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版)을 거듭해 내면서
한국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긴 명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업적을 남기고 역사 속에 묻혔는가. 오늘의 현실과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며 그 본보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 출판부는 1939년 「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이란 책으로 제시했다.
이 책은 고구려의 명장 을파소를 서두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훌륭한 군주, 현명한 재상, 용맹스런 장군의 슬기와 패기를 서술했고 학자, 법승, 문인에서 의술, 음악, 서화, 건축 등에 뛰어난 장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100명의 면면과 문화사에 새긴 그들의 깊은 자취를 헤아려 담았다.
일제가 이 땅을 다스린 1930년대 말, 이 땅의 지식인들은 문화의 암흑기에 일본 문물이 아니면 일본어에 담겨 들어온 서양 문화로 그들의 갈증을 풀어나갈 무렵 당대의 저명한 역사학자를 비롯한 석학 27명이 한국사의 지평에서 100명의 걸출한 명인을 찾아내어 논문으로 정리했다.
통사(通史)에서는 물론 분야사(分野史)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인물의 얼굴과 업적이 확연하게 드러났을 뿐 아니라 그들을 명인으로 평가한 이유에 있어서도 객관적 타당성을 잃지 않았다. 인물 탐구와 업적의 평가에 있어 전기에서 보는 흥미 위주의 이야기 줄거리에는 약하나 관련 문헌을 인용하는 등, 교양의 범위를 넘어 한국사를 전공하는 이들에까지 값진 사료를 제시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 책을 오늘에 거듭 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8년 5월
조선일보사 출판국장 安鍾益
2. 서(序)
전기(傳記)가 개인의 수양에 막대한 효과가 있고 사회의 진보에 위대한 공헌이 있는 것은, 여(余)가 이곳에서 奴咖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영웅과 호걸의 풍공(豐功)과 위업을 추모하고 철인(哲人)과 달사(達士)의 사상과 행실을 섭렵하며, 명군(明君)과 현상(賢相)의 홍유심모(鴻猷深謀)를 궁구(窮究)하고, 문인과 소객(騷客)의 예술과 사고를 탐색하는 것은 인격의 수련과 지기(志氣)의 조장(助長)에 귀감이 되고 잠명(箴銘)이 되어서 인간 일생에 불가무(不可無)의 정신적 양식이 되는 것이다.
1) 노가(奴咖):변명하는 뜻으로 여러 말을 길게 늘어놓음.
2) 풍공(豐功):매우 큰 공훈.
3) 홍유심모(鴻猷深謀):넓고 깊은 꾀.
4) 소객(騷客): 시인(詩人).
5) 잠명(箴銘):경계하여 마음 속에 깊이 새김.
조선은 문화의 지역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땅에 이 문화를 건설하는 데에 공헌한 사람이 무릇 기하인가?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인격으로 어떤 사업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전하여 주었는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요, 우리의 내조내부(乃祖乃父)다. 자손으로서 부조(父祖)의 사상, 사업 내지 인격을 모른다는 것은 인생으로서의 절대적인 수치라고 아니할 수 없다.
6) 내조내부(乃祖乃父):우리네 조상.
원래, 우리는 기록과 선전(宣傳)에 졸렬하다. 더우기 자기의 것을 잊고 남의 것만을 숭상하였었다. 문화가 계개(啓開)된 금일에 자기 조상의 성철(聖哲)을 모르고 있는 것도 그릇된 배타주의, 예를 들면 몇 세계를 두고 혼취(昏醉)한 모화사상(慕華思想) 같은 것의 여독(餘毒)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서구의 문화가 수입된 지 반세기에 우리는 자기의 동명왕을 모르고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를 알게 되며, 자기의 이순신을 모르고 넬슨을 알며, 자기의 원효나 퇴계를 모르고 칼빈과 웨슬레이를 알며, 율곡이나 화담을 모르고 칸트나 다윈을 알며, 연암을 모르고 톨스토이를 알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 이것이 어찌 유의자(有意者)의 개탄할 바가 아니고 무엇이랴?
조선일보사 방(方)사장께서는 이제야 본 바가 있고, 생각한 바가 있어서 조선의 영주(英主), 명상(名相), 명장(名將), 충신(忠臣), 명승(名僧), 명유(名儒), 시인, 문호는 물론 악사(樂師), 화백(畫伯), 명의(名醫), 명장(名匠), 명기(名妓), 명우(名優) 등까지 100여 인을 망라 선택하여 사학자로, 전기작가로 일대의 권위 20여 인에게 이 명인들의 전기를 집필하도록 특청을 하여서 정금미옥(精金美玉) 같은 원고를 수집하였다. 그리고「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이라고 명명하여서 세상에 광포(廣布)하기로 하였다.
이 「조선명인전」은 조선 출판계에 있어서도 실로 희귀한 것이다. 더우기 그 의도와 내용이 이와 같다는 것은 지금까지 일찌기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조선명인전」이 한번 세상에 나가면 일반 인사의 인격 수양상, 사회 교화상, 문화 추진상 공헌하는 바가 적지 아니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고(稿)를 기궐에 부치는 날에 당하여 이와 같은 변언(弁言)으로 소개의 말을 대(代)하여 둔다.
7)기궐:인쇄. 나무판에 새김.
8) 변언(言): 머리말.
기묘 유하 상한(己卯 榴夏 上瀚) 이훈구(李勳求) 식(識)
3. 일러두기
초간본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총망라하여 3권으로 출간된 것을 시대순으로 상·하 2권으로 나누었다. 상권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장영실까지의 56인을, 하권은 성삼문 이후부터 1850년경에 이르기까지의 44인을 실었다.
○원전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되 현대 맞춤법에 맞게 하였고, 지나친 옛 말투나 한문 투의 문어체는 현대어로 바꾸었다.
그 몇몇 예를 보이면
〈예〉하얐으니→하였으니, 하사→하시어, ―더라→—다, 지(至)하여→이르러, 어시호(於是乎)→이제야, 잉(仍)히→이어, 우(又)는→또는, 차시(此時)는→이때는, 일일은→하루는 등.
○난삽한 한자어, 고사성어, 사어(死語) 등은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각 논문 뒤에 붙였다.
○이 책에는 한시와 한문 문장이 많이 나오는데, 한문 문장의 경우 그 번역만 싣고 원문은 생략하였으며 한시의 경우에는 주석에 원문을 실었다. 번역의 경우 번역본을 인용한 것은 그 번역자 이름을, 그 외의 것은 '편집자 역’이라 부기하였다(단, 간단한 문장은 본문에 한자를 괄호 안에 넣고 편집자의 해석에 '편집자 역'이라는 부기를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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