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篇은 帝王의 統治行爲와 규범을 論述한 文章이다. 專制時代 최고 統治者의 人品과 能力은 국가를 다스리는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한다. 이는 국가의 興亡盛衰와 國民의 安危에 직결되는 문제로서 統治의 근본이 여기에 있다.
人君之道와 人君之事를 각 事例別로 제시하였는데, 이를 내용별로 分類하면,
① 임금은 愛民思想을 기본으로 敎化를 중시하고 형벌을 가볍게 할 것,
② 임금은 사람의 자질과 재능을 알아서 賢人을 選任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任用할 것,
③ 임금은 品行과 道德을 修養할 것,
④ 임금은 독자적으로 결단할 것,
⑤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를 멀리할 것,
⑥ 임금은 敬天思想을 가질 것,
⑦ 임금은 자신의 言行을 反省하는 일을 중요시할 것,
⑧ 임금은 천하가 公物임을 알아야 할 것,
⑨ 임금은 근본보다 말단이 커져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방지할 것 등이다.
이에 해당하는 事例를 故事와 問答으로 열거하였다.
1. 晉平公이 군주의 도리에 관하여 묻다.
晉平公問於師曠曰:
「人君之道如何?」
晉平公이 師曠에게 물었다.
“군주의 도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對曰:
사광이 대답하였다.
「人君之道清淨無為,務在博愛,趨在任賢;
“군주의 도리는 정치를 맑고 깨씃하며 작위가 없게 하여 백성을 널리 사랑하는 데 힘쓰고, 어진 이를 뽑아 맡김에 서두르고,
廣開耳目,以察萬方;
耳目을 넓게 열어 만방을 살피고,
不固溺於流俗,不拘繫於左右;
세속의 풍속에 끝내 빠지지 않고, 측근에 얽매이지 않고,
廓然遠見,踔然獨立;
마음을 활짝 열어 멀리 내다보고 우뚝하게 자신의 주장을 세우고,
屢省考績,以臨臣下。
자주 관리의 공적을 살펴서 신하 위에 군림해야 합니다.
此人君之操也。」
이것이 군주의 품행입니다.”
平公曰:
「善!」
평공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 晉平公 :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姬姓 이름은 彪이고, 悼公의 아들이다. 평공 3년에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魯나라를 구하기 위해 齊나라를 공격하여 수도를 포위하였다. 다음 해 제후들과 督揚에서 모여 대국이 소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고 백성의 형편을 돌보지 않았으며, 淫樂을 즐겨, 정치가 趙·韓·魏의 三家로 넘어갔다. 26년 동안 재위하였다. [史記 世家] 권39.晉世家
▶ 師曠 :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로 字는 子野다. 晉平公 때 樂師를 지냈다. 전하는 말로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는데, 音律을 잘 판별했고 소리로 吉凶까지 점쳤다고 한다.
▶ 人君 : 임금. 군주.
▶ 清淨無為 : 춘추시대 도가의 철학사상이며 정치술이다.
▶ 流俗 : 세속. 세상에 유행하는 일반적인 풍습.
▶ 廓然 : 확 트이다. 넓고 텅 빈 모양.
▶ 操 : 操行. 품행. 몸가짐.
2.제 齊 宣王이 尹文에게 군주의 도리를 묻다
齊宣王謂尹文曰:
「人君之事何如?」
齊宣王이 尹文에게 말하였다.
“군주의 정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尹文對曰:
윤문이 대답하였다.
「人君之事,無為而能容下。
“군주가 정사는 무위를 행하되 신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夫事寡易從,法省易因;
故民不以政獲罪也。
행하는 일이 적으면 백성이 따르기 쉽고, 법령이 간편하면 법령을 지키기 쉬우매,
백성이 정령과 법령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大道容眾,大德容下;
聖人寡為而天下理矣。
큰 길은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큰 덕은 백성을 포용하니,
聖人이 하는 일은 적으나 천하는 잘 다스려집니다.
《書》曰:
『睿作聖』。
<書經>에 일렀습니다.
‘지혜로우면 성인이 된다.’
詩人曰:
『岐有夷之行,子孫其保之!』」
<詩經>에 일렀습니다.
‘岐山에 평탄한 도로가 있어서 자손이 대대로 이를 보전하리라.’”
宣王曰:
「善!」
선왕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 齊宣王 : 田辟疆. 전국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威王의 아들이다. 재위 중에 田嬰과 儲子를 기용해 재상으로 삼고 匡章과 聲子를 장군으로 삼았다. 아버지 위왕의 뒤를 이어 稷下에 學宮을 설치하여 학자를 초빙하고 강학 토론하도록 하였다. 재위 기간은 19년이고, 시호는 宣이다. [史記世家] 권46.田敬仲完世家
▶ 尹文 : (기원전 360?~기원전 280년). 전국시대 齊나라의 저명한 철학가이며, 존칭으로 尹文子라고도 한다. 稷下道家学派에 속한다. 윤문은 名家로 명실합일의 정치사상을 전개하였다. 저서로는 <尹文子>가 전해진다.
※名家 : 중국 전국시대에 나타난 제자백가의 하나로 이름[名]과 실재[實]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인간 인식의 상대성과 제한성을 강조하였으며, 名實의 불일치를 극복하여 천하를 바로잡겠다는 명실합일의 정치사상을 전개하였다.
▶ 人君之事 : 군주로서의 이념과 법칙.
▶ 書 : 書經
▶ 睿作聖 : 지혜로우면 성인이 될 수 있다. <書經 周書 洪範>
“恭作肅,從作治,明作智,聰作謀,睿作聖.” 공손하면 엄숙해지고, 이치에 맞으면 조리가 있도록 만들고, 밝으면 지혜로워지고, 총명하면 일을 꾀할 수 있고, 지혜로우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史記 世家] 권38.宋微子世家
▶ 睿 : 슬기롭다. 지혜롭다.
▶ 詩人 : 詩經.
▶ 岐有夷之行,子孫其保之 : 岐山에 평평한 길 생겨 자자손손 이를 보전하리라. <詩經 周頌 天作>
주나라에서 기산에 제사 드리는 시. 선조의 업적을 자자손손 이어가며 보전함으로써 그 덕을 잃지 말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 岐 : 岐山. 지금의 陜西省 岐山縣에 있는 산. 周나라의 선조인 古公亶父가 邠에서 岐山 아래에 터를 잡아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 夷 : 평탄하다.
3.주 周 成王이 伯禽을 훈계하다.
成王封伯禽為魯公,召而告之曰:
周成王이 伯禽을 魯公에 봉하고 불러서 훈계하였다.
「爾知為人上之道乎?
“너는 백성의 윗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아느냐?
凡處尊位者,必以敬下,順德規諫,必開不諱之門,撙節安靜以藉之,諫者勿振以威,毋格其言,博采其辭,乃擇可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아랫사람을 공경하여 그들이 충고하는 말을 따르며, 반드시 꺼리서 말하지 않는 문을 열어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마음을 안정시켜 충고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간하는 사람이 위엄에 떨지 말게 하여 그의 말을 막지 말고, 그 말을 널리 받아들여야 너의 선택이 볼 만할 터이다.
夫有文無武,無以威下,有武無文,民畏不親,文武俱行,威德乃成;
既成威德,民親以服,清白上通,巧佞下塞,諫者得進,忠信乃畜。」
文德만 있고 武功이 없으면 아랫사람에게 위엄을 세울 수 없고, 무공만 있고 문덕이 없으면 백성이 두려워하여 가까이 하지 않으며, 문덕과 무공을 함께 행하면 위엄과 덕치가 비로소 이루어지고,
위엄과 덕치가 이루어지면 백성이 친근하고 복종하며, 청렴결백한 사람이 윗사람과 통하고, 교활하고 간사한 자가 아래에 옴을 막고, 간언하는 사람이 벼슬길에 진출하여 忠信한 사람이 비로소 너의 주변에 모일 터이다.”
伯禽再拜受命而辭。
백금이 재배하며 명을 받고 작별하였다.
▶ 成王 : 주성왕. 周武王의 아들로 姓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무왕이 죽은 뒤 나이가 어린 성왕이 즉위하자, 숙부 주공 周公 旦이 攝政이 되어 왕실의 기반을 견고히 하였다.
▶ 伯禽 : 周公 姬旦의 맏아들이며 伯禽은 字이다. 노나라는 周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 周公을 曲阜에 分封하면서 시작되었다. 주공은 봉지에 부임하지 않고 國都에서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을 보좌하면서 장남인 伯禽을 봉지로 보내 통치하게 하였다.[史記 世家] 권33.魯周公世家
▶ 告 : 誥와 같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말하다.
▶ 規諫 : 바르게 충고하다.
▶ 撙節 :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다.
4.행동이 괴팍하고 실언이 많은 陳靈公
陳靈公行僻而言失,泄冶曰:
陳靈公이 행동이 괴팍하고 실언을 하니 泄冶가 말하였다.
「陳其亡矣!吾驟諫君,君不吾聽而愈失威儀。
“陳나라가 장차 망하겠구나! 내가 여러 차례 군주에게 간했지만 군주께서 내 말을 듣지 않고 갈수록 위엄있는 태도를 잃어가고 있다.
夫上之化下,猶風靡草,東風則草靡而西,西風則草靡而東,在風所由而草為之靡,是故人君之動不可不慎也。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교화함은 바람이 풀을 쓰러뜨림과 같아서, 동풍이 불면 풀이 서쪽으로 쓰러지고 서풍이 불면 풀이 동쪽으로 쓰러져서 바람의 오는 곳에 따라 풀이 쓰러지매, 이 때문에 군주로서의 거동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夫樹曲木者惡得直景?
人君不直其行,不敬其言者,未有能保帝王之號,垂顯令之名者也。
굽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 어떻게 곧은 나무 그림자를 얻겠는가?
군주로서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않고 말을 신중히 하지 않는 자에 제왕의 호칭을 보전하고 후대에 좋은 명성을 남기는 자는 없었다.
▶ 陳靈公 : 춘추시대 陳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平國이다. 大夫 孔寧, 儀行父와 함께 대부 御叔의 아내 夏姬와 사통하였다. 세 사람이 하씨 집에서 술을 마시고는 하희의 아들 夏徵舒를 욕보였다. 화가 난 하징서가 弓手를 매복시켜 살해하였다. 15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靈이다. [史記 世家] 권36.陳杞世家
▶ 泄冶 : 洩冶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陳나라의 대부. 영공 14기원전 600년에 영공과 대부 孔寧, 儀行父가 함께 夏姬와 간통하고서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서 서로 희롱하였다. 泄冶가 간언하였다. “군주와 신하가 음란한 짓을 하면 백성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영공이 두 사람에게 이 말을 고하자, 두 사람이 설야를 죽이기를 청하여도 영공이 말리지 않으니 마침내 설야를 죽이고 말았다.<春秋左氏傳 宣公 9년>
※ 夏姬 : 정나라 穆公의 딸로 절세의 미인이자 천하에 둘도 없는 淫女. 결혼하기 전부터 행실이 나빠 이복 오빠인 공자 蠻과 깊은 관계를 가졌으며, 陳나라 대부 夏御叔에게 출가하여 아들 徵舒 만을 둔 채 하어숙이 죽자 과부가 된 후에는 더욱 문란해졌다. 陳나라의 陳靈公과 간신 孔寧·儀行父와 동시에 간통하는 추잡한 짓을 저지른 것이 빌미가 되어 그를 참다못한 아들 夏徵舒가 진영공을 시해하는 비극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영공을 시해한 것을 구실로 삼아 楚莊王이 하징서를 능지처참하고 진나라를 滅國置縣하였다가 신숙시의 간언에 의해 置縣을 취소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景 : 그림자 ‘영’
《易》曰:
<周易>에 일렀다.
『夫君子居其室,出其言善,則千里之外應之,況其邇者乎?
‘군자가 자기 집에 있으면서 하는 말이 선하면 천 리 밖의 사람도 호응하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사람이랴?
居其室,出其言不善,則千里之外違之,況其邇者乎?
자기 집에 있으면서 하는 말이 선하지 못하면 천 리 밖의 사람도 거스르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사람이랴?
言出於身,加於民;
行發乎邇,見乎遠。
말은 자신에게서 백성에게 미치며,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나와 먼 곳에서 나타난다.
言行君子之樞機,樞機之發,榮辱之主,君子之所以動天地,可不慎乎?』
言行은 군자의 樞機로, 樞機를 드러내어 영욕을 주관함이 군자가 천지를 감동시키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天地動而萬物變化。
언행은 천지를 진동시켜 만물을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 易曰 : <周易> <계사 繫辭 上>. 子曰:「君子居其室,出其言,善則千里之外應之,況其邇者乎,居其室,出其言不善,則千里之外違之,況其邇者乎,言出乎身,加乎民,行發乎邇,見乎遠。言行君子之樞機,樞機之發,榮辱之主也。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可不慎乎。」
▶ 樞機 : 몹시 중요한 사물. 문지도리와 쇠뇌의 발사 장치.
《詩》曰:
『慎爾出話,敬爾威儀,無不柔嘉。』
此之謂也。
<詩經>에
‘그대들 언사를 삼가며 그대는 威儀를 신중히 하여 좋지 않은 일이 없기를.’
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今君不是之慎而縱恣焉,不亡必弒。」
그런데도 군주께서 언행을 삼가지 않고 제멋대로 하니,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필시 시해될 터이다.”
靈公聞之,以泄冶為妖言而殺之,後果弒於徵舒。
영공이 이 말을 듣고 설야가 요망한 말을 한다 하여 살해하더니, 뒷날 과연 夏徵舒에게 시해되었다.
▶ 詩曰 : <詩經> <大雅 蕩之什 抑>. 제후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훈계한 시이다. 抑은 치밀함. 빈틈이 없다. “그대 백성을 안정시키고, 그대 제후들이 법도를 삼가 뜻하지 않은 일에 대비하고, 그대들 언사를 삼가며 그대는 위의를 공경하여 좋지 않은 일이 없도록 했으면.(質爾人民, 謹爾侯度, 用戒不虞, 愼爾出話, 敬爾威儀, 無不柔嘉.”
▶ 威儀 : 예법에 맞는 몸가짐. 엄숙한 용모와 정중한 태도.
▶ 柔嘉 : 善하다.
▶ 徵舒 : 夏徵舒. 춘추시대 陳나라의 大夫. 어머니가 음녀로 유명하였던 夏姬인데, 수년간 어머니 하희가 陳靈公등과 음란한 짓을 계속하고 자신마저 욕보이자, 화가 난 대부 하징서가 진영공을 활로 쏘아 죽였다. 대부 하징서는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 하희를 감금하고 진영공의 아들 공자 孔子 午를 군주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나 楚莊王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하징서는 습격을 받고 달아났으나 끝내 잡혀 진나라로 끌려와 임금을 죽인 죄로 거열형에 처해졌다. 초나라는 陳나라를 멸망시켜 縣으로 삼았다.<古文觀止<3권 周文·國語> 04.單子知陳必亡>
5. 군자는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孔子家語 제7편 五儀解 12>
魯哀公問於孔子曰:
「吾聞君子不博,有之乎?」
魯哀公이 孔子에게 물었다.
“내가 군자는 博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孔子對曰:
「有之。」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哀公曰:
「何為其不博也?」
애공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博을 하지 않습니까?”
孔子對曰:
「為其有二乘。」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에는 二乘이 있기 때문입니다.”
哀公曰:
「有二乘則何為不博也?」
애공이 말하였다.
“二乘은 있다 치고 무엇 때문에 博을 하지 않습니까?”
孔子對曰:
「為行惡道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부정한 道까지 행하기 때문입니다.”
哀公懼焉。
애공이 두려워하였다.
有間曰:
조금 지난 뒤에 애공이 말하였다.
「若是乎君子之惡惡道之甚也!」
“이와 같군요, 군자가 부정한 도리를 미워함이 심함이여!”
孔子對曰:
공자가 대답하였다.
「惡惡道不能甚,則其好善道亦不能甚;
好善道不能甚,則百姓之親之也,亦不能甚。
“부정한 道를 미워함이 심하지 않으면, 正道를 좋아함도 심하지 않을 터이고,
正道를 좋아함이 심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친근함도 역시 심하지 않을 터입니다.
《詩》云:
『未見君子,憂心惙惙,亦既見止,亦既覯止,我心則說。』
詩之好善道之甚也如此。」
<詩經>에 이르기를,
‘당신을 뵙지 못해 이 마음 근심스러워라. 만약 당신을 뵌다면, 만약 당신을 만나고 나면 내 마음 기쁘겠지.’
라고 하였으니, <시경>에서 바른 도를 몹시 좋아함이 이와 같습니다.”
哀公曰:
「善哉!吾聞君子成人之美,不成人之惡。
微孔子,吾焉聞斯言也哉?」
애공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나는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주고, 남의 악한 일은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공선생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듣겠습니까?”
▶ 魯哀公 : 춘추시대 魯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將이며, 정공의 아들이다. 노정공이 죽자 그 뒤를 이었다. 기원전 485년에는 오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침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다음 해인 기원전 484년에는 제나라의 역공을 받았으며, 기원전 483년에 孔子가 제나라 간공의 정벌을 권하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기원전 481년, 제나라 간공이 재상 田恒에게 살해당하자, 공자가 다시 제나라 정벌을 세 차례나 권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기원전 468년에 애공이 越나라를 이용하여 삼환을 토벌하려고 하였다. 삼환이 애공을 공격하자 애공은 衛나라로 달아났다가, 鄒나라로 간 다음 마침내 월나라로 갔다. 國人이 애공을 맞아들여 복귀시키려 했지만 애공은 有山氏의 집에서 죽었다.[史記 世家] 권33.魯周公世家
▶ 博 : 고대의 賭博性을 띤 놀이의 일종. 후에 도박으로 泛稱됨. 樗蒲와 한 가지로 중국에서 전하여진 가장 오랜 노름의 한 가지. 5木으로 새를 삼아 그것을 던지어 엎어지고 자빠지는 모양에 따라 梟·盧·雉·犢·塞의 等級을 매기고 局 위의 말을 움직여 勝負를 定하던 것. 지금은 폐하여 행하지 아니함.
