尹對曰:
이윤이 대답하였다.
「三公者,所以參五事也;
九卿者,所以參三公也;
大夫者,所以參九卿也;
列士者,所以參大夫也。
“三公은 왕의 일에 참여하는 자이고,
구경은 삼공의 일에 참여하는 자이고,
대부는 구경의 일에 참여하는 자이고,
열사는 대부의 일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故參而有參,是謂事宗;
事宗不失,外內若一。」
그러므로 참여하는 사람에 또 참여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을 事宗(일하는 근본)이라 이르고,
事宗을 잃지 않아야 조정의 안팎이 하나처럼 됩니다.”
▶ 五事 : 王事. 왕의 일. <五行大義> 第二十二篇引《帝王世纪》
▶ 事宗 : 일의 근본.
4-1.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子貢問孔子曰:
「今之人臣孰為賢?」
子貢이 孔子에게 여쭈었다.
“지금의 신하 중에 누가 가장 현명합니까?”
孔子曰:
「吾未識也,往者齊有鮑叔,鄭有子皮,賢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알지 못하겠다. 전에는 齊나라에 鮑叔이 있었고, 鄭나라에는 子皮가 있었으니 현명한 사람들이다.”
子貢曰:
「然則齊無筦仲,鄭無子產乎?」
자공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齊나라에 管仲이 있지 않고, 鄭나라에 子産이 있지 않았습니까?”
子曰:
「賜,汝徒知其一,不知其二,汝聞進賢為賢耶?用力為賢耶?」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야, 너는 단지 그 하나만을 알고 그 둘은 모르는구나. 네가 알기로는,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이 賢明하느냐? 나라를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이 賢明하느냐?”
子貢曰:
「進賢為賢?」
자공이 말하였다.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이 賢明합니까?”
子曰:
「然,吾聞鮑叔之進筦仲也,聞子皮之進子產也,未聞筦仲子產有所進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는 포숙이 관중을 추천하였음을 들었고, 자피가 子產을 천거하였음을 들었으나, 관중과 자산이 인재를 추천하였다. 말은 듣지 못하였다.”
▶ 子貢 : 공자의 제자 端木賜의 字. 姓은 端木, 이름은 賜이다. 孔門十哲 중의 1인으로 공자가 언어에 능통하다고 인정하였다. 理財家로서도 알려져 수천 金의 재산을 모았다.
▶ 鲍叔 : 鮑叔牙. 춘추시대 濟나라의 정치가. 管鮑之交라 일컬어지는 친구 管仲을 濟나라의 桓公에게 추천하여 桓公의 정치를 도왔다.
▶ 子皮 : 정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罕虎이다. 公孫舍의 아들.
▶ 子産 : 공손교. 姓은 公孫, 이름은 僑, 字는 子産 또는 子美로 鄭子產으로 일컬어진다. 鄭나라의 현명한 大夫로 春秋時代 후기의 뛰어난 정치가이다. 당시 楚나라와 晉나라 같은 강대국 사이에서 압박받던 鄭나라를 교묘한 외교정책과 내정개혁을 통해 유지함으로써 공자에 의해 군자로 칭송되었다.
04-2. 재상이 될 인재(宰相之才)
이 글은 [史記] 권44.魏世家에 실려 있다.
魏文侯且置相,召李克而問焉,曰:
「寡人將置相,置於季成子與翟觸,我孰置而可?」
魏 文侯가 재상을 임명하려고 李克을 불러 물었다.
“과인이 장차 재상을 임명함에, 季成子와 翟觸 중에 임명하려 하는데, 내가 누구를 임명해야 되겠소?”
李克曰:
「臣聞之,賤不謀貴,外不謀內,疏不謀親,臣者疏賤,不敢聞命。」
이극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에, 비천한 사람은 존귀한 사람을 논하지 않고, 외부 사람은 내부 사람을 논하지 않으며, 소원한 사람은 친척을 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은 군주와의 관계가 소원하고 지위가 비천하여 감히 명령을 따르지 못합니다.”
文侯曰:
「此國事也,願與先生臨事而勿辭。」
문후가 말하였다.
“이것은 國事이니, 선생께서는 일에 임하여 사양하지 마시오.”
李克曰:
이극이 말하였다.
「君不察故也,可知矣.
“군주께서 잘 살펴보지 않은 까닭이니, 잘 살펴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貴視其所舉,富視其所與,貧視其所不取,窮視其所不為.
그 사람이 존귀함에 그가 추천한 사람을 살피고, 부유함에 그가 어울리는 사람을 살피고, 가난함에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고, 궁핍함에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펴야 합니다.
由此觀之,可知矣。」
이 방법을 따라 관찰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文侯曰:
「先生出矣,寡人之相定矣。」
문후가 말하였다.
“선생은 가시구려, 과인의 재상을 결정하였소.”
李克出,過翟黃,翟黃問曰:
「吾聞君問相於先生,未知果孰為相?」
이극이 물러나 翟黃의 집에 들르자 적황이 물었다.
“내가 들으니, 군주께서 선생에게 재상에 선임할 사람을 물었다 하는데 과연 누가 재상이 될지 모르겠구려?”
李克曰:
「季成子為相。」
이극이 말하였다.
“季成子가 재상이 될 터이오.”
翟黃作色不說曰:
「觸失望於先生。」
적황이 안색이 변하며 기뻐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저 觸은 선생께 실망하였소.”
李克曰:
이극이 말하였다.
「子何遽失望於我,我於子之君也,豈與我比周而求大官哉?
“그대는 어째서 갑자기 나에게 실망하였나? 그대가 나를 군주께 천거함이 어찌 나와 함께 한패가 되어 큰 벼슬을 구함이었는가?
君問相於我,臣對曰:
『君不察故也,貴視其所舉,富視其所與,貧視其所不取,窮視其所不為,由此觀之可知也。』
군주께서 나에게 재상에 관하여 묻기에 내가 대답하였네.
‘군주께서 잘 살펴보지 않은 까닭이니, 그 사람이 존귀함에 그가 추천한 사람을 살피고, 부유함에 그가 어울리는 사람을 살피고, 가난함에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고, 곤궁함에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펴야 합니다. 이 방법을 따라 관찰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君曰:
『出矣,寡人之相定矣。』
군주께서 말하였네.
‘가시구려, 과인의 재상을 결정하였소.’
以是知季臣子為相。」
이 때문에 계성자가 재상이 될 줄 알았네.”
翟黃不說曰:
적황이 기뻐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觸何遽不為相乎?
西河之守,觸所任也;
計事內史,觸所任也;
王欲攻中山,吾進樂羊;
無使治之臣,吾進先生;
無使傅其子,吾進屈侯鮒。
“저 觸은 어째서 재상이 되지 못합니까?
西河太守를 제가 추천하여 임명하였고,
計事內史를 제가 추천하여 임명하였고,
군주께서 中山國을 공격하려고 하기에 제가 樂羊을 추천하였고,
중산국을 다스리게 할 신하가 없기에 제가 선생을 추천하였고,
군주의 아들을 가르치게 할 스승이 없기에 제가 屈侯鮒를 추천하였습니다.
觸何負於季成子?」
제가 어째서 계성자만 못합니까?”
李克曰:
「不如季成子.
季成子食采千鍾,什九居外一居中;
是以東得卜子夏,田子方,段干木,彼其所舉人主之師也,子之所舉,人臣之才也。」
이극이 말하였다.
“그대는 계성자만 못하네.
계성자는 采邑에서 나오는 千鍾의 수입 중에서 9/10는 밖에다 나누어주고 1/10만 집안에서 썼네.
이 때문에 동쪽에서 卜子夏‧田子方‧段干木을 얻되, 그가 추천한 사람은 군주의 스승의 감이고, 그대가 추천한 사람은 신하의 감이었네.”
翟黃迮然而慚曰:
「觸失對於先生,請自修,然後學。」
적황이 부끄러워하면서 말하였다.
“저 觸은 선생께 대답할 말이 없으니 자신을 수양하고 난 뒤에 선생께 배우겠습니다.”
言未卒,而左右言季成子立為相矣.
말을 미처 끝내지 않았을 때 곁에 있던 사람이 계성자가 재상에 임명되었다고 보고하였다.
於是翟黃默然變色內慚,不敢出,三月也。
이에 적황이 묵묵히 안색을 바꾸고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며 감히 밖에 나오지 못하기 3개월이었다.
▶ 魏文侯 : 전국시대 魏나라의 초대 제후로 성은 姬, 씨는 魏, 이름은 ‘斯’, 또는 ‘都’이다. 李悝·吳起·樂羊·西門豹 등 인재를 등용하였고,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들었다.
▶ 李克 : 전국시대 초기 魏나라 사람. 子夏의 제자다. 魏文侯가 中山을 멸하고 태자 擊을 中山君에 임명했을 때 翟璜이 천거해 中山相이 되었다.
