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

三國演義(삼국연의)11회-劉皇叔이 孔融을 구원하다

耽古樓主 2023. 2. 12. 19:34

第十一回
劉皇叔北海救孔融, 呂溫侯濮陽破曹操.
제11회
劉皇叔은 북해에서 孔融을 구원하고, 呂溫侯는 복양에서 曹操를 쳐부수다.

 

却說
獻計之人 乃東海朐縣人姓糜名竺字子仲 此人家世富豪.
한편
계책을 바친 사람은 동해 구현사람 糜竺으로 자를 子仲이라 하는데 이 사람의 집안은 대대로 전하는 부호였다.

甞往洛陽買賣 乘車而回 路遇一美婦人 來求同載 竺乃下車步行 讓車與婦人坐.
일찍이 장사차 낙양에 갔다가 수레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는데, 수레에 태워주기를 청하기에, 미축은 수레를 내려 걸어가고 수레를 양보하여 부인이 앉아 가게 하였다.

婦人請竺同載.
부인이 미축에게 같이 타고 가자고 청하였다.

竺上車端坐 目不邪視.
미축은 수레에 올라 단정하게 앉아서,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行及數里 婦人辭去 臨別對竺曰:
我乃南方火德星君也 奉上帝敕 往燒汝家.
感君相待以禮 故明告君 君可速歸 搬出財物.
吾當夜來.”
가기를 몇 리 되어서 부인은 작별 인사를 하고 갈 무렵 미축에게 말하였다.
“나는 남방의 火德星君인데 奉上帝敕하여 너의 집을 불태우러 가는 길이다.
그대가 예로써 대우하여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확실히 알려주나니, 그대는 속히 집으로 돌아가서 搬出財物하라.
나는 밤이 되면 갈 터이다.”

言訖不見.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竺大驚 飛奔到家 將家中所有 疾忙搬出.
미축은 깜짝 놀라 집으로 급히 돌아와서, 집에 있는 것을 급히 밖으로 끌어냈다.

是晚果然廚中火起 盡燒其屋.
저녁 무렵 과연 부엌에서 불길이 솟아올라 그의 집을 모두 태웠다.

竺因此廣捨家財 濟貧拔苦 後陶謙聘爲別駕從事.
미축은 이 일로 인하여 廣捨家財하여 濟貧拔苦하였고, 후에 도겸이 초빙하여 別駕從事로 삼았다.

當日獻計曰:
某願親往北海郡 求孔融起兵救援 更得一人往青州田楷處求救.
若二處軍馬齊來 操必退兵矣.”
그날 계책을 올리며 말하였다.
“제가 북해군으로 가서 공융에게 起兵救援을 요청하겠으니, 또 한 사람을 청주의 田楷에게 보내서 求救하십시오.
두 곳의 군마가 일제히 오면 조조는 틀림없이 退兵할 터입니다.”

謙從之 遂寫書二封 問帳下:
誰人敢去青州求救?”
도겸은 그 말을 따라, 편지 두 통을 써서 봉해놓고 막하에 물었다.
“누가 용감히 청주로 가서 구원을 요청하겠느냐?”

一人應聲.
願徃.”
한 사람이 즉각 답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衆視之 乃廣陵人姓陳名登字元龍.
모두가 그를 보니 바로 광릉 출신 陳登으로 자는 元龍이었다.

陶謙先打發陳元龍往青州去訖 然後命糜竺齎書赴北海 自己率衆守城 以備攻擊.
도겸은 먼저 진등을 청주로 떠나보내고, 그런 다음 미축에게 편지를 가지고 북해에 가도록 명하고, 자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지키면서 공격을 대비하였다.

北海孔融字文舉魯國曲阜人也 孔子二十世孫泰山都尉孔宙之子 自小聰明.
북해의 孔融은 자가 文舉이고 노국 곡부사람으로 공자의 20세손이고 태산도위 공주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年十歲時 往謁河南尹李膺 閽人難之 融曰:
我係李相通家.
10살 때 하남윤 李膺을 찾아뵈러 갔는데 문지기가 가로막자 공융이 말하였다.
“나는 李相과 通家하는 관계가 있다.”

及入見 膺問曰:
汝祖與吾祖何親?”
들어가 뵈니 이응이 물었다.
“너의 할아버지와 나의 할아버지가 어떤 친분이 계시느냐?”

融曰:
昔孔子曾問禮于老子 融與君 豈非累世通家
공융이 말하였다.
“옛날 공자께서 일찍이 노자에게 예를 물으셨으니, 저와 어르신은 累世通家함이 아니겠습니까?”

膺大奇之.
이응은 대단히 기특하게 여겼다.

少頃 太中大夫陳煒至 膺指融曰:
此奇童也.”
잠시 후 태중대부 陳煒가 들어오자, 이응이 공융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는 기이한 아이이오.”

煒曰:
小時聰明 大時未必聰明.”
진위가 말하였다.
“어릴 때 총명하다고 해서, 커서도 반드시 총명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融卽應聲曰:
如君所言 幼時必聰明者.”
공융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어르신은 어릴 적에 틀림없이 총명하셨겠네요.”

煒等皆笑曰:
此子長成 必當代之偉器也.”
진위 등 모두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가 장성하면 틀림없이 當代之偉器가 되겠소.”

自此得名 後爲中郎將 累遷北海太守 極好賓客 常曰:
座上客常滿 樽中酒不空 吾之願也
이로부터 이름을 얻어서 후에 중랑장이 되었고 여러 번 자리를 옮겨 북해 태수가 되었는데, 빈객을 대단히 좋아하여 늘 말하였다.
“좌석에는 언제나 손님이 가득 차고, 술 단지에는 술이 떨어지지 않음이 내 소원이오.”

在北海六年 甚得民心.
북해에 6년을 재임하고 있는데 민심을 두텁게 얻고 있었다.

當日正與客坐 人報徐州糜竺至.
그날도 손님들과 앉아 있는데, 서주의 미축이 찾아왔다고 보고하였다.

融請入見 問其來意.
공융은 청해 들여서 온 까닭을 물었다.

竺出陶謙書言:
曹操攻圍甚急.
望明公垂救.”
미축은 도겸의 편지를 내놓으며 말하였다.
“조조가 포위하여 공격하니 매우 위급한 상황입니다.
명공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融曰:
吾與陶恭祖交厚 子仲又親到此 如何不去?
只是曹孟德與我無讎 當先遣人送書解和.
如是不從 然後起兵.”
공융이 말하였다.
“나와 도공조는 교분이 두터운데 자중이 또 몸소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가지 않겠소?
다만 조맹덕은 나에게 원한이 없으니, 마땅히 먼저 서신을 보내서 화해를 권하겠소.
따르지 않으면 그 후에 군사를 일으키겠소.”