▶ 二乘 : 두 사람이 서로 침범하여 승리를 다투다. 乘은 ‘속이다, 침범하다’의 뜻이다.
▶ 惡道 : 바르지 못한 도리.
▶ 未見君子 : <詩經·召南·草蟲(초충:풀벌레>. 외지에 나가 있는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근심에 찬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 “저 남산에 올라 고사리를 캔다. 당신을 뵙지 못해 이 마음 근심스러워라. 만약 당신을 뵌다면, 만약 당신을 만나고 나면, 내 마음 기쁘겠지.(陟彼南山, 言采其蕨. 未見君子, 憂心惙惙. 亦旣見止, 亦旣覯止, 我心則說.”
▶ 惙惙 : 깊이 근심하는 모양.
▶ 亦 : 만약
▶ 止 : 어조사. 之와 통용된다.
▶ 覯(구) : 만나다.
▶ 說 : 기쁘다. 悅과 같다.
▶ 微 : 없다.
6.나라를 다스리는 요임금과 순임금
河間獻王曰:
河間獻王이 말하였다.
「堯存心於天下,加志於窮民,痛萬姓之罹罪,憂眾生之不遂也。
“堯임금이 천하를 잘 다스림에 마음을 두었고 곤궁한 백성에게 더욱 마음을 썼고,만백성이 죄에 걸림을 가슴 아파하였고, 많은 백성이 뜻을 이루지 못함을 근심하였다.
有一民饑,則曰此我饑之也;
한 백성이 굶주리면 ‘이는 내가 그를 굶게 하였다.’ 하였고,
有一人寒,則曰此我寒之也;
한 사람이 추위에 떨면 ‘이는 내가 그를 춥게 하였다.’ 하였으며,
一民有罪,則曰此我陷之也。
한 백성이 죄가 있으면 ‘이는 내가 그를 죄에 빠뜨렸다.’고 하였다.
仁昭而義立,德博而化廣;
故不賞而民勸,不罰而民治。
어진 마음이 밝게 드러나 도의가 수립되고 은덕을 널리 베풀어 교화가 멀리 전파되매, 그래서 상주지 않아도 백성이 고무되었고 벌주지 않아도 백성이 잘 다스려졌다.
先恕而後教,是堯道也。
먼저 관대히 대한 뒤에 교화함이 요임금의 나라를 다스린 방법이다.
當舜之時,有苗氏不服,其所以不服者,大山在其南,殿山在其北;
左洞庭之波,右彭蠡之川;
舜임금 시대에 이르러서는 有苗氏가 복종하지 않으니, 그들이 복종하지 않은 까닭은 남쪽에는 大山이 있고 북쪽에는 殿山이 있으며, 왼쪽에는 洞庭湖가 있고 오른쪽에는 彭蠡湖가 있기 때문이었다.
因此險也,所以不服,禹欲伐之,舜不許,曰:
이 험한 지형에 의지함이 복종하지 않은 까닭이매, 禹가 그들을 정벌하려고 하자 舜임금이 허락하지 않고 말하였다.
『諭教猶未竭也.』
‘타이르고 가르침에 아직 힘을 다하지 않았다.’
究諭教焉,而有苗氏請服.
타이르고 가르침을 다하자 유묘씨가 복종하기를 청하였다.
天下聞之,皆非禹之義,而歸舜之德。」
천하 사람들이 이 일을 알자 모두들 禹의 도의를 비난하고 순임금의 덕정에 귀의하였다.”
▶ 河間獻王 : 劉德. 경제 전원 2년(기원전 155년)에 황제의 아들의 신분으로 河間王에 봉해졌다. 유학을 좋아하여 복장이나 말과 행동 모두를 유생들을 모방하였다. 산동의 유생들이 많이 그를 따르면서 교유하였다. 獻은 시호이다.[史記世家]권59.五宗世家
▶ 堯 : 帝堯. 제곡 고신의 아들로 이름은 放勳이며, 唐堯 또는 帝堯陶唐으로도 부른다. 이는 요가 唐 지방을 다스렸기 때문에 붙은 칭호이다.[史記 本紀] 권01. 五帝本紀오제본기
▶ 罹 : 걸리다. 당하다.
▶ 不遂 : 뜻을 이루지 못하다
▶ 勸 : 고무하다. 격려하다.
▶ 舜 : 순임금. 帝舜重華는 전설상의 5帝의 한 사람으로 성은 虞 또는 有虞氏고, 이름은 重華다. 四嶽의 천거를 받아 攝政을 하였다. 八元과 八愷를 등용하고 사방을 巡行하면서 鯀과 共工, 驩兜, 三苗 등 四惡을 제거하였다. 堯가 죽자 堯의 아들 丹朱를 즉위시키려 했지만 천하의 인심이 순에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마침내 순이 제위에 올랐다.[史記 本紀] 권01. 五帝本紀
▶ 有苗氏 : 三苗族을 말한다. 堯舜 시대에 江·淮·荊州에 자리 잡고 있었던 蠻族의 이름. 순임금이 악한 제후였던 三苗를 三危山으로 유배보냈다.<書經 虞書 大禹謨>
▶ 洞庭之波 : 洞庭湖. 湖南省에 위치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
▶ 彭蠡之川 : 鄱陽湖의 별칭. 지금의 江西省 북부에 있다.
▶ 禹 : 전설상의 夏왕조의 시조. 요의 치세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섭정인 舜이 그에게 치수를 명하였다. 禹가 치수사업에 대한 공을 세워 순이 죽은 후 제위에 올랐으며 우임금의 아들 啓가 이어받아 夏나라를 건립하였다.[史記 本紀] 권02. 夏本紀
▶ 諭教 : 타이르고 가르치다. 교화하다.
▶ 究諭教焉 : 舜임금이 禹에게 有苗를 토벌하라고 명했는데 항복받지 못하고 돌아오자, 순임금이 덕을 닦으며 궁중 뜰에서 干羽 춤을 추니 70일 만에 묘족이 와서 항복하였다. 이는 순임금이 益의 권고에 따라서 덕으로 감화시켜 묘족을 굴복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書經·大禹謨>
7. 周公이 국정을 대리하다.
周公踐天子之位布德施惠,遠而逾明,十二牧,方三人,出舉遠方之民,有饑寒而不得衣食者,有獄訟而失職者,有賢才而不舉者,以入告乎天子.
周公이 천자의 지위에 서서 은덕을 베푸니 먼 지방일수록 더욱 밝게 나타나고, 열두 사람의 牧을 임명하여 사방에 각각 세 사람을 두어 나가서 먼 지역 백성의 실정을 살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데도 衣食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는지, 소송사건으로 떠도는 자가 있는지, 어진 인재가 있는데도 천거되지 않는 자가 있는지를 조정에 들어와 천자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天子於其君之朝也,攝而進之曰:
천자는 제후국의 군주가 朝見함에 그들이 읍을 하고 조정에 나오게 하여 말하였다.
「意朕之政教有不得者與!
“아마도 짐의 정치교화에 합당치 못한 것이 있는가 보오!
何其所臨之民有饑寒不得衣食者,有獄訟而失職者,有賢才而不舉者?」
어찌하여 다스리는 백성 중에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데도 衣食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소송사건으로 떠도는 자가 있으며, 어진 인재가 있는데도 추천하지 않는 자가 있소?”
其君歸也,乃召其國大夫,告用天子之言,百姓聞之皆喜曰:
「此誠天子也!何居之深遠而見我之明也,豈可欺哉!」
그 군주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그 나라의 大夫를 불러 천자의 말을 일러주니, 백성이 듣고 모두들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분은 진실로 천자이시다! 어떻게 먼 깊은 궁궐에 살면서 우리의 실정을 밝게 아시는가? 어찌 속이겠는가!”
故牧者所以辟四門,明四目,達四聰也,是以近者親之,遠者安之。
그러므로 牧은 사방의 문을 활짝 열고 사방의 실정을 밝게 보며 사방의 말을 밝게 통해야 곧 가까운 곳 사람들은 천자를 친근히 하고 먼 곳의 사람들은 편안히 지낸다.
《詩》曰:
「柔遠能邇,以定我王」,
此之謂矣。
<詩經>에서 이르기를,
“먼 곳 사람들 편안하게 하고 가까운 곳 사람들 순종하게 하여 우리나라 안정시켜 줬으면.”
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周公踐天子之位 : 주성왕이 어리고 주나라가 막 천하를 평정했기에 周公은 제후들이 주나라를 배반할까 두려워서 이에 국정을 대리하고 국사를 다스렸다.[史記 本紀] 권04. 周本紀
▶ 周公 : 周公旦.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 成王 : 周成王. 주나라의 제2대 왕이다.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 무왕의 아들이다.
▶ 十二牧 : 舜임금 때 12州의 장관으로 후세의 제후에 해당한다. 12牧은 12州의 牧이다. <書經·虞書·舜典>
▶ 方三人 : : 전국에 12州牧을 두고 사방으로 나누어 각 방면마다 3인을 두었다.
▶ 出舉 : 외출하여 시찰하다.
▶ 失職 : 살 곳을 찾아 헤매다.
▶ 君 : 제후국의 군주.
▶ 朝見 : 朝請. 고대에 제후들이 경성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는 일로 春天은 ‘朝’, 秋天은 ‘請’이라 한다.
▶ 辟四門,明四目,達四聰也 : 순임금은 四嶽에게 다스리는 일을 물어 사방의 문을 열고 사방을 보는 눈을 밝게 하며 사방의 실정을 막힘없이 들었다. 또한 12주의 목사들을 소집하여 그들에게 순임금 자신의 정치 이념을 설명하였다. 辟은 열다.
※ <書經> <虞書 舜典>
二十有八載,帝乃殂落。百姓如喪考妣,三載,四海遏密八音。月正元日,舜格于文祖,詢于四岳,闢四門,明四目,達四聰。
28년 째 되던 해에, 요임금이 죽었다. 백성은 마치 부모를 여윈 듯 슬퍼하였고, 3년 동안, 천하에서는 음악소리가 끊어져 조용하였다. 月正 元日에 순임금은 문조의 묘에 고제를 올렸다. 순은 四岳과 의논하여 수도의 문을 개방하고, 사방을 보는 눈을 밝게 하며 사방의 실정을 막힘없이 들었다.
▶ 柔遠能邇 : <詩經> <大雅 生民之什 ‘民勞’>. 이 시의 題名은 ‘지쳐버린 백성’으로 爲政者에게 失政을 바로 잡기를 諫하는 노래이다.
“백성 고달퍼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했으면. 우리 도읍을 사랑하여 온 세상 편안하게 했으면.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버려두지 말고 나쁜 사람 삼가며 약탈하고 포악스런 사람들, 밝고 올바름 두려워하는 사람들 막아줬으면. 먼 곳 사람들 편안하게 하고 가까운 곳 사람들 순종하게 하여 우리나라 안정시켜 줬으면.(民亦勞止,汔可小康. 惠此中國, 以綏四方. 無縱詭隨, 以謹無良. 式遏寇虐, 憯不畏明. 柔遠能邇, 以定我王.”)
8.禹임금의 치적을 말하다.
河間獻王曰:
「禹稱民無食,則我不能使也;
功成而不利於人,則我不能勸也;
故疏河以導之,鑿江通於九派,灑五湖而定東海,民亦勞矣,然而不怨者,利歸於民也。」
河間獻王이 말하였다.
“禹임금이 공언하기를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면 나는 그들을 부리지 못하고,
공적을 이루어도 백성에게 이롭지 못하면 나는 그들을 격려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황하의 물을 소통시키고 長江을 파서 아홉 지류와 통하게 하며,
五湖의 물을 나누어 동해로 들어가게 하니 백성 역시 수고로웠다.
그런데도 원망하지 않은 것은 백성에게 이로움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 河間獻王 : 劉德. 경제 전원 2기원전 155년에 황제의 아들의 신분으로 河間王에 봉해졌다. 유학을 좋아하여 복장이나 말과 행동 모두를 유생들을 모방하였다. 산동의 유생들이 많이 그를 따르면서 교유하였다. 獻은 시호이다.
▶ 禹 : 요임금의 말년 홍수가 일어나 우의 아버지인 곤에게 치수를 맡겼으나 곤이 치수에 실패하였고, 순이 우를 천거하여 우가 치수 사업에 몰두하여 성공함으로써 그 공으로 순임금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르고, 하 왕조를 열어 이후 17대에 이어졌다.[史記 本紀] 권02. 夏本紀
“옛날 禹임금이 홍수를 막고 장강과 황하의 수로를 터서 사방의 夷狄과 九州의 교통로를 소통하게 하였는데 그때 천하에는 커다란 하천이 3백 개였고, 지류가 3천 개였으며, 그 밖에 작은 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우임금이 친히 삼태기와 보습을 손에 들고 천하의 내를 규합할 때 우임금의 장딴지에는 살이 빠졌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어지고 장맛비에 얼굴을 씻고 모진 바람에 빗질한 끝에 萬國을 건설하였다. 우임금은 大聖人인데도 이처럼 천하를 위해 자기 몸을 혹사하였다.”<[장자]第33篇 天下>
▶ 鑿江通於九派 : 長江을 준설하여 아홉 지류로 소통하게 한 일을 이르며, 九派는 長江의 여러 지류를 말하며, 長江은 潯陽에서부터 나뉘어 九江이 된다.
▶ 灑五湖而定東海 : 五湖의 물을 나누어 흘려서 동해로 주입시킨 것을 이른다. 灑 : 나눌 ‘시. 나누다. 定 : 주입하다.
9.우임금이 수레에서 내려 죄인에게 묻고 울다.(下車泣罪)
禹出見罪人,下車問而泣之,左右曰:
「夫罪人不順道,故使然焉,君王何為痛之至於此也?」
禹임금이 순시하다가 죄인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죄인에게 묻고 울자, 좌우의 신하들이 물었다.
“죄인이란 법을 따르지 않으매 저렇게 만드는 것인데, 君王께서는 무엇 때문에 마음 아파하심이 여기에 이르셨습니까?”
禹曰:
「堯舜之人,皆以堯舜之心為心;
今寡人為君也,百姓各自以其心為心,是以痛之。」
우임금이 말하였다.
“堯舜 시대의 백성은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았는데,
지금 과인이 임금이 되자 백성이 각자 자신의 마음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이 때문에 내가 마음 아파한다.”
書曰:「百姓有罪,在予一人。」
<書經>에 일렀다.
“백성에게 죄가 있음은 그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
※ 下車泣罪 : 죄인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죄인에게 죄를 지은 이유를 묻고 슬퍼한다는 말로, 스스로 바른 정치와 교화를 하지 못했음에 통감하며 죄인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 禹 : 요임금의 말년 홍수가 일어나 우의 아버지인 곤에게 치수를 맡겼으나 곤이 치수에 실패하였고, 순이 우를 천거하여 우가 치수 사업에 몰두하여 성공함으로써 그 공으로 순임금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르고, 하 왕조를 열어 이후 17대에 이어졌다.[史記 本紀] 권02. 夏本紀
▶ 百姓有罪,在予一人. : <書經·周書·泰誓·中篇>백성에게 죄가 있는 것은 그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
周武王이 商나라의 紂王을 정벌하러 가기 전에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한 말이다.
“하늘은 우리 백성이 보는 바를 통하여 보고 있으며, 우리 백성이 듣는 바를 통하여 듣고 계신다. 백성에게 과실이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책임인 것이니 이제 짐이 반드시 정벌하러 가야 하겠다.(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 百姓有過,在予一人,今朕必往.”
10. 虞나라와 芮나라의 訟事 : 虞芮之訟
虞人與芮人質其成於文王,入文王之境,則見其人民之讓為士大夫;
入其國則見其士大夫讓為公卿;
虞와 芮의 군주가 국경을 다투다가 周文王에게 그 質定을 요청하려고 주문왕의 境內에 들어가다가, 그곳의 백성은 사대부가 되기를 사양함을 보고,
國都에 들어가니 사대부는 公卿이 되기를 사양함을 보았다.
二國者相謂曰:
「其人民讓為士大夫,其士大夫讓為公卿,然則此其君亦讓以天下而不居矣。」
두 나라의 군주가 서로 말하였다.
“이곳의 백성은 사대부 되기를 사양하고 사대부는 공경이 되기를 사양하니, 그렇다면 이곳의 군주도 천하를 사양하고 그 자리에 있지 않을 터이다.”
二國者,未見文王之身,而讓其所爭以為閑田而反。
두 나라의 군주가 문왕 본인을 만나지 않고 서로 다투던 땅을 사양하여 閒田으로 만들고 돌아갔다.
孔子曰:
「大哉文王之道乎!其不可加矣!
不動而變,無為而成,敬慎恭己而虞芮自平。」
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위대하다. 문왕의 도덕이여! 더할 수가 없구나!
움직이지 않아도 변화시키고, 한 일이 없는데도 자연히 이루어져서, 공경하고 삼가며 자신을 공손히 지키자, 우나라와 예나라가 저절로 화평하였다.”
故書曰:
「惟文王之敬忌。」
此之謂也。
그러므로 <書經>에 이르기를
“삼가 文王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라.”
하였으니, 이 일을 이름이다.
▶ 虞人與芮人 : 虞나라 군주와 芮나라의 군주. 虞나라는 舜임금의 선대를 봉한 나라로 지금의 山西省 平陸縣에 있었다. 芮나라는 周文王이 세웠으며 지금의 山西省 芮城縣에 있었다.