▶ 季成子 : 魏 文侯의 동생으로 이름은 成이다.
▶ 翟觸 : 翟黃. 翟璜으로도 쓴다. 狄族 출신으로 전국시대 초기의 魏나라의 상경이 되어 위 문후를 보좌하였다. 위 문후에게 吳起‧西門豹‧樂羊‧李克‧屈侯鮒 등을 추천하였고, 직언을 잘하였다. <史記 魏世家>
▶ 何遽 : 어찌. 遽: 어찌 거
▶ 我於子之君也 : 그대가 나를 군주께 천거한 것. <사기 위세가>에는 ‘且子之言克於子之君者’로 기록하고 있다.
▶ 比周 : 한패가 되다. 파당을 짓다.
▶ 西河之守 : 吳起를 말한다. 吳起는 吳子로 불리우며, 전국시대 군사 지도자이며 정치가였다. 위나라 사람으로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섬겼다. 위나라에서 그는 많고 큰 전투를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후에 楚나라로 도주하여 悼王에 의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西河는 황하의 서쪽 지역으로 魏나라가 처음에 吳起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 計事內史 : 西門豹를 말한다. 서문표는 전국시대 魏나라 정치가로 12개의 수로를 파서 논으로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하여, 농업생산 증대에 이바지하였다. 또 그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미녀를 골라 강물에 던지는 풍습의 폐습을 일소하였다.<史記列傳 권126 滑稽列傳>
▶ 中山 : 周나라의 諸侯國 이름으로 전국시대에 中山國이었다. 趙 武靈王에게 멸망하였다.
▶ 樂羊 : 기원전 408년에 魏 文侯가 樂羊을 시켜 中山을 쳐부수게 하였다. 그때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임금은 악양의 아들을 삶아 그 국물을 악양에게 보내었다. 악양은 幕下에 앉아 이를 받아 한 잔을 모두 마셔 버렸다. 결국 악양이 중산국을 깨뜨리자 문후는 그 공으로 상을 주면서도 악양의 마음을 의심하였다. <戰國策 魏策>
▶ 屈侯鮒 : 전국시대 魏나라의 大夫로 屈侯는 複姓이며 이름이 鮒이다.
▶ 千鐘 : 鐘은 고대 용량의 단위로 10釜를 1종이라 하며, 1부는 6말 4되이다.
▶ 卜子夏 : 춘추시대 衛나라 사람으로 子夏는 字이다. 이름은 商이며 공자의 제자이다. 子遊와 함께 문학과에 들었고, 공자가 죽은 뒤 西河에서 학문을 교수하자 魏 文侯가 스승으로 섬겼고,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여 西河夫子로 불리었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 田子方 : 魏나라의 현인으로 이름은 無擇이며 魏 文侯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자의 제자인 子夏 계열의 유학자로 추정된다.
<참고> <莊子 外篇 第21篇 田子方>
▶ 段干木 : 段干生. 전국시대 초기 魏나라의 학자이며 子夏의 제자이다. 성은 段干이고 이름은 木이다.。魏 文侯가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 迮(작) : ‘怍’과 통용한다.
05. 楚令尹이 될 자격
楚令尹死,景公遇成公乾曰:
「令尹將焉歸?」
楚나라 令尹이 죽자 景公이 成公乾을 만나 말하였다.
“영윤 자리가 장차 누구에게 돌아가겠소?”
成公乾曰:
「殆於屈春乎!」
성공건이 말하였다.
“아마 屈春이겠소!”
景公怒曰:
「國人以為歸於我。」
경공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국민들은 나에게 돌아오겠다고 여기오.”
成公乾曰:
성공건이 말하였다.
「子資少,屈春資多,子義獲天下之至憂也,而以為友;
鳴鶴與芻狗,其知甚少,而子玩之。
“그대의 명망은 낮고 굴춘의 명망은 높으며, 子義獲은 천하에서 지극히 염려스러운 사람인데 그대는 벗으로 삼았고,
鳴鶴과 芻狗는 그들의 지혜가 몹시 보잘것없는데 그대는 그들을 장난감으로 삼았소.
鴟夷子皮日侍於屈春,損頗為友,二人者之智,足以為令尹,不敢專其智而委之屈春,故曰:政其歸於屈春乎!」
鴟夷子皮는 날마다 굴춘을 모시고, 損頗는 친구로 삼았으니, 두 사람의 지혜는 영윤이 되기에 충분하건만 감히 자기의 지혜를 제멋대로 쓰지 않고 굴춘에게 위임하였소.
그래서 정권이 굴춘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하였소!”
▶ 令尹 : 춘추전국시대 楚나라의 최고 관직으로 정무를 장악하였다. 당시 秦나라는 丞相, 楚나라는 令尹, 기타 나라는 相國이라 불렀다.
▶ 景公, 成公乾 : 景公과 成公乾은 모두 人名이며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屈과 景은 초나라의 왕족이었다.
▶ 屈春 : 人名.
▶ 資 : 위세와 명망
▶ 子義獲 : 人名.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 鳴鶴, 芻狗 : 人名
▶ 玩 : 장난하다.
▶ 鴟夷子皮 : 人名으로 屈春의 謀士.
▶ 損頗 : 人名
6.군주의 행차 같은 신하의 행차.
田子方渡西河,造翟黃,翟黃乘軒車,載華蓋黃金之勒,約鎮簟席,如此者其駟八十乘,子方望之以為人君也,道狹下抵車而待之。
田子方이 西河를 건너 翟黃을 방문함에, 적황이 수레를 타고 화려한 수레 뚜껑을 덮고 황금으로 장식한 말굴레에 옥을 끈으로 묶은 대자리에 앉았는데, 이러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80채이매, 전자방이 멀리서 바라보고 군주의 행렬이라 여긴 데다, 길이 좁기에 내려서 수레를 밀어놓고 기다렸다.
翟黃至而睹其子方也,下車而趨,自投下風,曰:
「觸」.
적황이 당도하여 그가 전자방임을 보고 수레에 내려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자신을 낮추면서 말하였다.
“翟觸입니다.”
田子方曰:
「子與!吾嚮者望子疑以為人君也,子至而人臣也,將何以至此乎?」
전자방이 말하였다.
“그대인가! 나는 조금 전에 그대를 바라보고 추측하여 군주의 행차라고 여겼는데, 그대가 당도하고 보니 신하였구려, 무엇을 가져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翟黃對曰:
「此皆君之所以賜臣也,積三十歲故至於此,時以間暇祖之曠野,正逢先生。」
적황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모두 군주께서 저에게 하사한 것으로, 30년 동안 모아 쌓았기 때문에 이처럼 되었고, 때마침 한가한 틈을 타 광야에 가다가 마침 선생을 만났습니다.”
子方曰:
「何子賜車轝之厚也?」
전자방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대에게 이 많은 수레를 하사하였는가?”
翟黃對曰:
적황이 대답하였다.
「昔者西河無守,臣進吳起, 而西河之外寧 ;
鄴無令,臣進西門豹, 而魏無趙患 ;
酸棗無令,臣進北門可, 而魏無齊憂 ;
魏欲攻中山,臣進樂羊而中山拔;
魏無使治之臣,臣進李克而魏國大治。
“예전에 西河에 太守가 없기에 제가 吳起를 추천하여 서하의 바깥이 편안하였고,
鄴縣에 縣令이 없기에 제가 西門豹를 추천하여 魏나라에 趙나라의 우환이 없어졌고,
酸棗縣에 縣令이 없기에 제가 北門可를 추천하여 위나라에 齊나라의 우환이 없어졌고,
魏나라가 中山國을 공격하려 하기에 제가 樂羊을 추천하여 중산국을 정벌하였고,
魏나라에 다스릴 신하가 없기에 제가 李克을 추천하여 위나라가 잘 다스려졌습니다.
是以進此五大夫者,爵祿倍以故至於此。」
이렇게 다섯 大夫를 추천함으로써 爵祿이 배로 증가하매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子方曰:
「可,子勉之矣.
魏國之相不去子而之他矣。」
전자방이 말하였다.
“좋소, 그대는 노력하시게!
魏나라 재상의 자리는 그대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겠네.”
翟黃對曰:
「君母弟有公孫季成者,進子夏而君師之,進段干木而君友之,進先生而君敬之,彼其所進,師也,友也,所敬者也,臣之所進者,皆守職守祿之臣也,何以至魏國相乎?」
적황이 대답하였다.
“군주의 同母弟 公孫季成이 子夏를 추천하자 군주께서 스승으로 섬기셨고, 段干木을 추천하자 군주께서 벗으로 사귀셨으며, 선생을 추천하자 군주께서 존경하셨으니, 계성자가 추천한 사람은 군주의 스승이고 벗이며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으나, 제가 추천한 사람은 모두 벼슬살이하며 녹봉을 받는 신하이니 무엇으로 위나라의 재상에 오르겠습니까?”