竺曰:
曹操倚仗兵威 決不肯和.”
미축이 말하였다.
“조조는 군대의 위력에 의지하니, 절대로 화해할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融教一面點兵 一面差人送書 正商議間 忽報黃巾賊黨管亥部領群寇數萬殺奔前來.
공융은 한편으로는 군사를 소집하고, 한편으로 사자에게 서신을 주어 보내는 등 한창 상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고하기를 黃巾賊黨 管亥가 도적 수만 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온다고 하였다.

孔融大驚 急點本部人馬 出城與賊迎戰.
공융이 깜짝 놀라 급히 본부 인마를 징발하여 성을 나가 적과 싸우려 마주 섰다.

管亥出馬曰:
吾知北海糧廣.
可借一萬石 即便退兵 不然 打破城池老幼不留
관해가 말을 타고 나와 말하였다.
“나는 북해에 식량이 풍부함을 알고 있소.
1만 섬만 빌려주면 곧 군사를 물리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성지를 타파하고 늙은이와 어린이를 남기지 않겠소.”

孔融叱曰:
吾乃大漢之臣 守大漢之地 豈有粮米與賊耶?”
공융이 꾸짖었다.
“나는 大漢之臣으로 大漢之地를 지키거늘, 어찌 식량이 있어 도적에게 주겠느냐?”

亥大怒 拍馬舞刀 直取孔融.
관해가 크게 노하여 말을 박차고 칼을 휘두르며 곧장 공융에게 달려들었다.

融將宗寶 挺鎗出馬 戰不數合 被管亥一刀 砍宗寶於馬下.
공융의 장수 宗寶가 창을 들고 말을 달려 나가 싸운 지 몇 합 되지 않아 관해의 한칼에 베어져 말 아래로 떨어졌다.

孔融兵大亂 奔入城中.
공융의 군사는 크게 어지러워져서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管亥分兵四面圍城.
관해는 군사를 나누어 사방으로 성을 에워쌌다.

孔融心中鬱悶.
공융은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糜竺懷愁 更不可言.
미축의 걱정 또한 말할 수도 없었다.

次日 孔融登城遙望 賊勢浩大 倍添憂惱.
다음날 공융이 성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적의 세력이 커서 걱정이 한층 깊어졌다.

忽見城外一人挺鎗躍馬殺入賊陣 左冲右突 如入無人之境 直到城下大呌:
開門!”
갑자기 성 밖의 어떤 사람이 挺鎗躍馬하여 殺入賊陣하고 左冲右突하기를 如入無人之境이더니 直到城下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문을 열어라!”

孔融不識其人 不敢開門 賊衆趕到濠邊 那人回身 連搠十數人下馬 賊衆倒退.
공융이 不識其人하여 不敢開門는데, 도적떼가 뒤쫓아 해자 근처에 이르자, 그 사람이 몸을 돌려 연거푸 10여 명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고, 도적떼가 뒤로 물러갔다.

融急命:
開門引入!”
공융은 급히 명하였다.
“문을 열어 들여보내라!”

其人下馬棄鎗 逕到城上 拜見孔融.
그 사람은 말에서 내려 창을 버리고 곧장 성 위로 올라와 절하고 공융을 뵈었다.

融問其姓名.
공융이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對曰:
某東萊黃縣人也 覆姓太史名慈字子義.
老母重蒙恩顧 某昨自遼東回家省親 知賊寇城.
老母說 屢受府君深恩 汝當徃救 某故單馬而來.”
대답하였다.
“저는 동래 황현 사람으로, 覆姓 太史이고 이름은 慈이며 자는 子義입니다.
저의 노모는 (태수님께) 무거운 은혜를 입고 있었는데, 제가 어제 요동에서 문안하러 집으로 돌아와서야 도적이 성을 침범함을 알았습니다.
노모가 말하기를, ‘번번이 부군의 깊은 은혜를 받았으니 네가 응당 가서 구원하라’라고 하셔서 제가 單馬로 왔습니다.”

孔融大喜.
공융은 매우 기뻤다.

原來孔融與太史慈 雖未識面 却曉得他是箇英雄.
알고 보니 공융은 태사자와 비록 얼굴은 알지 못하였지만, 그가 한 사람의 영웅임은 알고 있었다.

因他遠出 有老母住在離城二十里之外 融常使人遣以粟帛 母感融德 故特使慈來救.
그는 멀리 나가 있고, 노모가 성 밖 20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공융은 항상 사람을 시켜 곡식과 옷감을 보내주었는데, 노모는 공융의 은덕에 감사하여 특별히 태사자에게 가서 구원하라고 한 것이다.

當下孔融重待太史慈 贈與衣甲鞍馬.
즉시 공융은 태사자를 후하게 대접하고 衣甲鞍馬를 선사하였다.

慈曰:
某願借精兵一千 出城殺賊.”
태사자가 말하였다.
“저에게 정병 1천을 빌려주시면 성을 나가서 도적을 죽이고자 합니다.”

融曰:
君雖英勇然 賊勢甚盛不可輕出.”
공융이 말하였다.
“그대가 비록 영특하고 용감하지만, 賊勢甚盛하니 不可輕出이다.”

慈曰:
老母感君厚德 特遣慈來 如不能解圍 慈亦無顏見母矣 願決一死戰.”
태사자가 말하였다.
“노모는 부군의 도타운 은덕에 감격하시어 일부러 저를 보내셨는데, 포위를 풀지 못하면 저 역시 어머님을 뵐 면목이 없어지오니, 決一死戰하고자 합니다.”

融曰:
吾聞劉玄德乃當世英雄 若請得他來相救 此圍自解 只無人可使耳.”
공융이 말하였다.
“내 듣자니 유현덕이 當世英雄이라, 그에게 구조를 요청하여 오게 하면 이 포위는 저절로 풀릴 터인데, 다만 보낼만한 사람이 없을 뿐이네.”

慈曰:
府君修書某當急徃.”
태사자가 말하였다.
“府君께서 편지를 써주시면 제가 급히 가겠습니다.”

融喜修書付慈.
공융은 기뻐하고 편지를 써서 태사자에게 주었다.

慈擐甲上馬 腰帶弓矢 手持鐵鎗 飽食嚴裝.
태사자는 擐甲上馬하고 腰帶弓矢하고 手持鐵鎗하고 배부르게 먹고 완전무장을 하였다.

城門開處 一騎飛出.
성문이 열리더니 一騎가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近濠賊將 率衆來戰.
해자 근처의 적장이 무리를 이끌고 달려들었다.

慈連搠死數人 透圍而出.
태사자는 연달아 몇 사람을 찔러 죽이고 포위를 뚫고 나갔다.

管亥知有人出城 料必是請救兵的 便自引數百騎趕來 八面圍定.
관해는 성을 빠져나간 사람이 있음을 알고, 필시 구원병을 청함이라 생각하고, 즉시 수백 기를 직접 이끌고 뒤쫓아 가서 팔방으로 에워쌌다.