※ 虞芮之訟 : 虞와 芮의 군주가 경계로 분쟁이 있어 주나라 서백에게 판결을 요청하였다. 주나라의 국경에 들어서자 밭을 가는 사람은 밭의 경계를 양보하고, 백성의 풍속도 모두 나이 많은 사람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우나라와 예나라 군주는 서백을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모두 부끄러워하면서 서로에게 말하였다. “우리처럼 싸우는 것을 주나라 사람들은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니 어찌 가서 그런 일을 하겠는가, 단지 치욕만 얻을 뿐이다.” 마침내 돌아와서 함께 양보하고 헤어졌다.<사기 본기 권 04. 周本紀>
▶ 質其成 : 質은 質正. 남에게 是非를 가려서 재판하는 것을 이른다.
成은 平의 뜻으로 화해함을 말한다. <詩經 大雅 綿> “虞芮質厥成, 文王蹶厥生. 予曰有疏附, 予曰有先後.. : 虞나라와 芮나라 시비 가리려 와서 화해함은 문왕께서 덕으로 그들 마음 감동시켜서라네. 생소한 사람도 친하게 어울려 먼저 사람은 뒷사람 이끌어준다.”
▶ 文王 : 周文王. 상나라 말기 周 씨족의 수령이다. 성은 姬, 이름은 昌이다. 둘째 아들인 서주 무왕이 주나라를 세운 후 문왕으로 추숭하였다. 상나라 말기에 西伯이 되었고, 이 때문에 伯昌으로 일컫기도 한다.
▶ 閑田 : 주인이 없는 경작지. <孔子家語 好生>
▶ 惟文王之敬忌 : 주 문왕의 법도를 본받으라는 뜻<尙書 周書 康誥>.
<康誥>는 상서의 편명으로 강은 주 문왕의 아홉째 아들이며, 주무왕의 동생으로 이름을 봉이라 하는데 그가 제후로 책봉될 때 성왕이 강공에게 훈시한 내용이다. <尙書 周書 康誥>에서 “汝亦罔不克敬典,乃由裕民,惟文王之敬忌;乃裕民曰:『我惟有及。』則予一人以懌。」 너는 역시 삼가 법규를 신중히 하여야만 비로소 백성을 영도할 수 있느니라, 너는 삼가 문왕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여야만 비로소 백성을 영도할 수 있느니라. 네가 나에게 말하기를 ‘저는 오로지 바쁘게 일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나 한사람으로서는 기쁘겠노라.”라고 하였다.
11.오동나무 잎을 오려 동생을 封하다. <剪桐封弟>
成王與唐叔虞燕居,剪梧桐葉以為珪,而授唐叔虞曰:
「余以此封汝。」
成王이 唐叔虞와 한가할 적에, 오동나무 잎을 오려 珪를 만들어 唐叔虞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것으로 너를 封하노라.”
唐叔虞喜,以告周公,周公以請曰:
「天子封虞耶?」
당숙우가 기뻐서 이것을 周公에게 말하니 주공이 뵙기를 요청하여 말하였다.
“천자께서 虞를 封하셨습니까?”
成王曰:
「余一與虞戲也。」
성왕이 말하였다.
“내가 虞와 장난쳤을 뿐이오.”
周公對曰:
「臣聞之,天子無戲言,言則史書之,工誦之,士稱之。」
주공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천자에게 농담이 없으니, 말하면 史官이 기록하고 樂工이 읊으며 선비들이 찬양합니다.”
於是遂封唐叔虞於晉,周公旦可謂善說矣.
이에 마침내 당숙우를 晉에 봉하였으니, 周公 旦은 말을 잘한다고 이를 만하다.
一稱而成王益重言,明愛弟之義,有輔王室之固。
한마디 말을 하여, 성왕이 더욱 신중히 말하게 하고, 아우를 사랑하는 우애를 표명하고, 왕실의 공고함을 도왔다.
▶ 剪桐封弟 : 주성왕이 어린 동생에게 오동잎을 오려 주며 농담한 일로 인해 주공이 천자는 농담할 수 없다고 하며 동생을 唐 땅에 봉한 일을 말한다. 桐葉封弟라고도 한다.
▶ 成王 : 주나라의 제2대 왕. 周武王의 아들로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뒤를 이어 13살에 즉위하였다. 성왕이 어렸으므로 무왕의 아우 周公 旦이 攝政하였다.
▶ 唐叔虞 : 唐叔 姬虞. 성은 姬이고, 자는 子於이다. 武王의 아들이자 成王의 아우이다. 周公이 唐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당나라의 땅을 叔虞에게 하사하여 당숙우로 불리게 되었으며, 諸侯國인 晉나라의 始祖가 되었다. 그의 아들인 燮父가 도읍을 晉水 가로 옮겨 晉으로 개명하였다. <사기 晉世家>
※ 唐 : 唐堯의 후대가 세웠다는 나라 이름으로, 周나라 때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周公에게 멸망하였는데, 뒤에 叔虞를 그곳에 봉하였다. 叔虞의 아들 燮이 국명을 晉으로 바꾸었다.
▶ 燕居 : 閑居하다. 하는 일 없이 한가하게 있다.
▶ 珪 : 圭와 같다. 옥으로 만든 笏. 천자가 제후에게 신분의 信標로 주는 符信인데, 禮를 행할 때 잡는다.
12. 군주의 도리 : 요임금의 신하들
當堯之時,舜為司徒,契為司馬,禹為司空,后稷為田疇,夔為樂正,倕為工師,伯夷為秩宗,皋陶為大理,益掌敺禽,堯體力便巧不能為一焉,堯為君而九子為臣,其何故也?
堯임금 때 舜은 司徒가 되고, 契은 司馬가 되고, 禹는 司空이 되고, 后稷이 田疇가 되고, 夔가 樂正이 되고, 倕가 工師가 되고, 伯夷가 秩宗이 되고, 皐陶가 大理가 되고, 益이 山澤을 관장하되, 요임금은 체력이 날렵하고 민첩하나 한 가지 일을 맡지 않고도 요가 군주로서 아홉 현인을 신하로 삼았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堯知九職之事,使九子者各受其事,皆勝其任以成九功,堯遂成厥功以王天下.
요임금이 아홉 가지 직무를 알아서 아홉 사람에게 각기 담당할 직무를 받게 하자, 모두 각자의 임무를 이루 감당하여 아홉 가지 공적을 이루니, 요임금이 마침내 공적을 이룸으로써 천하를 통치하였다.
是故知人者王道也,知事者臣道也,王道知人,臣道知事,毋亂舊法而天下治矣。
이러하므로 사람을 알아봄이 군주의 도리이고 업무를 앎은 신하의 도리이매, 군주의 도리로서 사람을 알아보고, 신하의 도리로서 업무를 알아서, 본래의 제도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천하는 잘 다스려진다.
▶ 堯 : 帝堯 陶唐氏는 중국 신화 속 군주로 三皇五帝 가운데 하나이다.
▶ 舜 : 帝舜重華는 전설상의 帝王으로 5帝의 한 사람으로 성은 虞 또는 有虞氏고, 이름은 重華다. 요가 죽자 요의 아들 丹朱를 즉위시키려 했지만 천하의 인심이 순에게 기울었기 때문에 순이 제위에 올랐다. 賢人을 등용하고 禹를 司空에 임명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으며, 우를 후계자로 삼았다. 또 夔와 契, 皐陶, 垂, 益, 伯夷, 棄, 龍 등에게 民事를 맡겨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史記 本紀] 권01. 五帝本紀
▶ 司徒 : 교화를 담당하는 관리.
▶ 契 : 고대 전설상의 帝王 高辛氏 帝嚳의 아들. 舜 임금 때 司寇 벼슬을 하였다. 禹 임금을 도와 물을 다스려 공을 세우고, 商에 봉해져서 상나라의 始祖가 된다.
▶ 司馬 : 군사에 관한 일을 주관하던 관직.
▶ 禹 : 전설상의 夏왕조의 시조. 요의 치세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섭정인 순이 그에게 치수를 명하였다. 천하를 9주로 나누고 공부를 정하였으며 즉위 후 나라이름을 夏로 고쳤다.
▶ 司空 : 토목 건축을 주관하는 관원.
▶ 后稷 : 周王朝의 전설적 시조. 姓은 姬, 이름은 棄. 農耕神으로 오곡의 신이기도 하다.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해 낳아서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세 차례나 내다 버렸으나 그때마다 구조되었다. 후에 요임금의 農官이 되었고 순임금은 기를 邰에 봉하고 후직이라 부르는 한편 姬氏 성을 별도로 내렸다.[史記 本紀] 권04. 周本紀
▶ 田疇 : 농업을 관장하는 農官
▶ 夔 : 요, 순임금 때의 樂官
▶ 樂正 : 樂官의 장관.
▶ 倕 : 솜씨가 뛰어난 匠人으로, <書經> <虞書 舜典>에는 垂로 썼다.
▶ 工師 : 각종의 기술자를 관장하는 직책. 司空의 밑에서 百工을 거느리며 건축과 토목의 일을 주관하던 직책.
▶ 伯夷 : 예의에 밝았던 사람으로, 周武王 때의 伯夷가 아니다.
▶ 秩宗 : 郊祀와 廟祭를 주관하는 관직이다. 秩은 序의 뜻이고 宗은 尊의 뜻이다. 귀신의 尊卑에 따라 차례로 제사 지내는 일을 관장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 皋陶 : 舜임과 禹 임금 때의 관리. 咎陶, 혹은 皋繇라 불리기도 하였다. 士, 士師, 大理官, 九州牧 등을 지냈다.<史記 本紀 권02. 夏本紀>
▶ 大理 : 典獄署. 고대의 관직명. 형 집행에 관한 일을 맡았다.
▶ 益 : 伯益.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伯翳, 柏翳, 伯鷖, 大費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 敺禽 : 사냥. 여기서는 산과 못을 관리함을 말한다.
▶ 便巧 : 날렵하고 민첩하다.
▶ 王道 : 군주가 어진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
13. 신하를 임용하는 도리<湯王>
湯問伊尹曰:
「三公九卿,二十七大夫,八十一元士,知之有道乎?」
湯王이 伊尹에게 물었다.
“3公 ‧ 9卿 ‧ 27大夫 ‧ 81元士를 임용할 때 알아두어야 할 법도가 있소?”
伊尹對曰:
이윤이 대답하였다.
「昔者堯見人而知,舜任人然後知,禹以成功舉之。
“옛날 堯임금은 만나보면 알고, 舜임금은 임용하고 나서 알고, 禹임금은 성공해야 등용하였습니다.
夫三君之舉賢,皆異道而成功,然尚有失者,況無法度而任己,直意用人,必大失矣。
세 군주가 賢者를 등용함에 모두 방법을 달리하여 성공하되 그래도 실패하는 자가 있었는데, 하물며 일정한 법도가 없이 자기에게 맡겨 주관적 의사로 사람을 임용하면 그는 필시 크게 실패할 터입니다.
故君使臣自貢其能,則萬一之不失矣,王者何?
그러므로 군주가 신하에게 그의 재능을 바치게 하면 만분의 일도 실패함이 없을 터이니 군왕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以選賢。
현자를 선택함을 써야 합니다.
夫王者得賢材以自輔,然後治也,雖有堯舜之明,而股肱不備,則主恩不流,化澤不行,
무릇 군왕은 어진 인재를 얻어 자기를 보좌하게 한 뒤에야 천하가 잘 다스려지며,
비록 堯舜의 현명함이 있어도 股肱의 重臣이 갖춰지지 않으면 군주의 은덕이 퍼지지 않고 교화와 혜택이 시행되지 않습니다.
故明君在上,慎於擇士,務於求賢,設四佐以自輔,有英俊以治官,尊其爵,重其祿,賢者進以顯榮,罷者退而勞力.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위에 있음에, 士를 뽑음에 신중하고 현자를 구함에 힘써서, 보좌하는 네 관직을 만들어 자기를 보좌하게 하고, 걸출한 인물을 두어 관리를 다스리게 하고, 그들의 벼슬을 높여주고 그들의 녹봉을 후하게 주면, 어진 이는 등용되어 영화가 빛나고 무능한 사람은 퇴출되어 힘을 쓰는 일에 종사합니다.
是以主無遺憂,下無邪慝,百官能治,臣下樂職,恩流群生,潤澤草木.
이 때문에 군주에게 남은 근심이 없고 아래에 사악한 사람이 없으며, 百官은 직무를 잘 처리하고 신하는 직무를 즐겁게 맡아서, 은덕이 뭇 백성에게 퍼지고 은택이 초목까지 윤택하게 합니다.
昔者虞舜左禹右皋陶,不下堂而天下治,此使能之效也。」
예전에 舜임금은 왼쪽에는 禹가 있고 오른쪽에는 皐陶가 있어서 堂 아래를 내려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으니, 이것이 현능한 사람을 부린 효과입니다.”
▶ 湯 : 湯王. 고대 商나라를 창건한 왕. 걸왕을 명조에서 격파하여 패사시키고 박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이름 履 또는 天乙 ·太乙. 탕은 字이며, 成湯이라고도 한다.[史記 本紀] 권03. 殷本紀
▶ 伊尹 : 商를 개국한 湯王의 재상으로 伊는 이름이고, 尹은 관직명 尹正의 尹이다. 원래 탕왕의 부인이 시집올 때 따라온 노예였으나, 뒤에 탕왕의 桀왕의 정벌을 도와 공을 이루자 阿衡으로 존경받았다.
▶ 三公九卿二十七大夫八十一元士 : 고대에 천자를 보좌하는 조정의 신하를 통틀어 이르는 말. <禮記>에 “三公九卿二十七大夫八十一元士”라고 하여 작위의 등급을 나타낸 말이었다.
▶ 股肱 : 다리와 팔. 股肱之臣. 임금이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를 말한다.
▶ 四佐 : 천자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네 관직으로 前疑‧後丞‧左輔‧右弼을 가리킨다.
▶ 邪慝 : 사악하다. 못되고 악하다.
▶ 虞舜 : 순임금. 帝舜重華. 전설상의 帝王으로 5帝의 한 사람으로 성은 虞 또는 有虞氏고, 이름은 重華다.
▶ 禹 : 전설상의 夏왕조의 시조. 요의 치세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섭정인 순이 그에게 치수를 명하였다. 천하를 9주로 나누고 공부를 정하였으며 재위 후 나라이름을 夏로 고쳤다
▶ 皋陶 : 舜임과 禹 임금 때의 관리. 咎陶, 혹은 皋繇라 불리기도 하였다. 士, 士師, 大理官, 九州牧 등을 지냈다
14.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는 도리<擧賢之道>-이 편은 <六韜·舉賢>의 내용과 유사하다.
武王問太公曰:
「舉賢而以危亡者,何也?」
周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현명한 사람을 등용했는데도 위태로워지거나 멸망함은 무엇때문이오?”
太公曰:
「舉賢而不用,是有舉賢之名,而不得真賢之實也。」
태공이 말하였다.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현명한 사람을 등용했다는 명분만 있고 진실로 현명한 사람을 얻은 실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武王曰:
「其失安在?」
무왕이 말하였다.
“그 잘못은 어디에 있소?”
太公望曰:
「其失在君好用小善而已,不得真賢也。」
太公望이 말하였다.
“그 잘못은 군주가 작은 선행이 있는 사람을 쓰기 좋아할 뿐, 진실로 현명한 사람을 얻지 못함에 있습니다.”
武王曰:
「好用小善者何如?」
무왕이 말하였다.
“작은 선행이 있는 사람을 쓰기 좋아함은 무엇이오?”
太公曰:
태공이 말하였다.
「君好聽譽而不惡讒也,以非賢為賢,以非善為善,以非忠為忠,以非信為信;
“군주는 칭찬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고 讒言을 싫어하지 않아서, 어질지 않은 자를 어진 자라 여기고, 좋지 못한 자를 좋은 자라 여기고, 충성하지 않는 자를 충성하는 자라 여기며, 미덥지 않은 자를 미덥다고 여깁니다.
其君以譽為功,以毀為罪;
有功者不賞,有罪者不罰;
多黨者進,少黨者退;
是以群臣比周而蔽賢,百吏群黨而多姦;
忠臣以誹死於無罪,邪臣以譽賞於無功。
그런 군주는 자기를 칭찬함을 功으로 여기고 비판함을 罪로 여기며,
공이 있는 자를 상 주지 않고 죄 있는 자를 벌주지 않으며,
黨與가 많은 자를 등용하고 黨與가 적은 자를 내칩니다.
이 때문에 신하들이 당을 결성하여 현명한 사람을 막고, 많은 관리가 떼를 지어 간악한 짓을 하니,
충신은 그 때문에 비방을 받아 죄 없이 죽고, 간신은 그 때문에 칭찬하여 공 없이 상을 받습니다.
其國見於危亡。」
그런 나라는 위태롭거나 멸망합니다.”
武王曰:
「善!吾今日聞誹譽之情矣。」
무왕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내가 오늘에서야 비방과 칭찬의 실정을 들었습니다.”
▶ 武王 : 西周의 國君. 성은 姬이고, 이름은 發이다. 文王의 아들로 西伯의 직위를 이었다. 商나라를 멸망시키라는 문왕의 유지를 받들어 제후들과 孟津에서 會盟하고 군대를 일으켜 상나라 紂임금을 정벌하였다. 牧野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周王朝를 건설하였다. 鎬를 도읍으로 정하고, 제후들에게 分封하였다.
▶ 太公 : 太公望. 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齊나라 시조가 되었다. 본명은 姜尙으로, 그의 선조가 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이라고 불렀지만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주나라 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武王을 도와 商나라 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다.<史記 齊太公世家>
▶ 擧賢 : 훌륭한 재주가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
▶ 比周 : 한패가 되다. 파당을 짓다.
▶ 黨與 : 당파. 개인적인 파벌.