子方曰:
「吾聞身賢者賢也,能進賢者亦賢也.
子之五舉者盡賢,子勉之矣,子終其次也。」
전자방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자신이 賢者이면 그는 현명하고, 賢者를 추천하는 자도 현명하다고 한다.
그대가 추천한 다섯 사람이 모두 현명하니 그대가 노력하면 그대는 마침내 그다음 차례일 터이네.”
▶ 田子方 : 魏나라의 현인으로 이름은 無擇이며 魏 文侯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자의 제자인 子夏 계열의 유학자로 추정된다.<참고> <莊子 外篇 第21篇 田子方>
▶ 造 : 가다. 방문하다.
▶ 翟黃 : 翟觸. 翟璜으로도 쓴다. 狄族 출신으로 전국시대 초기의 魏나라의 상경이 되어 위 문후를 보좌하였다. 위 문후에게 吳起‧西門豹‧樂羊‧李克‧屈侯鮒 등을 추천하였고, 직언을 잘하였다. <史記 魏世家>
▶ 軒車 : 휘장으로 둘러친 수레로 고대에는 大夫 이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탔다.
▶ 載 : ‘戴’와 통용된다. 이다.
▶ 華蓋 : 御駕 위에 씌우던 일산
▶ 勒 : 재갈.
▶ 約鎭簟席 : 노끈으로 玉石을 연결하여 수레에 깐 대자리를 누른다는 뜻. ‘約’은 노끈으로 묶는다는 뜻이며, ‘鎭’은 玉鎭으로 자리를 누르는 용구이다. 簟席은 대자리.
▶ 下風 : 낮은 위치에 처함. 자신을 낯춤. 比喻处于下位,卑位
▶ 祖之曠野 : 광야에 간다. ‘祖’는 가다 ‘之’는 ‘於’와 같다.
▶ 吳起 : 吳子로 불리우며, 전국시대 군사 지도자이며 정치가였다. 위나라 사람으로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섬겼다. 위나라에서 큰 전투를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후에 楚나라로 도주하여 悼王에 의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西河는 황하의 서쪽 지역으로 魏나라가 처음에 吳起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 西門豹 : 전국시대 魏나라 정치가로 12개의 수로를 파서 논으로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하여, 농업생산 증대에 이바지하였다. 또 그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미녀를 골라 강물에 던지는 풍습의 폐습을 일소하였다.<史記列傳 권126 滑稽列傳>
▶ 酸棗 : 옛 縣 이름. 춘추시대 鄭나라의 酸棗邑으로, 漢代에 縣을 두었다.
▶ 北門可 : 北門은 複姓이고, 可는 이름이다. 행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 中山 : 周나라의 諸侯國 이름으로 전국시대에 中山國이었다. 趙 武靈王에게 멸망하였다.
▶ 樂羊 : 기원전 408년에 魏 文侯가 樂羊을 시켜 中山을 쳐부수게 하였다. 그때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임금은 악양의 아들을 삶아 그 국물을 악양에게 보내었다. 악양은 幕下에 앉아 이를 받아 한 잔을 모두 마셔 버렸다. 결국 악양이 중산국을 깨뜨리자 문후는 그 공으로 상을 주면서도 악양의 마음을 의심하였다. <戰國策 魏策>
▶ 李克 : 晉나라의 대부. 전국시대 초기 魏나라 사람. 子夏의 제자다. 魏文侯가 中山을 멸하고 태자 擊을 中山君에 임명했을 때 翟璜이 천거하여 中山相이 되었다.<史記 권44.魏世家>
▶ 公孫季成者 : 季成子. 魏 文侯의 동생으로 이름은 成이다.
▶ 子夏 : 卜子夏. 춘추시대 衛나라 사람으로 子夏는 字이다. 이름은 商이며 공자의 제자이다. 子遊와 함께 문학과에 들었고, 공자가 죽은 뒤 西河에서 학문을 교수하자 위 魏 文侯가 스승으로 섬겼고,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여 西河夫子로 불리었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 段干木 : 段干生. 전국시대 초기 魏나라의 학자이며 子夏의 제자이다. 성은 段干이고 이름은 木이다.魏 文侯가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07. 인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齊威王遊於瑤台,成侯卿來奏事,從車羅綺甚眾,王望之謂左右曰:
「來者何為者也?」
齊 威王이 瑤臺에서 놀 적에 成侯卿이 정무를 아뢰러 옴에, 따르는 수레가 늘어섬이 몹시 많으니 威王이 바라보고 측근에게 물었다.
“오는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左右曰:
「成侯卿也。」
측근이 말하였다.
“성후경입니다.”
王曰:
「國至貧也,何出之盛也?」
위왕이 말하였다.
“나라가 매우 빈궁한데 출행의 성대함이 어찌 저러한가?”
左右曰:
「與人者有以責之也,受人者有以易之也。」
측근들이 말하였다.
“남에게 물건을 준 사람은 요구할 권리가 있고, 남의 물건을 받은 사람은 의무를 다할 이유가 있습니다.”
王試問其說,成侯卿至,上謁曰:
「忌也。」
위왕이 그 설명을 시험하기로 함에 성후경이 당도하여 위왕을 뵙고 말하였다.
“鄒忌입니다.”
王不應。又曰:
「忌也。」
위왕이 대답하지 않자 또 말하였다.
“추기입니다.”
王不應。又曰:「忌也。」
위왕이 대답하지 않자 또 말하였다.
“추기입니다.”
王曰:
「國至貧也,何出之盛也?」
위왕이 말하였다.
“나라가 지극히 빈곤한데 출행의 성대함이 어찌 저러한가?”
成侯卿曰:
「赦其死罪,使臣得言其說。」
성후경이 대답하였다.
“신의 죽을죄를 용서하시고 신에게 설명하게 해주십시오.”
王曰:
「諾」。
위왕이 말하였다.
“좋다.”
對曰:
성후경이 대답하였다.
「忌舉田居子為西河而秦梁弱,忌舉田解子為南城,而楚人抱羅綺而朝,忌舉黔涿子為冥州,而燕人給牲,趙人給盛,忌舉田種首子為即墨,而於齊足究,忌舉北郭刁勃子為大士,而九族益親,民益富.
“저 鄒忌가 田居子를 추천하여 西河를 다스리게 하자 秦나라와 梁나라가 약화하였고,
제가 田解子를 추천하여 南城을 다스리게 하자 초나라 사람이 비단을 안고 조회하였고,
제가 黔涿子를 추천하여 冥州를 다스리게 하자 燕나라 사람이 제사용 가축을 보내고 趙나라 사람은 제사에 올리는 곡물을 보냈고,
제가 田種首子를 추천하여 卽墨을 다스리게 하자 齊나라의 재정이 충족되었으며,
제가 北郭刁勃子를 추천하여 大士로 삼자 九族이 더욱 친근해지고 백성은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舉此數良人者,王枕而臥耳,何患國之貧哉?」
제가 이 몇 훌륭한 사람을 추천함에 왕께서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웠을 뿐인데, 어찌 나라의 곤궁함을 걱정하십니까?”
▶ 齊威王 : 전국시대 제나라의 제4대 군주로 성은 嬀, 씨는 田, 휘는 因齊, 또는 嬰齊이다. 제 위왕 때부터 제나라 군주는 후작이나 공작이 아닌 왕을 칭하였다.[史記世家] 권46.田敬仲完世家
▶ 瑤臺 : 아름다운 옥돌로 쌓은 누대로 화려하게 장식한 누대를 두루 이른다.
▶ 成侯卿 : 齊 威王의 재상 成侯 鄒忌. 成侯는 封號, 卿은 上卿이다. 騶忌라고도 쓰며 下邳에 봉해져서 成侯로 불린다. 齊威王이 즉위한 뒤 거문고를 뜯으면서 유세해 宰相에 등용되었다. 위왕에게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諫言을 받아들이며 정치를 혁신할 것을 충고하였다. 또 萬民을 가깝게 여기고 법률을 정비하여 간신배를 멀리하라고 건의하였다. 아울러 軍紀를 바로 세우고 정치적 원칙을 고수할 것도 강조하였다. 이때부터 제나라는 차츰 東方의 강국으로 자리하게 되었다.[古文觀止]<4권秦文,楚辭>04.鄒忌諷齊王納諫<출전:戰國策·齊策>
▶ 羅綺 : 羅騎. 기마가 늘어서다. 騎는 기마.
▶ 田居子 : 齊 威王 때의 장군. 子는 남자의 美稱이다
▶ 田解子 : 齊 威王의 신하. <史記> <田敬仲完世家> ‘檀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 黔涿子 : 齊 威王의 신하. <史記> <田敬仲完世家>에는 ‘黔夫’로 기록되어 있다.
▶ 犧牲 : 제사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가축.
