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

맹자집주 고자장구 상 제8장

구글서생 2023. 3. 19. 03:42

孟子集注

 

孟子曰:
孟子가 말하였다.

「牛山之木嘗美矣以其郊於大國也斧斤伐之可以爲美乎?
“牛山의 나무가 아름다웠는데큰 도성의 郊外에 있기 때문에 도끼와 자귀로 베어가니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是其日夜之所息雨露之所潤非無萌蘖之生焉牛羊又從而牧之是以若彼濯濯也.
그 日夜에 자라나는 바와 雨露가 적셔주는 바에 싹이 나오는 것이 없지 않건마는소와 양이 또 뒤쫓아서 먹기 때문에 저와 같이 濯濯하게 되었다.

人見其濯濯也以爲未嘗有材焉此豈山之性也哉?
사람들은 그 濯濯(탁탁)함을 보고 훌륭한 재목이 있은 적이 없다고 여기지만이것이 어찌 의 本性이리오?

牛山, 齊之東南山也.
牛山은 齊나라의 도성 東南 쪽에 있는 山이다.

邑外謂之郊.
邑 밖을 郊라 이른다.


牛山之木, 前此固嘗美矣, 今爲大國之郊, 伐之者衆, 故失其美耳.
牛山의 나무가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웠는데 지금 도성의 郊外가 되어 나무를 베어가는 자가 많아서 그 아름다움을 잃었다는 말이다.

, 生長也.
息은 生長함이다.

日夜之所息,
氣化流行未嘗間斷, 故日夜之閒, 凡物皆有所生長也.
日夜之所息이란 氣化가 流行하여 間斷한 적이 없으므로, 밤낮으로 모든 식물에 다 生長하는 바가 있다는 말이다.

, 芽也. , 芽之旁出者也.
萌은 싹이요, 蘖은 싹이 곁으로 나오는 것이다.

濯濯, 光潔之貌.
濯濯(탁탁)은 빛나고 깨끗한 모양이다.

, 材木也.
材는 材木이다.


山木雖伐, 猶有萌蘖, 而牛羊又從而害之, 是以至於光潔而無草木也.
山의 나무가 비록 베어져도 그래도 싹이 나오지만, 소와 양이 또 뒤쫓아서 해치므로 산이 민둥산이 되고 草木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雖存乎人者豈無仁義之心哉?
비록 사람에게 보존된 것으로 말한다면 어찌 仁義의 마음이 없으리오?

其所以放其良心者亦猶斧斤之於木也旦旦而伐之可以爲美乎?
사람들이 자신의 良心을 잃어버리는 까닭은 도끼와 자귀가 나무에 대가서 날마다 베어내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고서도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其日夜之所息平旦之氣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則其旦晝之所爲有梏亡之矣.
日夜에 자라나는 바와 平旦의 맑은 기운에그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남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거늘낮에 하는 소행이 또 이것을 곡망(梏亡)한다.

梏之反覆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則其違禽獸不遠矣.
梏亡하기를 반복하면 夜氣가 족히 보존될 수 없고夜氣가 보존될 수 없으면 그가 禽獸와 거리가 멀지 않게 된다.

人見其禽獸也而以爲未嘗有才焉者是豈人之情也哉?
사람들은 그 禽獸 같은 행실을 보고 훌륭한 材質이 있지 않았다고 여기니이것이 어찌 사람의 本情이겠는가?

良心者, 本然之善心, 卽所謂仁義之心也.
良心은 本然의 善한 마음이니 곧 소위 仁義의 마음이다.

平旦之氣, 謂未與物接之時, 淸明之氣也.
平旦之氣는 事物과 接하지 않았을 때의 淸明한 기운을 이른다.

好惡與人相近, 言得人心之所同然也.
좋아하고 미워함이 남들과 서로 가깝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기는 바를 얻음을 말한다.

幾希, 不多也.
幾希는 많지 않음이다.

, 械也.
梏은 형틀이다.

反覆, 展轉也.
反覆은 展轉함이다.