▶ 危亡 : 위태로워 망하려함. 위태로움과 멸망
15. 남의 말에 의지하여 결단하는 자는 재앙을 당한다.
武王問太公曰:
「得賢敬士,或不能以為治者,何也?」
周 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賢者를 얻고 관리를 존경하여도 간혹 잘 다스리지 못함은 무엇 때문이오?”
太公對曰:
「不能獨斷,以人言斷者殃也。」
태공이 대답하였다.
“혼자 결단하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의지하여 결단하는 자는 재앙을 당합니다.”
武王曰:
「何為以人言斷?」
무왕이 말하였다.
“무엇이 남의 말에 의지하여 결단함이오?”
太公對曰:
「不能定所去,以人言去;
不能定所取,以人言取;
不能定所為,以人言為;
不能定所罰,以人言罰;
不能定所賞,以人言賞。
태공이 대답하였다.
“제거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제거하며,
취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취하며,
해야 할 일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행하며,
처벌할 사람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처벌하며,
상 줄 사람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상을 줍니다.
賢者不必用,不肖者不必退,而士不必敬。」
賢者를 반드시 등용할 필요가 없고, 어리석은 사람을 반드시 퇴출시킬 필요가 없으며, 관리를 반드시 존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武王曰:
「善,其為國何如?」
무왕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그런 군주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립니까?”
太公對曰:
「其為人惡聞其情,而喜聞人之情;
惡聞其惡,而喜聞人之惡;
是以不必治也。」
태공이 대답하였다.
“사람됨이 자신의 실상을 듣기 싫어하고 남의 실상을 듣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나쁜 점은 듣기 싫어하고 남의 나쁜 점은 듣기 좋아합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잘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武王曰:
「善。」
무왕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 武王 : 西周의 國君. 성은 姬이고, 이름은 發이다. 文王의 아들로 西伯의 직위를 이었다. 商나라를 멸망시키라는 문왕의 유지를 받들어 제후들과 孟津에서 會盟하고 군대를 일으켜 상나라 紂임금을 정벌하였다. 牧野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周王朝를 건설하였다. 鎬에 도읍하고 제후들에게 分封하였다.
▶ 太公 : 太公望. 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齊나라 시조가 되었다. 본명은 姜尙으로, 그의 선조가 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이라고 불렀지만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주나라 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武王을 도와 商나라 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다.<史記 齊太公世家>
▶ 士 : 西周 때 관직을 卿, 大夫, 士의 三級으로 설치하였다. 士는 일반 관리.
▶ 言斷 : 단언하다. 주저하지 아니하고 딱 잘라 말함.
▶ 人之情 : 인간의 참된 실상.
16. 나라가 현명한 인재를 얻지 못하는 다섯 가지 장애
齊桓公問於甯戚曰:
「筦子今年老矣,為棄寡人而就世也,吾恐法令不行,人多失職,百姓疾怨,國多盜賊,吾何如而使姦邪不起,民衣食足乎?」
齊桓公이 甯戚에게 물었다.
“管子가 지금 연로하여 만일 과인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면, 아마도 법령이 시행되지 않고 사람들 다수가 직무에 태만하고, 백성이 미워하고 원망하며 나라에는 도적이 많을 터이니, 내가 어떻게 하면 간사한 자가 일어나지 않고 백성의 의식을 풍족하게 하겠소?”
甯戚對曰:
「要在得賢而任之。」
영척이 대답하였다.
“요점은 賢者를 얻어 정사를 맡김에 달려 있습니다.”
桓公曰:
「得賢奈何?」
환공이 말하였다.
“賢者를 얻음은 어떻게 하오?”
甯戚對曰:
「開其道路,察而用之,尊其位,重其祿,顯其名,則天下之士騷然舉足而至矣。」
영척이 대답하였다.
“賢者를 추천하는 길을 활짝 열고 분명히 살펴서 임용하되, 지위를 존귀하게 하고 봉록을 많게 하여 명성을 드날리게 하면, 천하의 인재들이 소란스럽게 발길을 옮겨 이를 터입니다.”
桓公曰:
「既以舉賢士而用之矣,微夫子幸而臨之,則未有布衣屈奇之士踵門而求見寡人者。」
환공이 말하였다.
“賢士를 선발하여 등용하고 나서 선생이 행여 와서 돕지 않으면, 서민 중의 뛰어난 인재로서 과인을 만나러 오는 자가 없을 터이오.”
甯戚對曰:
영척이 대답하였다.
「是君察之不明,舉之不顯;
而用之疑,官之卑,祿之薄也;
“이는 군주의 살핌이 명확하지 못하고 인재의 선발을 분명하지 않으며,
임용하되 의심하고, 관직을 주되 卑職이며, 녹봉을 주되 薄俸이기 때문입니다.
且夫國之所以不能士者,有五阻焉:
主不好士,諂諛在旁,一阻也;
言便事者,未嘗見用,二阻也;
壅塞掩蔽,必因近習,然後見察,三阻也;
訊獄詰窮其辭,以法過之,四阻也;
執事適欲,擅國權命,五阻也。
또 나라가 어진 인재를 얻지 못함에 다섯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군주가 인재를 좋아하지 않고 아첨하는 사람이 곁에 있음이 첫 번째 장애요,
정사에 유리한 진언이 채택됨이 없음이 두 번째 장애요,
언로가 막히고 실상이 가려져서, 인재가 近臣을 통하여야만 천거됨이 세 번째 장애요,
獄事를 신문함에 그 말을 끝까지 추궁하여 법의 적용이 과도함이 네 번째 장애요,
執事者가 그의 욕망에 맞추어 국정을 독단하고 명령을 장악함이 다섯 번째 장애입니다.
去此五阻,則豪俊並興,賢智求處;
五阻不去,則上蔽吏民之情,下塞賢士之路;
이 다섯 장애를 除去하면 호걸과 뛰어난 인재가 모두 일어나고, 어질고 지혜로운 자가 자리를 구하고,
다섯 장애를 除去하지 않으면 위로는 吏民의 실정이 가려지고 아래로는 賢士가 進路가 막힙니다.
是故明王聖主之治,若夫江海無不受,故長為百川之主;
明王聖君無不容,故安樂而長久。
이 때문에 현명하고 슬기로운 군주의 다스림에, 강과 바다가 수용하지 않음이 없어서 모든 냇물의 주인이 됨과 같이, 현명하고 슬기로운 군주는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에 안락하여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因此觀之,則安主利人者,非獨一士也。」
이를 통하여 보면 군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자는 유독 한 사람의 인재가 아닙니다.”
桓公曰:
「善,吾將著夫五阻以為戒本也。」
환공이 말하였다.
“훌륭하오. 나는 이 다섯 가지 장애를 기록하여 경계하는 근본으로 삼겠소.”
▶ 齊桓公 : 춘추시대 齊나라의 제16대 후작으로, 성은 姜, 휘는 小白, 姜太公의 12세손이며, 시호는 桓公이다. 춘추시대 覇王이 되었으며, 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東周 왕실을 대신해 會盟을 거행하였다.<史記 世家 권32.齊太公世家>
▶ 甯戚 : 전국시대 衛나라 사람으로 제나라 관중의 도움으로 제환공을 만나 공경의 벼슬하게 되었다. 제환공을 만날 때 甯戚이 쇠뿔을 두드리며 商歌(:飯牛歌)를 부르다가 齊桓公에게 인정을 받아 등용되었다.
▶ 筦子 : 筦은 管과 같다. 管仲. 管仲의 이름은 夷吾이며, 齊桓公과 적대관계였으나 환공의 신하 鮑叔의 추천에 의하여 재상이 된 후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 중 제일의 강국으로 만드는 공적을 세웠다. 관중은 제나라에 있어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며 포숙아와의 관포지교로 유명하다.[史記列傳] 권62 管晏列傳
▶ 就世 : 죽다.
▶ 失職 : 직무에 태만하다.
▶ 騷然 : 소란스럽다.
▶ 屈奇之士 : 뛰어난 인재. 屈은 崛과 통용된다. 우뚝 솟다.
▶ 踵門 : 방문하다.
▶ 阻 : 阻碍. 장애.
▶ 壅塞掩蔽 : 막혀서 엄폐되다.
▶ 近習 : 近臣
▶ 察 : 밀다, 薦擧하다.
▶ 訊 : 조사하다.
▶ 詰窮 : 힐문하여 캐냄.
▶ 執事 : 官員. 좌우의 시종.
17.군주의 잘못을 지적하는 관리가 갖춰진 뒤에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
-이 글은 <晏子春秋> 內篇의 問篇과 雜篇에서 인용되었다.
齊景公問於晏子曰:
「寡人欲從夫子而善齊國之政。」
齊景公이 晏子에게 말하였다.
“과인은 선생의 건의를 좇아 齊나라의 정치를 잘해보고자 합니다.”
對曰:
「嬰聞之,國具官而后政可善。」
안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듣건대 나라는 훌륭한 관리를 갖추어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景公作色曰:
「齊國雖小,則何為不具官乎?」
경공이 안색을 바꾸면서 말하였다.
“제나라가 비록 작지만, 무엇 때문에 훌륭한 관리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시오?”
對曰:
안자가 대답하였다.
「此非臣之所復也。
“이것은 신이 반복해 말할 바가 아닙니다.
昔先君桓公,身體墮懈,辭會不給,則隰朋侍;
左右多過,刑罰不中,則弦章侍;
居處肆縱,左右懾畏,則東郭牙侍;
田野不修,人民不安,則甯戚侍;
軍吏怠,戎士偷,則王子成父侍;
德義不中,信行衰微,則筦子侍.
예전에 先君 桓公이 몸이 나태하고 辭令이 민첩하지 못하면 隰朋이 모시고,
측근에 허물이 많거나 형벌이 정확하지 못하면 弦章이 모시고,
평상시 거처함이 방종하여 측근이 두려워하면 東郭牙가 모시고,
농경지가 개간되지 못하여 백성이 불안해하면 甯戚이 모시고,
軍吏가 태만해지거나 병사가 해이해지면 王子成父가 모시고,
행위가 德義에 맞지 않거나 성실한 품행이 쇠미해지면 管子가 모셨습니다.
先君能以人之長續其短,以人之厚補其薄;
是以辭令窮遠而不逆,兵加於有罪而不頓.
선군은 남의 장점으로써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였고, 남의 넉넉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였으매, 명령이 먼 곳까지 전해져서 사람들이 거스르지 않았고, 有罪者에게 군대를 동원하니 군대가 둔하지 않았습니다.
是故諸侯朝其德而天子致其胙。
이 때문에 제후들이 그 덕행에 감복하여 朝見하였고, 천자가 제사 지낸 고기를 보냈습니다.
今君之失多矣,未有一士以聞者也,故曰未具。」
지금 군주의 과실이 많은데도 한 사람도 그것을 아뢰는 자가 없으므로, 관리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景公曰:
「善。
吾聞高繚與夫子遊,寡人請見之。」
경공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내가 듣기에 高繚가 선생과 교제한다고 하니 과인이 그를 만나기를 청하오.”
晏子曰:
「臣聞為地戰者不能成王,為祿仕者不能成政;
若高繚與嬰為兄弟久矣,未嘗干嬰之過,補嬰之闕,特進仕之臣也,何足以補君。」
안자가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땅을 위하여 전쟁하는 자는 왕업을 이루지 못하고, 녹봉을 위하여 벼슬하는 자는 정치적 업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료와 같은 사람은 저와 형제처럼 지낸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일찍이 저의 잘못을 막지 않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메꾸어주지도 않았으매, 단지 벼슬하는 신하일 뿐입니다. 어찌 족히 군주를 보좌하겠습니까?”
▶ 齊景公 : 齊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杵臼이다.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하는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게 되었다. <史記 권32.齊太公世家>
▶ 晏子 : 晏平仲. 晏嬰.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나라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晏子春秋는 안영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사기열전 권 62.管晏列傳>
▶ 先君桓公 : 齊桓公. 齊나라의 제16대 후작으로, 성은 姜, 휘는 小白, 姜太公의 12세손이며, 시호는 桓公이다. 춘추시대 覇王이 되었으며, 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東周 왕실을 대신해 會盟을 거행했다
▶ 墮懈 : 해이해지다. 권태롭다.
▶ 隰朋 : 춘추시대 齊나라의 大夫. 管仲과 함께 桓公을 보좌하여 霸業을 이루었다.
▶ 弦章 : 춘추시대 齊나라의 大夫로, 景公 때 大理가 되어 獄事를 공정하게 판결하였다.
▶ 東郭牙 : 춘추시대 齊나라 大夫로, 直諫을 잘하여 죽음도 피하지 않았으며 부귀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아 大諫官이 되었다.<管子>
▶ 王子成父 : 齊桓公 때의 대사마. 齊 惠公 2년에 수만이 제나라를 공격하자 제나라의 王子城父가 교여의 동생 榮如를 잡아 머리를 북문에 묻었다.<春秋左氏傳 文公 11년>
▶ 天子致其胙 : 환공 35년(기원전 651년)에 周 襄王이 齊桓公에게 제사 지낸 고기를 보냈다. 胙는 제사를 지낸 고기. 고대 예의제도에 제사 고기는 同姓에게만 나누어 주었는데 姜姓인 제나라에게 나누어 줌은 齊桓公을 우대한 것이다. <사기 제태공세가>
▶ 高繚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안자를 섬겼으나 안자의 잘못을 충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자가 쫓아냈다. <晏子春秋>에는 高糾로 기록하고 있다. <晏子春秋·內篇·雜上>
▶ 特進仕之臣也 : <안자춘추>에는 ‘特祿仕之臣也’로 기록하고 있다.
18.겸손한 태도로 신하를 구하면 스승 같은 재목이 올 것이다.
燕昭王問於郭隗曰:
「寡人地狹人寡,齊人削取八城,匈奴驅馳樓煩之下,以孤之不肖,得承宗廟,恐危社稷,存之有道乎?」
燕 昭王이 郭隗에게 물었다.
“과인의 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어 齊나라가 여덟 城을 탈취하고 흉노는 樓煩 아래 지역을 蹂躪하므로, 나의 불초함을 가지고 先代의 종묘를 계승함에 사직을 危害할까 걱정되니, 국가를 보존함에 방도가 있겠소?”
郭隗曰:
「有,然恐王之不能用也。」
곽외가 말하였다.
“방법이야 있지만 아마 왕께서 채용하지 않을 듯합니다.”
昭王避席請聞之,郭隗曰:
소왕이 避席하여 듣기를 청하니 곽외가 말하였다.
「帝者之臣,其名,臣也,其實,師也;
王者之臣,其名,臣也,其實,友也;
霸者之臣,其名,臣也,其實,賓也;
危國之臣,其名,臣也,其實,虜也。
“천자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로는 스승이고,
왕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로는 친구이고,
霸者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로는 손님이고,
위태로운 나라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로는 포로입니다.
今王將東面,目指氣使以求臣,則廝役之材至矣;
南面聽朝,不失揖讓之禮以求臣,則人臣之材至矣;
西面等禮相亢,下之以色,不乘勢以求臣,則朋友之材至矣;
北面拘指,逡巡而退以求臣,則師傅之材至矣。
지금 왕께서 東面하고 눈짓으로 지시하며 교만하게 신하를 구하면 머슴 같은 재목이 올 터이고,
南面하여 정사를 처리하고 揖讓의 예를 잃지 않으면서 신하를 구하면 남의 신하와 같은 재목이 올 터이고,
西面하여 서로 대등한 예의로 대하고 기쁜 안색을 지어 권세를 부리지 않으면서 신하를 구하면 친구와 같은 재목이 올 터이고,
北面하여 拱手하며 머뭇거리는 듯 물러서는 태도로 신하를 구하면 스승 같은 재목이 올 터입니다.
如此則上可以王,下可以霸,唯王擇焉。」
이렇게 하면 위로는 왕 노릇할 수가 있고, 적어도 霸者가 될 수 있을 터이니, 왕께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燕王曰:
「寡人願學而無師。」
燕王이 말하였다.
“과인은 배우기를 원하지만 스승이 없소.”
郭隗曰:
「王誠欲興道,隗請為天下之士開路。」
곽외가 말하였다.
“왕이 진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방법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제가 천하의 인재에게 길을 열어주겠습니다.”
於是燕王常置郭隗上坐南面,居三年,蘇子聞之,從周歸燕;
鄒衍聞之,從齊歸燕;
樂毅聞之,從趙歸燕;
屈景聞之,從楚歸燕。
이리하여 연왕은 항상 곽외를 윗자리에 앉아 남면하게 하였는데, 3년이 지나자 蘇秦이 알고 東周로부터 연나라에 歸附하고,
鄒衍이 알고고 제나라로부터 연나라에 귀부하고,
樂毅가 알고 趙나라로부터 연나라에 귀부하고,
屈景이 알고 초나라로부터 연나라에 귀부하였다.
四子畢至,果以弱燕并彊齊;
夫燕齊非均權敵戰之國也,所以然者,四子之力也。
이 네 사람이 모두 연나라에 오니 과연 약소한 연나라가 강대한 제나라를 겸병하였으니,
연나라와 제나라는 세력이 같지 않고 대적하여 싸울 나라가 아닌데도 그렇게 된 까닭은 이 네 사람의 역량이었다.
《詩》曰:
「濟濟多士,文王以寧。」
此之謂也。
<시경>에 이르기를,
“훌륭한 많은 선비여, 文王은 그들로 인하여 편안하셨도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燕昭王 : 전국시대 연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平이다. 시호는 昭襄王이지만, 약칭 시호로는 昭王 혹은 襄王으로도 불린다. 郭隗와 鄒衍, 樂毅 등 어진 선비를 초빙하여 父王 때 잃었던 땅을 齊나라로부터 되찾았고 제나라의 수도 臨淄에 진입하고 莒와 卽墨을 제외한 제나라의 70여 성을 점령하여 연나라가 가장 강성한 시기를 이루었다.[史記 世家] 권34.燕召公世家
▶ 郭隗 : 전국 시대 燕나라 사람. 연나라 昭王이 齊나라에 복수하고자 인재를 구할 때 賢士를 초빙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樂毅와 鄒衍, 劇辛 등의 인재들이 다투어 찾아와 국력이 부강해졌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先從隗始이다.