▶ 盛 : 粢盛. 제사 지낼 때 제기에 넣어 바치는 곡물
▶ 田種首子 : 齊 威王의 신하. <史記> <田敬仲完世家>에는 ‘種首’로 되어 있다.
▶ 卽墨 : 전국시대 齊나라의 읍.
▶ 北郭刁勃子 : 北郭刀勃子. 齊 威王 때의 신하. 北郭은 複姓이다.
▶ 大士 : 소송사건을 주관하는 관리.
▶ 枕而臥耳 : 高枕無憂. 베개를 높이 하고 걱정 없이 잘 자다.
8.직위를 능력 있는 자에게 물려주다.<公孫支 讓賢>
秦穆公使賈人載鹽,徵諸賈人,賈人買百里奚以五羖羊之皮,使將車之秦.
秦 穆公이 상인을 시켜 衛나라에서 소금을 실어오고자 상인을 징집함에, 상인들이 다섯 마리 숫양의 가죽으로 百里奚를 사서 수레를 몰고 秦나라로 가게 하였다.
秦穆公觀鹽,見百里奚牛肥,曰:
「任重道遠以險,而牛何以肥也?」
진 목공이 소금을 살펴봄에, 백리해의 소가 살찜을 보고 말하였다.
“책임은 중하고 길이 멀고도 험한데 소가 어떻게 살쪘느냐?”
對曰:
「臣飲食以時,使之不以暴;
有險,先後之以身,是以肥也。」
백리해가 대답하였다.
“신이 때에 맞춰 물과 여물을 먹이고, 부리되 혹사하지 않고,
위험이 있으면 제가 앞섰기 때문에 소가 살쪘습니다.”
穆公知其君子也,令有司其沐浴為衣冠與坐,公大悅。
목공이 그가 君子임을 알아보고, 有司에게 명령하여 그를 목욕시키고 의관을 차려주고 곁에서 시중들게 하였더니, 목공이 크게 만족하였다.
異日與公孫支論政,公孫支大不寧曰:
「君耳目聰明,思慮審察,君其得聖人乎!」
다음날 公孫支와 정사를 의논했는데 공손지가 매우 불안해하면서 말하였다.
“군주께서 耳目이 밝으시고 사려가 주도면밀하시니, 군주께서는 아마도 聖人을 얻으셨나 봅니다!”
公曰:
「然.
吾悅夫奚之言.
彼類聖人也。」
목공이 말하였다.
“그렇소.
나는 저 백리해의 말을 좋아하오.
그는 성인과 흡사하오.”
公孫支遂歸取鴈以賀曰:
「君得社稷之聖臣,敢賀社稷之福。」
공손지가 이에 돌아가서 기러기를 가져다 축하하였다.
“군주께서 사직을 편안히 할 聖臣을 얻으셨으니 감히 사직의 복임을 축하드립니다.”
公不辭,再拜而受。
목공이 사양하지 않고 再拜하고 받았다.
明日,公孫支乃致上卿以讓百里奚曰:
「秦國處僻,民陋以愚無知,危亡之本也.
臣自知不足以處其上,請以讓之。」
이튿날, 공손지가 上卿의 직을 그만두고 백리해에게 양보한다고 말하였다.
“秦나라는 궁벽한 곳에 위치하매 백성은 견문이 좁아서 우매하고 무지하니, 이는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할 근본입니다.
신은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기에 부족함을 알고 있으니 직을 양보하겠습니다.”
公不許,公孫支曰:
「君不用賓相而得社稷之聖臣,君之祿也;
臣見賢而讓之,臣之祿也。
今君既得其祿矣,而使臣失祿可乎?
請終致之!」
목공이 허락하지 않자 공손지가 말하였다.
“군주께서 재상을 모시는 절차 없이 직접 사직을 편안히 할 聖臣을 얻으셨으니, 군주의 福祿이고,
신은 賢人을 만나 그에게 벼슬을 양보하니 신의 행운입니다.
그런데도 군주께서는 행운을 얻으시고, 신에게는 행운을 잃게 하면 되겠습니까?
신이 그만두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公不許。公孫支曰:
「臣不肖而處上位是君失倫也,不肖失倫,臣之過,進賢而退不肖,君之明也。
今臣處位,廢君之德而逆臣之行也,臣將逃。」
목공이 허락하지 않자 공손지가 말하였다.
“신이 현명하지 못한데 높은 지위에 있음은 바로 군주께서 도리를 어김이고, 현명하지 못하여 군주가 도리를 어기게 함은 신의 허물이니, 현인을 선발하여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퇴출함은 군주의 영명하심입니다.
지금 신이 높은 지위를 차지함은, 군주의 덕을 廢棄하는 逆臣의 행위이니 신은 곧 도망가겠습니다.”
公乃受之。
목공이 마침내 受容하였다.
故百里奚為上卿以制之,公孫支為次卿以佐之也。
이 때문에 백리해가 上卿이 되어 국정을 처리하고 공손지가 次卿이 되어 보좌하였다.
▶ 秦穆公 : 嬴任好. 진나라의 군주. 穆은 繆으로도 쓴다. 이름은 任好이고, 秦 德公의 셋째 아들이며, 春秋五覇의 한 사람이다. 재위 동안 어진 인재를 힘써 구해 百里奚과 蹇叔 등을 등용해 謀臣으로 삼았고, 올바른 정치에 전력을 기울여 국세가 날로 강해졌다.[史記 本紀] 권05. 秦本紀
▶ 賈人 : 상인
▶ 百里奚 : 百里傒라고도 쓴다. 춘추시대 虞나라 출신으로 자는 井伯이다. 百里氏로도 불린다. 일설에는 성이 百씨고, 이름은 奚며, 자가 里라고도 한다. 우나라의 大夫로 있다가 晉獻公이 우나라를 멸망시키자 포로가 되어 晉나라로 갔다. 晉나라가 穆姬를 秦나라에 시집보낼 때 陪臣으로 따라갔다가 楚나라 宛 땅으로 달아났다는데 초나라 사람에게 잡혔다. 秦穆公이 소식을 듣고 五羖羊皮(검은 양 다섯 마리의 가죽)를 주고 매입하여 국정을 맡겼다. 이로 인해 ‘五羖大夫’로도 불린다. 이때 그의 나이 일흔이었다. 蹇叔을 목공에게 추천하고, 由餘 등과 함께 목공의 패업 성취를 도왔다.
▶ 五羖羊之皮 : 五羖羊皮. 검은 양 다섯 마리의 가죽
▶ 公孫支 : 秦나라 穆公 때 大夫로서 百里奚를 천거하여 霸業을 이룩하게 하였다.
▶ 致 : 그만두다. 致仕
▶ 賓相 :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 빈객을 영접하다. ‘賓’은 ‘儐’과 같다.
09.자신을 반성할 줄 알며 신하를 잘 둔 趙簡主
趙簡主從晉陽之邯鄲,中路而止,引車吏進問何為止,簡主曰:
「董安于在後。」
趙簡主가 晉陽에서 邯鄲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멈추니, 수레를 끌던 관리가 와서 무엇 때문에 멈추냐고 묻자 조간주가 대답하였다.
“董安于가 뒤에 있다.”
吏曰:
「此三軍之事也,君奈何以一人留三軍也?」
관리가 말하였다.
“이것은 三軍의 일인데 주군은 어찌하여 한 사람 때문에 삼군을 멈추십니까?”
簡主曰:
「諾。」
조간주가 말하였다.
“그렇군.”
驅之百步又止,吏將進諫,董安于適至,簡主曰:
「秦道之與晉國交者,吾忘令人塞之。」
말을 몰아 백 보쯤 가다가 또 멈추자, 관리가 간하려고 하는데, 동안우가 마침 도착하니, 조간주가 말하였다.
“秦나라의 길이 晉나라와 통하는 길을 내가 사람을 시켜 막기를 깜빡 잊었다.”
董安于曰:
「此安于之所為後也。」
동안우가 말하였다.
“그것이 제가 뒤처진 까닭입니다.”
簡主曰:
「官之寶璧吾忘令人載之。」
조간주가 말하였다.
“관청의 보물을 내가 사람을 시켜 실음을 깜빡 잊었다네.”
對曰:
「此安于之所為後也。」
동안우가 대답하였다.
“그것이 저 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簡主可謂內省外知人矣哉!
조간주는 안으로는 자신을 반성하고 밖으로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이를 만하다!
故身佚國安。
그 때문에 몸은 편안하고 국가는 안정되었다.
御史大夫周昌曰:
「人主誠能如趙簡主,朝不危矣。」
御使大夫 周昌이 말하였다.
“군주가 진실로 조간주와 같으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을 터이다.”
▶ 趙簡主 : 趙簡子.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나라의 大夫.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진나라 내부에서 6卿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范氏와 中行氏를 몰아내고 趙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史記 世家] 권43.趙世家
▶ 晉陽 : 춘추시대 晉나라의 읍으로 趙鞅의 봉읍이다.
