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 有諸?」
曹交가 물었다.
“사람은 다 堯舜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孟子曰:
「然.」
孟子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趙氏曰:
「曹交, 曹君之弟也.」
趙氏가 말하였다.
“曹交는 趙나라 君主의 아우이다.”
人皆可以爲堯舜, 疑古語, 或孟子所嘗言也.
人皆可以爲堯舜란 의심컨대 옛말이거나, 或은 孟子께서 항상 말씀하신 듯하다.
交聞文王十尺, 湯九尺, 今交九尺四寸以長, 食粟而已, 如何則可?」
“저(交)는 들으니, 文王은 (身長이) 十尺이요 湯 임금은 九尺인데, 지금 저는 九尺四寸이 되지만 밥만 축낼 뿐이니, 어찌하면 요순이 되겠습니까?”
曹交問也.
曹交가 물은 것이다.
食粟而已, 言無他材能也.
곡식을 먹을 뿐이라는 것은, 다른 재능이 없다는 말이다.
曰:
孟子가 말하였다.
「奚有於是? 亦爲之而已矣.
“요순이 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요순처럼 되려고만 하면 됩니다.
有人於此, 力不能勝一匹雛, 則爲無力人矣;
今曰擧百鈞, 則爲有力人矣.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힘이 한 마리 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요, 이제 百鈞을 든다고 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然則擧烏獲之任, 是亦爲烏獲而已矣.
그렇다면 烏獲(오확)이 드는 짐을 든다면 이 또한 烏獲(오확)이 될 뿐입니다.
夫人豈以不勝爲患哉? 弗爲耳.
사람이 어찌 감당하지 못함을 걱정하겠습니까? 자기가 하지 않을 뿐입니다.
匹, 字本作鴄, 鴨也.
匹자는 본래 鴄로 되어 있으니 오리이다.
從省作匹, 禮記說 「匹爲鶩」 是也.
생략하여 匹로 썼으니, 禮記에 匹을 鶩(집오리)이라고 설명한 것이 이것이다.
烏獲, 古之有力人也, 能擧移千鈞.
烏獲(오확)은 옛날에 힘이 있던 사람이니, 천균을 들어 옮길 수 있었다.
徐行後長者謂之弟, 疾行先長者謂之不弟.
천천히 어른보다 뒤에 감을 恭敬한다고 이르고, 빨리 어른보다 앞서감을 恭敬하지 않는다고 이릅니다.
夫徐行者, 豈人所不能哉?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어찌 사람이 할 수 없는 바이겠습니까?
所不爲也.
하지 않는 것입니다.
堯舜之道, 孝弟而已矣.
堯舜의 道理는 孝悌일 뿐입니다.
陳氏曰:
「孝弟者, 人之良知良能, 自然之性也.
堯舜人倫之至, 亦率是性而已.
豈能加毫末於是哉?」
陳氏가 말하였다.
‘孝弟는 사람의 良知와 良能으로 自然의 本性이다.
堯舜은 人倫의 지극함이로되 또한 이 本性을 따랐을 뿐이다.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본성에 덧붙일 수 있겠는가?’
楊氏曰:
「堯舜之道大矣, 而所以爲之, 乃在夫行止疾徐之閒, 非有甚高難行之事也, 百姓蓋日用而不知耳.」
楊氏가 말하였다.
‘堯舜의 道가 크되 이것을 행하는 방법은 바로 행동거지를 빨리하고 천천히 하는 데 있고, 甚히 고상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이 있지 않은데, 百姓들이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할 뿐이다.’
子服堯之服, 誦堯之言, 行堯之行, 是堯而已矣;
子服桀之服, 誦桀之言, 行桀之行, 是桀而已矣.」
그대가 堯임금의 옷을 입고 堯임금의 말씀을 외우고 堯임금의 행실을 행한다면, 堯임금이 된 것이요,
그대가 桀王의 옷을 입고 桀王의 말을 외우고 桀王의 행실을 행한다면, 桀王이 된 것이다.”
言
爲善爲惡, 皆在我而已.
善을 하고 惡을 행함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詳曹交之問, 淺陋麤率, 必其進見之時, 禮貌衣冠言動之閒, 多不循理, 故孟子告之如此兩節云.
曹交의 질문을 살펴보면 淺近하고 鄙陋하며 거칠고 경솔하니, 틀림없이 그가 나아가서 뵐 때 禮貌와 衣冠과 言動에 도리를 따르지 않음이 많았을 터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이 두 절처럼 하였다.
曰:
「交得見於鄒君, 可以假館, 願留而受業於門.」
曹交가 말하였다.
“제가 鄒나라 군주를 뵈면 館舍를 빌릴 수 있습니다. 거기 머물면서 門下에서 受業하기를 원합니다.”
假館而後受業, 又可見其求道之不篤.
館舍를 빌린 뒤에 受業하려고 하였으니, 또 그 道를 추구함이 돈독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曰:
「夫道, 若大路然, 豈難知哉?
人病不求耳.
子歸而求之, 有餘師.」
孟子가 말하였다.
“대저 道는 大路와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습니까?
사람의 병통은 도를 求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가 돌아가서 찾으면 많은 스승이 있으리라.”
言
道不難知, 若歸而求之事親敬長之閒, 則性分之內, 萬理皆備, 隨處發見, 無不可師, 不必留此而受業也.
말하였다.
‘道는 알기 어렵지 않으니, 만일 귀국하여서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곳에서 찾는다면, 본성과 분수 안에 온갖 이치가 다 구비되어 있어서, 있는 곳마다 發見되어, 스승 삼을 만하지 않은 것이 없을 터이니, 반드시 이곳에서 머물며 受業할 필요가 없다.’
曹交事長之禮旣不至, 求道之心又不篤, 故孟子敎之以孝弟, 而不容其受業.
조교는 어른을 섬기는 禮가 지극하지 못하였고, 道를 구하는 마음이 또 篤實하지 못하였므로, 孟子가 孝弟로써 가르치시고, 그의 受業을 용납하지 않았다.
蓋孔子餘力學文之意, 亦不屑之敎誨也.
孔子의 餘力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는 뜻이요, 또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不屑) 敎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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