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

맹자집주 공손추장구 상 제2장

구글서생 2023. 3. 24. 02:08

孟子集注(맹자집주)) 공손추장구 상 제2장
孟子集注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 得行道焉, 雖由此霸王不異矣.
如此, 則動心否乎?」
공손추가 물었다.
“부자께서 제나라의 경상 지위에 오르시어 도를 행할 수 있게 되신다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업이나 왕업을 이루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다.
이와 같다면 마음에 동요되겠습니까?”

孟子曰:
「否.
我四十不動心.」
맹자가 말씀하였다.
“아니다. 나는 40세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노라.”

卿相三相六卿=九卿

此承上章, 又設問孟子,
若得位而行道, 則雖由此而成霸王之業, 亦不足怪.
任大責重如此, 亦有所恐懼疑惑而動其心乎?
이것은 위의 章을 이어 가설하여 맹자에게 묻기를
‘地位를 얻어 道를 행하시게 되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霸者와 王者의 業을 이룩하더라도 족히 怪異할 것이 없습니다.
임무가 크고 책임이 중함이 이와 같으면, 또한 恐懼하고 疑惑하는 바가 있어서 마음이 동요되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設問: 가설하여 묻다.

四十强仕, 君子道明德立之時.
四十은 강건하게 벼슬할 때이니, 君子의 道가 밝아지고 德이 확립되는 때이다.
-굳셀 강

孔子四十而不惑, 亦不動心之謂.
孔子께서 40세에 不惑한 것도 또한 不動心을 말씀한 것이다.

:
若是, 則夫子過孟賁遠矣.
公孫丑가 말하였다.
이와 같으면 夫子의 용기가 孟賁보다 뛰어남이 遠大하십니다.”

:
是不難, 告子先我不動心.
맹자가 말하였다.
不動心은 어렵지 않으니, 告子는 나보다 이른 나이에 부동심하였느니라.”
-뛰어날 과 -클 분

孟賁, 勇士.
孟賁은 勇士이다.

告子, 名不害.
告子는 이름이 不害이다.

孟賁血氣之勇, 丑蓋借之以贊孟子不動心之難.
孟賁의 血氣의 勇을 公孫丑가 빌려서 孟子의 不動心이 어려운 것을 稱讚하였다.
-빌 차 -칭찬할 찬(도울 찬)

孟子言
告子未爲知道, 乃能先我不動心, 則此亦未足爲難也.
孟子가 말하였다.
‘告子는 道를 알지 못하였으되, 능히 나보다 먼저 不動心을 하였으니, 이것은 足히 어려울 것이 없다.’
未爲知道: 되다의 뜻. 해석하지 않는다.

 

:
不動心有道乎?
公孫丑가 말하였다.
不動心 方法이 있습니까?”

:
.
孟子가 말하였다.
있느니라.”

程子曰:
心有主, 則能不動矣.
程子가 말하였다.
‘마음에 主張이 있으면 能히 동요되지 않는다.’

 

北宮黝之養勇也, 不膚撓, 不目逃, 思以一豪挫於人, 若撻之於市朝.
北宮黝 을 기를 때, 皮膚를 찔러도 굴복하지 않고 눈을 찔러도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털끝만큼이라도 모욕을 당하면 저자나 조정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不受於褐寬博, 亦不受於萬乘之君.
褐寬博에게도 모욕을 받지 않으며, 또한 萬乘의 군주에게도 모욕을 받지 않았다.

視刺萬乘之君, 若刺褐夫, 無嚴諸侯.
만승의 군주를 찌름을 마치 褐夫를 찔러 죽임과 같이 보아서, 두려운 제후가 없었다.

惡聲至, 必反之.
험담하는 소리가 이르면 반드시 보복하였다.
-검을 유 -흔들 요(어지러울 요) -꺾일 좌 -종아리칠 달 -털베 갈 -찌를 자(찌를 척) -살갗 부 -도망할 도 -터럭
褐寬博: 천한 사람의 옷

北宮姓, 黝名.
北宮은 姓이요 黝(유)는 이름이다.

膚撓, 肌膚被刺而撓屈也.
膚撓란 肌膚가 찔려 흔들리고 움츠러드는 것이다.
-살 기

目逃, 目被刺而轉睛逃避也.
目逃란는 눈이 찔려 눈동자를 굴려 逃避하는 것이다.
-눈동자 정

, 猶辱也.
挫는 辱과 같다.

, 毛布. 寬博, 寬大之衣, 賤者之服也.
褐은 毛布요 寬博은 헐렁하고 큰 옷이니, 지위가 낮은 자의 衣服이다.

不受者, 不受其挫也.
不受란 그 挫折을 받지 않는 것이다.

, 殺也.
刺(자)는 찔러 죽임이다.

, 畏憚也. 言無可畏憚之諸侯也.
嚴은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니, 두려워하고 꺼릴 만한 諸侯가 없음을 말한다.
:畏憚. -꺼릴 탄

黝蓋刺客之流, 以必勝爲主, 而不動心者也.
北宮黝는 刺客의 部類로서 반드시 이김을 주장으로 삼아서 마음을 동요하지 않은 자인 듯하다.

孟施舍之所養勇也, :
視不勝猶勝也.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舍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
孟施舍 을 기름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기지 못함을 보기를 이기는 것과 같이 여긴다.
을 헤아린 뒤에 前進하며 勝利를 생각한 뒤에 교전한다면, 이것은 三軍을 두려워함이다.
내 어찌 승리를 期必할 수 있으리오?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을 뿐이다.’