▶ 樓煩 : 北狄의 이름, 지금의 山西城 寧武縣 일대.
▶ 孤 : 왕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 避席 : 피석하다. 자리에서 물러나 일어나다.(윗사람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 東面 : 1.面向东。 2.东边,东侧。 3.古代事师之礼,师坐东面向西,弟子面向东事之。
▶ 目指氣使 : 눈짓이나 턱 끝으로 사람을 부리다. 태도가 매우 교만하다
目指氣使와 같은 뜻이다. 颐指:动下巴示意,指挥别人;气使:用神情气色支使人。不说话而用面部表示表情示意。形容有权势的人指挥别人的傲慢态度
▶ 廝役 : 종. 머슴.
▶ 揖讓 : 읍하는 동작과 사양하는 동작. 예를 다하여 사양하다.
▶ 等禮相亢 : 상호간에 대등한 지위나 예의로써 대하다.
▶ 拘指 : 拱手. 두 손을 마주 잡고 팔을 가슴 위로 올려 경의나 존중을 표시함
▶ 逡巡而退 : 뒤로 멈칫멈칫 물러남. 망설이다가 뒤로 물러남.
▶ 蘇子 : 蘇秦. 전국시대의 정치가. 강국 진나라에 대적하기 위해 나머지 6국이 연합하는 합종설을 주장하였다. 처음에 秦나라의 惠王을 비롯하여 제후 밑에서 유세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았으며, 秦나라를 두려워하는 산동의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며 6六國의 연합으로 진에 대항하자는 合縱說을 주창하여 燕의 文侯에 채용되었고, 또 趙·齊·魏·韓·楚·燕의 남북 縱橫說을 성공시켜 6국의 재상이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15년 동안 秦나라의 세력을 방비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동서 連橫說을 주장하는 張儀의 주장에 의해 깨어지고 齊나라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사기 권69. 蘇秦列傳>
▶ 鄒衍 : 또는 騶衍. 전국시대의 齊나라 제자백가 중 陰陽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史記列傳 권74. 孟子荀卿列傳>
▶ 樂毅 : 전국시대 연나라의 上將軍. 본래 中山國 사람이었으나 중산국이 조나라에 망한 뒤 조나라 사람이 되었다가 燕 昭王에게 중용되어 상장군이 되었다. 여러 제후국과 연합하고 제나라를 토벌하여 제나라의 70여 성을 항복받고 昌國君에 봉해졌다. 昭王이 죽고 태자인 惠王이 즉위하였는데, 혜왕이 제나라의 反間計에 말려들어 樂毅를 의심하고 대장군의 직위를 박탈하자, 樂毅는 趙나라로 망명하였다.<사기 권80. 樂毅列傳>
▶ 屈景 : 전국시대 楚나라 사람으로 연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이름이 景이다.
▶ 濟濟多士,文王以寧 : 이 많은 선비 있어 문왕께서 이로써 편안했도다. 濟濟는 많은 모양. 문왕은 많은 신하들이 잘 보좌하므로 안녕하다는 뜻. <詩經 大雅 文王>
19.인재를 얻지 못한 楚 莊王의 한탄
楚莊王既服鄭伯,敗晉師,將軍子重三言而不當.
楚莊王이 이미 鄭伯을 굴복시키고 (정나라를 구원하던 )晉軍을 격파하였는데, 장군 子重이 세 번이나 부당한 말을 올렸다.
莊王歸,過申侯之邑,申侯進飯,日中而王不食,申侯請罪.
장왕이 돌아오면서 申侯의 封邑을 지날 때 申侯가 식사를 올렸으나 정오가 되도록 장왕이 먹지 않으니 신후가 죄를 청하였다.
莊王喟然嘆曰:
장왕이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吾聞之,其君賢者也,而又有師者王;
其君中君也,而又有師者霸;
其君下君也,而群臣又莫若君者亡。
“내가 듣건대, 그 군주가 현명하고 또 스승 같은 보좌가 있으면 왕노릇하고,
그 군주가 중간 정도이고 또 스승 같은 보좌가 있으면 霸者가 되고,
그 군주가 하등 정도이고 신하들조차 군주만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다.
今我,下君也,而群臣又莫若不穀恐亡.
그런데 나는 하등의 군주이고 신하들조차 나만도 못하니 나라가 망할까 걱정된다.
且世不絕聖,國不絕賢;
天下有賢而我獨不得,若吾生者,何以食為?」
더구나 세상에는 聖人이 끊어지지 않고 나라에는 賢人이 끊어지지 않는데,
천하에 현인이 있으나 나만 얻지 못하니, 나처럼 사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밥을 먹겠는가?”
故戰服大國義從諸侯,戚然憂恐聖知不在乎身,自惜不肖,思得賢佐,日中忘飯,可謂明君矣。
그러므로 전쟁하여 대국을 굴복시키고 의리를 세워 제후를 거느리면서도,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서글피 근심하고 걱정하고, 자신이 무능함을 안타까워하면서, 현인의 보좌를 얻기를 생각하여 정오가 되도록 밥 먹는 일을 잊었으니 초 장왕은 현명한 군주라고 이를 만하다.
▶ 楚莊王 : 초나라의 제22대 군주로 이름은 侶이다. 성왕의 손자이자 穆王의 아들이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초 장왕은 陳나라의 내란을 틈타 陳나라를 일시에 병합하고, 장왕 17년(기원전 597년) 봄에 정나라를 포위하여 석 달 만에 함락하였다.[史記 世家] 권40.楚世家
▶ 鄭伯 : 鄭襄公. 춘추시대 정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堅이다. 양공 8년(기원전 597년), 楚 莊王이 정나라가 晉나라와 동맹을 맺자 토벌하러 와서 정나라를 석 달 동안 포위했으며, 정나라는 도성을 내어주고 초나라에 투항하였다.
▶ 子重 : 초 목왕의 아들이며 楚 莊王의 아우인 公子嬰齊로 자가 子重이다. 초 장왕17년(기원전 597년) 초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와의 邲전투에서 진나라를 대패시켰다.
▶ 請罪 : 용서를 빌다. 죄를 청하다.
▶ 喟然 :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하는 모양.
▶ 其君賢者也,而又有師者王 : 賈誼의 <新書·先醒>에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세상의 군주는 먼저 깨닫는 군주가 있고, 뒤에 깨닫는 군주가 있으며, 깨닫지 못하는 군주가 있는데 초장왕은 먼저 깨닫는 군주라고 하였다(世上的君主有先醒悟的,有后醒悟的,有不醒悟的.)
▶ 不穀 : 제후가 자신을 칭하는 겸손한 말. 나. 不善.
▶ 戚然 : 걱정스러운 모양. 우울한 모양.
20.현명한 군주의 세 가지 두려움<明主有三懼>
明主者有三懼,一曰處尊位而恐不聞其過,二曰得意而恐驕,三曰聞天下之至言而恐不能行,何以識其然也?
현명한 군주에게 세 가지 두려움이 있으니, 첫째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함이고, 둘째는 뜻을 얻고 나서 교만해질까 두려워함이고, 셋째는 천하의 지극한 명언을 듣고서 행하지 못할까 두려워함이니, 무엇으로 그러함을 아는가?
越王勾踐與吳人戰,大敗之,兼有九夷,當是時也,南面而立,近臣三,遠臣五.
越王 句踐이 吳나라와 전쟁하여 오나라를 대패시키고 9개 성을 겸병하고, 당시 남면하여 霸者 노릇을 하니, 가까운 곳에서 세 나라가 臣服하고 먼 곳에서 다섯 나라가 臣服하였다.
令群臣曰聞吾過而不告者其罪刑,此處尊位而恐不聞其過者也。
그러자 신하들에게 명령하기를 “나의 잘못을 알고도 고하지 않는 자는 형벌에 처하겠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존귀한 지위에 있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昔者晉文公與楚人戰,大勝之,燒其軍,火三日不滅,文公退而有憂色,侍者曰:
「君大勝楚,今有憂色,何也?」
예전에 晉 文公이 초나라와 전쟁하여 크게 승리하고 초나라의 군영을 불태우니 3일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문공이 철군하면서 근심하는 기색을 띠자 모시는 신하가 말하였다.
“군주께서 초나라에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지금 근심하는 기색을 띰은 무엇 때문입니까?”
文公曰:
「吾聞能以戰勝而安者,其唯聖人乎!
若夫詐勝之徒,未嘗不危也,吾是以憂。」
문공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전쟁에 승리하고 나서 나라를 안정시킨 사람은 오직 聖人뿐이다.’라고 하였다!
속임수로 승리하는 무리 같은 경우에 일찍이 위태롭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나는 이 때문에 근심한다.”
此得意而恐驕也。
이것은 뜻을 이루고 교만해질까 두려워한 것이다.
昔齊桓公得筦仲隰朋,辯其言,說其義,正月之朝,令具太牢進之先祖,桓公西面而立,筦仲隰朋東面而立,桓公贊曰:
예전에 齊 桓公이 管仲과 隰朋을 얻어 자신의 말을 잘 분별하고, 자신의 의도를 잘 해석하자 正月의 조회에서 太牢를 갖추게 하여 선조의 사당에서 제사를 올림에, 환공은 西面하고 관중과 습붕이 東面하게 하고 환공이 칭찬하였다.
「自吾得聽二子之言,吾目加明,耳加聰,不敢獨擅,願荐之先祖。」
“나는 두 사람이 건의하는 말을 들은 이래로 나의 눈이 더욱 밝아지고 귀가 더욱 밝아져서 감히 독단하지 못했으니, 이제 선조께 이 두 사람을 추천하겠습니다.”
此聞天下之至言而恐不能行者也。
이것은 천하의 지극한 명언을 듣고 실행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 句踐 : 춘추전국시대 후기의 월나라 군주로 允常의 아들이다. 책사 범려의 뒷받침으로 당시 화남에서 강세를 자랑하고 있던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다.<史記 권41.越王句踐世家>
▶ 九夷 : 오나라의 9개 城池.
▶ 晉文公 : 春秋 五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은 姬이고 이름은 重耳이다. 아버지 獻公에게는 寵妃가 많았는데 驪妃를 특히 사랑하여 여비의 소생인 奚齊를 후계자로 삼고자 태자 申生을 죽이고, 중이와 그의 아우 夷吾를 추방하였다. 중이는 狄으로 도망하여, 국외에서 19년을 지내다가 義兄이 되는 秦의 穆公의 원조로 晉으로 돌아와 62세에 즉위하였다.<史記 권39.晉世家>
▶ 軍 : 營壘. 軍營
▶ 退 : 철군하다.
▶ 若夫 : 그런데, ~와 같은 것은.
▶ 齊桓公 : 춘추시대 齊나라의 제16대 후작으로, 성은 姜, 휘는 小白, 姜太公의 12세손이며, 시호는 桓公이다. 춘추시대 覇王이 되었으며, 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東周 왕실을 대신해 會盟을 거행하였다.<史記 世家 권32.齊太公世家>
▶ 筦仲 : 管仲. 管仲의 이름은 夷吾이며, 제 齊 桓公과 적대관계였으나 환공의 신하 鮑叔의 추천에 의하여 환공의 신하로서 재상이 된 후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 중 제일로 만든 공적을 세웠다. 포숙아와의 관포지교로 유명하다.
▶ 隰朋 : 춘추시대 齊나라의 大夫. 管仲과 함께 桓公을 보좌하여 霸業을 이루었다.
▶ 辯 : 분별하다. 변별하다.
▶ 太牢 : 제사 때 소, 양,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 진수성찬을 말한다.
▶ 東面 : 옛날 제왕들은 南面하였으며, 公侯將相은 東面하였다.
21.나라에 상서롭지 못한 일 세 가지<國有三不祥>
-이 내용은 <晏子春秋> <內篇·諫篇·諫下>에 실려 있다.
齊景公出獵,上山見虎,下澤見蛇,歸召晏子而問之曰:
「今日寡人出獵,上山則見虎,下澤則見蛇,殆所謂之不祥也。」
齊 景公이 사냥을 나갔다가 산에 올라가 범을 보았고, 늪에 내려와 뱀을 보고, 돌아와서 晏子를 불러 물었다.
“오늘 과인이 사냥을 나갔다가 산에 올라가서는 범을 보았고 늪에 내려와서는 뱀을 보았으니, 아마도 이른바 ‘不祥(상서롭지 않음)’인 듯하오.”
晏子曰:
안자가 말하였다.
「國有三不祥,是不與焉.
“나라에는 세 가지 不祥이 있는데 그것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夫有賢而不知,一不祥;
知而不用,二不祥;
用而不任,三不祥也;
所謂不祥乃若此者也。
현명한 인물이 있는데도 알지 못함이 첫 번째 不祥이고,
알면서도 등용하지 않음이 두 번째 不祥이고,
등용하고서도 신임하지 않음이 세 번째 不祥이니,
이른바 不祥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今山上見虎,虎之室也,下澤見蛇,蛇之穴也.
그런데 산에 올라가 범을 봄은 범이 사는 굴에 이른 것이고, 늪에 내려와 뱀을 봄은 뱀이 사는 구멍에 간 것입니다.
如虎之室,如蛇之穴而見之,曷為不祥也。」
범이 사는 굴에 가고 뱀이 사는 구멍에 가서 그것을 보았는데 어찌 不祥이겠습니까!”
▶ 齊景公 : 제 齊 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杵臼이다.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게 되었다. <史記 권32.齊太公世家>
▶ 晏子 : 晏平仲. 晏嬰.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나라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晏子春秋는 춘추시대 제나라 안영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 殆 : 대체로, 아마도.
▶ 任 : 신임하다.
▶ 如 : 가다.
22-1. 초 楚 莊王이 사냥하는 이유
楚莊王好獵,大夫諫曰:
「晉楚敵國也,楚不謀晉,晉必謀楚,今王無乃耽於樂乎?」
楚 莊王이 사냥을 좋아하자 大夫가 간하였다.
“晉과 楚는 적국이니, 초가 진을 도모하지 않으면 진이 필시 초를 도모할 텐데, 그런데도 왕께서 사냥의 즐거움에 탐닉하신 것 아닙니까?”
王曰:
왕이 말하였다.
「吾獵將以求士也.
“내가 사냥함은 인재를 구하는 수단이다.
其榛藂刺虎豹者,吾是以知其勇也;
其攫犀搏兕者,吾是以知其勁有力也;
罷田而分所得,吾是以知其仁也。
개암나무 수풀에서 범과 표범을 찔러 죽이면, 이것으로 그의 용맹을 알고,
물소를 움켜잡고 코뿔소를 맨손으로 때려잡으면, 이것으로 그의 힘이 셈을 알고,
사냥을 끝내고 잡은 짐승을 나누어주면, 이것으로 그의 어짊을 안다.
因是道也而得三士焉,楚國以安。」
이 방법을 통하여 세 종류의 인재를 얻어서 초나라를 안정시켰다.”
故曰:苟有志則無非事者,此之謂也。
속담에 이르기를, ‘뜻을 세워 추구하면 이루지 못함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耽 : 탐닉하다. 빠지다.
▶ 榛藂 : 개암나무가 우거지다. 藂은 ‘叢’과 통용된다.
▶ 攫犀 : 무소를 움켜잡다. 犀는 무소, 코뿔소.
▶ 搏兕 : 무소를 때려잡다. 兕는 무소의 암컷.
▶ 田 : 畋과 같다. 사냥하다.
▶ 苟 : 만약
22-2. 7년 동안의 큰 가뭄.
湯之時大旱七年,雒坼川竭,煎沙爛石,於是使人持三足鼎,祝山川,教之祝曰:
湯王 때 큰 가뭄이 들기 7년, 雒水의 바닥이 갈라지고 하천이 말랐으며, 모래를 달구고 돌을 녹이니, 이에 사람을 시켜 세 발 달린 솥을 가지고 산천에 기도하면서 축원하게 하였다.
政不節耶? 使人疾耶? 苞苴行耶? 讒夫昌耶? 宮室營耶? 女謁盛耶? 何不雨之極也.
“정치함에 절도가 없었는가? 백성을 괴롭혔는가? 뇌물이 유행하였는가? 참소하는 사람이 창궐하였는가? 궁실이 화려한가? 총애하는 여인의 청탁이 많았는가? 어찌하여 이다지도 비가 내리지 않습니까?”
蓋言未已而天大雨,故天之應人,如影之隨形,響之效聲者也。
말을 마치기도 전에 큰비가 내리매, 하늘이 사람의 일에 호응함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메아리가 소리를 본뜸과 같다.
《詩》云:
「上下奠瘞,靡神不宗。」
言疾旱也。
<詩經>에
“하늘과 조상에 제물 바치며 모든 신을 높이었도다.”
라고 하였으니, 가뭄을 원망한 말이다.
▶ 湯 : 湯王. 고대 商나라를 창건한 왕. 걸왕을 명조에서 격파하여 패사시키고 박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이름 履 또는 天乙 ·太乙. 탕은 字이며, 成湯이라고도 한다.[史記 本紀] 권03. 殷本紀
▶ 雒坼 : 낙수 바닥이 갈라지다. 雒은 雒水. 坼은 갈라지다.
▶ 煎沙爛石 : 모래를 달구고 돌을 녹이다. 爛은 문드러지게 하다.
▶ 三足鼎 : 세 발 솥. 국가 권력의 상징.
▶ 祝 : 축원하다. 빌다.
▶ 苞苴 : 뇌물로 보내는 물건.