▶ 邯鄲 : 전국시대 趙나라의 都邑.
▶ 董安于 : 춘추시대 晉나라의 正卿으로 趙簡子의 家臣이다. 字는 阏于. 荀寅과 范吉射가 난을 일으켜 조간자를 치려 하자, 조간자에게 먼저 난을 일으켜 대비하도록 권하였다. 梁嬰父가 조간자가 먼저 난을 일으킨 죄를 물어 趙氏를 치려고 하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화를 면하게 하였다.<史記 趙世家>
▶ 周昌 : 漢나라 沛縣 사람으로 周苛의 從弟이다. 秦나라 때 泗水의 말단관리였다가 劉邦을 따라 패현에서 봉기하여 秦나라를 격파하여 中尉가 되었다. 內史로 敖倉을 견고하게 방어하여 御史大夫가 되고, 項羽를 격파하였다.<史記 張丞相列傳>
10.신하도 존엄이 있다.
-이 글은 <晏子春秋> 內篇 雜上에 실려 있다.
晏子侍於景公,朝寒請進熱食,對曰:
「嬰非君之廚養臣也,敢辭。」
晏子가 齊 景公을 모심에, 아침이라 추우니 따뜻한 음식을 올리라고 하니, 안자가 대답하였다.
“저 嬰은 군주의 수라를 관장하는 신하가 아니매 감히 거절하겠습니다.”
公曰:
「請進服裘。」
경공이 말하였다.
“갓옷을 내오시오.”
對曰:
「嬰非田澤之臣也,敢辭。」
안자가 대답하였다.
“저 嬰은 군주의 의복을 관장하는 신하가 아니니 감히 거절하겠습니다.”
公曰:
「然,夫子於寡人奚為者也?」
경공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생은 과인에게 무엇하는 사람이오?”
對曰:
「社稷之臣也。」
안자가 대답하였다.
“社稷의 신하입니다.”
公曰:
「何謂社稷之臣?」
경공이 말하였다.
“무엇을 사직의 신하라 하오?”
對曰:
「社稷之臣,能立社稷,辨上下之宜,使得其理;
制百官之序,使得其宜;
作為辭令,可分布於四方。」
안자가 대답하였다.
“사직의 신하는 사직을 지키며, 군신 간의 도의를 분별하여 이치에 합당하게 하고,
백관의 질서를 제정하여 직분을 알맞게 하며,
법령의 條例를 만들어 온 나라 사방에 반포할 수 있습니다.”
自是之後,君不以禮不見晏子也。
그 이후로는 경공은 예절에 맞지 않으면 안자를 접견하지 않았다.
▶ 晏子 : 晏平仲. 晏嬰.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나라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晏子春秋는 춘추시대 제나라 안영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사마천은 안영을 용기가 있는 자이며,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하였으니 충신이라고 평하고 안자가 같은 시대에 산다면 그의 마부가 될지라도 기꺼이 그를 흠모할 것이라고 하였다.<사기열전 권 62.管晏列傳>
▶ 齊景公 :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 姜杵臼. 景은 시호이다. 제 齊 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기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였다.[史記 世家] 권32.齊太公世家
▶ 廚養臣 : 군주의 수라를 주관하는 신하.
▶ 田澤之臣 : 田澤은 <晏子春秋>에는 ‘茵席’으로 되어 있으며, ‘군주의 起居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여기에서는 의복을 관리하는 신하로 해석한다.
▶ 宜 : 道義
11. 충신이 군주를 섬기는 도리
-이 글은 <晏子春秋> 內篇 問篇에 실려 있다.
齊侯問於晏子曰:
「忠臣之事其君何若?」
齊侯가 晏子에게 물었다.
“충신이 그의 군주를 섬김은 어떠하오?”
對曰:
「有難不死,出亡不送。」
안자가 대답하였다.
“군주에게 危難이 있어도 함께 죽지 않고, 군주가 도망쳐도 전송하지 않습니다.”
君曰:
「裂地而封之,疏爵而貴之;
吾有難不死,出亡不送,可謂忠乎?」
제후가 말하였다.
“땅을 떼어서 봉해주고 작위를 나눠주어 현귀하게 하였는데, 군주에게 위난이 닥쳤는데도 죽지 않고, 도망치는데도 전송하지 않는다면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對曰:
안자가 대답하였다.
「言而見用,終身無難,臣何死焉;
謀而見從,終身不亡,臣何送焉。
“신하가 건의하여 채용되면 죽을 때까지 위난이 없을 터이니, 신하가 무엇 때문에 따라 죽으며,
신하가 계책을 내고 그것을 따르면 죽을 때까지 도망치지 않을 터이니 신하가 어떻게 전송하겠습니까?
若言不見用,有難而死之,是妄死也;
諫而不見從,出亡而送,是詐為也。
만일 건의하여도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위난을 만나 따라 죽으면, 이것은 의미 없는 죽음이고,
諫하였으나 따르지 않음으로써 도망치는데 전송하면, 이것은 속이는 행위입니다.
故忠臣者能納善於君而不能與君陷難者也。」
그러므로 충신은 군주에게 좋은 말을 바치나, 군주와 함께 위난에 빠지지 않습니다.”
▶ 齊侯 : <晏子春秋>에는 齊 景公으로 기록하고 있다.
▶ 何若 : 何如와 같다. 어떠한가?
▶ 詐為 : 속이는 행위. 爲는 ‘僞’와 통용된다.
▶ 陷 : 빠지다.
12.晏子의 청렴함.
-이 글은 <晏子春秋> 內篇 雜下에 실려 있다.
晏子朝,乘敝車,駕駑馬,景公見之曰:
「嘻!夫子之祿寡耶!
何乘不任之甚也!」
晏子가 조회에 참석함에 낡은 수레를 타고 노둔한 말이 수레를 끌게 하니, 景公이 보고 말하였다.
“아! 선생의 봉록이 적구려!
몸을 맡겨선 안 될 수레를 타는 것이 어찌 이렇게 심하오!”
晏子對曰:
「賴君之賜,得以壽三族及國交遊皆得生焉.
臣得暖衣飽食,敝車駑馬,以奉其身,於臣足矣。」
안자가 대답하였다.
“군주의 하사에 의지하여, 저의 삼족을 보존하고 나라에서 저와 교유하는 사람들이 모두 생활하고 있습니다.
신이 따뜻한 옷과 넉넉한 음식과 낡은 수레와 노둔한 말을 얻어서 저의 몸을 유지하니, 신은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晏子出,公使梁丘據遺之輅車乘馬,三返不受,公不悅,趣召晏子。
안자가 나가고, 경공이 梁丘據를 보내 임금이 타는 큰 수레와 타는 말을 주니, 안자가 세 번 돌려보내고 받지 않으매, 경공이 불쾌하게 여기며 급히 안자를 불렀다.
晏子至,公曰:
「夫子不受,寡人亦不乘。」
안자가 도착하자 경공이 말하였다.
“선생이 받지 않으면 과인도 수레를 타지 않겠소.”
晏子對曰:
안자가 대답하였다.
「君使臣臨百官之吏,節其衣服飲食之養,以先齊國之人,然猶恐其侈靡而不顧其行也;
“군주께서 신에게 모든 관리를 감독하게 하셨으니, 신이 衣食의 공급을 절약하여 齊나라 백성에게 솔선하지, 그래도 백성이 지나치게 사치하여 자신의 품행을 돌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今輅車乘馬,君乘之上,臣亦乘之下,民之無義,侈其衣食而不顧其行者,臣無以禁之。」
지금 큰 수레와 승용 말은 군주께서 윗사람으로서 타는 것인데, 신도 아랫사람으로서 이것을 타면, 백성이 도의를 무시하겠으므로, 衣食을 사치하고 자신의 품행을 돌보지 않는 자를 신이 금지할 방도가 없습니다.”
遂讓不受也。
끝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 駑馬 : 둔한 말.
▶ 壽三族 : 壽는 보존한다는 뜻. 三族은 父族‧母族‧妻族이다.
▶ 梁丘據 : 춘추시대 齊나라 大夫. 景公이 학질에 걸려 1년 넘게 학질을 앓자 담당 관원을 사형시키자고 주장하였고, 定公 10년 제나라와 노나라가 夾谷에서 회동할 때 경공을 따라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 輅車 : 임금의 수레.
▶ 侈靡 :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靡는 호사하다.
13.晏子가 재상의 도리를 말하다.
- 이 글은 <晏子春秋> 內篇 雜篇下에 실려 있다.
景公飲酒,陳桓子侍,望見晏子而復於公曰:
「請浮晏子。」
景公이 술을 마심에 陳桓子(:無宇)가 모시고 있다가 멀리 晏子가 옴을 보고 경공에게 아뢰었다.
“안자에게 벌주를 내리십시오.”
公曰:
「何故也?」
경공이 말하였다.
“무슨 까닭이오?”