, . , 發語聲. , 名也.
孟은 姓이요 施는 發語聲이요, 舍는 이름이다.

, 合戰也.
會는 모여 싸우는 것이다.

舍自言
其戰雖不勝, 亦無所懼.
若量敵慮勝而後進戰, 則是無勇而畏三軍矣.
孟施舍는 스스로 말하였다.
‘그 싸움에서 비록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만일 敵을 헤아리고 승리할 것을 생각한 뒤에 나가서 싸운다면, 이것은 勇氣가 없어서 적의 三軍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舍蓋力戰之士, 以無懼爲主, 而不動心者也.
孟施舍는 아마도 力戰의 勇士인 듯하니, 두려움이 없음을 主張으로 삼아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은 자일 터이다.

 

孟施舍似曾子, 北宮黝似子夏.
孟施舍의 기상은 曾子와 닮았고, 北宮黝의 기상은 子夏와 유사하다.

夫二子之勇, 未知其孰賢, 然而孟施舍守約也.
저 두 사람의 은 그 누가 나은지 알지 못하거니와, 그러나 孟施舍는 요체를 지켰다.
-검을 유 -나을 현 -요약할 약
守約: 遵守约定

黝務敵人, 舍專守己.
北宮黝는 남을 대적하기를 힘쓰고, 孟施舍는 자신을 지키기를 오로지 하였다.

子夏篤信聖人, 曾子反求諸己.
子夏는 聖人(孔子)을 篤實이 믿었고 曾子는 자신에게 돌이켜서 찾았다.

故二子之與曾子·子夏, 雖非等倫, 然論其氣象, 則各有所似.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曾子나 子夏와 비록 同等한 무리는 아니나, 그 기상을 논하면, 각기 유사한 바가 있다.
-무리 륜=

, 猶勝也.
賢은 勝과 같다.

, 要也.
約은 要約이다.


論二子之勇, 則未知誰勝; 論其所守, 則舍比於黝, 爲得其要也.
말하였다.
‘두 사람의 勇을 논한다면 누가 나은지 알지 못하겠으나, 그 지키는 바를 論하면 孟施舍가 北宮黝에 비하여 그 要諦를 얻었다고 하겠다.’

 

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옛적에 曾子 子襄에게 일렀다.
그대는 을 좋아하는가?
 大勇 夫子(공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 돌이켜서 바르지 못하면 비록 褐寬博이라도, 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돌이켜 바르면 비록 千萬 명이라도 내가 가서 대적하겠다.’”
-멍에 양 -곧을 축 -털옷 갈 -너그러울 관 -넓을 박
自反:內省. 자신을 돌이켜 봄

此言曾子之勇也.
이것은 曾子의 勇을 말한 것이다.

子襄, 曾子弟子也.
子襄은 曾子의 弟子이다.

夫子, 孔子也.
夫子는 孔子이다.

, 直也. 檀弓曰:古者冠縮縫, 今也衡縫.又曰:棺束縮二衡三.
縮은 곧음이니 檀弓篇에 이르기를 ‘옛적에는 冠을 곧게 꿰매더니 지금은 가로로 꿰맨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棺의 묶음은 세로로 둘이요, 가로가 셋이다.’라고 하였다.
-꿰멜 봉 -가로 횡(橫同) -널 관

, 恐懼之也.
惴는 두려워함이다.
-두려워할 췌

, 往而敵之也.
往은 가서 대적함이다.

 

孟施舍之守氣, 又不如曾子之守約也.
孟施舍 氣像을 지키는 것이, 또한 曾子가 요체를 지키는 것만 못하니라.”


孟施舍雖似曾子, 然其所守乃一身之氣, 又不如曾子之反身循理, 所守尤得其要也.
말하였다.
‘孟施舍가 비록 曾子와 유사하나, 그가 지키는 것은 한 몸의 氣像일 뿐으로, 曾子가 자신을 돌아보아 理를 따라서, 그 지키는 것이 요체까지 얻음만 못하다.’

孟子之不動心, 其原蓋出於此, 下文詳之.
孟子의 不動心은 그 根源이 여기에서 나왔으니, 아래의 글에 상세히 말하였다.

 

:
敢問夫子之不動心, 與告子之不動心, 可得聞與?
공손추가 말하였다.
히 묻겠습니다. 夫子 不動心 告子 不動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告子曰: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得於心, 勿求於氣.
孟子가 말하였다.
告子가 말하였다.
말을 理解하지 못하면 마음에서 이치를 찾지 말며,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

不得於心, 勿求於氣, ;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可.
夫志, 氣之帥也;
, 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 함은 하거니와,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서 이치를 찾지 말라 함은 不可하다.
대저   將帥 는 몸에 충만한 것이다.
 가 지극한 것이고 는 다음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를 잘 지키고, 또 그 를 해치지 말라.’라고 하였다.”
-장수 수 -사나울 포()

此一節, 公孫丑之問. 孟子誦告子之言, 又斷以己意而告之也.
이 一節은 公孫丑의 물음에 孟子가 告子의 말을 외우고, 또 자기의 뜻으로 판단하여 말한 것이다.

告子謂
於言有所不達, 則當舍置其言, 而不必反求其理於心;
於心有所不安, 則當力制其心, 而不必更求其助於氣.
告子가 일렀다.
‘말에 通達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마땅히 그 말을 제쳐두고 그 理致를 마음속에 되찾을 필요가 없다.
마음에 不安한 바가 있으면 마땅히 힘써 그 마음을 억제하고, 다시 氣運에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다.’
舍置: 젖혀놓다

此所以固守其心而不動之速也.
이것이 고자가 그의 마음을 굳게 지켜서 동요하지 않기를 일찍이 한 까닭이다.