慈倚住鎗 拈弓搭箭 八面射之 無不應弦落馬.
태사자가 창을 기대어 놓고 활을 잡고 화살을 걸어 팔방으로 쏘아대니, 시위소리가 날 때마다 낙마하지 않음이 없었다.

賊衆不敢來追.
도적들은 감히 추격해오지 못하였다.

太史慈得脫 星夜投平原來見劉玄德 .
태사자가 탈출하여 밤새 평원으로 달려가 유현덕을 만나 뵈었다.

施禮罷 具言孔北海被圍求救之事 呈上書札.
인사를 마치고, 孔北海被圍求救之事를 자세히 말하고 편지를 올렸다.

玄德看畢 問慈曰:
足下何人?”
현덕이 다 읽고 태사자에게 물었다.
“족하는 뉘시오?”

慈曰:
某太史慈 東海之鄙人也.
與孔融親非骨肉 比非鄕黨 特以氣誼相投 有分憂共患之意.
今管亥暴亂 北海被圍 孤窮無告 危在旦夕.
聞君仁義素著 能救人危急 故特令某冒鋒突圍 前來求救.”
태사자가 말하였다.
“저는 태사자로 동해의 촌뜨기입니다.
공융과는 骨肉의 親도 아니고 鄕黨의 比도 아닙니다만 특별히 氣誼相投하여 分憂共患之意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관해가 난을 일으켜 북해성이 포위당하여 외롭고 곤궁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으며, 위급함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습니다.
듣기에 군께서는 仁義로서 평소 저명하며 남의 위급함을 능히 구원하신다기에, 특별히 저에게 명령하기를, 冒鋒突圍하여 求救하러 가게 하였습니다.”

玄德歛容答曰:
孔北海知世間有劉備耶?”
현덕이 태도를 바로잡고 말하였다.
“공북해가 세상에 유비가 있음을 안다는 말인가?”

乃同雲長翼德點精兵三千 徃北海郡進發.
이윽고 운장, 익덕과 함께 정병 3천을 골라 북해군을 향해 출발했다.

管亥望見救軍來到 親自引兵迎敵 因見玄德兵少 不以爲意.
관해는 救援兵이 옴을 바라보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맞으러 나갔는데, 현덕의 군사가 적음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玄德與關張太史慈立馬陣前 管亥忿怒直出.
현덕이 관우, 장비, 태사자와 함께 진 앞에 나와 말을 세우자, 관해가 화를 내면서 곧바로 덤벼들었다.

太史慈却待向前 雲長早出 直取管亥.
태사자가 막 앞으로 나가려는데, 운장이 일찍 나가 곧장 관해를 공격하였다.​​

兩馬相交 衆軍大喊 量管亥怎敵得雲長?
두 사람이 탄 말이 서로 교차하자 군사들은 크게 함성을 지르는데, 제깟 관해가 어찌 운장과 대적하겠는가?

數十合之間 青龍刀起 劈管亥於馬下.
몇십 합 붙어 싸우는 중에 청룡도가 일어나더니 관해를 쪼개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太史慈張飛兩騎齊出雙槍並舉 殺入賊陣 玄德驅兵掩殺.
태사자와 장비의 兩騎가 나란히 나가며 쌍창을 아울러 들고 적진으로 돌진하고, 현덕은 군사를 몰아 기습해 들어갔다.

城上孔融望見太史慈與關張趕殺賊衆如虎入羊群縱橫莫當 便驅兵出城兩下夾攻.
성 위에서 공융이 바라보니 태사자와 관우 장비가 趕殺賊衆하기를 마치 虎入羊群한 듯하여 縱橫莫當이라, 즉시 군사를 몰고 성을 나가 양쪽에서 협공하였다.

大敗群賊 降者無數 餘黨潰散.
크게 패한 도적떼는 항복하는 자가 수없이 많았고, 나머지 무리는 궤멸하여 흩어졌다.

孔融迎接玄德入城 敘禮畢 大設筵宴慶賀 又引糜竺來見玄德, 具言:
張闓殺曹嵩之事 今曹操縱兵大掠 圍住徐州 特來求救.”
공융은 현덕을 영접하여 성안으로 들어와서, 인사를 마친 후 성대하게 잔치를 열어 경하하고, 또 미축을 데려와서 현덕을 뵙게 하니, (미축이) 자세히 말하였다
“장개가 조숭을 죽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금 조조는 군사를 놓아 크게 약탈하며 서주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다만 구원을 청하러 왔습니다.”

玄德曰:
陶恭祖乃仁人君子 不意受此無辜之寃.”
현덕이 말하였다.
“도공조는 仁人君子인데 뜻밖에 이런 無辜之寃을 당하고 계시는군요.”

孔融曰:
公乃漢室宗親 今曹操殘害百姓 倚強欺弱 何不與融同徃救之?”
공융이 말하였다.
“공은 한황실의 종친이신데, 지금 조조는 殘害百姓하고 倚強欺弱합니다. 어찌 공융과 함께 구원하러 가지 않습니까?”

玄德曰:
備非敢推辭 奈兵微將寡 恐難輕動.”
현덕이 말하였다.
“제가 감히 거절함은 아닙니다만, 兵微將寡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아마도 가벼이 움직이기 어렵겠습니다.”

孔融曰:
融之欲救陶恭祖 雖曰舊誼 亦爲大義 公豈獨無仗義之心耶?”
공융이 말하였다.
“내가 도공조를 구원하려 함은 비록 옛정 때문이라 하지만 역시 대의를 위해서인데, 공이 어찌 홀로 정의를 좇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玄德曰:
既如此 請文舉先行. 容備去公孫瓚處 借三五千人馬 隨後便來.”
현덕이 말하였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문거께서 먼저 가십시오.
제가 공손찬에게 가서 인마 3~5천을 빌리는 대로 뒤따라가겠습니다.”

融曰:
公切勿失信
공융이 말하였다.
“공은 절대로 신의를 잃지 마십시오.”

玄德曰:
公以備爲何如人也?
聖人云 自古皆有死 人無信不立.’
劉備借得軍 或借不得軍 必然親至.”
현덕이 말하였다.
“공은 이 유비를 어떤 사람으로 보십니까?
성인께서 이르기를,
‘자고로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사람이 신의가 없으며 입신할 수 없다.’
라고 하셨지요.
유비는 군사를 빌리거나 혹 빌리지 못하거나 반드시 직접 가겠습니다.”

孔融應允 教糜竺先回徐州去報 融便收拾起程.
공융은 응낙하고, 미축에게 먼저 서주로 돌아가서 보고하게 하고, 즉시 수습하여 떠나기를 준비하였다.