對曰:
「晏子衣緇布之衣,糜鹿之裘,棧軫之車,而駕駑馬以朝,是隱君之賜也。」
진환자가 대답하였다.
“안자가 검은 베옷과 사슴가죽으로 만든 거친 갖옷을 입고, 앉는 자리를 대로 엮어 깐 수레에 駑馬를 메워 조정에 나오니, 임금의 하사품을 숨긴 것입니다.”
公曰:
「諾。」
경공이 말하였다.
“좋다.”
酌者奉觴而進之曰:
「君命浮子。」
술을 따르는 사람이 술잔을 받들고 올리며 말하였다.
“군주께서 명령하시어, 선생께 벌주를 올립니다.”
晏子曰:
「何故也?」
안자가 말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陳桓子曰:
「君賜之卿位以尊其身,寵之百萬以富其家,群臣之爵,莫尊於子,祿莫厚於子;
今子衣布衣之衣,糜鹿之裘,棧軫之車而駕駑馬以朝,則是隱君之賜也,故浮子。」
진환자가 말하였다.
“군주께서 卿의 지위를 주시어 그대의 신분을 높이고, 많은 녹봉을 주시어 그대의 가정을 부유하게 하시니, 신하들의 벼슬이 그대보다 높은 이가 없으며 녹봉이 그대보다 많은 이가 없소.
그런데 그대는 베옷과 사슴가죽으로 만든 거친 갖옷을 입고, 앉는 자리를 대로 엮어 깐 수레에 駑馬를 메우고 조정에 나오니, 군주의 하사품을 숨긴 것이오. 이 때문에 그대에게 벌주를 내리오.”
晏子避席曰:
「請飲而後辭乎?
其辭而後飲乎?」
안자가 자리를 피하고 일어나서 말하였다.
“벌주를 마시고 나서 말씀드릴까요?
말씀드리고 나서 벌주를 마실까요?”
公曰:
「辭然後飲。」
경공이 말하였다.
“말하고 나서 벌주를 마시시오.”
晏子曰:
안자가 말하였다.
「君賜卿位以顯其身,嬰不敢為顯受也,為行君令也;
寵之百萬以富其家,嬰不敢為富受也,為通君賜也;
臣聞古之賢君, 臣有受厚賜而不顧其國族,則過之;
臨事守職不勝其任,則過之。
“군주께서 卿의 지위를 주시어 저를 顯彰하였으나, 저은 감히 현창을 위하여 받지 않고, 군주의 명령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군주께서 많은 녹봉을 주시어 저의 집을 부유하게 하셨으나. 저는 감히 부유함을 위하여 받지 않고, 군주의 賞賜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이 듣기에, 예전의 賢君은 신하가 많은 녹봉을 받고도 그의 鄕里의 종족을 돌보지 않으면 나무라고, 일을 맡아서 관직만 지킨 채 자기의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면 나무란다고 합니다.
君之內隸,臣之父兄,若有離散,在於野鄙者,此臣之罪也;
君之外隸,臣之所職,若有播亡在四方者,此臣之罪也;
兵革不完,戰車不修,此臣之罪也。
궁 안에 예속된 신하는 신의 부형이니 만일 뿔뿔이 흩어져 촌구석을 유랑하는 이가 있으면 이는 신의 죄이고,
궁 밖에 예속된 신하는 신의 직무이니 만일 사방에 떠돌아다니는 이가 있으면 이는 신의 죄이며,
무기와 갑옷이 완비되지 않고 戰車가 수리되지 않으면 이는 신의 죄입니다.
若夫敝車駑馬以朝, 意者非臣之罪也,且臣以君之賜,臣父之黨無不乘車者,母之黨無不足以衣食者,妻之黨無凍餒者,國之簡士待臣而後舉火者數百家。
낡은 수레에 駑馬로 朝見함과 같은 일은 생각건대 신의 죄가 아니고, 더구나 신은 군주께서 주신 賞賜로 아버지의 族黨에 수레를 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머니의 족당에 衣食이 부족한 자기 없으며, 아내의 族黨에 추위에 얼고 굶주리는 자 없으며, 나라 안의 벼슬 없는 선비가 신의 도움을 기다려서 밥을 짓는 자가 수백 집입니다.
如此為隱君之賜乎? 彰君之賜乎?」
이와 같은 것이 군주의 하사를 숨겼습니까? 군주의 하사를 빛내었습니까?”
公曰:
「善,為我浮무우桓子也。」
경공이 말하였다.
“좋소. 나를 위해 대신 환자에게 벌주를 먹이시오.”
▶ 陳桓子 : 춘추시대 제나라 대부 田桓子, 이름은 無宇이며 시호가 桓子다. 鮑氏와 연합하여 권력가인 欒氏와 高氏를 토벌하고 高唐의 땅을 받아 산 뒤로부터 陳氏가 강대해졌다. 《春秋左氏傳 莊公 21년, 襄公 29년, 昭公 3‧5‧8‧10년》
▶ 復 : 말씀드리다. 사뢰다.
▶ 浮 : 罰酒를 먹인다는 뜻이다. 《淮南子》 〈道應訓〉의 “蹇重이 벌주를 올리면서 ‘임금께서는 벌주를 드십시오.’라고 말하였다.[蹇重擧白而進之曰 請浮君]”는 구절의 高誘 注에 “浮는 벌이니, 술로 임금을 벌한 것이다.[浮 罰也 以酒罰君]”라 하였다.
▶ 棧軫之車 : 선비가 타던 검박한 수레. 가죽을 씌우지 않고 대로 엮어 만든 수레. 棧車라고도 한다.
▶ 避席 : 피석하다. 자리에서 물러나 일어나다.(윗사람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 國族 : 國賓과 宗族. 邦族과 같은 말로 보아, 향리의 친족으로 해석하였다. 《晏子春秋》에는 ‘困族’으로 되어 있다.
▶ 野鄙 : 村野. 촌스럽다.
▶ 黨 : 친족. 친척
▶ 簡士 : 簡士 : 등용되지 못하고 버려진 선비를 이른다. 《說苑纂註》에는 “《晏子春秋》에는 ‘閒士’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 桓子 : 無宇. 살아 있는 신하를 군주가 미리 諡號로 부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 안자춘추에는 ‘無宇’로 기록하고 있다.
14. 晏子가 千金을 사양하다.
-이 글은 晏子春秋·内篇·雜下에 실려 있다.
晏子方食,君之使者至,分食而食之,晏子不飽,使者返言之景公,景公曰:
「嘻,夫子之家若是其貧也。
寡人不知也,是寡人之過也。」
晏子가 막 밥을 먹을 때 경공의 使者가 오니, 사자와 밥을 나누어 먹느라 안자가 배불리 먹지 못하니, 사자가 돌아가서 景公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자 경공이 말하였다.
“아! 선생의 집이 그와 같이 가난하구나.
과인이 알지 못했으니 과인의 잘못이다.”
令吏致千家之縣一於晏子,晏子再拜而辭,曰:
관리에게 명하여 千戶의 縣 하나를 안자에게 주었는데, 안자가 재배하고 사양하였다.
「嬰之家不貧,以君之賜,澤覆三族,延及交遊,以振百姓.
“저 嬰의 집은 가난하지 않고, 군주의 하사품으로 은택이 三族을 덮고 친구에게까지 미치고 백성을 구제하였습니다.
君之賜也厚矣,嬰之家不貧也!
군주의 하사가 많아서 저 嬰의 집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嬰聞之,厚取之君而厚施之人,代君為君也,忠臣不為也;
厚取之君而藏之,是筐筴存也,仁人不為也;
厚取之君而無所施之,身死而財遷,智者不為也。
제가 듣건대, 군주에게 많이 받아서 남에게 많이 베푸는 것은 군주를 대신하여 군림함이니 충신은 하지 않고,
군주에게 많이 받아서 자기 집에 저장함은 광주리에 담아놓는 것이니 어진 사람은 하지 않고,
군주에게 많이 받고 남에게 베푼 것이 없으면 죽고 난 뒤에 재산이 남에게 옮겨가니, 지혜로운 사람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嬰也聞為人臣,進不事上以為忠,退不克下以為廉,八升之布,一豆之食,足矣。」
제가 듣기에, 신하가 되어서 조정에 나아가 충성으로 군주를 섬기지 못하고, 조정에서 물러나 아랫사람을 청렴으로 대하지 못하면, 여덟 升의 베와 한 그릇의 밥이면 충분하다고 들었습니다.”
使者三返,遂辭不受也。
사자가 세 차례나 갔다가 돌아왔으나 끝내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 君 : <안자춘추>에는 ‘景公’으로 기록하고 있다. 齊景公.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 姜杵臼. 景은 시호이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였다.