孟子旣誦其言而斷之曰,
彼謂不得於心而勿求諸氣者, 急於本而緩其末, 猶之可也;
謂不得於言而不求諸心, 則旣失於外, 而遂遺其內, 其不可也必矣.
孟子가 그의 말을 외우고 나서 단정하였다.
“저 마음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면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함은, 根本을 시급히 하고 枝葉을 느슨히 하라는 것이니 그래도 可하다.
말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 알기를 구하지 말라고 함은, 밖을 잃고 나서 마침내 그 안을 버리는 것이니 그것이 不可함은 틀림없다.”

然凡曰可者, 亦僅可而有所未盡之辭耳.
그러나 일반적으로 可하다는 말은, 또한 ‘겨우 옳다는 것이라 未盡한 바가 있다.’라는 말이다.

若論其極, 則志固心之所之, 而爲氣之將帥;
然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 而爲志之卒徒者也.
만일 그 이치의 궁극을 논한다면, 志는 본래 마음이 가는 바이어서 氣의 將帥가 되고,
氣는 또한 사람의 몸에 充滿되어 있는 것이어서 志의 卒徒가 된다.

故志固爲至極, 而氣卽次之.
그러므로 志가 본래 지극함이 되고 기가 다음이 된다.

人固當敬守其志, 然亦不可不致養其氣.
사람이 본래 마땅히 그 志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나, 또한 그 氣를 기름에 이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敬守: 1.谨慎守护敬慎守持2.操守严谨

蓋其內外本末, 交相培養. 此則孟子之心所以未嘗必其不動, 而自然不動之大略也.
그 內와 外, 本과 末은 서로서로 培養하니, 이것이 孟子의 마음에 不動心하기를 期必한 적은 없어도 自然히 동요되지 않으신 방법의 大略이다.

 

旣曰 志至焉, 氣次焉 , 又曰 持其志無暴其氣 , 何也?
공손추가 말하였다.
 至極하고 는 다음이라 말씀하셔 놓고, 또 말하기를 그 를 잘 잡고 그 를 해치지 말라고 하심은 어째서입니까?”

:
志壹則動氣, 氣壹則動志也.
今夫蹶者趨者, 是氣也, 而反動其心.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가 한결같으면 를 움직이고, 가 한결같아도 意志를 움직이게 한다.
지금 넘어짐과 달림은 이니, 가 도리어 그 의지를 동요하게 한다.”

公孫丑見孟子言志至而氣次, 故問如此則專持其志可矣, 又言無暴其氣何也?
公孫丑는 孟子께서 志가 지극한 것이고, 기가 다음이라고 말씀하신 뜻을 알았으므로 묻기를,
‘그렇다면 오로지 그 志만 지키면 可할 터인데, 또 그 氣를 해치지 말라고 말씀하심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 專一也.
壹은 專一함이다.

, 顚躓也.
蹶(궐)은 넘어짐이다.
-넘어질 전 -넘어질 지

, 走也.
趨는 달림이다.
-달릴 추 : 山頂走於山下

孟子言
志之所向專一, 則氣固從之;
然氣之所在專一, 則志亦反爲之動.
如人顚躓趨走, 則氣專在是而反動其心焉.
所以旣持其志, 而又必無暴其氣也.
孟子가 말하였다.
‘意志가 向하는 바가 專一하면 氣는 본래 그 뜻을 따른다.
그러나 氣가 있는 곳이 專一하면 志가 또한 도리어 氣에 동요된다.
사람이 넘어지고 달려갈 때 氣가 오로지 여기에 있어서 도리어 그 마음을 동요케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이미 志를 잡고도 또 반드시 氣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

程子曰:
志動氣者什九, 氣動志者什一.
程子가 말하였다.
‘志가 氣를 動함은 十分의 九이요, 氣가 意志를 動함은 十分의 一이다.’
-열 십

 

敢問夫子惡乎長?
공손추가 말하였다.
히 묻겠습니다. 夫子께서는 무엇에 장점이 있습니까?”

: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잘 알아들으며 나는 나의 浩然之氣를 잘 기르노라.”

公孫丑復問
孟子之不動心所以異於告子如此者, 有何所長而能然,
而孟子又詳告之以其故也.
公孫丑가 다시 묻기를,
孟子의 不動心이 告子와 다름이 이와 같은 까닭은, 어느 곳에 장점이 있어 능히 그러하냐고 하니,
孟子가 또 그 연고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知言者, 盡心知性, 於凡天下之言, 無不有以究極其理, 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
知言이란 것은 마음을 다하여 本性을 알아서 모든 天下의 말에, 그 理致를 끝까지 窮究하여 그 是非得失의 所以然을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所以然: . 까닭

浩然, 盛大流行之貌.
浩然은 盛大히 流行하는 모양이다.