太史慈拜謝曰:
慈奉母命 前來相助 今幸無虞.
有揚州刺史劉繇 與慈同郡 有書來喚 不敢不去.
容圖再見.”
태사자가 拜謝하며 말하였다.
“저는 어머님의 명을 받들어 도우러 왔는데 지금 걱정거리가 없어져 다행입니다.
양주자사 劉繇란 분이 있는데 저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편지를 보내 부르시니 감히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融以金帛相酬 慈不肯受而歸 其母見之 喜曰:
공융이 황금과 비단으로 보답하려 하자 태사자는 받지 않고 돌아갔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我喜汝有以報北海也.”
“내가 기뻐함은 네가 공융의 은혜에 보답했기 때문이다.”

遂遣慈往揚州去了.
마침내 태사자를 양주로 보냈다.

不說孔融起兵.
공융이 군사를 일으킴은 말하지 않겠다.


且說
玄德投北海來見公孫瓚 具說欲救徐州之事.
한편
현덕은 북해로 가서 공손찬을 뵙고, 서주를 구원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瓚曰:
曹操與君無讐 何苦替人出力?”
공손찬이 말하였다.
“조조는 그대와 원수지지 않았는데, 어찌 쓸데없이 남을 대신해서 힘을 쓰겠는가?”

玄德曰:
備已許人 不敢失信.”
현덕이 말하였다.
“제가 이미 허락했습니다. 감히 신의를 저버리지 못합니다.”

瓚曰:
我借與君馬步軍二千.”
공손찬이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기병과 보병 2천을 빌려주겠네.”

玄德曰:
更望借趙子龍一行.”
현덕이 말하였다.
“더하여 조자룡을 빌려 함께 가고자 합니다.”

瓚許之.
공손찬이 허락하였다.

玄德遂與關張引本部三千人 爲前部 子龍引二千人隨後 往徐州來.
현덕은 관우 장비와 본부 3천 인마를 이끌어 前部가 되고, 조자룡은 2천 군사를 이끌고 뒤를 따라 서주로 갔다.


却說
糜竺回報陶謙 言北海又請得劉玄德來助 陳元龍也回報青州 田楷欣然領兵來救.
한편
미축이 돌아와서 도겸에게 보고하기를, 공융이 유현덕에게 와서 돕기를 청하였다고 하였고, 진원룡도 청주에서 돌아와 보고하기를, 田楷도 흔쾌히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원할 것이라 하였다.

陶謙心安.
도겸은 마음이 놓였다.

原來孔融田楷兩路軍馬 懼怕曹兵勢猛 遠遠依山下寨 未敢輕進.
알고 보니, 공융과 전해의 兩路軍馬는 조조군의 세력이 용맹함을 두려워하여, 멀찌감치 산을 의지하여 영채를 세우고 감히 나가지 못하였다.

曹操見兩路軍到 亦分了軍勢 不敢向前攻城.
조조도 兩路軍이 도착함을 보고 감히 나가서 성을 공격하지 못하였다.


却說
劉玄德軍到 見孔融 融曰:
曹兵勢大 操又善於用兵 未可輕戰.
且觀其動靜 然後進兵.”
한편
유현덕의 군사가 도착하여 공융을 만나니 공융이 말하였다.
“曹兵의 軍勢가 강대한데다 조조는 용병을 잘하기 때문에 가볍게 싸워서는 안 되오.
우선 그들의 동정을 살펴본 후 군사를 진격시켜야겠소.”

玄德曰:
但恐城中無糧 難以久持.
備令雲長子龍領軍四千 在公部下相助 備與張飛殺奔曹營 逕投徐州去見陶使君商議.”
현덕이 말하였다.
“그렇지만 성안에 양곡이 떨어질까 염려되오니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운장과 자룡에게 명령하여 4천 군사를 거느리고 공의 부하에서 돕게 하고, 저는 장비와 함께 조조의 진영을 돌파하여 곧장 서주로 달려가 도사군을 만나 뵙고 상의하겠습니다.”

融大喜 會合田楷 爲犄角之勢 雲長子龍 領兵兩邊接應.
공융은 크게 기뻐하여 전해와 회합하여, 犄角之勢를 구축하고 운장과 자룡은 군사를 거느리고 양쪽에서 接應하게 하였다.

是日 玄德張飛引一千人馬 殺入曹兵寨邊.
이날 현덕과 장비는 1천 인마를 이끌고 조조군의 영채 옆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正行之間 寨內一聲鼓響 馬步軍兵如潮似浪擁衆出來.
한창 달려가고 있는데, 영채 안에서 북소리가 한번 울리더니, 수많은 기병과 보병이 조(潮)처럼 랑(浪)처럼 무리지어 나왔다.

當頭一員大將乃是于禁 勒馬大呌:
何處狂徒 徃那裡去?”
정면에 다가오는 대장은 바로 우금인데, 말을 멈추고 소리 높여 외쳤다.
“어디서 온 미친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지나가느냐?”

張飛見了 更不打話 直取于禁.
장비가 보고는 곧장 우금에게 덤벼들었다.

兩馬相交 戰到數合 玄德掣雙股劍麾兵大進.
두말이 서로 교차하며 싸움이 몇 합에 이르자, 현덕이 쌍고검을 뽑아들고 군사를 휘몰아 대대적으로 진격하였다.

于禁敗走.
우금이 패해 달아났다.

張飛當前追殺 直到徐州城下.
장비는 앞장서 추격하여 죽이며 곧장 서주 성 아래에 다다랐다.

城上望見紅旗白字大書平原劉玄德 陶謙急令開門.
성 위에서 ‘평원 유현덕’이라고 붉은 깃발에 하얀 글씨로 크게 쓰인 글씨를 보고, 도겸은 급히 성문을 열라고 명하였다.

玄德入城 陶謙接着 共到府衙.
현덕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도겸은 맞이하여 함께 府衙로 갔다.

禮畢 設宴相待 一面勞軍.
인사를 마치자, 잔치를 열어 대접하고, 한편으로 군사를 위로하였다.

陶謙見玄德儀表軒昂 語言豁達 心中大喜 便命糜竺取徐州牌印 讓與玄德.
도겸이 현덕을 보니 풍채가 헌앙하며 언어가 활달하여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고 즉시 미축에게 서주목의 牌印을 가져오라 하더니 현덕에게 넘겨주려 하였다.

玄德愕然曰:
公何意也?”
현덕은 깜짝 놀라 말하였다.
“공께서 무슨 생각이십니까?”

謙曰:
今天下擾亂 王綱不振.
公乃漢室宗親 正宜力扶社稷.
老夫年邁無能 情願將徐州相讓 公勿推辭
謙當自寫表文 申奏朝廷.”
도겸이 말하였다.
“지금 천하는 어지러운데 천자의 강령은 떨치지 못하고 있소.
공은 漢室宗親이니 참으로 力扶社稷함이 마땅하오.
이 늙은이는 나이도 많고 무능해서, 진심으로 원하여 서주를 讓與하려 함이니, 공은 거절하지 마시오.
내가 마땅히 직접 표를 써서 조정에 올리겠소.”