▶ 謁 : 청하다.
▶ 上下奠瘞,靡神不宗 : <詩經> <大雅 雲漢:은하수>에 “가뭄이 너무 심하여 뜨거운 기운만 훅훅 오른다. 끊임없이 제사를 정결하게 지내어 하늘 제사에서 조상제사에 이르기까지 위 아래로 제물 바치며 모든 신을 높이었도다.(旱旣大甚, 蘊隆蟲蟲. 不殄禋祀, 自郊徂宮, 上下奠瘞, 靡神不宗.)”라고 노래하였다.
▶ 奠瘞(전예) : 제사하다.
▶ 疾 : 괴로워하다. 증오하다.
23.상서롭지 못한 징조 1
-<史記> 殷本紀에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殷太戊時,有桑穀生於庭,昏而生,比旦而拱,史請卜之湯廟,太戊從之,卜者曰:
殷나라 太戊 때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의 뜰에 났는데, 어스름할 때 나서, 다음날 아침이 되자 한 아름쯤 되매, 史官이 탕왕의 묘당에서 점을 치자고 요청하여 태무가 그 말을 따랐더니 점치는 자가 말하였다.
「吾聞之,祥者福之先者也.
見祥而為不善,則福不生;
殃者禍之先者也,見殃而能為善,則禍不至。」
“제가 듣건대, 祥瑞는 복에 앞서는 것이라 합니다.
상서를 만났으나 선하지 않은 일을 하면 복이 생기지 않습니다.
재앙은 禍에 앞서는 것입니다.
재앙을 만났으나 선행을 하면 화가 오지 않습니다.”
於是乃早朝而晏退,問疾弔喪,三日而桑穀自亡。
이에 태무가 아침 일찍 조정에 나가 저녁 늦게 물러 나오고, 병든 사람을 위로하고 죽은 사람을 조문하기 3일이 되자 뽕나무와 닥나무가 저절로 사라졌다.
▶ 殷太戊 : 太戊. 殷나라의 제9대 왕으로 성은 子이며, 이름은 太戊, 王號는 中宗이다. 현인 伊陟을 재상으로 삼아 은나라를 부흥시켰다.[史記 本紀] 권03. 殷本紀
▶ 桑穀 : 桑谷과 같다. 뽕나무와 닥나무. 뽕나무와 닥나무는 들에 자라는 식물인데 조정의 뜰에 났다면 나라가 망할 징조라 하였다.<論衡 異虛>
▶ 比 : ~때에 이르다.
▶ 拱 : 한 아름. 두 팔로 안다.
▶ 晏 : 늦다
24.상서롭지 못한 2
-이 내용은 <論衡> 異虛篇에 기록되어 있다.
高宗者,武丁也.
高宗은 이름이 武丁이다.
高而宗之,故號高宗,成湯之後,先王道缺,刑法違犯,桑穀俱生乎朝,七日而大拱,武丁召其相而問焉,其相曰:
德性이 높아 존숭할 만하매 號를 고종이라 하였는데, 成湯 이후에 先王의 도가 결핍되어 형법을 위배하니,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에 함께 나서 7일 만에 크기가 한 아름이 되자 무정이 그의 재상을 불러서 길흉을 물으니 재상이 말하였다.
「吾雖知之,吾弗得言也。
聞諸祖己,桑穀者野草也,而生於朝,意者國亡乎?」
“저는 알지만 저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祖己에게 들으니 ‘뽕나무와 닥나무는 들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조정에 났으니 짐작컨대 나라가 망할 터인가?’라고 하였습니다.”
武丁恐駭,飭身修行,思先王之政,興滅國,繼絕世;
舉逸民,明養老。
무정이 두려워하여 자신의 처신을 바르게 하도록 행실을 닦고, 선왕의 훌륭한 정치를 생각하여 멸망하려는 나라를 부흥하고, 끊어지려는 세대를 이어주고, 은거한 현인을 천거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예절을 밝게 드러냈다.
三年之後,蠻夷重譯而朝者七國,此之謂存亡繼絕之主,是以高而尊之也。
3년이 지난 뒤에 蠻夷 중에 重譯을 거쳐 朝見한 나라가 일곱이니, 이것을 ‘망하려는 나라를 보존시키고 끊어지려는 세대를 이어주는 군주’라고 이르니, 이 때문에 덕이 높아 존숭한 것이다.
▶ 高宗 : 殷나라 20대 왕. 盤庚의 아우인 小乙의 아들로 이름은 武丁이며. 어렸을 때 민간에서 생활하여 백성의 어려움을 체험하고 즉위하여 傅說‧甘盤 등을 등용함으로써 훌륭한 정치를 이루었다. 덕이 높아 존경할 만하기 때문에 號를 ‘高宗’이라 하였다.[史記 本紀] 권03. 殷本紀
▶ 成湯 : 湯王. 고대 商나라를 창건한 왕. 걸왕을 명조에서 격파하여 패사시키고 박에 도읍하여 국호를 商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이름 履 또는 天乙 ·太乙. 탕은 字이며, 成湯이라고도 한다.[史記 本紀] 권03. 殷本紀
▶ 桑穀 : 桑谷과 같다. 뽕나무와 닥나무. 뽕나무와 닥나무는 들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조정의 뜰에 났다면 나라가 망할 징조라 하였다.<論衡 異虛>
▶ 祖己 : 武丁왕 때의 현신이다. 成湯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날 까치가 솥 위에 앉아 울자 무정이 불길하다고 여겼다. 이에 그가 정치를 잘하고 덕을 실천하기를 권하였다. 무정이 이를 따르니 상나라의 도가 부흥하였다. 무정이 죽은 뒤 아들 帝庚이 즉위했는데, 무정이 까치의 일로 덕을 실천한 것을 아름답게 여겨 묘호를 高宗이라 하고 <高宗肜日>을 지었다.<사기 은본기>
▶ 飭身 : 자신의 처신을 바르게 하도록 항상 경계하다.
▶ 逸民 : 은거자.
▶ 重譯 : 이중 통역하다. 여러 차례 통역하다.
25. 잘못한 일을 고치면 잘못하지 않음과 같다.
- 이 글은 春秋左氏傳 魯莊公 11기원전 683년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宋大水,魯人弔之曰:
「天降淫雨,谿谷滿盈,延及君地,以憂執政,使臣敬弔。」
宋나라에 홍수가 나자 魯나라 군주가 위문하였다.
“하늘이 궂은비를 내려 계곡이 가득 차 넘치고 군주께서 거처하는 곳까지 미쳐서 나라를 다스리는 분을 근심하게 하니 사신을 파견하여 삼가 위문합니다.”
宋人應之曰:
「寡人不佞,齋戒不謹,邑封不修,使人不時,天加以殃,又遺君憂,拜命之辱。」
宋 湣公이 응답하였다.
“과인이 재주가 없어서 齋戒를 경건히 하지 않고 봉지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백성을 제때에 부리지 않아 하늘이 재앙을 내렸는데, 도리어 군주에게까지 근심을 끼쳐, 弔問의 수고를 끼침에 예의를 표합니다.”
君子聞之曰:
「宋國其庶幾乎!」
군자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송나라는 잘될 터이다!”
問曰:
「何謂也?」
누군가 물었다.
“무엇을 말하십니까?”
曰:
「昔者夏桀殷紂不任其過,其亡也忽焉;
成湯文武知任其過,其興也勃焉;
夫過而改之,是猶不過。
故曰其庶幾乎!」
군자가 대답하였다.
“예전에 하나라 桀왕과 은나라 紂왕은 자기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으매 그의 멸망이 갑작스러웠고,
湯임금과 文王‧武王은 자기의 잘못을 책임질 줄 알아서 흥함이 왕성하였으니,
잘못하였으나 고치면 잘못하지 않음과 같다.
그래서 ‘잘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宋人聞之,夙興夜寐,早朝晏退,弔死問疾,戮力宇內。
송 민공이 이 말을 듣고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자고, 아침 일찍 조정에 나와 저녁 늦게 퇴청하면서,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위문하고, 힘을 모아 나라를 다스렸다.
三年,歲豐政平,嚮使宋人不聞君子之語,則年穀未豐而國未寧.
3년이 되자, 농사는 풍년이 들고 정치는 태평을 이루니, 만약 송 민공이 군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곡식은 풍년이 들지 않고 국가는 편안하지 않았을 터이다.
《詩》曰:
「佛時仔肩,示我顯德行。」
此之謂也。
<詩經>에 이르기를
“맡은 책임을 도와, 나의 도드라진 덕행을 보이리라.”
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 宋大水 : 宋 湣公 9년(기원전 683년), 송나라에 물난리가 나자, 노나라에서 藏文仲을 보내 송나라의 물난리를 위로하였다.[史記 世家] 권38.宋微子世家
▶ 魯人 : 노 장공의 사신 藏文仲. 魯 莊公은 노나라의 제16대 군주로 이름은 同이며 노 환공이 제나라에서 피살되어 그 뒤를 이었다.
▶ 弔之 : 조문하다.
▶ 淫雨 : 궂은비. 장마.
▶ 執政 : 국가의 정무를 집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송 민공을 바로 지적하여 말하지 않고 에둘러 지칭한 말이다.
▶ 敬 : 삼가
▶ 宋人 : 宋 湣公. 춘추시대 송나라 제17대 군주로 성은 子, 이름은 捷이다. 송 장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뒤를 이었다. 송 민공 10년(기원전 682년) 南宮萬을 보내 노나라를 공격했으나 패하고 남궁만은 사로잡혔다. 나중에 풀려나온 남궁만과 사냥하다 다툼에 남궁만을 노나라 포로라고 모욕했다가 격분한 남궁만에게 시해당하였다.
▶ 不佞 : 재주가 없다는 뜻으로 자신을 謙辭로 이르는 말.
▶ 拜命之辱 : 命(조문의 말)의 수고를 끼침을 절하고 받는다. 관심을 보여주니 매우 감사하다는 뜻.
▶ 庶幾乎 : 희망이 있다. 대체로 ~할 것이다.
▶ 夏桀 :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걸왕.
▶ 殷紂 : 殷나라의 紂왕. 은나라의 제31대 왕으로 마지막 군주이다.
▶ 成湯 : 湯王. 고대 商나라를 창건한 왕. 걸왕을 명조에서 격파하여 패사시키고 박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이름 履 또는 天乙·太乙. 탕은 字이며, 成湯이라고도 한다.
▶ 文武 : 주 문왕, 주 무왕.
▶ 宋人 : 宋 湣公.
▶ 夙興夜寐 :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잔다.’라는 뜻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직무에 몰두하여 부지런히 일함을 이르는 말.
▶ 戮力 : 서로 힘을 모으다.
▶ 嚮使 : 만약.
▶ 佛時仔肩,示我顯德行 : <詩經> <周頌·敬之>에
“日就月將, 學有緝熙于光明, 佛時仔肩, 示我顯德行. : 나날이 다달이 힘써 나아가 계속해서 광명에 이르도록 배우며 맡은 책임을 도와 나의 덕행이 드러남을 보이리라.”라고 하였다.
▶ 佛 : 拂(도울 ‘필’). 보좌하다.
▶ 時 : 조사로 是의 뜻.
▶ 仔肩 : 책임. 맡은 소임.
26. 楚 昭王이 나라를 잃지 않은 이유 1
-이 글은 <춘추좌씨전> 魯哀公 6년(기원전 489년) 및 <사기> 초세가에 기록되어 있다.
楚昭王有疾,卜之曰:
「河為祟。」
楚 昭王이 병이 나서 점을 쳤더니 太史가 말하였다.
“황하의 신이 빌미가 되었습니다.”
大夫請用三牲焉。
대부가 三牲을 써서 제사를 지내자고 청하였다.
王曰:
「止,古者先王割地制土,祭不過望;
江、漢、睢、漳,楚之望也;
禍福之至,不是過也。
不穀雖不德,河非所獲罪也。」
초 소왕이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옛날 선왕이 땅을 분할하여 봉해줄 때 산천의 제사는 望祭에 불과했으며,
長江‧漢水‧雎水‧漳水가 초나라의 망제를 지내는 곳이다.
재앙과 복이 오는 것은 이 네 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비록 덕이 없기는 하지만 황하의 신에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遂不祭焉。
마침내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仲尼聞之曰:
「昭王可謂知天道矣,其不失國,宜哉!」
공자께서 이 일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소왕은 天道를 안다고 이를 만하니, 그가 나라를 잃지 않음은 당연하다!”
▶ 楚昭王 : 춘추시대 초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珍이었다가 즉위 후 軫으로 고쳤고, 이후 다시 壬으로 고쳤다. 평왕의 아들이다. 재위 중에 吳나라가 여러 차례 초나라를 패배시켰다. 10년 伍子胥가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의 수도 郢을 공격하니 달아났다. 大夫 申包胥가 秦나라로부터 구원병을 얻어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오나라가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니 도읍을 鄀으로 옮겼다. 27년 오나라 왕 夫差가 陳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가 가서 구원했는데, 軍中에서 병사하였다.
▶ 河 : 황하.
▶ 祟(수) : 빌미. 귀신이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
▶ 三牲 : 산 제물로 쓰는 세 가지 짐승. 곧 소, 양, 돼지. 宗廟의 供物.
▶ 望 : 望祭. 고대 제사명으로 멀리서 산천을 바라보면서 산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당시 제후는 망제를 행하였다.
▶ 江,漢,睢,漳 : 長江, 漢水, 雎水, 漳水. 네 강은 楚나라 境內에 있다. 睢는 <春秋左氏傳> 哀公 6년에 雎로 기록되어 있다.
▶ 不是過也 : 禍福을 내릴 수 있는 신도 境內 네 강의 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 不穀 : 제후가 자신을 칭하는 겸손한 말. 나. =不善.
27. 楚 昭王이 나라를 잃지 않은 이유 2
-이 글은 <춘추좌씨전> 魯哀公 6년(기원전 489년) 및 <사기> 초세가에 기록되어 있다.
楚昭王之時,有雲如飛鳥,夾日而飛三日,昭王患之,使人乘驛東而問諸太史州黎,州黎曰:
「將虐於王身,以令尹司馬說焉則可。」
楚 昭王 때 구름 모양이 새가 나는 듯하며 태양을 끼고 날기 3일, 소왕이 걱정하여 사람을 시켜 譯馬를 타고 동쪽으로 가서 太史 州黎에게 물으니 주려가 말하였다.
“왕의 몸에 해를 끼칠 터이니, 令尹과 司馬가 대신 기도하게 하면 괜찮을 터이오.”
令尹司馬聞之,宿齋沐浴,將自以身禱之焉。
영윤과 사마가 이 말을 듣고 목욕재계를 하고 스스로 자신이 기도하겠다고 청하였다.
王曰:
「止,楚國之有不穀也,由身之有匈脅也;
其有令尹司馬也,由身之有股肱也。
匈脅有疾,轉之股肱,庸為去是人也?」
왕이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초나라에 내가 있음은 몸에 가슴과 옆구리가 있음과 같고,
영윤과 사마가 있음은 몸에 팔다리가 있음과 같다.
가슴과 옆구리에 병이 들었는데 팔다리에 轉嫁함이, 어찌 이 사람의 몸에서 병을 제거함이겠는가!”
▶ 太史 : 역사를 기록하고 史書를 편찬하며 문서를 기초하고 국가의 典籍과 天文‧曆法 등을 주관하던 벼슬이다.
▶ 州黎 : 당시 太史의 이름.
▶ 令尹 :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執政 벼슬로 재상에 해당한다.
▶ 司馬 :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벼슬.
▶ 說 : 해명하다.
▶ 不穀 : 제후가 자신을 칭하는 겸손한 말. 나. =不善.
▶ 匈脅 : 가슴과 옆구리.
▶ 庸 : 어찌
28. 백성에게 이로우면 된다.
-이 글은 <춘추좌씨전> 魯文公 13년(기원전 614년)에 기록되어 있다.
邾文公卜徙於繹,史曰:
「利於民不利於君。」
邾 文公이 嶧邑으로 천도함을 점치게 하니 사관이 말하였다.
“천도하면 백성에게는 이롭고 군주에게는 이롭지 못합니다.”
君曰:
「苟利於民,寡人之利也.
天生烝民而樹之君,以利之也.
民既利矣,孤必與焉!」
주 문공이 말하였다.
“진실로 백성에게 이로움이 과인의 이로움이다.
하늘이 백성을 낳아 군주를 세움은 백성을 이롭게 함이다.
백성이 이롭고 나면, 나의 이익도 거기에 틀림없이 포함될 터이다!”
侍者曰:
「命可長也,君胡不為?」
시종이 말하였다.
“군주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데 군주께서는 어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君曰:
「命在牧民,死之短長,時也;
民苟利矣,吉孰大焉。」
주 문공이 말하였다.
“군주의 사명은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 있고, 목숨의 길고 짧음은 時運이니,
백성이 진실로 이롭다면 길함에 무엇이 그것보다 크겠느냐?”
遂徙於繹。
마침내 역읍으로 천도하였다.
▶ 邾文公 : 춘추시대 邾나라 군주로, 성은 曹이다. 邾는 周 武王 때 조협이 지금의 산동성 추성시 지역에 봉해지면서 시작된 제후국으로 전국시대에 鄒나라로 변경되었으며 초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 繹 : 嶧山. 山東省 鄒縣 동남쪽의 嶧山. 일명 鄒山‧鄒嶧山‧邾嶧山이다.
▶ 孤 : 왕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 時 : 그때의 운수. 운명.
29.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安不忘危>
楚莊王見天不見妖,而地不出孽,則禱於山川曰:
「天其忘予歟?」
楚 莊王이 하늘을 보니 요괴의 징조가 보이지 않고, 땅에서도 재앙을 내지 않으매, 산천에 기도하면서 말하였다.
“하늘이시여, 나를 잊었습니까?”
