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金庠基) (1901∼1977) 사학가, 문학박사. 호 동빈(東濱). 전북 김제 생.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 졸업. 서울대 교수, 국사편찬위원, 독립운동사 편찬위원, 학술원 회원 등을 역임. 저서에 「동학과 동학란」, 「동방문화사교류논고」, 「고려시대사」, 「중국고대사강요(中國古代史綱要)」, 「동양사기요(東洋史記要)」 등이 있음. |
삼국시대의 명상(名相)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를 대표로 들게 되는 것이다.
을파소가 국정에 당하게 되던 때는 고구려의 내외 정세가 실로 다난하였으니, 원래 발전도상에 있던 고구려와 한족(漢族)과의 충돌은 처음부터 자주 일어났던 것이거니와, 제9대 고국천왕시대에 이르러는 후한(後漢)이 쇠퇴하고 요동에는 공손씨(公孫氏)의 半獨立的 세력이 나타나 자주 고구려를 침구(侵寇)하였으며, 다시 국내의 상태를 살펴보면 고국천왕은 신대왕의 제2자이나 인물이 雄傑하므로 國人에게 추대되어 신대왕의 뒤를 이었더니 불초한 그의 형 발기(拔奇)는 형으로서 位에 오르지 못함을 원망하여 연로가(涓奴加)와 더불어 각각 하호(下戶) 3만 구로써 공손강에게 복속하고, 舊都인 비류수(沸流水)가에 웅거하여 공손씨의 위세를 빌어 고국천왕과 대항하는 자세를 보였고, 조정에는 綱紀가 문란하여 왕후 우씨의 친척인 어계류(於界留)와 좌가려(左可慮) 등이 정권을 농단(壟斷)하고 그의 자제배(子弟輩)는 위세를 부려 인민의 자녀를 약취하며 전택(田宅)을 점탈하여 驕奢를 극히 하므로 국민의 원한이 높았었다.
1)공손씨(公孫氏):공손탁(公孫度)과 그의 아들인 공손강(公孫康).
2)연노가(涓奴加):연노부의 대인인 듯.
3)하호(下戶):속민(屬民).
4)어계류(於界留):벼슬은 중외대부(中畏大夫)인 패(沛).
5)농단(壟斷): 이익을 독점함. 옛날 어떤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시장을 살펴보고 자기 물건을 팔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서 상리를 독점했다는 고사. 孟子 公孫丑에 나옴.
6)교사(驕奢):교만과 사치.
이에 고국천왕은 크게 근심하여 그들 외척을 베고자 하였더니, 좌가려등이 모반하여 동왕 13년(191) 4월에 부중(部衆)을 이끌고 왕도를 공격하였다. 왕은 기내(畿內)의 병마를 징소하여 반란을 토평(討平)한 다음에, 명을 내려 그의 불민한 것을 천하에 사(謝)하고 4부로 하여금 각각 숨어있는 현량(賢良)을 천거케 하였다.
당시 고구려에는 그러한 내우외환이 뒤를 이어 일어나므로 위대한 정치가가 대망되던 것으로서, 4부에서는 모두 동부의 안유(晏留)를 추거(推擧)하였다.
왕은 그를 불러 국정을 맡기려 하였더니 안유는 왕께 아뢰되,
“미신(微臣)은 자질이 용렬하여 족히 대정(大政)에 참여할 것이 되지 못하외다. …대왕께서 만일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시거든 이 사람이 아니면 아니 되오리다.”하고, 성질이 강의(剛毅)하고 지려(智慮)가 연심(淵深)한 을파소를 소개하여 자기의 대(代)로 천(薦)하였다.
을파소는 제2대 유리왕의 대신 을소(乙素)의 손(孫)으로서 서압록(西鴨綠) 곡좌물촌(谷左勿村) 사람이니, 제세(濟世)의 대략(大略)을 품었으나 세상에 쓰이지 못하므로 몸소 밭을 갈아 자급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국천왕은 안유의 말을 듣고 곧 사자를 보내어 비사중례(卑辭重禮)로써 맞이하여 중외대부(中畏大夫)에 우태(于台)의 작(爵)을 제수하고,
“과인이 선업(先業)을 이어 신민의 위에 처하였으나 덕이 박하고 재(材)가 짧아 다스리는 데에 변변치 못하도다. 이제 선생이 나를 버리지 않고 번연(幡然)히 이르니, 이는 홀로 나의 희행(幸)한 일일 뿐 아니라 사직생민(社稷生民)의 복이로다. 청컨대 교도(敎導)를 받고자 하니. 공은 마음을 다할지어다.”하고 한가지로 국정에 진력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을파소는 마음으로는 비록 나라에 허하였으나, 받은 바 그의 직위가 큰 경륜을 실행하는 데는 부족하였다.
7)비사중례(卑辭重禮):말을 낮추고 예를 높임. 임금이 어진 이를 초빙하는 예(禮)
8)번연(幡然):바람에 펄펄 나부끼는 모양, 여기서는 거리낌없이 응하여 온다는 뜻.
