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

맹자집주 이루장구 하 제21장

耽古樓主 2023. 3. 20. 05:10

孟子集注

 

孟子曰:
「王者之跡熄而詩亡詩亡然後春秋作.
孟子가 말하였다.
“王者의 자취가 종식되니 詩가 없어졌고가 없어진 뒤에 春秋가 저술되었다.

王者之跡熄, 謂平王東遷, 而政敎號令不及於天下也.
王者之跡熄이란 周平王이 동쪽으로 遷都함에, 政敎와 號令이 天下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詩亡, 謂黍離降爲國風而雅亡也.
詩亡이란 黍離篇이 강등되어 國風이 됨에 雅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春秋, 魯史記之名, 孔子因而筆削之. 始於魯隱公之元年, 實平王之四十九年也.
春秋는 노나라 사기의 이름이니, 공자가 그대로 因襲하여 일을 가필하고 刪削하셨다. 魯隱公 元年에 시작하니, 실로 周平王 四十九년이다.

晉之乘楚之檮杌魯之春秋一也.
나라의 과 나라의 檮杌과 나라의 春秋가 똑같은 것(史書)이다.

乘義未詳.
乘은 뜻이 상세하지 않다.

趙氏以爲興於田賦乘馬之事.
趙岐는 田賦와 乘馬의 일에서 나왔다고 말하였다.

或曰:
取記載當時行事而名之也.
혹자는 이르기를 “당시 행사를 기재함을 취하여 이름하였다.”라고 하였다.(예:家乘)

檮杌, 惡獸名. 古者因以爲凶人之號, 取記惡垂戒之義也.
檮杌은 나쁜 짐승의 이름이다. 옛날에 이것으로 因하여 凶人의 號로 삼았으니, 惡한 일을 기록하여 경계를 드리운 뜻을 취하였다.

春秋者, 記事者必表年以首事, 有四時, 故錯擧以爲所記之名也.
春秋는 일을 기록하는 자가 항상 年度를 표시하여 사건의 앞에 놓았으니, 年에는 四時가 있음을 번갈아 거론하여 기록한 바의 冊名으로 삼았다.

古者列國皆有史官, 掌記時事. 此三者皆其所記冊書之名也.
옛날에 列國에 모두 사관이 있어서 당시의 일을 관장하여 기록하였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그들이 기록한 서책의 이름이다.

其事則齊桓·晉文其文則史.
춘추의 記事는 오패의 일이고그 문체는 史官의 문체이다.

孔子曰:
『其義則丘竊取之矣.』」
공자가 말씀하셨다.
‘춘추에서 포폄한 의리는 내가 삼가 성왕의 법도를 취한 것이다.’
孔子:素王(王者는 아니나 왕자의 덕을 갖춘 사람)이라고도 한다

春秋之時, 五霸迭興, 而桓文爲盛.
춘추시대에 5패가 번갈아 일어났는데 桓公과 文公이 성대하였다.

, 史官也.
史는 史官이다.

竊取者, 謙辭也.
竊取者는 謙辭이다.

公羊傳作 其辭則丘有罪焉爾, 意亦如此.
춘추 公羊傳에 “내용을 저술한 것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뜻이 이 章과 같다.

蓋言斷之在己, 所謂筆則筆·削則削, 游夏不能贊一辭者也.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단정한 것은, 가필할 것이 있으면 가필하고, 산삭할 것이 있으면 산삭하여, 자유와 자하도 한마디도 돕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尹氏曰:
言孔子作春秋, 亦以史之文載當時之事也, 而其義則定天下之邪正, 爲百王之大法.
尹氏가 말하였다.
“공자가 춘추를 지음에 또한 사관의 문체로써 당시의 일을 기재하였으니, 춘추의 의리는 천하의 정도를 정하여서 왕들의 큰 본보기로 삼았다는 말이다.”

此又承上章歷敍群聖, 因以孔子之事繼之; 而孔子之事莫大於春秋, 故特言之.
▲天下之邪正: 邪正처럼 상반되는 뜻을 가진 단어는 하나의 뜻(正)만 취하여 해석하라.
이것은 또 윗 장에서 여러 성인의 일을 차례로 서술함을 이어서, 공자의 일로써 계속하니, 공자의 일은 춘추보다 큰일이 없다.
그러므로 특별히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