此能求過於天,必不逆諫矣,安不忘危,故能終而成霸功焉。
이것은 하늘에 자신을 나무라기를 구함이니, 기필코 간하는 말을 거스르지 않고, 편안한 처지에서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음이니, 그래서 초 장왕은 끝내 霸業의 공을 이룰 수 있었다.
▶ 楚莊王 : 초나라의 제22대 군주로 이름은 侶이다. 성왕의 손자이자 穆王의 아들이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陳나라의 내란을 틈타 진나라를 일시에 병합하고, 장왕 17년(기원전 597년) 봄에 鄭나라를 포위하여 석 달 만에 함락시켰다.[史記 世家] 권40.楚世家
▶ 孽 : 妖孽 : 재앙. 요괴.
▶ 安不忘危 : ‘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안정을 이루고 있을 때도 마음을 놓지 않고 항상 자신을 경계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는 안정과 위기는 돌고 도는 것이므로 태평한 시기에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와 어려움에 대비하여 이를 예방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
※ 초 장왕은 하늘이 재앙을 내리지 않아 자신을 꾸짖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30. 藥言 : 약과 같은 충고
湯曰:
「藥食先嘗於卑,然後至於貴;
藥言先獻於貴,然後聞於卑。」
湯王이 말하였다.
“약을 먹음에 비천한 사람에게 먼저 맛보게 한 후에 존귀한 사람에게 올리고,
약이 되는 말은 존귀한 사람에게 먼저 바친 후에 비천한 사람에게 알린다.”
故藥嘗乎卑,然後至乎貴,教也;
藥言獻於貴,然後聞於卑,道也。
그러므로 약을 비천한 사람에게 맛보게 한 후에 존귀한 사람에게 올림은 敎化이고,
약이 되는 충고를 존귀한 사람에게 바친 후에 비천한 사람에게 알림은 道理이다.
故使人味食然後食者,其得味也多;
使人味言然後聞言者,其得言也少。
그러므로 남에게 음식 맛보게 한 후에 먹는 자는 맛을 얻음이 많고,
남에게 말을 음미하게 한 후에 듣는 자는 말에서 얻음이 적다.
是以明王之言,必自他聽之,必自他聞之,必自他擇之,必自他取之,必自他聚之,必自他藏之,必自他行之.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의 말은 반드시 자기가 듣고, 반드시 자기가 이해하고, 반드시 자기가 선택하고, 반드시 자기가 취하고, 반드시 자기가 모으고, 반드시 자기가 보존하고, 반드시 자기가 실행한다.
故道以數取之為明,以數行之為章,以數施之萬物為藏。
그러므로 도는 여러 차례 취함으로써 분명해지고, 여러 차례 실행함으로써 드러나고, 여러 차례 만물에 실시함으로써 보존된다.
是故求道者不以目而以心,取道者不以手而以耳。
이 때문에 도를 구하는 자는 눈으로 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며, 도를 취하는 자는 손으로 하지 않고 귀로 한다.
▶ 湯 : 湯王. 고대 商나라를 창건한 왕. 걸왕을 명조에서 격파하여 패사시키고 박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이름 履 또는 天乙·太乙. 탕은 字이며, 成湯이라고도 한다.
※ 藥言 : 藥石之言. 警戒하는 말. 충고하는 말.
▶ 必自他聽之 : <新書> <修政語 上>에는 ‘必自也聽之’로 기록하고 있다.
※ 新書 : 전한 문제 때의 문인 賈誼가 漢나라의 폐단을 지적하여 펴낸 정치이론서이다.
31. 申侯를 총애한 楚 文王의 유언
楚文王有疾,告大夫曰:
楚 文王이 병이 나자 大夫들에게 말하였다.
「筦饒犯我以義,違我以禮,與處不安,不見不思,然吾有得焉,必以吾時爵之;
“管饒는 義로써 나를 구속하고 禮로써 나를 제재하매, 함께 있으면 불안하여 보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기도 싫으나, 내가 그에게 얻음이 있었으므로, 나는 때때로 반드시 封爵하려 하였다.
申侯伯,吾所欲者,勸我為之;吾所樂者,先我行之。
申侯伯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하도록 권하고, 내가 즐기는 것은 나보다 앞서서 실행하였다.
與處、則安,不見則思,然吾有喪焉,必以吾時遺之。」
그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보지 못하면 생각이 났으나, 내게 잃는 것이 있었으므로 나는 때때로 반드시 그를 내쫓으리라 생각하였다.”
大夫許諾,乃爵筦饒以大夫,贈申侯伯而行之。
대부들이 허락하자 관요는 대부에 봉하고 신후백은 선물을 주어 떠나게 하였다.
申侯伯將之鄭,王曰:
「必戒之矣,而為人也不仁,而欲得人之政, 毋以之魯、衛、宋、鄭。」
신후백이 鄭나라로 가려고 하자 왕이 말하였다.
“반드시 조심하라. 너의 사람됨이 어질지 못하면서 남의 정권을 얻고자 하니, 魯‧衛‧宋‧鄭 네 나라에는 가지 말아라.”
不聽,遂之鄭,三年而得鄭國之政,五月而鄭人殺之。
신후백이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정나라에 가서 3년이 되어 정나라의 정권을 얻었다가, 5개월이 되자 정나라 사람이 그를 살해하였다.
▶ 楚文王 : 文王熊貲, 초나라의 18대 군주로 武王 熊通의 아들이다. 무왕의 뒤를 이어 내치에 공을 세웠으나 息나라 제후의 부인을 빼앗기 위해 식을 멸하고 그를 사주한 蔡나라의 哀侯를 포획하였다. 郢에 도읍한 후 북진을 추진하여 漢水 일대 소국들을 점령해 長江 이북의 넓은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증손 楚 莊王이 패업을 달성하는 기초를 마련하였다.[史記世家]권40.楚世家
▶ 筦饒 : 사람 이름으로, 행적은 미상이다.
▶ 申侯伯 : 申侯. 초 문왕의 조카. 楚文王이 申侯를 총애했는데, 그가 탐욕스러운 것을 알고 초나라에서 용납되지 못할까 걱정하여, 자신이 죽은 뒤에는 큰 나라로 도망치라고 당부하였다. 초 문왕이 죽은 뒤 신후는 鄭나라로 도망쳐 鄭 厲公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결국은 陳大夫 轅濤塗의 참소로 인해 죽임을 당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7년>
▶ 五月而鄭人殺之 : 魯 僖公 7년, 여름에 鄭伯이 首止의 회맹에서 도망해 온 죄를 申侯에게 씌워 죽이고 齊 桓公에게 鄭伯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해명하며 항복하기를 빌었다. 이는 陳나라의 轅濤塗의 참소를 따른 것이다
32. 趙簡子가 欒激을 죽이려는 이유
趙簡子與欒激遊,將沈於河,曰:
趙簡子가 欒激과 함께 놀러 나갔다가 난격을 黃河에 빠뜨려 죽이려 하면서 (측근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吾嘗好聲色矣,而欒激致之;
吾嘗好宮室臺榭矣,而欒激為之;
吾嘗好良馬善御矣,而欒激求之。
“내가 일찍이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면 난격이 찾아주었고,
내가 일찍이 화려한 궁실과 누각과 정자를 좋아하면 난격이 지어주었고,
내가 일찍이 좋은 말과 뛰어난 마부를 좋아하면 난격이 구해주었다.
今吾好士六年矣,而欒激未嘗進一人,是進吾過而黜吾善也。」
지금은 내가 어진 인재를 좋아한 지 6년이나 되었건만 난격은 한 사람도 추천한 적이 없으니, 이것은 나의 잘못은 더하고 나의 선행은 물리치는 것이다.”
▶ 趙簡子 :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나라의 大夫.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진나라 내부에서 6卿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范氏와 中行氏를 몰아내고 趙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史記 世家] 권43.趙世家
▶ 欒激(난격) : 전국시대 趙簡子가 총애하는 신하로 행적은 미상이다.
▶ 臺榭 : 누각과 정자.
33. 趙簡子가 간언을 물리치지 않는 이유
或謂趙簡子曰:
「君何不更乎?」
어떤 사람이 趙簡子에게 물었다.
“군께서는 어째서 잘못을 고치지 않습니까?”
簡子曰:
「諾。」
조간자가 말하였다.
“고치겠소.”
左右曰:
「君未有過,何更?」
조간자의 측근이 말하였다.
“군께서는 잘못한 일도 없는데 무엇을 고친단 말입니까?”
君曰:
「吾謂是諾,未必有過也.
吾將求以來諫者也.
今我卻之,是卻諫者,諫者必止,我過無日矣。」
조간자가 말하였다.
“내가 ‘고치겠소.’라고 말함은 꼭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諫하는 사람을 오게 하려는 것이오.
지금 내가 그 말을 물리치면 곧 간하는 사람을 물리침이니, 간하려는 사람이 필시 끊어지매, 내가 잘못을 저지름은 날을 가리지 않을 터이다.”
▶ 趙簡子 :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나라의 大夫.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진나라 내부에서 6卿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范氏와 中行氏를 몰아내고 趙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 無日 : 하루도 빠짐없다. 늘.
34.돕는 사람과 바로잡는 사람
韓武子田,獸已聚矣,田車合矣,傳來告曰:
「晉公薨。」
韓武子가 사냥함에 이미 짐승을 몰아 한군데 모으고 사냥하는 수레가 포위하였는데, 전령이 와서 보고하였다.
“晉公이 죽었습니다.”
武子謂欒懷子曰:
「子亦知君好田獵也.
獸已聚矣,田車合矣,吾可以卒獵而後弔乎?」
한무자가 欒懷子에게 말하였다.
“그대도 내가 사냥을 좋아함을 알고 있을 터이다.
짐승을 이미 몰아서 한군데 모았고 사냥하는 수레가 포위하였으니, 내가 사냥을 마치고 나서 조문해도 괜찮겠는가?”
懷子對曰:
「范氏之亡也,多輔而少拂,今臣於君,輔也;
畾於君,拂也,君胡不問於畾也?」
난회자가 대답하였다.
“范氏가 망함은 돕는 사람은 많고 바로잡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인데, 신은 군주께 돕는 사람이고,
畾는 군주를 바로잡는 사람인데 군주께서는 어찌 뇌에게 묻지 않습니까?”
武子曰:
「盈而欲拂我乎?
而拂我矣,何必畾哉?」
한무자가 말하였다.
“欒盈아, 너는 나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냐?
네가 나를 바로잡았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뇌에게 묻겠느냐?”
遂輟田。
그리고는 마침내 사냥을 중지하였다.
▶ 韓武子 : 춘추시대 晉나라 한씨의 領袖. 한 강자 韓虎의 아들. 한나라 선조인 韓萬(:한 무자)과 시호가 같다. <사기 권45.한세가>
※ 위 문장의 등장인물은 시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 田 : 사냥.
▶ 晉公 : 晉 悼公.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周 또는 糾이고, 襄公의 증손이다. 欒書가 厲公을 살해하고 周나라에서 맞이하여 14세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진 도공은 재위 15년(기원전 558년) 만에 죽었다.
▶ 薨 : 제후 또는 높은 귀족이 죽다.
▶ 欒懷子 : 欒盈. 欒逞으로도 쓴다.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으로 欒黶의 아들이며, 시호는 懷子다. 晉平公이 처음 즉위했을 때 그를 公族大夫로 삼았다. 어머니가 范宣子의 딸이었는데, 음행이 있어 이를 걱정하였다. 어머니가 이를 두려워해 범선자에게 난영이 범씨 집안을 원망해 나쁜 일을 꾸민다고 모함을 하였다. 범선자가 이 말을 믿었다. 평공 6년 범선자가 그를 쫓자 楚나라로 도망갔고, 다시 齊나라로 갔다. 평공 8년 몰래 제나라 사신을 따라 진나라에 들어와 난을 일으켰지만 싸움에 져서 曲沃으로 달아났다. 진나라 사람이 포위해서 함락시키고 난씨 일족을 모두 죽여버렸다.<춘추좌씨전 노양공21년,23년(기원전 550년)>
▶ 范氏 : 춘추시대 晉나라의 大夫家이다. 定公 14년(기원전 498년)에 范氏와 中行氏가 난을 일으켜 趙盟과 싸우다가 멸망하였다. 출공 17년(기원전 458년) 韓趙魏가 智伯 瑤와 함께 范氏와 中行氏의 땅을 나눠 食邑으로 삼았다.
※ 六卿 : 晉나라의 强臣인 智·范·中行·韓·魏·趙 6姓을 말한다. 이들 6성은 서로 간에 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었는데, 晉나라는 결국 한·위·조 3姓에 의해 3분되었다
▶ 拂 : 바로잡다. 돕다.
▶ 畾 : 사람 이름으로, 姓과 행적은 미상이다.
35.군주를 때린 신하
師經鼓琴,魏文侯起舞,賦曰:
「使我言而無見違。」
樂師 經이 거문고를 연주하니 魏 文侯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읊었다.
“내가 말하면 거역함이 없도록 하라.”
師經援琴而撞文侯不中,中旒潰之,文侯謂左右曰:
「為人臣而撞其君,其罪如何?」
악사 경이 거문고를 잡아 문후를 쳤는데 적중하지 않았고, 면류관 줄이 맞아 끊어지매, 문후가 측근에게 말하였다.
“신하로서 그 군주를 치니 그 죄가 어떠한가?”
左右曰:
「罪當烹。」
측근이 말하였다.
“그 죄는 烹刑에 해당합니다.”
提師經下堂一等。
악사 경을 끌고 당을 한 계단 내려갔다.
師經曰:
「臣可一言而死乎?」
악사 경이 말하였다.
“신이 한마디 말씀을 드리고 죽어도 되겠습니까?”
文侯曰:
「可。」
문후가 말하였다.
“해도 좋다.”
師經曰:
「昔堯舜之為君也,唯恐言而人不違;
桀紂之為君也,唯恐言而人違之。
臣撞桀紂,非撞吾君也。」
악사 경이 말하였다.
“옛날 堯와 舜이 군림함에, 자기가 한 말을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음을 걱정할 뿐이었고,
桀과 紂가 군림함에, 자기가 한 말을 사람들이 거역할까 걱정할 뿐이었습니다.
신은 걸과 주를 쳤지, 우리 군주를 치지 않았습니다.”
文侯曰:
「釋之!
是寡人之過也,懸琴於城門以為寡人符,不補旒以為寡人戒。」
문후가 말하였다.
“풀어줘라!
이것은 과인의 과실이니, 거문고를 성문 위에 걸어서 과인이 잘못을 저지른 증거로 삼고 면류관 줄은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과인이 경계하는 물건으로 삼겠다.”
▶ 魏文侯 : 전국시대 魏나라의 초대 제후로 성은 姬, 씨는 魏, 이름은 ‘斯’, 또는 ‘都’이다. 周 威烈王 23년에 韓‧趙와 함께 晉나라를 분립하여 제후가 되었고, 李悝·吳起·樂羊·西門豹 등 인재를 등용하여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들었다.[史記 世家] 권44.魏世家
▶ 師經 : 전국시대 위문후의 賢臣이며 樂師이다.
▶ 鼓琴 : 거문고를 연주하다.
▶ 旒(류) : 면류관의 끈.
▶ 潰 : 터지다. 끊어지다.
▶ 烹 : 烹刑. 고대 형벌의 일종으로 삶아 죽이는 형벌.
▶ 桀紂 : 폭군. 하나라의 桀왕과 은나라의 紂왕.
36.晏子가 죽자 제 齊 景公이 달려가 곡을 다한 후에 떠나다
齊景公遊於蔞,聞晏子卒,公乘輿素服,驛而驅之,自以為遲,下車而趨,知不若車之速,則又乘.
齊 景公이 蔞에 유람하다가 晏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공이 수레에 올라 소복을 입고 역마를 바꿔가며 몰았으나 느리다고 생각하여 수레에서 내려 달리다가, 수레의 속도만 못함을 알고 다시 수레를 탔다.
比至於國者四下而趨,行哭而往矣,至伏屍而號曰:
國都에 가까이 이르도록 네 번이나 수레에 내려서 달리되, 곡을 하면서 갔으며, 당도하자 안자의 시신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말하였다.
「子大夫日夜責寡人,不遺尺寸,寡人猶且淫泆而不收,怨罪重積於百姓。
“대부께서는 밤낮으로 과인을 나무라며 조그만 잘못도 지나치지 않았는데, 과인은 오히려 방탕하여 심신을 단속하지 않아 원망과 죄책이 백성의 마음에 많이 쌓여 있습니다.
今天降禍於齊國,不加寡人而加夫子,齊國之社稷危矣,百姓將誰告矣?」
지금 하늘이 제나라에 재앙을 내려 과인에게 끼치지 않고 선생에게 끼쳐 제나라의 사직이 위태로우니 백성이 장차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소?”
▶ 齊景公 :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 姜杵臼. 景은 시호이다. 齊 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였다.[史記 世家] 권32.齊太公世家
▶ 蔞 : 地名. <안자춘추>에는 菑로 기록하고 있다.
▶ 晏子 : 晏平仲. 晏嬰.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나라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晏子春秋는 안영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사마천은 안영을 용기가 있는 자이며,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하였으니 충신이라고 평하고, 안자와 같은 시대에 산다면 그의 마부가 될지라도 기꺼이 그를 흠모하겠다고 하였다.<사기열전 권 62.管晏列傳>
▶ 比 : 인접하다. ~에 다다라
37-1. 晏子의 유훈
晏子沒十有七年,景公飲諸大夫酒.
晏子가 죽고 17년이 지나, 齊 景公이 대부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公射出質,堂上唱善,若出一口,公作色太息,播弓矢。
경공이 화살을 쐈으나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는데, 당상에서 훌륭하다고 소리치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듯하니, 경공이 안색을 바꾸며 크게 탄식하고 활을 던져버렸다.