玄德離席再拜曰:
劉備雖漢朝苗裔 功微德薄 爲平原相猶恐不稱職.
今爲大義 故來相助 公出此言 莫非疑劉備有吞併之心耶?
若舉此念 皇天不佑.”
현덕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제가 비록 한왕조의 후예이기는 하지만, 功微德薄하여 평원상이 됨도 그 직위에 걸맞지 못할까 염려스럽습니다.
지금 대의를 위하여 와서 도울 뿐인데 공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吞併之心을 가졌다고 의심하십니까?
만일 그런 생각을 하였으면 하늘이 돕지 않을 터입니다.”

謙曰:
此老夫之實情也.”
도겸이 말하였다.
“이것은 이 늙은이의 진심이오.”

再三相讓 玄德那裡肯受?
재삼 양여하려 했지만, 현덕이 어찌 기꺼이 받겠는가?

糜竺進曰:
今兵臨城下 且當商議退敵之策 待事平之日 再當相讓可也.”
미축이 나아가 말하였다.
“지금 적병이 성 아래에 접근해 있으니 우선 적을 물리칠 계책을 의논하셔야 하니, 사태가 평정되는 날을 기다려, 다시 양여하심이 옳겠습니다."

玄德曰:
備當遺書與曹操 勸令解和 操若不從 廝殺未遲.”
현덕이 말하였다.
“제가 조조에게 편지를 전하여 화해하도록 권해보고 조조가 따르지 않으면 싸워도 늦지 않습니다.”

於是傳檄三寨 且按兵不動 遣人齎書以達曹操.
이리하여 세 영채에 격문을 보내 우선 군사행동을 중지하라 명하고 조조에게 편지를 가져가도록 사람을 보냈다.


却說
曹操正在軍中與諸將議事 人報徐州有戰書.
한편
조조는 군중에서 장수들과 사태를 의논하고 있는데, 서주에서 宣戰文書가 왔다고 보고하였다.

操拆而觀之 乃劉備書也 書略曰:
<備自關外 得拜君顏 嗣後 天各一方 不及趨侍.
向者 尊父曹侯 實因張闓不仁 以致被害 非陶恭祖之罪也.
目今黃巾遺孽 擾亂於外 董卓餘黨盤踞於內.
願明公先朝廷之急而後私讐.
撤徐州之兵以救國難 則徐州幸甚 天下幸甚.>
조조가 편지를 뜯어보니 바로 유비의 편지인데 대략 이러하였다.
<저는 관외에서 군의 얼굴을 뵈었는데 그 이후는 각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 따라다니며 받들어 모시지를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존부 조후께서는 진실로 장개가 불인했기 때문에 해를 입으신 것이지, 도공조의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황건적의 남은 요물들이 밖에서 어지럽히고 있으며, 동탁의 잔당들은 대궐을 불법 점거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명공께서는 먼저 조정의 위급을 구하시고 그다음에 사사로운 원한을 푸십시오.
서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나라의 어려움을 구하시면, 서주에 매우 다행스럽고 천하에도 큰 다행이겠습니다.>

曹操看書大罵:
劉備何人 敢以書來勸我 且中間有譏諷之意!”
조조는 편지를 읽고 나서 큰 소리로 욕하였다.
“유비가 어떤 놈이기에 감히 편지를 보내 내게 충고를 하느냐? 게다가 그 중간에 슬쩍 돌려 비방하고 있구나!”

命斬來使 一面竭力攻城.
온 사자의 목을 치라고 명하는 한편 힘을 다해 성을 공격하라고 하였다.

郭嘉諫曰:
劉備遠來救援 先禮後兵 主公當用好言答之 以慢備心 然後進兵攻城 城可破也.”
곽가가 간하였다.
“유비는 멀리서 와서 구원하면서도 예의를 먼저하고 兵事를 뒤로하오니, 주공께서도 좋은 말로 답하시어 유비의 마음을 태만하게 하고, 그런 다음 군사를 전진시켜 성을 공격하면 성을 깨뜨릴 수 있겠습니다.”

操從其言 欵留來使 候發回書 正商議間 忽流星馬飛報:
禍事
조조는 그 말을 따라, 사자를 환대하여 머물러 답장을 기다리게 하고, 상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성마가 나는 듯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큰일 났습니다.”

操問其故報說:
呂布已襲破兗州 進據濮陽.”
조조가 무슨 까닭인지 묻자 보고하였다.
“여포가 이미 연주를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복양으로 진격하여 웅거하고 있습니다.”

原來呂布自遭李郭之亂 逃出武關 去投袁術 術怪呂布反覆不定 拒而不納 投袁紹紹納之 與布共破張燕於常山.
원래 여포는 이각과 곽사의 난을 만난 후, 무관을 탈출하여 원술을 찾아갔으나, 원술은 여포가 배반을 반복하는 떠돌이라 의심하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원소를 찾아갔는데 원소가 그를 받아들여 원소는 여포와 함께 장연을 상산에서 깨뜨렸다.

布自以爲得志 傲慢袁紹手下將士 紹欲殺之 布乃去投張楊 揚納之.
여포는 스스로 뜻을 얻었다고 여기고, 원소의 수하 장군들과 병사들에게 오만하게 굴었고, 원소가 그를 죽이려 하자, 여포는 이에 장양을 찾아갔고 장양은 그를 받아들였다.

時龐舒在長安城中 私藏呂布妻小 送還呂布.
이때 방서는 장안에 있었는데, 여포의 가족들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여포에게 돌려보냈다.

李傕郭汜知之 遂斬龐舒 寫書與張楊 教殺呂布.
이각과 곽사가 그 사실을 알고 방서의 목을 베어 죽이고 나서, 장양에게 편지를 써서 여포를 죽이라 하였다.

布因棄張楊去投張邈 恰好 張邈弟張超引陳宮來 見張邈. 宮說邈曰:
今天下分崩 英雄並起. 君以千里之衆 而反受制於人 不亦鄙乎? 今曹操征東 兗州空虛 而呂布乃當世勇士 若與之共取兗州 伯業可圖也.”
여포는 이로 인하여 장양을 버리고 장막을 찾아갔는데, 때마침 장막의 아우 장초가 진궁을 데려와서 장막을 만나 뵙게 하였다.
진궁이 장막에게 말하였다.
“지금 천하는 갈라지고 무너져서 영웅들이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군께서는 천 리나 되는 땅에 많은 백성을 가지고 있는데 도리어 남에게 속박을 받으니 비루하지 않습니까?
지금 조조는 동쪽으로 정벌을 나서서 연주는 텅 비어있고 여포는 이 시대의 용사이니, 그와 함께 연주를 빼앗으면 패업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張邈大喜 便令呂布襲破兗州 隨據濮陽.
장막은 매우 기뻐하며, 즉시 여포에게 연주를 습격하여 깨뜨리고 이어서 복양을 점거하라고 명령하였다.