, 卽所謂體之充者. 本自浩然, 失養故餒, 惟孟子爲善養之以復其初也.
氣는 소위 몸에 充滿한 것이니, 본래는 스스로 浩然하되 기름을 잃었기 때문에 不足하게 되는데, 孟子만은 이것을 잘 길러서 그 本初를 회복하였다.
-굶주릴 뇌

蓋惟知言, 則有以明夫道義, 而於天下之事無所疑;
養氣, 則有以配夫道義, 而於天下之事無所懼,
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
대개 知言하기만 하면 저 道義를 밝힐 수 있어서 天下의 일에 대하여 의심스러울 것이 없고,
氣를 잘 기르면 저 道義에 配合될 수 있어서 天下의 일에 두려울 것이 없으니,
이것이 맹자가 대임을 담당하여도 不動心하는 이유이다.
-배합할 배(짝 배)

告子之學, 與此正相反. 其不動心, 殆亦冥然無覺, 悍然不顧而已爾.
告子의 學問은 이것과 정반대였으니, 그의 부동심은 눈을 감은 듯 지각이 없고, 눈을 부릅떴으나 고려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두울 명 -사나울 한

 

敢問何謂浩然之氣?
공손추가 말하였다.
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浩然之氣라 합니까?”

:
難言也.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표현하기 어려우니라.

孟子先言知言而丑先問氣者, 承上文方論志氣而言也.
孟子가 먼저 知言을 말하였는데 공손추가 먼저 養氣를 물은 것은, 윗글에서 바야흐로 志, 氣를 論함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難言者, 蓋其心所獨得, 而無形聲之驗, 有未易以言語形容者.
難言이란 그 마음에 홀로 터득하여 형상과 소리의 징험이 없으니 言語로써 形容하기 쉽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故程子曰:
觀此一言, 則孟子之實有是氣可知矣.
그러므로 程子가 말하였다.
‘이 한마디 말을 보면 孟子께서 실제로 이 浩然之氣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閒.
그것이 氣됨이 至極히 크고 至極히 강건하니, 정직함으로써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浩然之氣가) 天地에 꽉 차게 되니라.

至大初無限量, 至剛不可屈撓.
至極히 크다는 것은 애당초 限量이 없는 것이요, 지극히 剛하다는 것은 굽힐 수 없는 것이다.
: 굽히다

蓋天地之正氣, 而人得以生者, 其體段本如是也.
대개 天地의 正氣로 사람이 부여받아 태어나는 것이니, 그 體段(특성)이 본래 이와 같다.

惟其自反而縮, 則得其所養;
而又無所作爲以害之, 則其本體不虧而充塞無間矣.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면 (호연지기를) 기르는 바를 얻을 것이요,
또 作爲하여 정기를 해침이 없으면 그 本體가 이지러지지 않아서 충만하여 간격이 없으리라.

程子曰:
天人一也, 更不分別.
浩然之氣, 乃吾氣也.
養而無害, 則塞乎天地;
一爲私意所蔽, 則欿然而餒, 卻甚小也.
程子가 말하였다.
‘하늘과 人間은 똑같아서 다시 분별이 없다.
浩然之氣는 바로 나의 氣이다.
호연지기를 길러서 해침이 없으면 天地에 充滿하고, 한 번이라도 私意에 가림을 당하면 움푹 파여 줄어들어서 그 적음을 알리라.’

謝氏曰:
浩然之氣, 須於心得其正時識取.
謝氏가 말하였다.
‘浩然之氣는 모름지기 천지의 정도를 심득하였을 때 알게 된다.’
: 동사 뒤에 붙는 어조사

又曰:
浩然是無虧欠時.
또 말하였다.
‘浩然은 이지러지거나 不足한 때가 없는 것이다.’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그 氣라 하는 것은 義와 道에 配合되니, 義道가 없으면 (호연지기가) 모자라게 되니라.

配者, 合而有助之意.
配는 合하여서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義者, 人心之裁制. 道者, 天理之自然.
義란 人心이 裁制함이요, 道란 天理가 自然스러움이다.

, 飢乏而氣不充體也.
餒(뇌)는 굶주리고 모자라서 氣가 몸에 充滿하지 못함이다.


人能養成此氣,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 使其行之勇決, 無所疑憚;
若無此氣, 則其一時所爲雖未必不出於道義, 然其體有所不充, 則亦不免於疑懼, 而不足以有爲矣.
뜻은 이러하다.
‘사람이 능히 이 浩然之氣를 養成하면, 곧 그 氣가 道義에 配合되고 호연지기의 도움을 받아서, 그로 하여금 용감하고 決斷성 있게 행동하고 의심하고 꺼리는 바가 없게 한다.
만일 이 浩然之氣가 없으면, 그가 한때 행하는 바가 비록 반드시 道義를 벗어나지 않아도, 그 몸에 充滿되지 못하는 바가 있고 疑懼心을 면치 못하여 족히 대임을 맡기에 부족하다.’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이것(浩然之氣)은 義理를 蓄積하여 생겨난 것이지, 義理가 엄습하여 取하는 것이 아니다.

行有不慊於心, 則餒矣.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하지 않음이 있으면, (浩然之氣가) 모자라게 된다.

我故曰,
告子未嘗知義, 以其外之也.
내 그러므로 말했다.
‘告子는 義를 알지 못하니 義를 外面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集義, 猶言積善, 蓋欲事事皆合於義也.
集義는 積善이란 말과 같으니, 일마다 모두 義에 合하고자 하는 것이다.
事事: 하는 일마다

, 掩取也, 如齊侯襲莒之襲.
襲은 掩襲하여 取하는 것이니, (春秋左傳 襄公 二十三年에)齊나라 임금이 莒 나라를 掩襲했다는 襲자와 같다.