弦章入,公曰:
「章,自吾失晏子,於今十有七年,未嘗聞吾過不善,今射出質而唱善者,若出一口。」
弦章이 들어오자 경공이 말하였다.
“현장, 내가 안자를 잃은 지 지금 17년이 되도록 나의 과실과 不善을 지적하는 말을 듣지 못하더니, 지금 활을 쏘아 빗나갔는데도 일제히 훌륭하다며 소리치는 말이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듯하구나.”
弦章對曰:
현장이 대답하였다.
「此諸臣之不肖也, 知不足以知君之不善,勇不足以犯君之顏色,然而有一焉。
“이것은 신하들이 현명하지 못하여, 지혜는 군주의 不善을 알기에 부족하고, 용기는 군주의 안색을 거스르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臣聞之:君好之,則臣服之;
君嗜之,則臣食之。
신이 듣기에, ‘군주가 좋아하면 신하도 그 옷을 즐겨 입고,
군주가 즐기면 신하도 그 음식을 즐겨 먹는다.’라고 합니다.
夫尺蠖食黃,則其身黃,食蒼則其身蒼;
君其猶有陷人言乎?」
자벌레가 노란 잎을 먹으면 그 몸이 노랗게 되고, 파란 잎을 먹으면 그 몸이 파랗게 됩니다.
군주께서 오히려 사람들을 거기에 빠지도록 말씀하셨겠지요.”
公曰:
「善!今日之言.
章為君,我為臣。」
경공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오늘의 말이여!
현장이 군주가 되고 나는 신하가 되어야 하겠구나!”
是時海人入魚,公以五十乘賜弦章歸,魚乘塞塗,撫其御之手,曰:
이때 바닷가의 어부가 생선을 바쳤는데, 경공이 50수레의 생선을 현장에게 하사하였고, 현장이 집에 돌아옴에 생선을 실은 수레가 길을 가득 메우자, 마부의 손을 만지면서 말하였다.
「曩之唱善者,皆欲若魚者也。
“앞서 훌륭하다고 소리친 자는 모두 이 어부처럼 하려는 자들이다.
昔者晏子辭賞以正君,故過失不掩,今諸臣諂諛以干利,故出質而唱善如出一口.
옛날 안자는 賞을 거절하며 군주를 바로잡으매 (신하들이) 잘못을 숨기지 못하였으나, 지금 신하들은 아첨하여 이익을 구하매, 화살이 빗나가도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듯이 훌륭하다고 소리쳤다.
今所輔於君,未見眾而受若魚,是反晏子之義而順諂諛之欲也。」
지금 군주를 보좌함을 大衆에게 보이지 못하고도 이 생선을 받으면, 안자의 道義를 위반하고 아첨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다.”
固辭魚不受。
한사코 생선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君子曰:
「弦章之廉,乃晏子之遺訓也。」
군자가 말하였다.
“현장의 청렴함은 바로 안자가 남긴 가르침이다.”
▶ 公射出質 : 景公이 흥을 돋우기 위하여 화살을 쐈으나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다는 뜻이다. ‘質’은 과녁.
▶ 弦章 : 춘추시대 齊나라의 大夫로, 景公 때 大理가 되어 獄事를 공정하게 판결하였다.
▶ 尺蠖 : 자벌레.
▶ 曩 : 앞서. 전에.
▶ 諂諛 : 아첨하다. 알랑거리며 아첨하다.
37-2. 군주는 <春秋>를 배워야 한다.
夫天之生人也,蓋非以為君也;
天之立君也,蓋非以為位也。
하늘이 백성을 낳음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늘이 군주를 세움은 군주의 지위를 위한 것이 아니다.
夫為人君行其私欲而不顧其人,是不承天意忘其位之所以宜事也.
군주가 된 자가 그의 사욕만 행하고 그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이것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군주의 지위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잊은 것이다.
如此者,春秋不予能君而夷狄之,鄭伯惡一人而兼棄其師,故有夷狄不君之辭。
이와 같은 사람을 <春秋>에서는 유능한 군주라 하지 않고 夷狄으로 간주하였으니, 鄭伯이 한 사람을 미워하여 그의 군대까지 아울러 버렸기 때문에 “이적으로 간주하고 군주로 인정하지 않음.”이라는 말이 있다.
人主不以此自省,惟既以失實,心奚因知之。
군주가 이것으로 자신을 반성하지 아니하여 하늘이 군주를 세운 실질을 잃으면, 그의 마음은 무엇을 통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겠는가?
故曰:有國者不可以不學春秋,此之謂也。
이 때문에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춘추>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夷狄 : 고대의 소수민족을 폄하하는 말.
▶ 鄭伯惡一人 : 鄭伯은 鄭 文公이며, 1인은 鄭나라의 大夫 高克이다. 정 문공이 고극을 미워하여 고극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黃河가에 주둔하게 하고 오래도록 부르지 않자, 군대가 흩어져 돌아갔다. 고극은 陳나라로 달아났다. 이 일은 <詩經·鄭風·淸人>에 기록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閔公 2년><詩經·鄭風·淸人>
▶ 有國者 : 군주를 말한다.
▶ 有國者不可以不學春秋 : 이 말은 <史記> 太史公自序에 기록되어 있다.
“故有國者不可以不知春秋,前有讒而弗見,後有賊而不知。: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라면 <춘추>를 몰라서는 안 되며 <춘추>를 모르면 눈앞에서 참언하여도 보지 못하고, 뒤에 살인자가 있어도 알지 못합니다.”[史記列傳] 권130 太史公自序
38.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 일.
齊人弒其君,魯襄公援戈而起曰:
「孰臣而敢殺其君乎?」
齊나라 사람이 그 군주를 시해하자 魯 襄公이 창을 잡고 일어서며 말하였다.
“누가 신하가 되어 감히 자기의 군주를 시해하는가?”
師懼曰:
師懼가 말하였다.
「夫齊君治之不能,任之不肖,縱一人之欲以虐萬夫之性,非所以立君也。
“저 제나라 군주의 정치가 무능하여, 현명하지 못한 자를 관리로 임용하고, 자기 한 사람의 욕망에 맡겨 많은 사람의 생명을 학대하였으니, 군주를 세운 까닭이 아닙니다.
其身死自取之也;
今君不愛萬夫之命而傷一人之死,奚其過也。
그의 몸이 죽음은 스스로 취한 것인데,
그런데도 군주께서는 많은 사람의 목숨은 애석해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시니, 어찌 이다지도 지나치십니까?
其臣已無道矣,其君亦不足惜也。」
그 신하가 이미 무도하니 그 군주 역시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 齊人弑其君 : 齊나라 大夫 崔杼가 그의 군주 齊 莊公을 시해한 일을 말한다.
▶ 魯襄公 : 이름은 午로, 成公이 죽자 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晉나라와 함께 鄭나라를 정벌하고, 晉 悼公이 衛나라에서 冠禮를 올리게 하였다. 季武子가 公室의 권력을 독점하려고 三軍을 三桓에 분리 배치하니 공실이 심하게 분열되었다. 31년 동안 재위하였다.
※ 莊公 : 齊 莊公. 춘추시대 齊나라의 제25대 후작이며 이름은 光이다. 장공은 崔杼의 후처 당강과 정을 통했으며 이로 인해 최저에게 죽임을 당하였다.<史記 世家 권32.齊太公世家>
※ 崔杼 : 齊나라의 大夫. 崔武子 또는 崔子로도 불린다. 자신의 후처와 사통한 莊公을 시해하고 景公을 세워 전권을 휘둘렀지만 집안의 불화를 틈탄 慶封에 의해 멸문당하였다.
▶ 師懼 : 魯나라의 樂師로, 이름이 懼이다.
39 春王正月
-이 글은 孔子家語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文王似元年,武王似春王,周公似正月.
“文王은 元年과 같고, 武王은 春王과 같으며, 周公은 正月과 같다.
文王以王季為父,以太任為母,以太姒為妃,以武王周公為子,以泰顛閎夭為臣,其本美矣。
文王은 王季를 아버지로 삼고 太任을 어머니로 삼고 太姒를 왕비로 삼고 武王과 周公을 아들로 삼고 泰顚과 閎夭를 신하로 삼았으니, 그 근본이 아주 아름답다.
武王正其身以正其國,正其國以正天下,伐無道,刑有罪,一動天下正,其事正矣。
무왕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함으로써 나라까지 바르게 하고, 나라를 바르게 함으로써 천하를 바르게 하고, 무도한 자를 정벌하고 죄 있는 자를 처벌하여 한 번 움직여 천하를 바르게 하였으니, 그 일은 바르게 함이다.
春致其時,萬物皆及生,君致其道,萬人皆及治,周公戴己而天下順之,其誠至矣。」
봄이 그때를 맞추어 만물이 모두 생장하게 되고, 군주가 자기의 道를 다하여 만민이 모두 다스려지고, 주공이 자신의 교화를 힘껏 행하여 천하 사람들이 순종하니 그의 정성이 지극하였다.”
▶ 文王 : 西伯昌. 이름은 희창이며, 은나라의 속국인 주나라의 제후이다. 서쪽의 제후의 수장을 서백이라고 하였으므로 주 문왕 희창을 서백창이라 하였다.
▶ 元年 : 魯 隐公 元年(기원전 722년). 군주가 즉위한 첫 해. 孔子가 魯나라 史記에 의거해 <春秋>를 지었기 때문에 노나라의 年代로 연대를 표기하였다. <古文觀止 <3권 周文·公羊傳> 12.春王正月>
▶ 周武王 : 주나라의 제1대 왕이다. 성은 姬, 이름은 發이다. 주 문왕의 아들이다.
▶ 春王 : 春은 1년의 시작이며 王은 周 文王을 이른다.
▶ 周公 : 周公 旦. 周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 正月 : 군주가 즉위한 후 고친 새 曆法의 첫 해의 1월. 周 왕조의 정월로 周 천자의 천하 통일을 존중한 것이다.
▶ 以~為 : ~을 ~으로 삼다.
▶ 王季 : 주나라 태왕의 서자였던 季歷으로 주 문왕의 아버지이다. 商나라 시대의 제후국이던 周의 군주였으므로 公季나 周公季라고 하며, 뒷날 손자인 주나라 武王에게 왕으로 추존되어 王季나 周王季 등으로도 불린다. 亶父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생모는 太姜이다. 太任을 아내로 맞이해 昌과 虢仲, 虢叔을 낳았다.
▶ 太任 : 계력의 부인이고, 주문왕의 어머니이다.
▶ 太姒 : 주 문왕의 정비이며 주무왕의 모친이다. 아들 중에는 武王 發, 管叔 鮮, 周公 旦, 蔡叔 度, 康叔 封 등이 있다.
▶ 泰顛 : 周나라의 文王과 武王 때의 명신.
▶ 閎夭 : 周나라의 文王과 武王 때의 명신. 殷나라의 紂가 문왕을 가두었을 때 有莘氏의 미녀와 驪戎의 명마, 기타 귀중한 물품을 구해 주에게 헌납하고 문왕을 구해냈다. 나중에 무왕을 따라 紂를 멸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戴己 : 직접 힘써 敎化를 행하다. 戴는 載와 통용되며, ‘行하다’의 뜻이다.
40. 군주와 신하의 권한이 뒤섞이지 않게 하라.
-이 글은 <管子> 明法편에서 인용한 글이다
尊君卑臣者,以勢使之也。
군주를 높이고 신하를 낮춤은 군주의 권세가 그렇게 만든다.
夫勢失則權傾,故天子失道,則諸侯尊矣;
권세를 잃으면 권력이 기울매 천자가 治道를 잃으면 제후가 존귀해진다.
諸侯失政,則大夫起矣;
大夫失官,則庶人興矣。
제후가 정치에 실패하면 大夫가 일어나고,
대부가 관직에 실패하면 庶人이 흥기한다.
由是觀之,上不失而下得者,未嘗有也。
이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윗사람이 권력을 잃지 않았는데 아랫사람이 권력을 얻음은 일찍이 있지 않았다.
41.권위는 군주와 신하가 함께 가지면 안 된다.
孔子曰:
「夏道不亡,商德不作;
商德不亡,周德不作;
周德不亡,春秋不作;
春秋作而後君子知周道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夏나라의 治道가 망하지 않았으면 商나라의 德이 일어나지 않고,
상나라의 治德이 망하지 않았으면 周나라의 治德이 일어나지 않고,
주나라의 治德이 망하지 않았으면 <春秋>는 짓지 않았을 터이다.
<춘추>를 짓고 난 뒤에 군자들이 주나라의 治道가 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故上下相虧也,猶水火之相滅也,人君不可不察而大盛其臣下,此私門盛而公家毀也,人君不察焉,則國家危殆矣。
그런 까닭에 상하가 서로 저버림은 마치 물과 불이 서로 소멸시킴과 같아서, 군주로서는 살피지 않으면 안 되며, 신하를 너무 성대하게 하면 이것은 개인의 세력이 왕성하여 국가가 무너뜨리는 것이매, 군주가 밝게 살피지 않으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
筦子曰:
權不兩錯,政不二門。
管子가 말하였다.
“권력은 두 사람이 가지면 안 되고, 政令은 두 가문에서 나오면 안 된다.”
故曰:脛大於股者難以步,指大於臂者難以把,本小末大,不能相使也。
그러므로 “종아리가 허벅지보다 크면 걷기 어렵고, 손가락이 팔보다 크면 물건을 잡기 어렵다.”라고 하니, 根本이 작고 枝葉이 크면 서로 사용하지 못한다.
▶ 筦子 : 筦은 管과 같다. 管仲. 管仲의 이름은 夷吾이며, 齊 桓公과 적대관계였으나 환공의 신하 鮑叔의 추천에 의하여 환공의 신하로서 재상이 된 후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 중 제일로 만든 공적을 세웠다.
▶ 權不兩錯,政不二門. : <管子> 明法편에 “威不兩錯, 政不二門, 以法治國則擧錯而已. : 권위는 군주와 신하가 함께 가질 수가 없고, 政令은 신하에게서 나올 수가 없으니, 법으로 나라를 다스림은 곧 모든 것을 법도에 따라 시행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법률과 정령은 반드시 한 곳에 집중되어 통일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 錯 : 措와 통용된다. 섞이다.
▶ 本小末大 : 本末이 전도됨을 말한다. “枝大於本,脛大於股,不折必披. : 나무가지가 나무보다 크며 종아리가 넓적다리보다 크면 부러지지 않으면 반드시 갈라진다.” <史記列傳 권107.魏其武安侯列傳>
42.나라를 다스리는 이로운 도구를 남에게 맡기지 말라.
司城子罕相宋,謂宋君曰:
司城 子罕이 宋나라의 재상이었을 때 宋君에게 말하였다.
「國家之危定,百姓之治亂,在君行之賞罰也;
“국가의 안위와 백성의 치세와 난세는 군주의 상벌에 달려 있습니다.
賞當則賢人勸,罰得則姦人止;
상이 합당하면 어진 이는 더욱 힘쓰고, 벌을 내리면 간사한 사람이 악행을 그칩니다.
賞罰不當,則賢人不勸,姦人不止,姦邪比周,欺上蔽主,以爭爵祿,不可不慎也。
상벌이 합당하지 않으면 어진 이가 힘쓰지 않고 간사한 사람이 그치지 않으며, 간사한 사람이 파당을 지어 윗사람을 속이고 군주의 총명을 가리어 爵祿을 다투게 되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夫賞賜讓與者,人之所好也,君自行之;
刑罰殺戮者,人之所惡也,臣請當之。」
상을 주고 선물을 주는 일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군주께서 직접 시행하시고,
처벌하고 죽이는 일은 사람들이 싫어하니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君曰:
「善,子主其惡,寡人行其善,吾知不為諸侯笑矣。」
송군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그대는 나쁜 일을 주관하고 과인은 좋은 일을 시행하면,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터임을 알겠다.”
於是宋君行賞賜而與子罕刑罰,國人知刑戮之威,專在子罕也,大臣親也,百姓附之,居期年,子罕逐其君而專其政.
이에 송군은 상줌을 행사하고 자한에게 처벌함을 許與하니, 국인들이 처벌하고 죽이는 권력이 전적으로 자한에게 있음을 알고 대신들은 그와 친근하고 백성은 빌붙기 1년이 지나자, 자한이 자기의 군주를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故曰:無弱君無彊大夫。
그 때문에 “군주를 약화시켜 대부를 강성하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老子曰:
「魚不可脫於淵,國之利器不可以借人。」 此之謂也。
老子가 말하기를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면 안 되며, 나라를 다스리는 예리한 도구는 남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司城 : 司城은 관직 이름으로 司空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宋나라는 武公의 이름 司空을 피하여 司城으로 고쳤다.
▶ 子罕 : 剔成君, ? ~ ?.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제33대 임금이다. 성은 子, 씨는 戴 또는 皇, 휘는 剔成 혹은 喜, 자는 子罕이다. <한비자>에서는 戴歡과 皇喜가 총애를 다투다가 마침내 황희가 임금을 죽이고 정권을 빼앗았다고 한다. 또 司城 子罕이 송군을 대신하여 형벌을 행하니 마침내 임금을 침해하였다고 한다. 《고본죽서기년집증》에서는 이러한 송나라 임금을 침해하고 정권을 빼앗았다는 기록을 인용하고, 또 剔成은 司城의 음이 바뀐 것이고 罕과 肝은 통가자이므로 "사성자한"과 "황희"가 곧 "척성군"이라 하였다.<위키백과>
▶ 比周 : 한 패가 되다. 파당을 짓다.
▶ 老子曰 : <老子·道德經> 36장에 “柔弱勝剛強。魚不可脫於淵,國之利器不可以示人. : 유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 안 되며, 나라의 이기는 남에게 보여 줘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 利器 : 강한 군사력이나 훌륭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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