止有鄄城東阿范縣三處 被荀彧程昱設計死守得全 其餘俱破.
겨우 견성, 동아, 범현 세 곳이 순욱과 정욱이 계책을 꾸며 사수하는 바람에 온전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점령당하였다.

曹仁屢戰 皆不能勝 特此告急.
조인이 여러 차례 싸웠지만 모두 이기지 못하자, 특별히 이렇게 긴급한 상황을 고한 것이었다.

操聞報大驚曰:
兗州有失使吾無家可歸矣. 不可不亟圖之.
조조가 보고를 듣고 깜짝 놀라 말하였다.
“연주를 잃음은 나에게 돌아갈 집이 없게 하는 것이다.
시급히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郭嘉曰:
主公正好 賣箇人情與劉備 退軍去復兗州.
곽가가 말하였다.
“주공! 때마침 좋습니다. 유비에게 짐짓 한번 호의를 베풀고 군사를 물려 돌아가서 연주를 수복하십시오.”

操然之 卽時答書與劉備 拔寨退兵.
조조도 그렇게 생각하고 즉시 유비에게 답장을 보내고 영채를 거두어 군사를 퇴각하였다.


且說
來使回徐州 入城見陶謙 呈上書札言:
曹兵已退.”
한편
사자는 서주로 돌아와 성에 들어와서 도겸을 뵙고 서찰을 올리며 말하였다.
“조조의 군사는 이미 물러갔습니다.”

謙大喜 差人請孔融田楷雲長子龍等赴城大會.
도겸이 크게 기뻐하고, 사람을 보내어 공융, 전해, 관우, 조운 등을 성의 큰 모임에 오게 청하였다.

飲宴既畢 謙延玄德於上座 拱手對衆曰:
老夫年邁 二子不才 不堪國家重任. 劉公乃帝室之胄 德廣才高 可領徐州. 老夫情願乞閒養病.”
주연이 끝나자, 도겸은 현덕을 윗자리로 이끌고 사람들에게 拱手하며 말하였다.
“이 늙은이는 나이가 많고 두 아들이 재주가 없어 국가의 중임을 감당할 수 없소.
유공은 황실의 후예인데다가 덕망도 높고 재주도 뛰어나니 서주를 다스릴 만하오.
이 늙은이가 진심으로 원하건대 한가히 養病하기를 애원하오.”

玄德曰:
孔文舉令備來救徐州爲義也. 今無端據而有之 天下將以備爲無義人矣.
현덕이 말하였다.
“공문거가 저더러 서주를 구원하게 함은 대의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 이유 없이 눌러앉아 그것을 차지하면, 천하 사람들은 유비를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여길 터입니다.”

糜竺曰:
今漢室陵遲 海宇顚覆 樹功立業 正在此時. 徐州殷富 戶口百萬 劉使君領此 不可辭也.
미축이 말하였다.
“지금 한나라 황실은 쇠약해졌고 온 나라가 뒤집혀 엎어졌으니, 공업을 세움은 바로 이때 달려 있습니다.
서주는 물화가 풍부하고 호구도 백만이나 되니, 유사군께서는 이 서주를 받으십시오. 사양하면 아니 됩니다.”

玄德曰:
此事決不敢應命.”
현덕이 말하였다.
“이 일은 결코 감히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陳登曰:
陶府君多病 不能視事 明公勿辭.”
진등이 말하였다.
“도부군께서는 병치레가 많으셔서 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명공께서는 사양치 마십시오.”

玄德曰:
袁公路四世三公 海內所歸 近在壽春 何不以州讓之?”
현덕이 말하였다.
“원공로는 4대에 걸쳐 삼공을 지냈고 海內가 귀의하는 바이고, 지금 수춘에 있으니 서주를 그에게 양여함이 어떻겠습니까?”

孔融曰:
袁公路塚中枯骨 何足挂齒?
今日之事 天與不取 悔不可追
공융이 말하였다.
“원공로는 무덤 속의 백골이니 이에 걸 만하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하늘이 주는 데도 받지 않는 것이니, 후회해도 쫓아갈 수 없을 터입니다.”

玄德堅執不肯 陶謙泣下曰:
君若捨我而去 我死不瞑目矣.”
현덕이 고집 세게 수긍하지 않자 도겸이 울면서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나를 버리고 가면 나는 死不瞑目일 터이오.”

雲長曰:
既承陶公相讓 兄且權領州事.”
운장이 말하였다.
“도공께서 양여하겠다고 하시니 형님께서 임시로 州事를 맡으십시오.”

張飛曰:
又不是我強要他的州郡 他好意相讓 何必苦苦推辭?”
장비가 말하였다.
“또 우리가 도공께 주군을 달라고 강요함도 아니고, 도공께서 선의로 양보하겠다는 것인데, 어찌하여 고집스럽게 사양해야만 합니까?”

玄德曰:
汝等欲陷我於不義耶?”
현덕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를 불의에 빠뜨리려느냐?”

陶謙推讓再三 玄德只是不受 陶謙曰:
玄德必不肯從 此間近邑 名曰小沛 足可屯軍. 請玄德暫駐軍此邑 以保徐州何如?”
도겸은 재삼 미루어 양보했으나, 현덕은 받지 않겠다고만 하니, 도겸이 말하였다.
“현덕이 반드시 따를 수 없다고 하니, 이곳에서 가까운 읍이 있는데 이름은 소패라 하고 군사를 주둔할 만합니다.
청컨대 현덕은 이 읍에 잠시 군사를 주둔시키면서 서주를 보호해줌이 어떻겠소?”

衆皆勸玄德留小沛 玄德從之.
사람들이 현덕에게 소패에 머물라고 권하자, 현덕은 그를 따랐다.

陶謙勞軍已畢 趙雲辭去 玄德執手揮淚而別.
도겸이 군사를 위로하기를 마치자 조운은 작별을 고했고, 현덕은 손을 잡고 눈물을 뿌리고 헤어졌다.

孔融田楷亦各相別 引軍自回.
공융과 전해도 각자 작별하고 군사를 이끌고 각자 돌아갔다.