氣雖可以配乎道義, 而其養之之始, 乃由事皆合義, 自反常直, 是以無所愧怍, 而此氣自然發生於中.
非由只行一事偶合於義,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

다음과 같은 말이다
‘氣가 비록 道義에 配合되나 浩然之氣를 기르는 처음에는 일마다 모두 義에 合하여 스스로 돌이켜봄에 항상 정직함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이럼으로써 부끄러운 바가 없어서 이 浩然之氣가 自然히 心中에 發生되는 것이다. 단지 한 가지 일을 행함이 우연히 義에 合함으로 말미암아 밖에서 掩襲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 快也, 足也.
慊은 快함이며 足함이라.


所行一有不合於義, 而自反不直, 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
然則義豈在外哉?
告子不知此理, 乃曰仁內義外, 而不復以義爲事, 則必不能集義以生浩然之氣矣.
다음과 같은 말이다
‘행하는 바가 義에 합하지 못해서 스스로 돌이켜보아 正直하지 못함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마음에 부족하여 그 體에 充滿하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義가 어찌 밖에 있는 것이겠는가?
告子는 이러한 理致를 알지 못하고서 말하기를, [仁은 내면에 있고 義는 외면에 있다.]라고 하고, 다시는 義를 일삼지 않아서, 필경 義를 蓄積하여 浩然之氣를 생성하지 못하였을 터이다.’

上文不得於言勿求於心, 卽外義之意, 詳見告子上篇.
윗글에서 ‘말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 알기를 구하지 말라.’라 함이 바로 義를 외면의 것으로 여긴 뜻이니, 이러한 내용은 告子 上篇에 자세히 보인다.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
반드시 (浩然之氣를 기름에) 從事하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며, 억지로 助長하지도 말아서, 宋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라.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宋나라 사람에 벼 싹이 자라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뽑아놓은 자가 있더니, 아무것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그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나는 매우 피곤하다. 내가 벼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다.]라고 하였다.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보았더니, 벼 싹은 말라 있었다.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天下에 벼 싹이 자라도록 억지로 助長하지 않는 자가 적다.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有益함이 없다고 여겨 버려두는 자는, 벼 싹에 김매지 않는 자요,
억지로 助長하는 자는 벼 싹을 뽑아놓는 자이다.

非徒無益, 而又害之.」
이는 한갓 有益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해치는 것이다.”

必有事焉而勿正, 趙氏·程子以七字爲句. 近世或幷下文心字讀之者亦通.
必有事焉而勿正은 趙氏와 程子는 일곱 字로써 句節을 삼았고, 近世에 或 아래 글의 心자까지 아울러 읽는 것도 또한 뜻이 通한다.

必有事焉, 有所事也, 如有事於顓臾之有事.
必有事焉은 종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有事於顓臾의 有事와 같다.

, 預期也. 春秋傳曰 戰不正勝, 是也.
正은 미리 기약함이니, 春秋傳에 말하기를 戰不正勝(싸움은 승리를 미리 기약할 수 없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如作正心義亦同. 此與大學之所謂正心者, 語意自不同也.
正心으로 써도 뜻은 또한 같으니, 이것은 大學에 이르는바 正心이라는 것과는 말뜻이 自然히 같지 않다.

此言
養氣者, 必以集義爲事, 而勿預期其效.
其或未充, 則但當勿忘其所有事, 而不可作爲以助其長, 乃集義養氣之節度也.
이것은 이런 말이다.
‘浩然之氣를 기르는 자는 반드시 義로운 일을 蓄積함을 일삼고, 미리 效果를 기대하지 말라.
혹시라도 充滿하지 못하면 다만 마땅히 호연지기에 종사할 것을 잊지 말고, 억지로 作爲하여 助長하지 말아야 하니, 의로운 일을 축적함이 浩然之氣를 기르는 불변의 규칙이다.’
節度: [rule]规则;分寸 日月之行,有常节度

, 憂也.
閔은 근심이다.

揠 拔也
, 拔也.

芒芒, 無知之貌.
芒芒은 無知한 모양이다.

其人, 家人也.
其人은 집안사람이다.

, 疲倦也.
病은 피곤함이다.

舍之不耘者, 忘其所有事.
버려두고 김매지 않음은 종사함을 잊는 것이다.

揠而助之長者, 正之不得, 而妄有作爲者也.
뽑아서 助長함은 效果를 미리 企待하다가 되지 않으니, 함부로 作爲하는 것이다.

然不耘則失養而已, 揠則反以害之.
그러니 김매지 않으면 배양을 잃고 말며, 뽑아놓는다면 도리어 해치게 된다.

無是二者,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
이 두 가지가 없으면 氣를 함양할 수가 있고 해치는 바가 없으리라.

如告子不能集義, 而欲强制其心,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
告子와 같이 의로운 일을 蓄積하지 못하고서, 억지로 그 마음을 제재하고자 한다면, 틀림없이 正助의 병통을 免하지 못할 터이다.

其於所謂浩然者, 蓋不惟不善養, 而又反害之矣.
고자는 이른바 浩然之氣란 것을 잘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게 된다.

 

「何謂知言?」
공손추가 말하였다.
“무엇을 知言이라 말합니까?”

曰:
「詖辭知其所蔽, 淫辭知其所陷, 邪辭知其所離, 遁辭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孟子가 말하였다.
“편벽된 말에 그 가리운 바를 알며, 放蕩한 말에 빠지는 바를 알며, 부정한 말에 괴리된 바를 알며, 회피하는 말에 그 窮한 바를 아는 것이다.
그 마음에서 생겨나서 政事에 해를 끼치며,
政事에 發露되어 일을 해친다.
聖人이 다시 나오셔도 필시 내 말을 따르시리라.”