▶ 振 : ‘賑’과 통용된다. 구제하다. 구휼하다
▶ 交遊 : 친구
▶ 筐筴 : 광주리
▶ 升 : 직물의 날실 80올. 피륙의 올을 세는 단위로 2.2尺의 폭에 80올이 들어간 것이 1升이다. 숫자가 많을수록 고급의 고운 베이다. 보통 朝服은 15升이고, 斬衰는 3升이다. 8승은 粗布(:거친 베)이다.
▶ 豆 : 고대의 식기.
15.신하의 도리와 명철한 군주
陳成子謂鴟夷子皮曰:
「何與常也?」
陳成子가 鴟夷子皮에게 말하였다.
“‘常道와 함께함’이란 무엇인가?”
對曰:
「君死吾不死,君亡吾不亡。」
치이자피가 대답하였다.
“군주가 죽더라도 저는 죽지 않고, 군주가 도망치더라도 저는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陳成子曰:
「然子何以與常?」
진성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常道와 함께하는가?”
對曰:
「未死去死,未亡去亡,其有何死亡矣!
치이자피가 대답하였다.
“죽기 전에 죽을 일을 제거하고, 도망치기 전에 도망칠 일을 제거하면, 무슨 죽음과 도망이 있겠습니까!”
從命利君謂之順,從命病君謂之諛,逆命利君謂之忠,逆命病君謂之亂,君有過不諫諍,將危國殞社稷也;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고 군주를 이롭게 함을 <順從>이라 이르고,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군주를 해롭게 함을 <諛>라 이르고,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나 군주를 이롭게 함을 <忠誠>이라 이르고,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고 군주를 해롭게 함을 <亂>이라 이르고, 군주에게 잘못이 있으나 諫諍하지 않으면 장차 나라를 危害하고 社稷을 멸망시킨다.
有能盡言於君,用則留之,不用則去之,謂之諫;
用則可生,不用則死,謂之諍;
군주에게 극진히 말하여 쓰이면 머무르고, 쓰이지 않으면 떠남을 <諫>이라 이르고, 쓰이면 살고 쓰이지 않으면 죽음을 <諍>이라 이른다.
有能比和同力,率群下相與彊矯君,君雖不安,不能不聽,遂解國之大患,除國之大害,成於尊君安國謂之輔;
지혜와 힘을 함께하여 群臣을 거느리고 함께 군주의 잘못을 강력히 바로잡음으로써, 군주가 비록 불안하여도 따르지 않을 수 없어서, 마침내 나라의 큰 환난을 해결하고 나라의 큰 폐해를 제거하여 군주를 존귀하게 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함을 <輔>라 이른다.
有能亢君之命,反君之事,竊君之重以安國之危,除主之辱攻伐足以成國之大利,謂之弼。
군주의 명령에 저항하고 군주의 정사를 반대하되, 군주의 권력을 빌려서 나라의 위태로움을 편안히 하고 군주의 치욕을 제거하여, 공적이 나라의 큰 이익을 이루기에 충분함을 <弼>이라 한다.
故諫諍輔弼之人,社稷之臣也,明君之所尊禮,而闇君以為己賊;
그러므로 諫‧諍‧輔‧弼하는 사람은 사직을 지키는 신하이매, 명철한 군주가 존경하고 예우하는 사람이지만 昏君은 자기의 賊이라 여긴다.
故明君之所賞,闇君之所殺也。
그러므로 명철한 군주가 기리는 사람이고 우매한 군주가 살해하는 사람이다.
明君好問,闇君好獨,明君上賢使能而享其功;
闇君畏賢妒能而減其業,罰其忠,而賞其賊,夫是之謂至闇,桀紂之所以亡也。
명철한 군주는 묻기를 좋아하고 우매한 군주는 독단을 좋아하니, 명철한 군주는 현인을 높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부려 그들의 공로를 享有하나,
우매한 군주는 현인을 두려워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여 그들의 업적을 덜고, 충신을 벌주고 도적을 상주니, 이것을 至闇이라 하며 桀王과 紂王이 멸망한 이유이다.
《詩》云:『曾是莫聽,大命以傾』,此之謂也。」
<詩經>에 “일찍이 간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여 국가의 운명이 기울어졌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이름이다.
▶ 陳成子 : 田成子‧田常으로도 불린다. 춘추시대 齊나라의 正卿으로, 이름은 陳恒이다. 齊 簡公 때 闞止와 함께 左右丞相이 되었는데, 제 간공 4년 감지와 함께 간공을 공격하여 시해하고 간공의 아우 驁를 세워 평공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제나라는 田氏(:陳氏)가 장악하게 되었다.
▶ 鴟夷子皮 : 사람 이름. 陳成子의 부하이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越나라의 范蠡가 월나라를 떠나면서 성명을 鴟夷子皮라고 고쳤는데 여기의 치이자피는 范蠡가 아니다.
▶ 常 : 常道. 항상 지켜야 할 도리.
▶ 亂 : <荀子> 臣道편에는 ‘簒奪’이라고 하였다.
▶ 有能盡言於君 : 저본에는 없으나, 《荀子》 〈臣道〉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 諫 : 勸諫. 간언하다. 충고하다.
▶ 可生 : 生은 衍文이다. ‘則可’와 ‘則死’를 상대적인 문장구조로 보아야 한다. 《荀子》 〈臣道〉에도 ‘生’자가 없다.
▶ 諍 : 諫爭. 쟁론하다. 다투다.
▶ 比和同力 : 지혜와 힘을 합한다는 뜻이다. ‘比’는 ‘合’의 뜻이다. 저본에는 ‘和’로 되어 있으나, 《荀子》 〈臣道〉에 의거하여 ‘知’로 바로잡았다.
▶ 攻伐 : 공로. ‘攻’은 ‘功’의 假借字이고, ‘伐’은 ‘功’과 같은 뜻이다.
▶ 闇君 : 昏君. 우매한 군주.
▶ 曾是莫聽,大命以傾 : <詩經·大雅·蕩>을 인용하였다. 이 시의 題名은 ‘위대한 上帝’이다. 이 시는 殷나라 暴君인 紂王을 개탄하는 周 文王의 말투를 빌어서 殷나라가 망하게 된 세태를 풍자한 노래이다. “文王曰咨、咨女殷商。匪上帝不時、殷不用舊。雖無老成人、尚有典刑。曾是莫聽、大命以傾。: 문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아, 그대들 은나라여! 상제께서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은나라가 옛 법도를 따르지 않은 때문이니, 비록 늙고 훌륭하신 어른 없어도 그래도 법도는 남아있다. 일찍이 그러함에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졌도다.”
16.아첨하지 않는 신하
簡子有臣尹綽、赦厥。
趙簡子에게 尹綽과 赦厥이라는 가신이 있었다.
簡子曰:
「厥愛我,諫我必不於眾人中;
綽也不愛我,諫我必於眾人中。」
簡子가 말하였다.
“赦厥은 나를 아껴서 절대 大衆 앞에서는 나를 간하지 않고,
尹綽은 나를 아끼지 않아서 나를 간하기를 항상 大衆 앞에서 하는구나.”
尹綽曰:
「厥也愛君之醜而不愛君之過也,臣愛君之過而不愛君之醜。」
윤작이 말하였다.
“사궐은 군주의 추함이 드러남이 애석하되 군주의 過誤는 애석하지 않지만,
신은 군주의 過誤가 애석하되 군주의 추함이 드러남은 애석하지 않습니다.”
孔子曰:
「君子哉!尹綽,
面訾不譽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구나. 윤작이여!
군주의 면전에서 비판하되 칭찬은 하지 않는구나.”
▶ 趙簡子 :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나라의 大夫.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진나라 내부에서 6卿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范氏와 中行氏를 몰아내고 趙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 臣 : 家臣
▶ 尹綽, 赦厥 : 趙簡子의 家臣.
▶ 訾 : 헐뜯다. 비방하다.
17.晏子가 高繚를 내쫓다.
高繚仕於晏子,三年無故, 晏子逐之,左右諫曰:
「高繚之事夫子,三年曾無以爵位,而逐之,其義可乎?」
高繚가 晏子 아래에서 벼슬하여 3년 동안 사고가 없었는데, 안자가 내쫓자 측근이 간하였다.
“고료가 선생을 섬기기 3년, 일찍이 작위는 주지 않고 쫓아내니 이것이 道義上 옳습니까?”
晏子曰:
「嬰仄陋之人也,四維之然後能直,今此子事吾三年,未嘗弼吾過,是以逐之也。」
안자가 말하였다.
“나 嬰은 식견이 천박한 사람이라, 四維가 있어야 바른 道를 행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나를 섬긴 지 3년 동안 나의 잘못을 바로잡은 적이 없으매, 내쫓았다.”
▶ 高繚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안자를 섬겼으나 안자의 잘못을 충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자가 쫓아냈다. <晏子春秋>에는 高糾로 기록하고 있다. <晏子春秋·內篇·雜上>
▶ 仕 : 관리가 되다. 벼슬하다.