玄德與關張引本部軍來至小沛 修葺城垣 撫諭居民.
현덕은 관우, 장비와 함께 본부 군마를 이끌고 소패성으로 가서, 성벽을 개축하고 주민들을 위로하고 (주둔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卻說
曹操回軍 曹仁接着言:
呂布勢大 更有陳宮爲輔 兗州濮陽已失. 其鄄城東阿范縣三處 賴荀彧程昱二人設計 相連死守城郭.”
한편
조조가 군사를 돌려오자 조인이 영접하며 말하였다.
“여포는 세력이 크고 거기다 진궁이 보좌하고 있어서 연주와 복양은 이미 잃었습니다.
그러나 경성, 동아, 범현 세 곳은 순욱과 정욱 두 사람이 계책을 세움에 힘입어, 서로 연계하여 죽기로 싸워 성곽을 지키고 있습니다.”

操曰:
吾料呂布有勇無謀 不足慮也. 教且安營下寨 再作商議.“
조조가 말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포는 용기는 있으나 꾀가 없어서, 염려할 만하지 않다.
우선 군영을 안정시켜 영채를 구축하게 하고, 다시 상의하자.”

呂布知曹操回兵已過滕縣 召副將薛蘭李封曰:
吾欲用汝二人久矣. 汝可引軍一萬 堅守兗州 吾親自率兵 前去破曹.”
여포는 조조가 회군하여 벌써 등현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부장 설란과 이봉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나는 너희 두 사람을 써보고 싶어 한 지 오래되었다.
너희가 1만 군사를 이끌고 연주를 굳게 지키면, 나는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조조를 깨뜨리겠다.”

二人應諾.
두 사람이 응낙하였다.

陳宮急入見曰:
將軍棄兗州 欲何徃乎?”
진궁이 급히 들어와 뵙고 말하였다.
“장군! 연주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布曰:
吾欲屯兵濮陽 以成鼎足之勢.”
여포가 말하였다.
“나는 복양에서 군사를 주둔하고 鼎足之勢를 이루겠다.”

宮曰:
差矣.
薛蘭必守兗州不住.
此去正南一百八十里 泰山路險 可伏精兵萬人在彼.
曹兵聞失兗州 必然倍道而進 待其過半 一擊可擒也.”
진궁이 말하였다.
“어긋납니다.
설란은 분명히 연주를 지켜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정남으로 180리 떨어져 태산길이 험한데 그곳에 정예병 1만을 매복시킬 만합니다.
曹兵은 연주를 잃었음을 알면, 반드시 속도를 배가하여 나아갈 터이니, 그들이 반쯤 지나가기를 기다려서 한 번 공격으로 사로잡을 수 있겠습니다.”

布曰:
吾屯濮陽 別有良謀. 汝豈知之?”
여포가 말하였다.
“내가 복양에 주둔함은 따로 좋은 계책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어찌 알겠느냐?”

遂不用陳宮之言 而用薛蘭守兗州而行.
여포는 끝내 진궁의 말을 受用하지 않고, 설란을 써서 연주를 지키게 하고 떠났다.

曹操兵行至泰山險路 郭嘉曰:
且不可進 恐此處有伏兵.”
조조군이 태산 험로에 다다르자 곽가가 말하였다.
“잠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 복병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曹操笑曰:
呂布無謀之輩 故教薛蘭守兗州 自徃濮陽 安得此處有埋伏耶?”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여포는 꾀가 없는 놈이라, 설란에게 연주를 지키라 하고 자기는 복양으로 갔는데, 어찌 이곳에 매복이 있을 수 있겠느냐?”

教曹仁:
領一軍圍兗州. 吾進兵濮陽 速攻呂布.”
조인에게 명하였다.
“일군을 거느리고 연주를 포위하라.
나는 복양으로 진군하여 여포를 급습하겠다.”

陳宮聞曹兵至近 乃獻計曰:
今曹兵遠來疲困 利在速戰 不可養成氣力.
진궁은 조조의 군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듣고 계책을 올렸다.
“지금 조조의 군은 멀리서 와서 피곤하여 利在速戰이니, 기력을 양성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布曰:
吾匹馬縱橫天下 何愁曹操?
待其下寨 吾自擒之.”
여포가 말하였다.
“나는 匹馬로 縱橫天下하였는데, 어찌 조조를 근심하겠느냐?
영채를 세우기를 기다려 내 직접 그를 사로잡겠다.”


却說
曹操兵近濮陽 下住寨脚 次日引衆將出 陳兵於野.
한편
조조의 군은 복양성에 가까이 와서 영채를 세우고, 다음 날 여러 장수를 이끌고 들판에 陳兵하였다.

操立馬於門旗下 遙望呂布兵到.
조조는 문기 아래에 말을 세우고, 여포 군이 다가옴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陣圓處 呂布當先出馬 兩邊擺開八員健將.
원형으로 펼친 진에서 여포가 앞장서 말을 타고 나오는데 양쪽 옆으로 8명의 健將을 늘어세웠다.

第一箇雁門馬邑人 姓張名遼 字文遠 第二個泰山華陰人 姓臧名霸字宣高 兩將又各引六員健將 郝萌曹性成廉魏續宋憲侯成.
하나는 안문 마읍인 張遼로 자는 문원이고 두 번째는 태산 화음인 臧霸로 자는 선고이며, 두 장수는 6명의 健將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학맹, 조성, 성렴, 위속, 송헌, 후성이었다.

布軍五萬 鼓聲大震.
여포의 군은 5만으로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操指呂布而言曰:
吾與汝自來無讐 何得奪吾州郡?”
조조가 여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너와 自古以來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나의 州郡을 빼앗느냐?”

布曰:
漢家城池 諸人有分 偏爾合得?”
여포가 말하였다.
“한나라 城池는 모든 사람이 몫이 있는데, 네게만 몰아주어야 합당하느냐?”

便叫臧霸出馬搦戰.
즉시 장패를 불러서 나가 싸움을 걸게 하였다.

曹軍內樂進出迎.
조조의 군에서 악진이 나가 맞았다.

兩馬相交 雙鎗齊舉 戰到三十餘合 勝負不分 夏侯惇拍馬便出助戰 呂布陣上 張遼截住廝殺.
두 말이 교차하며 쌍창을 들고 싸움이 30여 합에 이르도록 승부가 가려지지 않자, 하후돈이 말을 박차고 나가 싸움을 거들었고, 여포 진영에서 장요가 하후돈을 막아 싸웠다.

惱得呂布性起 挺戟驟馬 衝出陣來 夏侯惇樂進皆走.
답답해하던 여포가 화가 치밀어 창을 뻗쳐 들고 말을 달려 진영을 나가 돌진하니, 하후돈과 악진은 모두 달아났다.

呂布掩殺 曹軍大敗 退三四十里 布自收軍.
여포가 엄습해 조조의 군은 대패하여 30~40리 후퇴했고, 여포도 스스로 군사를 거두었다.