此公孫丑復問而孟子答之也.
이것은 公孫丑가 다시 물으니 孟子가 대답한 것이다.

, 偏陂也. , 放蕩也. , 邪僻也. , 逃避也. 四者相因, 言之病也.
詖(피)는 편벽됨이요, 淫은 방탕함이요, 邪는 邪辟함이요, 遁은 도피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말의 병통의 원인이 된다.

, 遮隔也. , 沈溺也. , 叛去也. , 困屈也. 四者亦相因, 則心之失也.
蔽는 가리우고 막힘이요, 陷은 물에 잠기고 빠짐이요, 離는 배반하고 떠남이요, 窮은 곤하고 굽힘이라, 이 네 가지도 본심을 상실하는 원인이 된다.

人之有言, 皆本於心. 其心明乎正理而無蔽, 然後其言平正通達而無病;
苟爲不然, 則必有是四者之病矣.
사람의 말이 모두 마음에서 나오니, 마음이 正理에 밝아서 가림이 없는 뒤에야 말이 公平하고 올바르며 通達하여 병통이 없고,
진실로 그렇지 못하면 틀림없이 이 네 가지의 병통이 있는 법이다.

卽其言之病, 而知其心之失,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而不可易者如此.
말의 병통을 가지고 마음의 잘못을 알며, 또 政事에 해됨이 決定的이어서 바꿀 수 없음이 이러함을 알아야 한다.

非心通於道, 而無疑於天下之理, 其孰能之?
마음이 道에 通達하여 天下의 이치를 의심하지 않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그렇게 하겠는가?

彼告子者, 不得於言而不肯求之於心; 至爲義外之說, 則自不免於四者之病, 其何以知天下之言而無所疑哉?
저 告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을 마음에 찾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는 義는 外面의 것이라는 말하여, 스스로 이 네 가지의 병통을 면하지 못하니, 어떻게 天下의 말씀을 알아서 의심하는 바가 없겠는가?

程子曰:
心通乎道, 然後能辨是非, 如持權衡以較輕重, 孟子所謂知言是也.
程子가 말하였다.
“마음이 道를 通達한 뒤에야 능히 是非를 分別할 수 있다. 저울대를 잡고 輕重을 비교함과 같으니, 孟子 소위 知言이란 이것이다.”

又曰:
孟子知言, 正如人在堂上, 方能辨堂下人曲直.
若猶未免雜於堂下衆人之中, 則不能辨決矣.
또 말하였다.
“孟子의 知言은 곧 사람이 堂위에 있어야 바야흐로 堂 아래의 사람의 曲直을 分別할 수 있음과 같다.
만일 자신이 아직도 堂 아래의 사람들에 섞여 있음을 면치 못하면, 능히 분별할 수 없음과 같다.”

 

「宰我·子貢善爲說辭, 冉牛·閔子·顔淵善言德行.
孔子兼之, 曰:
『我於辭命則不能也.』
然則夫子旣聖矣乎?」
공손추가 말하였다.
“宰我와 子貢은 說辭를 잘하였고, 冉伯牛와 閔子騫, 顔淵은 德行을 잘 말하였습니다.
孔子께서는 이것을 兼하시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辭命에 있어서는 능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夫子께서는 벌써 聖人이시겠습니다.”

此一節, 林氏以爲皆公孫丑之問是也.
이 一節은 林氏가 이르기를 모두 公孫丑의 질문이라 하였으니, 그 말이 옳다.

說辭, 言語也. 德行, 得於心而見於行事者也.
說辭는 言語요, 德行은 마음에 터득하여 行事에 나타나는 것이다.

三子善言德行者, 身有之, 故言之親切而有味也.
세 분이 德行을 잘 말씀하심은 자신들이 덕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말함에 親切하고 意趣가 있었다.

公孫丑言
數子各有所長, 而孔子兼之, 然猶自謂不能於辭命.
今孟子乃自謂我能知言, 又善養氣, 則是兼言語德行而有之, 然則豈不旣聖矣乎?
公孫丑가 말하였다.
“몇 분들은 각자 所長이 있었고, 孔子께서는 이것을 兼하시고도 자신이 辭命에는 능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孟子는 자신이 능히 知言하고 養氣를 잘한다고 말하니, 이것은 言語와 德行을 겸하여 所有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聖人이 되었다고 하지 않겠는가?”

此夫子, 指孟子也.
여기서 夫子는 孟子를 가르킨다.

程子曰:
孔子自謂不能於辭命者, 欲使學者務本而已.
程子가 말하였다.
‘공자께서 자신이 辭命에 능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배우는 자에게 根本을 힘쓰게 하고자 하셨을 뿐이니라.’

 

曰:
「惡! 是何言也?
孟子가 말하였다.
“아! 이 무슨 말인가?

昔者子貢問於孔子曰:
『夫子聖矣乎?』
孔子曰:
『聖則吾不能, 我學不厭而敎不倦也.』
子貢曰:
『學不厭, 智也; 敎不倦, 仁也.
仁且智, 夫子旣聖矣!』
夫聖, 孔子不居, 是何言也?」
옛날에 子貢이 孔子께 묻기를,
‘夫子는 聖人이십니다.’라고 하자,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聖人의 호칭을 내가 감당할 수 없고,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노라.’라고 하셨다.
子貢이 말하기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智요,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은 仁입니다.
仁하고 또 智하시니 夫子는 이미 聖人의 경지에 계십니다.’라고 하였다.
대저 聖人이라고 孔子께서도 自處하지 않으셨는데, 이 무슨 말인가?”