人之良心雖已放失, 然其日夜之間, 亦必有所生長.
故平旦未與物接, 其氣淸明之際, 良心猶必有發見者.
但其發見至微, 而旦晝所爲之不善, 又已隨而梏亡之, 如山木旣伐, 猶有萌蘖, 而牛羊又牧之也.
晝之所爲, 旣有以害其夜之所息, 又不能勝其晝之所爲, 是以展轉相害.
至於夜氣之生, 日以寖薄, 而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 則平旦之氣亦不能淸, 而所好惡遂與人遠矣.
말하였다
‘사람의 양심을 비록 이미 방실하여도 그 日夜에 오히려 반드시 생장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平旦에 사물과 접하지 않아서, 그 기운이 淸明할 때에 오히려 良心에 반드시 發見되는 것이 있다.
다만 그 發見됨이 지극히 微弱하고, 낮에 행하는 不善이 또 이미 뒤쫓아서 梏亡시키니, 이것은 산의 나무를 베어간 뒤 그래도 싹이 돋아나도,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먹는 것과 같다.
낮에 하는 행위가 밤에 자란 것를 해치니, 밤에 자라는 바가 또 낮에 행하는 나쁜 행위를 이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전전(展轉)하며 해쳐서, 夜氣가 생겨나는 것이 날로 점점 박해져서, 仁義의 良心을 보존할 수 없는 데에 이르면, 平旦의 기운도 또한 맑지 못하여,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바가 마침내 사람과 멀어진다.’

故苟得其養無物不長苟失其養無物不消.
그러므로 진실로 옳게 기르는 법도를 얻으면물건마다 자라지 못함이 없고,
진실로 옳게 기르는 법도를 잃으면물건마다 사라지지 않음이 없다.

山木人心, 其理一也.
산의 나무와 사람의 마음이, 그 이치가 같다.

孔子曰:
『操則存舍則亡出入無時莫知其鄕.』 惟心之謂與?」
孔子가 말하였다.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아버리면 잃는다.
나가고 들어옴에 정한 때가 없으며그 방향을 알 수 없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

孔子言
心操之則在此 舍之則失去 其出入無定時 亦無定處如此.
孔子가 말하였다.
“마음은 잡으면 여기에 있고, 놓으면 잃어버린다. 그 出入이 정해진 때가 없고, 또한 정해진 곳이 없음이 이와 같다.”

孟子引之以明
心之神明不測 得失之易而保守之難 不可頃刻失其養.
學者當無時而不用其力 使神淸氣定 常如平旦之時 則此心常存 無適而非仁義矣.
孟子가 이것을 引用하여,
“마음이 神明을 測量할 수 없어서 득실(잃음)이 쉽고, 보존하여 지킴이 어려우니, 잠시라도 그것을 옳게 기름을 잃어서는 안 된다.
배우는 자가 마땅히 때마다 자신의 힘을 쓰지 않음이 없어서, 정신이 맑고 기운이 안정되게 하여 항상 平旦의 때와 같게 한다면, 이러한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 가는 곳마다 仁義 아님이 없게 된다.”라고 밝혔다.

程子曰
心豈有出入?
亦以操舍而言耳.
操之之道 敬以直內而已.’
程子가 말하였다.
“마음에 어찌 出入이 있겠는가?
이 또한 잡아둠과 놓아버림을 말했을 뿐이다.
마음을 잡는 방법은 敬하여 마음을 곧게 하면 그만이다.”

愚聞之師 曰
人理義之心未嘗無 惟持守之 卽在爾.
若於旦晝之間 不至梏亡 則夜氣愈淸 夜氣淸 則平旦未與物接之時 湛然虛明氣象 自可見矣.
孟子發此夜氣之說 於學者 極有力 宜熟玩而深省之也.’
내가 스승에게 들었다.
“사람에게 理義의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니, 이것을 굳게 지키면 바로 여기에 있을 뿐이다.
만일 낮에 梏亡시키는 데 이르지 않으면, 夜氣가 더욱 맑아질 것이요, 夜氣가 맑아지면 平旦에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 湛然(담연)히 虛明한 氣象을 스스로 볼 수 있을 터이다.
孟子께서 이 夜氣의 말씀을 發하셨는데, 배우는 자들에게 지극한 工力이 있으니 마땅히 익숙히 보고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