曹操輸了一陣 回寨與諸將商議 于禁曰:
某今日上山觀望 濮陽之西 呂布有一寨 約無多軍.
今夜彼將謂我軍敗走 必不准備 可引兵擊之.
若得寨 布軍必懼 此爲上策.”
조조는 한 번 싸움에서 패하고, 영채로 돌아와 장수들과 상의하는데, 우금이 말하였다.
“제가 오늘 산에 올라가 관망해보니, 복양성 서쪽에 여포의 영채가 하나 있는데, 많은 군사가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적장은 我軍이 敗走하였다고 여기고 틀림없이 대비하지 않을 터이니 군사를 끌고 공격해야 하겠습니다.
영채를 빼앗으면 布軍必懼이리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操從其言 帶曹洪,李典,毛玠,呂虔,于禁,典韋六將 選馬步二萬人 連夜從小路進發.
조조는 우금의 말을 따라 조홍, 이전, 모개, 여건, 우금, 전위 등 6명의 장수를 대동하고 기병과 보병 2만 명을 선발하여 그날 밤 오솔길을 따라 진군하였다.


卻說
呂布於寨中勞軍.
한편
여포는 영채에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陳宮曰:
西寨是箇要緊去處.
倘或曹操襲之 奈何?
진궁이 말하였다.
“서쪽에 있는 영채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조조가 습격이라도 하면 어찌합니까?”

布曰:
他今日輸了一陣 如何敢來?
여포가 말하였다.
“그는 오늘 한판의 승부에서 패했는데 어찌 감히 쳐들어오겠느냐?”

宮曰
曹操是極能用兵之人 須防他攻我不備.”
진궁이 말하였다.
“조조는 極能用兵之人이니, 우리가 대비하지 않는 곳을 저들이 공격함을 방비해야 합니다.”

布乃撥高順并魏續侯成 引兵往守西寨.
여포는 급히 고순과 위속, 후성을 차출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서쪽 영채를 지키게 하였다.


却說
曹操於黃昏時分 引軍至西寨 四面突入.
한편
조조는 황혼녘에 군사를 이끌고 서쪽 영채에 도착하여 사방으로 돌진하여 쳐들어갔다.

寨兵不能抵擋 四散奔走.
영채의 군사들은 막아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曹操奪了寨.
조조는 영채를 빼앗았다.

將及四更 高順方引軍到 殺將入來.
거의 4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순이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돌격하여 들어왔다.

曹操自引軍馬來迎 正逢高順.
조조는 직접 군마를 이끌고 맞으러 나왔다가 고순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三軍混戰 將及天明 正西鼓聲大震.
삼군이 혼전하여 장차 날이 밝아 오는데 서쪽에서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人報:
呂布自引軍來了.”
누군가가 아뢰었다.
“여포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操棄寨而走.
조조는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背後高順 魏續 侯成趕來 當頭呂布親自引軍來到.
등 뒤에서는 고순과 위연, 후성이 추격해 오고 앞에서는 여포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于禁 樂進 雙戰呂布不住.
우금과 악진이 한꺼번에 여포와 싸웠으나 당할 수가 없었다.

操望北而行 山後一彪軍出 左有張遼 右有臧霸.
조조는 북쪽을 바라보며 가는데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왼쪽에는 장요요 오른쪽에는 장패였다.

操使呂虔曹洪戰之 不利.
조조는 여건과 조홍에게 맞서 싸우게 했지만, 戰勢는 불리하였다.

操望西而走.
조조는 서쪽을 향하여 달아났다.

忽又喊聲大震 一彪軍至.
갑자기 또다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면서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다가왔다.

郝萌曹性成廉宋憲四將攔住去路.
학맹, 조성, 성렴, 송헌 등 네 장수가 길을 가로막았다.

衆將死戰 操當先衝陣 梆子響處 箭如驟雨射將來.
장수들이 죽기로 싸우고 있을 때 조조는 앞장서서 적진을 뚫고 나아가는데, 갑자기 딱따기 소리가 나더니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操不能前進 無計可脫 大呌:
誰人救我!”
조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탈출할 방법도 없어 큰소리로 외쳤다.
“누구든 나를 구해줘!”

馬軍隊裏 一將踴出 乃典韋也. 手挺雙鐵戟 大呌:
主公勿憂.”
기마군 속에서 한 장수가 뛰어나오는데 바로 전위였다.
손에 쌍철극을 뻗쳐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주공! 걱정하지 마십시오.”

飛身下馬 撑住雙戟 取短戟十數枝 挾在手中 顧從人曰:
賊來十步 乃呼我!”
몸을 날려 말에서 내리더니 쌍철극을 몸에 꽉 채워 메고, 짧은 창 10여 자루를 손에 끼고 시종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적이 10보쯤 다가오면 나를 불러라!”

遂放開脚步 冒箭前行.
마침내 발걸음을 크게 벌려 쏟아지는 화살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갔다.

布軍數十騎追至 從人大叫:
十步矣!”
여포 군의 수십 기가 바짝 추격하여 오자 시종이 크게 소리쳤다.
“10보요!”

韋日:
五步乃呼我!”
전위가 말하였다.
“5보쯤 다가오면 나를 불러라!”

從人又曰:
五步矣!”
시종이 또 말하였다.
“5보요!”

韋乃飛戟刺之 一戟一人墜馬.
전위는 단창을 날려 찔렀는데 단창 하나에 한 명씩 말에서 떨어졌다.

並無虛發 立殺十數人 衆皆奔走.
아울러서 헛방을 놓지 않고 그 자리에서 십여 명을 죽이자 무리가 바삐 달아났다.

韋復飛身上馬 挺一雙大鐵戟 衝殺入去 郝曹成宋四將 不能抵擋 各自逃去.
전위는 다시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라타고, 한쌍의 큰 철극을 뻗쳐 들고 돌진해 들어가는데, 학맹, 조성, 송헌, 후성 네 장수는 막아내지 못하고 각각 도망쳤다.

典韋殺散敵軍 救出曹操.
전위가 적군을 무찔러 내치고 조조를 구출하였다.

衆將隨後也到 尋路歸寨 .
장수들도 뒤따라 도착하여 길을 찾아 영채로 향하였다.

看看天色傍晚.
하늘빛은 막 황혼이 지고 있었다.

背後喊聲起處 呂布驟馬提戟趕來 大叫:
操賊休走!”
등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더니 여포가 방천화극을 들고 뒤쫓아 오면서 소리쳤다.
“조조 도적아! 달아나지 말라!”

此時人困馬乏 大家面面相覷 各欲逃生.
이때는 人困馬乏하여, 모두가 얼굴마다 눈치를 서로 살피며 각자 逃生하려 하였다.

正是:
바로 이러하였다.

雖能暫把重圍脫 只怕難當勁敵追.
비록 잠시 겹겹의 포위를 벗어날 수는 있었으나, 감당하기 어려운 강적이 쫓아오니 두렵기만 하네.

不知曹操性命如何且聽下文分解
조조의 목숨이 어떻게 될까? 다음 글에서 설명함을 또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