, 驚歎辭也.
惡(오)는 놀라고 탄식하는 말이다.

昔者以下, 孟子不敢當丑之言, 而引孔子·子貢問答之辭以告之也.
昔者以下는 孟子께서 감히 公孫丑의 말을 감당하지 못하여 孔子와 子貢이 問答하신 말씀을 引用하여 말해준 것이다.

此夫子, 指孔子也.
여기서 夫子는 孔子를 가리킨다.

學不厭者, 智之所以自明; 敎不倦者, 仁之所以及物.
배움을 싫어하지 않음은 智가 자연히 밝아지는 까닭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은 仁을 남에게 파급시키는 방법이다.

再言 是何言也, 以深拒之.
이 무슨 말이냐고 두 번 말하여 깊이 거부하셨다.

 

「昔者竊聞之:
子夏·子游·子張皆有聖人之一體, 冉牛·閔子·顔淵則具體而微.
敢問所安.」
공손추가 말하였다.
옛날에 삼가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子夏·子游·子張은 모두 聖人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있었고, 冉牛·閔子·顔淵은 성인의 전체를 갖추고 있었으나 微弱하다.’
감히 자처하시는 경지를 묻나이다.”
: 謙辭
자유와 자하는 文學
자장은 威儀

此一節, 林氏亦以爲皆公孫丑之問, 是也.
이 一節도 林氏가 모두 公孫丑의 질문이라 말하였으니, 옳다.
林氏: 林之奇

一體, 猶一肢也.
一體는 一肢와 같다.

具體而微, 謂有其全體, 但未廣大耳.
具體而微는 그(성인)의 全體를 所有하되, 다만 廣大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 處也.
安은 편안히 自處함이다.

公孫丑復問孟子旣不敢比孔子, 則於此數子欲何所處也.
公孫丑가 다시 맹자에게 묻기를, 감히 孔子에게 比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이 몇 분들에 대하여 어느 곳에 자처하시느냐고 한 것이다.

 

曰:
「姑舍是.」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이들을 버려두라.

孟子言且置是者, 不欲以數子所至者自處也.
孟子가 우선 이들을 버려두라고 말한 것은, 이 몇 분들이 이르는 경지에 자처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曰:
「伯夷·伊尹何如?」
공손추가 말하였다.
“伯夷와 伊尹은 어떻습니까?”

曰:
「不同道.

孟子가 말하였다.
“지향하는 道가 같지 않다.


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 亂則退, 伯夷也.

그 君主가 섬길 만하지 않으면 섬기지 않으며, 그 百姓이 부릴 만하지 않으면 부리지 아니하여,
치세에 나아가고 난세에 물러감은 伯夷이다.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 伊尹也.
누구를 섬긴들 君主가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百姓이 아니겠는가 하여,
치세에도 나아가고 난세에도 나아감은 伊尹이다.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나심은 孔子이시다.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

乃所願, 則學孔子也.」
모두 옛 聖人이신데, 내가 성인들의 행실을 가지지 못하거니와,

내가 원하는 바는 孔子를 배우는 것이다.”

伯夷, 孤竹君之長子.

백이는 孤竹國 君主의 장자이다.


兄弟遜國, 避紂隱居, 聞文王之德而歸之.

형제가 나라를 양보하고 紂왕을 피하여 숨어 살다가, 문왕의 덕을 듣고 문왕에게 歸附하였다.


及武王伐紂, 去而餓死.
무왕이 주왕을 정벌함에 미쳐 주나라를 떠나서 (수양산에서) 굶주려 죽었다.

伊尹, 有莘之處士.

이윤은 有莘 땅의 處士이다.


湯聘而用之, 使之就桀.

탕왕이 초빙하여 등용해서 걸왕에게 나아가게 하였다.


桀不能用, 復歸於湯.

걸왕이 등용하지 못하자, 다시 탕왕에게 돌아왔다.


如是者五, 乃相湯而伐桀也.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 하고는 마침내 탕왕을 도와 걸왕을 정벌하였다.

三聖人事, 詳見此篇之末及萬章下篇.
세 성인의 일은 이편의 끝과 萬章下篇에 자세히 보인다.


조선시대의 封君:
府院君 1
1품이하
국명앞에 쓰는 관형어
: (평화적) : (무력)
다만 명나라는 무력에 의해 세웠지만 有明이라 함.

 

「伯夷·伊尹於孔子, 若是班乎?」
공손추가 말하였다.
“백이와 이윤이 공자에 대하여 이와 같게 동등하십니까?”

曰:
「否.
自有生民以來, 未有孔子也.」
孟子가 말하였다.
“아니다.
生民이 있는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

, 齊等之貌.
班은 등급이 같은 모양이다.

公孫丑問, 而孟子答之以不同也.
공손추가 물으니 맹자가 같지 않다고 답하였다.

 

曰:
「然則有同與?」
공손추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같은 점이 있습니까?”

曰:
「有.
得百里之地而君之, 皆能以朝諸侯有天下.
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 皆不爲也.
是則同.」
孟子가 말하였다.
“있다.
百里 되는 땅을 얻어서 임금 노릇을 하면, 모두 諸侯에게 朝會 받고 天下를 所有할 수 있다.
한 가지 일이라도 不義를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서 天下를 얻는 짓은 모두 하지 않을 터이다.
이것이 같은 점이니라.”