▶ 仄陋 : 지위가 낮고 미천하다
▶ 四維 :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인 禮, 義, 廉, 恥를 말한다. “예란 절도를 넘지 않음이며, 의란 스스로 나아가 구하지 않음이며,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이며, 치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음이다.(一曰禮、二曰義、三曰廉、四曰恥。禮不踰節,義不自進。廉不蔽惡,恥不從枉. 《管子 牧民》‧《史記 管晏列傳》
▶ 弼 : 보필하다. 바로잡다.
18.아랫사람의 도리
-이 글은 <荀子> 堯問篇에 기록되어 있다.
子貢問孔子曰:
「賜為人下,而未知所以為人下之道也。」
子貢이 孔子께 여쭈었다.
“저 賜는 남의 아랫사람이 되었는데도, 남의 아랫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孔子曰:
「為人下者,其猶土乎!
種之則五穀生焉,掘之則甘泉出焉,草木植焉,禽獸育焉,生人立焉,死人入焉,多其功而不言,為人下者,其猶土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아랫사람은 마치 흙과 같다!
씨를 뿌리면 오곡이 나고, 파면 샘물이 나오고, 초목을 심고 짐승을 기르고, 산 사람은 거기에 살고 죽은 사람은 거기에 묻으매, 공이 많으면서도 말하지 않으니, 아랫사람이 된 자는 마치 흙과 같아야 한다!”
▶ 子貢 : 孔子의 제자. 衛나라 출신. 姓은 端木, 이름은 賜. 子貢은 字. <史記·仲尼弟子列傳〉
19.천하에 통용되는 도리<天下之通義>
-이 글은 <荀子> 仲尼편에 기록되어 있다.
孫卿曰:
孫卿이 말하였다.
「少使長,賤事貴,不肖事賢,此天下之通義也。
“젊은이가 어른에게 순종하고, 미천한 사람이 존귀한 사람을 섬기고, 어리석은 사람이 賢者를 섬기니, 이것이 천하에 통용되는 도리이다.
有人貴而不能為人上,賤而羞為人下,此姦人之心也。
사람이 존귀하면서도 윗사람이 된 도리를 하지 못하거나, 미천하면서도 아랫사람이 됨을 부끄럽게 여기면, 이것이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다.
身不離姦心,而行不離姦道,然而求見譽於眾,不亦難乎?」
몸에서 간사한 마음을 떼어버리지 못하며, 행위에서 간사한 도리를 떼어버리지 못하고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겠는가?”
▶ 孫卿 : 荀子. 전국시대 趙나라의 B.C.313~B.C.238로, 성은 荀 이름은 況.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荀卿 또는 孫卿이라 하였다. 저서에 <荀子> 20권이 있다. 그는 공자의 학문을 표준으로 하여, 인간의 타고난 성품은 악한데, 그것을 禮와 義를 통해 바로 잡아야 선하게 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性惡說을 주장하였다.[史記列傳] 권74 孟子荀卿列傳
▶ 天下之通義 : 일반 보편적인 도리.
▶ 羞 : 부끄러워하다. 치욕.
20.趙簡子가 武子勝을 총애하는 이유
公叔文子問於史叟曰:
「武子勝事趙簡子久矣,其寵不解,奚也?」
公叔文子가 史叟에게 물었다.
“武子 勝이 趙簡子를 섬긴 지 오래되었는데 그 총애가 해이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오?”
史叟曰:
「武子勝,博聞多能而位賤.
君親而近之,致敏以愻,藐而疏之,則恭而無怨色.
入與謀國家,出不見其寵,君賜之祿,知足而辭,故能久也。」
사수가 말하였다.
“武子 勝은 견문이 넓고 재능이 많으면서 지위가 낮습니다.
주군이 친근히 대하면 민첩함을 다하면서 겸손하고, 소원히 대하면 공손하면서 원망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함께 국가의 일을 의논하고, 조정에서 나가서는 그 총애를 나타내지 않고, 군주가 내리는 봉록을 만족할 줄 알고 사양하매 이 때문에 오래갈 수 있었소.”
▶ 公叔文子 : 춘추시대 衛나라 靈公 때의 大夫 公叔發. 시호가 文이므로 公叔文子라 한다.
▶ 史叟 : 史鰌. 姓이 史, 이름이 鰌, 字는 子魚로 춘추시대 말기 衛나라의 대부로 전해진다. <論語 衛靈公〉
▶ 武子勝 : 춘추시대 趙簡子의 家臣
21.아랫사람에게 빌붙어 윗사람을 속이는 자<附下罔上>
-이 글은 <漢書> 武帝紀에 실려 있다.
泰誓曰:
<書經> 泰誓에 말하였다.
「附下而罔上者死,附上而罔下者刑;
“아랫사람에게 빌붙어 윗사람을 속이는 자는 사형에 처할 터이며, 윗사람에게 빌붙어 아랫사람을 속이는 자는 형벌을 내릴 터이다.
與聞國政而無益於民者退,在上位而不能進賢者逐。
국정에 참여하면서도 백성에게 이익이 됨이 없는 자는 물리칠 터이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현인을 추천하지 않는 자는 내칠 터이다.
此所以勸善而黜惡也。」
이는 선한 사람을 권장하고 악한 사람을 내친다는 것이다.”
故傳曰:
「傷善者國之殘也,蔽善者國之讒也,愬無罪者國之賊也。」
그러므로 古書에 말하였다.
“선한 사람을 해치는 자는 국가를 해치는 사람이고, 선한 사람을 埋沒하는 자는 국가의 아첨꾼이며, 죄 없는 사람을 謀陷하는 자는 국가의 賊이다.”
▶ 泰誓 : <書經> <周書>의 篇名. 그러나 현재의 <泰誓>에는 이 글이 없으며, <漢書> <武帝紀>에 기록되어 있다. <“夫附下罔上者死,附上罔下者刑,與聞國政而無益於民者斥,在上位而不能進賢者退,此所以勸善黜惡也.”>
▶ 附下罔上 : 아랫사람에게 빌붙어 윗사람을 속이다. 附는 남의 언행을 따라하다. 罔은 속이다.
▶ 愬 : 헐뜯다. 참소하다.
22.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
王制曰:
「假於鬼神時日卜筮以疑於眾者殺也。」
<禮記> <王制>에서 말하였다.
“鬼神‧時日‧卜筮 등을 빌려 민중을 의혹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 아래 글은 <韓非子> 外儲說右上 및 <孔子家語> 致思에 실려 있다.
子路為蒲令,備水災,與民春修溝瀆,為人煩苦,故予人一簞食,一壺漿.
子路가 蒲邑의 수령이 되어 홍수를 대비하여 봄에 백성과 함께 도랑을 정비하다가, 사람들이 고통스러우매 사람마다 밥 한 그릇과 한 병의 국을 지급하였다.
孔子聞之,使子貢復之,子路忿然不悅,往見夫子曰:
孔子께서 들으시고 子貢을 보내어 이를 저지하도록 하니, 자로가 화가 치밀어 불쾌해하며 공자에게 가서 뵙고 말하였다.
「由也以暴雨將至,恐有水災,故與人修溝瀆以備之,而民多匱於食,故與人一簞食一壺漿,而夫子使賜止之,何也?
“저 由는 폭우가 곧 닥쳐 수재가 발생할까 걱정되매, 백성과 함께 도랑을 정비하여 수재에 대비하였는데, 백성 대부분이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마다 한 그릇의 밥과 한 병의 국을 지급하였는데, 선생님께서 子貢을 보내어 저지하셨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夫子止由之行仁也,夫子以仁教而禁其行仁也,由也不受。」
선생님께서는 저 由가 仁을 행함을 저지하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仁을 가르치시고 仁을 행함은 금지하시니,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子曰:
「爾以民為餓,何不告於君,發倉廩以給食之;
而以爾私饋之,是汝不明君之惠,見汝之德義也.
速已則可矣,否則爾之受罪不久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백성이 굶주린다고 여겼으면, 어찌 군주께 보고하여 창고를 열어서 밥을 공급하지 않았느냐?
너의 사적인 식량으로 그들을 먹이니 이것은 네가 군주의 은혜를 천명하지 않고 너의 은덕을 보이는 것이다.
빨리 그만두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네가 治罪받음이 멀지 않을 터이다.”
子路心服而退也。
자로가 심복하고 물러갔다.
▶ 王制 : <禮記>의 편명으로 先王이 나라를 다스리는 제도를 기록하였다.
▶ 卜筮 : 길흉을 알기 위해 점을 치다.
▶ 子路 : 仲由. 姓은 仲, 이름은 由, 字는 子路, 또는 季路이다.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했으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위나라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에 전사하였다.
▶ 蒲 : 춘추시대 衛나라의 邑 이름으로 지금의 河南省 長垣縣 지역이다.
▶ 令 : 邑宰
▶ 一簞食,一壺漿 : 한주먹 도시락 밥과 한 병의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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