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

맹자집주 이루장구 하 제29장

耽古樓主 2023. 3. 20. 03:37

孟子集注

 

禹·稷當平世三過其門而不入孔子賢之.
禹王과 后稷이 治世를 당하여 세 번 자신의 문을 지나면서 들어가지 않으니孔子께서 그들을 어질다고 여기셨다.

事見前篇.
일이 前篇(滕文公上)에 보인다,

顔子當亂世, 居於陋巷. 一簞食, 一瓢飮.
顔子가 亂世를 당하여 누추한 골목에서 거처하며 한 도시락의 밥을 먹고 한 표주박의 음료를 마셨다.

人不堪其憂, 顔子不改其樂, 孔子賢之.

사람들은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지만 顔子는 자신의 樂道를 바꾸지 않으니, 孔子가 그를 어질게 여기셨다.

孟子曰:
「禹·稷·顔回同道.
孟子가 말하였다.
禹王과 后稷과 顔回는 추구하는 道가 같다.

同道同心同道는 所行이니 ·이 해당하고 同心은 所在이니 안회가 해당한다.

聖賢之道, 進則救民, 退則修己, 其心一而已矣.
성현의 도는 나아가면 백성을 구제하고 물러가면 자신을 닦으니, 그들의 마음은 하나일 뿐이다.

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飢者, 由己飢之也,
是以如是其急也.
禹임금은 생각하기를, 天下에 물에 빠진 자가 있으면 자기가 그를 빠뜨렸다고 여겼고,

后稷은 생각하기를,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하였다고 여겼으니, 이때문에 이렇게 그 일을 서둘렀다.

, 與猶同.

由는 猶와 같다.

 

禹稷身任其職, 故以爲己責而救之急也.
禹임금과 后稷은 자신이 그 직책을 맡았으므로 자기의 책임으로 삼아 구제하기를 서둘렀다.

禹·稷·顔子易地則皆然.
임금과 后稷과 顔子가 處地를 바꾸어도 다 그리하였을 터이다.

聖賢之心無所偏倚, 隨感而應, 各盡其道.

聖賢의 마음은 偏僻되고 치우치는 바가 없어서, 감동함에 따라 應하여 각각 도를 다함이다.


故使禹稷居顔子之地, 則亦能樂顔子之樂;

使顔子居禹稷之任, 亦能憂禹稷之憂也.
그러므로 禹임금과 后稷을 顔子의 처지에 있게 하여도 顔子의 樂을 즐길 수 있었을 터이요,

顔子로 하여금 禹임금과 后稷의 임무를 맡겨도 禹임금과 后稷의 근심을 걱정하였으리라.

不暇束髮, 而結纓往救, 言急也.

머리를 묶을 겨를이 없어서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리니 서두른다는 말이다.

以喩禹稷.

이로써 禹임금과 后稷을 비유하였다.

鄕鄰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鄕里와 이웃에 싸우는 자가 있는데, 머리를 푼 채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면, 이것은 이치에 어두운 것이다.

雖閉戶可也.」
이 경우에는 비록 문을 닫아버리고 간여하지 않더라도 可하다.

喩顔子也.

顔子를 비유하였다.

此章言

聖賢心無不同, 事則所遭或異;

然處之各當其理, 是乃所以爲同也.

이 章은 말하였다.

‘聖賢의 마음은 같지 않음이 없고, 일은 만나는 바가 或 다르다.
그러나 일에 대처함은 그 이치에 합당하게 하니, 도가 같다고 하는 까닭이다.’


尹氏曰:
當其可之謂時, 前聖後聖, 其心一也, 故所遇皆盡善.
尹氏가 말하였다.
‘그가 可할 때를 맞추는 것을 時라고 이르니, 앞 聖人과 뒷 聖人이 마음이 똑같다. 그러므로 만나는 바에 모두 極盡히 잘 대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