, 言有同也.
有는 같음이 있음을 말함이다.

以百里而王天下, 德之盛也.
百里로써 天下에 王 노릇할 수 있음은 德의 盛大함이다.

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有所不爲, 心之正也.
한 가지 不義를 행하며 한 사람의 무고한 이를 죽이고서 得天下를 하지 않음은 마음이 올바름이다.

聖人之所以爲聖人, 其本根節目之大者, 惟在於此.
於此不同, 則亦不足以爲聖人矣.
聖人의 聖人이 되는 까닭은, 그 根本과 節目의 큰 것이 오직 여기(德之盛, 心之正)에 달려있다.
이와 같지 않고는 聖人이라 하기에 부족하다.

 

曰:
「敢問其所以異?」
공손추가 말하였다.
“敢히 (공자가 백이·이윤과) 다른 까닭을 묻겠습니다.”

曰:
「宰我·子貢·有若智足以知聖人.
汙, 不至阿其所好.
孟子가 말하였다.
“宰我와 子貢과 有若은 지혜가 족히 聖人을 알 만하다.
지혜가 낮더라도 그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데는 이르지 않았다.

, 下也.
汙는 낮음이다.

三子智足以知夫子之道.
세 사람의 지혜가 족히 夫子의 도를 알 만하다.

假使汙下, 必不阿私所好而空譽之, 明其言之可信也.
가령 (지혜가) 낮더라도, 필경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헛되이 칭찬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그들의 말이 믿을 만함을 밝혔다.

 

宰我曰:
『以予觀於夫子, 賢於堯舜遠矣.』
宰我가 말하였다.
“나로서 夫子를 觀察하건대 堯舜보다 현명함이 遠大하도다.”
:宰我의 이름 宰予를 말함.

程子曰:
語聖則不異, 事功則有異.
夫子賢於堯舜, 語事功也.
蓋堯舜治天下, 夫子又推其道以垂敎萬世.
堯舜之道, 非得孔子, 則後世亦何所據哉?
程子가 말하였다.
“聖人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나, 事業과 功績에는 다름이 있다.
夫子가 堯舜보다 나음은 事功을 말한 것이다.
대개 堯舜은 天下를 다스리고, 夫子는 또 그 道를 미루어 만세에 가르침을 남기셨다.
堯舜의 道를 孔子가 얻지 않았다면, 後人이 무엇에 의지하였겠는가?”
: 世代 (부자간) 또는 한 王朝
: 天理之自然

 

子貢曰:
『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由百世之後, 等百世之王, 莫之能違也.
自生民以來, 未有夫子也.』
子貢이 말하였다.
“공자가 제작한 禮를 보면 그 나라의 政事를 알 수 있으며, 공자가 제작한 音樂을 들으면 그 君主의 德을 알 수 있다.
百世를 경과한 후에 百世의 王들을 차등해보면, 그런 기준을 회피할 자가 없다.
生民이 있은 이래로 夫子같은 분은 계시지 않다.”
由: 经过,经历:必~之路。~来已久。


大凡見人之禮, 則可以知其政;
聞人之樂, 則可以知其德.
是以我從百世之後, 差等百世之王, 無有能遁其情者, 而見其皆莫若夫子之盛也.
말하였다.
“대체로 君主의 禮를 보면, 곧 그 나라의 政事를 알 수 있고, 音樂을 들으면 곧 가히 그 군주의 德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내가 百世의 뒤에서 百世의 王들을 差等해 보건대, 능히 그런 事情을 逃避할 자가 없으니, 그들은 모두 夫子의 盛大함만 같지 않음을 알겠다.”

 

有若曰:
『豈惟民哉?
麒麟之於走獸, 鳳凰之於飛鳥, 太山之於丘垤, 河海之於行潦, 類也.
聖人之於民, 亦類也.
出於其類, 拔乎其萃, 自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
有若이 말하였다.
“어찌 오직 백성뿐이리오.
달리는 짐승 중의 麒麟과, 나는 새 중의 鳳凰과, 언덕 개미둑 중의 泰山과, 길바닥에 고인 장마물중의 河海가 같은 류이다.
百姓 중의 聖人이니 또한 같은 부류이다.
그 부류 중에서 빼어나며, 모인 것에서 높이 솟아났으니, 生民이 있은 이래로 孔子보다 더 훌륭한 분은 있지 않았다.”
: 동물을 말한다. 벌레는 昆蟲이다. 羽蟲, 毛蟲등이 있다

麒麟, 毛蟲之長.
麒麟은 毛蟲의 으뜸이다.

鳳凰, 羽蟲之長.
鳳凰은 羽蟲의 으뜸이다.

, 蟻封也.
垤은 개미둑이다.

行潦, 道上無源之水也.
行潦는 길에 근원이 없이 고인 물이다.

, 高出也.
出은 높이 솟음이다.

, 特起也.
拔은 특별히 일어남이다.

, 聚也.
萃는 동류가 모임이다.


自古聖人, 固皆異於衆人, 然未有如孔子之尤盛者也.
예로부터 聖人이 본래 모두 衆人보다 뛰어나나, 그러나 孔子와 같이 더욱 훌륭한 분은 없었다고 말하였다.

程子曰:
孟子此章, 擴前聖所未發, 學者所宜潛心而玩索也.
程子가 말하였다.
‘孟子의 이 章은 전 성인들이 아직 發明하지 않은 것을 擴充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玩索(익숙히 찾음)하여야 한다.’
潛心: 專心致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