그리하여 그는 짐짓 왕께
“신의 노건(駑蹇)한 재질로는 감히 엄명에 당키 어려우니 원컨대 대왕은 현량한 사람을 뽑아서 고관을 주시어 대업을 이루게 하소서.”하고 사양하였다.
9)노건(駑蹇):노둔함.어리석고 쓸모없음.
왕도 그의 뜻을 알고 드디어 국상을 제수하여 정사를 통할케 하였더니 조신과 국척들은 이를 시기하여 심히 미워하였다.
왕은 다시
“귀천을 막론하고 국상에 좋지 않는 자는 일족을 벌하리라.”라는 엄명을 내렸다.
국왕의 지우(知遇)에 감격한 을파소는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이 선비가 떳떳이 할 바이니 이제 위에서 후의로써 대접하시니 내 어찌 옛날의 은거생활을 그리워하랴.”하고 지성으로 국정을 받들어 정교(政敎)를 밝히고 상벌을 삼가니 치적이 크게 나타나 인민이 편안하고 내외가 무사하였다.
을파소를 얻은 왕은 못내 안유를 칭찬하며
“만일 그대의 일언(一言)이 없었던들 을파소를 얻어 나라를 같이 다스리지 못하였을 것이니 이제 서적(庶績)이 나타나게 된 것은 그대의 공이다.”하고 대사자(大使者)의 벼슬까지 주었다.
10) 서적(庶績): 많은 공적.
이로부터 을파소는 고국천왕, 산상왕을 역사(歷事)하여 약 12년 동안 국상으로서 서정(庶政)을 총리하여 치적을 더욱 올리다가 산상왕 7년(203) 8월에 서거하니 거국(擧國)이 통석(痛惜)하여 마지아니하였다.
다음에 그의 치적을 몇 가지 들어 보면,
① 관곡진대법(官穀賑代法)이니 이것은 그의 치적 가운데에도 대서특필할 것이다. 이 진대법은 고국천왕 16년부터 시행한 것으로서 매년 유사(有司)를 명하여 인민의 가구 다소를 헤아려 3월부터 7월에 이르기까지, 즉 춘궁기를 중심으로 하여 관곡을 풀어 진대하였다가, 7월에 대곡(穀)을 환납케 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외대열(內外大悅)’이라는 큰 성적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직접으로는 빈민을 구호하고 간접으로는 농자(農資)를 공급하여 농정의 충실을 조장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케 하는 일석삼조의 정책이다. 이것은 일견 한(漢)의 상평창(常平倉) 또는 조직법(糶糴法)과도 근사하나, 상평창 제도와 조적법은 곡물에 대한 일종의 무천매귀책(貿賤賣貴策)으로서 곡가 조절, 즉 곡가의 평준을 보(保)하려는 것이 그의 주된 목적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진대법은 빈농을 구제하면서도(물론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님) 관곡을 소모치 아니하는 것이 특색이라 할 것이니 이 良法은 고려의 이창(里倉)과 의창제(義倉制)의 先驅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11) 糶糴法:환곡법(還穀法).
② 당시 지나(支那)에는 후한이 쇠퇴하여 그의 내부가 극도로 혼란하였던 것으로서, 그 영향이 끊임없이 고구려에 파급하였다. 그리하여 한인의 내투자(來投者)도 자못 많았으나, 그는 평온한 가운데서 귀화 안도케 하였으며,
③ 앞서 발기의 반거(坂據)를 비롯하여 고국천왕이 붕거한 때에도(197) 산상왕이 우후(于后)와 결탁하여 뒤를 이을 때 왕족 사이에 자못 큰 분쟁이 일어났으나, 국본(國本)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무사히 감정된 것은 을파소의 위망(威望)이 영향된 바가 많았을 것으로 믿는다.
12)감정: 평정(平定).
④ 국도 국내성(國內城;만주 즙안현 통구 부근인 듯)과 그의 부근은 앞서 공손강의 침구를 받아(신대왕 때) 자못 황퇴(荒頹)하였으므로 신도 택정(新都擇定)의 필요가 생겨 산산왕 2년에 환도성(丸都城;역시 통구 부근인 듯)을 쌓아 신도의 경영을 행하였다(같은 왕 13년 10월에 환도로 천도하였음).
이상으로써 그의 치적의 일반(一斑)을 들었거니와, 당시 국내에는 반란이 빈기(頻起)하고 외부에는 요동의 공손씨가 위세를 펴고 있는 위에 후한의 쇠퇴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여파가 끊임없이 국내에 밀려오게 되었다. 이러한 난국에 있어 안으로는 반란이 조용한 가운데에 진정이 되고, 밖으로는 국위가 보전케 된 데에는 을파소의 힘이 컸던 것이거니와, 특히 민정에 힘을 기울여 국민생활의 안정을 보게 된 것은 그가 명상(名相)으로서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기게 된 주요한 업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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